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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

         

         

         검은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바다 위에 광원이 없었으므로 내리는 눈은 하얗지 않았다.

         

         횃불을 들고 있는 선원들, 꺼진 등대를 대신해 모닥불을 켜는 항만 직원들, 등불을 들고 바다를 바라보는 귀족들 모두는, 시야를 가리는 검은 눈송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공중전함이 눈처럼 낙하한다.

         

         

        -후우웅… 콰앙.

         

        -콰아앙, 콰지직….

         

         

         전함이 추락해 수면에 부딪치는 소리는 거친 겨울 바람 사이에서, 먼 메아리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한 척의 전함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마다 풍랑이 인다. 항만에 피항한 선박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철썩, 하고 방파제를 후려친 파도의 포말이 한 엘프 귀족의 뺨을 적시고.

         

         

         “종말이 오고 있구나.”

         

         

         한때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문명의, 그리고 그 문명 안에서도 가장 강대한 권력을 쥐고 있던 존재들이, 시대의 끝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이는 칼리온의 13개 부속 도서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엘프들은 제공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칼리온이 상실한 것은 그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

         

         

         “해일!! 좌현!!”

         “말을!! 똑바로 해야지!! 파고를 정확히!!”

         

         

         진눈깨비 사이로 고함이 오고갔다. 벌써 여섯 시간째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이반은 돛줄을 꽉 붙들고 있는 힘껏 마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룬디스가 갑판 위를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밧줄 하나를 재빨리 집어던져 묶었다. 시선을 돌리니, 오스왈드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갑판에서 튕겨나간 것이다. 이반은 이를 꽉물며 한 손으로 돛줄을 붙잡고, 다른 손을 뻗어 오스왈드를 묶었다.

         

         

         “가, 감사— 으웨에엑!!”

         

         

         오스왈드는 예의 바르게 구토를 시작했다. 일단 예의는 발랐으니 이해해 주기로 했다. 대저 마력이 끊긴 마법사란 이런 법이니까.

         

         선원들이 이리저리 오고가며 풍랑을 헤치고 있었다. 항해 기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지라, 이반은 조용히 할 일만 하기로 했다.

         

         그의 역할은 마법을 대신해 돛을 지탱하는 것이었다. 돛줄이 당기는 장력을 고려한다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지만.

         

         

         “등대!! 북북서!!”

         “으아아아아!!!”

         

         

         선박보다 거대한 풍랑을 미끄러지듯 넘었다. 선원 두엇이 갑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밤바다 사이로 빨려들어간 선원은 다신 머리를 내밀지 못했다.

         

         검각에서 이드란힐로 공중항해를 한다면 세 시간이 걸린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항해를 한다 치면 반나절 가량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반은 초 단위로 시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항해 시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네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인 대양 항해에 비해 세 배는 빠르게 도착했다는 뜻이다. 순풍을 탔다고 봐도 좋았다. 과도하게 순풍이어서 문제였을 뿐.

         

         이반은 시선을 올려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폭풍이 이는 하늘에서, 눈들은 힘없이 바람결에 따라 흩날렸다.

         

         이드란힐로 향하고 있었다.

         

         바람도, 눈도, 해류도.

         

         폭풍이 모이고 있다.

         

         

         “정박 준비!!”

         

         

         눈깜짝할 새에 성큼 다가온 항구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

         

         

         출항한지 사흘만에 돌아온 이드란힐의 항구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인간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엘프를 내쫓고, 불타는 바리게이트 너머에서 농성하는 광경이 보였다.

         

         횃불을 들고 선 엘프들은 초췌해 보였다.

         

         

         “만년궁이 봉쇄되었습니다, 선배님!”

         

         

         다행히, 항구를 점거한 인간의 우두머리는 아는 사람이었다.

         

         

         “봉쇄…?”

         “예, 뭐. 당연하지 않겠슴까? 거 왜, 원래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선 뭐어… 겁에 질린 권력자가 일단 금고랑 창고부터 잠그고, 화가 난 노동자들이 일단 불을 지르며 주요 시설물을 점거하고—.”

         

         

         도시 내 노동계층에 종사하던 인간들을 선동해 항구를 점거한 사내가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겁을 냈다고, 여왕이?”

         

         

         그럴 리가.

         

         겁에 질리기엔 너무 담대한 노인이다. 지금의 여왕은.

         

         그리고 이 상황은, 국가적 재난 상황인 것이야 맞지만….

         

         

         “각오하고 저지른 일에 겁을 먹는 사람이 있나.”

         “예…?”

         

         

         이반의 대답을 듣는 순간, 드미트리의 눈이 날카롭게 뜨였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심지어 절멸부대로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위업이다. 칠용장과 대적하고도 살아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더욱이.

         

         그리고 돌아온 고국은 계승권 다툼이 한창이던 지옥도였다. 한순간의 실수로도 언제든 숙청당할 수 있는 살얼음판이었다. 그 과정을 모두 딛고 살아남았다는 것으로, 드미트리의 유능함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는 이반의 말 속에서 짙은 함의를 인지할 수 있었다.

         

         

         “누구와 손을 잡았답니까? 마족?”

         “베올그린.”

         “그 작자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기야 하겠죠… 이유는요?”

         “알아봐야지.”

         

         

         이반은 피로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이드란힐의 항구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피해 상황은?”

         “아군 피해는 전무합니다.”

         

         

         드미트리의 곁에 서 있던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점거 상황은?”

         “이곳을 포함한 4개의 항만은 완벽하게 점거했습니다. 군사 시설이라고 할 만한 곳이 그곳 뿐이더군요. 귀족가로 이어지는 거리엔 방어선이 생겼습니다. 현지 엘프들의 저항이 거세어서, 만년궁으로 향하는 길목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폭동은?”

         “시작은 저희가 주도했습니다만, 시간 문제였죠. 솔직히. 마법을 잃은 엘프들 뒤에 금은보화가 쌓여 있는데 저 치들이 그걸 참겠습니까?”

         

         

         노동자 대부분은 인간이며, 이 시대 인간 대부분은 전쟁의 직접 경험자들이다. 1차 노동에 종사할 정도로 건강하고, 외국에서 노예에 준하는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계층이라면 더욱이.

         

         이들 대부분은 징집병 신분으로 전선에서 뛰었던 인물들일 것이다. 그런 거친 인력을 다스리는 유일한 시스템은 마법 뿐이었다.

         

         마법이 정지한 시점에서 엘프 사회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하겠다. 도시의 노동인구가 귀족인구의 열 배는 넘긴 시점에서, 엘프들이 축적한 재화가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있을 테니까.

         

         

         “오스왈드.”

         “예, 이반 씨.”

         “에블린과 함께 떠나라. 추밀원장과 접촉하고 상황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드란힐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서른 남짓의 요원들과 함께라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요 시설들을 점거하고 인간들을 선동하면 그만이었다. 선동된 인간들은 자연히 ‘무력을 가진 인간 집단’에 합류하길 바랄 테니까.

         

         

         “최대한 많은 추밀의원들을 모아서, 이 도시를 포위해야 한다.”

         “…여길요?”

         “여왕이 베올그린에게 전권을 맡겼을 리가 없으니까.”

         

         

         여왕이 제정신이라면 반드시 베올그린을 제어할 수단을 갖춰두었을 것이다. 마일스톤을 정지하는 시점에서 종족의 명운이 걸린 대사업이 될 테니까.

         

         그러므로 지금 이드란힐을 점거하고 여왕을 억류해야 한다. 여왕이 만년궁을 봉문한 것이 그 사실을 암시한다.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이 여왕과 베올그린이라면, 복구할 방법 또한 여왕에게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해결책이라도.

         

         무엇을 바라고 있기에 문을 닫고 농성하고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룬디스. 루시아. 너희 둘이 지금 시점에선 유일한 전력이다.”

         “하여간 귀쟁이들이 그렇죠 뭐.”

         

         

         룬디스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상상할 수 없는 범주 내의 재난이었으나 이반은 이번 파티 구성이 실책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일행 대부분을 엘프로 잡은 탓에, 엘프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전력 공백이 심했다.

         

         하지만 루시아와 룬디스라면 대응할 수 있다. 명시적인 적이 없는 재난 상황에서, 직접적인 분쟁에 일행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탓이다.

         

         룬디스는 드워프의 공학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 받은 공병이다. 마법이 사라진 시점에서 가장 유능하다 하겠다.

         

         그리고 루시아는, 어떤 경우에도 이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이다. 직접 전투력이 다소 미흡할 수는 있어도 저 둘이 함께라면 척후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

         

         

         “추밀원이 소집되고 대응이 시작되면 정보를 모아라. 추밀원 내에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 사태가 베올그린과 여왕의 합작이란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다.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한 조각이.

         

         알렉산드르.

         

         애초에 이반이 칼리온으로 향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추밀원 중 누군가가 알렉산드르와 손을 잡고 있다는 첩보.

         

         지금 이 나라엔 아직도 알렉산드르가 있다. 그리고 그 자가 이 사태에서 무엇을 바라고, 어떤 행동을 시도할 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예, 사형. 금방 돌아올게요!”

         “어르신,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일행은 곧장 선원을 이끌고 떠났다. 간단한 선적 이후 배는 곧장 검은 밤바다를 향해 떠났다.

         

         이반은 후미에서 손을 휙휙 흔드는 루시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드미트리.”

         “예, 선배님.”

         “타국의 여왕을 심문하는 것이 외교적인 문제가 될까.”

         “문제를 삼으면요.”

         “네가 마지막으로 투입된 작전이 어느 방면이었지?”

         “동북부, 대균열의 올레가였습니다.”

         “생존자는?”

         “절 포함해 다섯이 살아남았었죠.”

         

         

         이반은 시선을 돌렸다. 그를 둘러싼 사내들이 보였다.

         

         그는 이 자리의 모든 사내들을 알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삶과, 취미, 가장 사소한 특징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칠용장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 전우의 9할 이상을 사지에 묻고 돌아온 자들이다.

         

         

         “선배님, 전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해야만 할 일이 있다면, 후일을 고려하지 말라.

         

         

         “지금의 인선은 전하께서 직접 준비하셨습니다.”

         

         

         절멸부대의 생존자들을 모두 모아 보냈다. 엘리자베타가 직접. 한때 절멸부대를 운영했던 사령관의 판단이다.

         

         이는 곧, 칠용장의 왕거마저도 도모할 수 있는 전력이다. 이 시대, 크라실로프가 보유한 가장 은밀하고 날선 검이다.

         

         모든 문명의 군대는 그 상징을 방패로 삼는다. 민족과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절멸부대는 창립 초부터 오로지 하나의 문장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역수로 쥔 단검. 오직 공세만을 위한 병종이란 의미를 담아.

         

         

         “작전을 하달 하겠다.”

         “예, 사령관님.”

         

         

         절멸부대의 마지막 고위장교가 입을 열었다.

         

         

         “최종 목표는 칼리온의 정상화. 당면 과제는 만년궁의 점거. 차후(此後) 과제는 여왕의 생포 및 심문, 사태 파악. 차선(次善) 과제는 이드란힐의 무력화. 실패시 대안 과제는 추후 도착할 추밀원의 병력과 합류 후 정보 확보.”

         

         

         이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대전략은 칼리온의 재편 과정에서의 적극적 개입. 최소조건은 크라실로프의 부동항 확보. 최대조건은 공중전함의 원천기술 확보.”

         

         

         그리고.

         

         

         “알렉산드르의 신병 확보다.”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선배님?”

         “해라.”

         “감정 실어도 됩니까?”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절멸부대의 생존자란 뜻은 다시 말해.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은, 전우를 칠용장의 면전에 묻고서 바닥을 기어 살아 돌아왔다는 뜻이다.

         

         한 미치광이의 명령에 의해.

         

         절멸부대가 엘리자베타의 손을 붙잡고 방첩사령부를 창설한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국가에 배신당한 요원들이 다시금 국가 권력에 몸을 의탁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복수.

         

         드미트리의 질문과 함께, 서른 남짓의 요원들이 동시에 이반을 바라보았다.

         

         

         “팔다리 멀쩡히 돌아가게 둘 수는 없잖습니까.”

         “복수는 무의미하지.”

         

         

         이반은 묵묵히 드미트리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그러니, 의미 없이 죽은 형제들에게 바칠 헌화로는 적당하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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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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