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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나와 프란체는 각별한 연인 사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남남인 사이다.

         

       이를 연결해주는 고결한 의식, 결혼.

         

       페델리안 제국 사회에 나와 프란체의 혼인을 선언하며 알림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공인하게 되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렸던 결혼식 당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식이 열리는 장소인 공작저의 사용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택의 로비에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고, 안전을 신경 써야 하는 만큼 공작가의 기사단이 모두 동원되어 곳곳에 배치됐다.

         

       또한, 네 명의 사용인들이 내게 붙어 치장을 도왔다.

         

       중대한 결혼식인 만큼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건 알겠다마는…….

         

       “머리는 저번처럼 갈고리 형태가 좋겠네요.”

       “어머, 이 예복 재질 진짜 좋지 않아요?”

       “후작님 금안은 언제 봐도 매력적이세요.”

       “흠, 가슴에 꽃을 달아야 하나?”

         

       쉴 틈 없이 입을 여는 사용인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심지어 대화 주제도 통일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

         

       일방적인 대화의 흐름.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또 하고 있고.

         

       “…준비는 언제 끝나나?”

         

       눈을 감은 상태에서 조용히 묻자 압박을 느꼈는지 사용인들의 손이 더욱 분주해졌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나요!”

       “머리 고정만 시키면 돼요!”

       “흠, 꽃을 달아야 하나…?”

       “이제 예복 준비할게요!”

         

       준비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꽃을 든 채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프란체가 보고 싶다. 분명 엄청나게 아름다울 테지.

         

       “됐다, 후작님 이제 일어나주세요!”

         

       눈을 떴다.

         

       저번처럼 갈고리의 형태로, 이마가 보이도록 넘겨진 머리. 단정하게 다듬어진 눈썹. 간단한 화장을 통해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이래서 신랑 쪽도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이제 예복만 입으시면 돼요. 도와드릴까요?”

       “아니, 예복은 혼자서 입지. 다들 쉬러가 봐.”

       “앗, 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나와!”

         

       총총 걸음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사용인들. 이어서 문이 닫혔다.

         

       쿵.

         

       “흠.”

         

       수은을 덧댄 거울을 바라보니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깔끔한 내가 있었다.

         

       아까도 보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또 다른 느낌이네.

         

       아무튼.

         

       ‘예복 입어야지.’

         

       옷걸이에 걸린 예복을 바라봤다. 새까만 색으로 반들거리는 정장. 단정함과 깔끔함이 중요한 옷인 만큼 안드레아 특유의 화려한 디자인은 새겨지지 않았다.

         

       ‘좋네.’

         

       예복으로 갈아입곤 빠르게 드레스룸을 나섰다.

         

       바로 프란체를 보고 싶었건만…….

         

       “후작님, 공작님의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이 시작되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사용인들이 막아세웠다.

         

       “어째서지?”

       “그편이 더욱 감동적일 테니까요.”

       “…….”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만, 보고 싶은 건 사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짐에 따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후작님, 지금 공작님께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우세요. 그 모습을 미리 보고 결혼식을 진행한다면 다소 감동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사용인들이 설득을 시작했다.

         

       “결혼식이 시작되면 후작님께서는 미리 입장하실 거예요. 공작님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후작님에게 다가가시겠죠. 그때만의 그 감동을 위해서 지금은 참는 게 좋지 않을까요?”

         

       흐음, 고민이 더 깊어진다.

         

       “단 한 번뿐인 순간이잖아요? 더욱 큰 감동을 위해서 조금만 참자구요!”

         

       나는 고뇌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어요!”

         

       작전이 성공한 게 기쁜 듯 방방 뛰는 사용인들.

         

       “그런데 공작님이 너무 예쁘신 나머지 넋을 놓으시면 어떡하지?”

       “어, 그렇네. 그러면 결혼식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허, 얘네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후작님께서 그런 실수를 하실까?”

         

       프란체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그렇게 될 거 같기도 하고.

         

       “후작님? 결혼식 준비는 차질없이 잘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시간이 되면 저희가 갈 테니 편히 쉬고 계시길. 아, 기사단장님이랑 부단장님. 그리고 마법사님은 응접실에 계세요!”

         

       웃으며 말하는 사용인에게 나는 그러지, 하곤 걸음을 옮겼다.

         

       공작저 대부분이 결혼식 준비로 바빠서 유일하게 응접실이 조용한 모양.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모두들 자리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 오셨네요.”

       “왔군.”

         

       가장 먼저 인사한 건 케일과 카자르. 이어서 달리아와 라데아도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 오빠… 라고 부르면 안 되겠죠?”

       “이제는 후작님. 조금 있으면 공작부인…?”

         

       나도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호칭은 뭐가 되는 거지?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공작부인이 맞지 않나요?”

       “아니지, 공작부군이 되겠지.”

       “그런가? 이런 경우가 없어서 모르겠네.”

       “국서가 맞지 않나요?”

       “공작님이 여왕 폐하는 아니시잖아.”

       “아, 그렇네…….”

         

       다들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내 호칭이 뭔지 생각하고 있다.

         

       “그냥 공작부군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요…?”

         

       열띤 토론의 장에서 달리아가 말했다.

         

       “왕자님이라 하기엔 이상하고, 부인이라 하기엔 더 이상하고. 국서는 다른 경우고. 그러니 공작부군이 맞네요.”

         

       그녀의 말에 다들 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한 듯했다.

         

       “그렇네. 공작부군이 맞네요.”

       “그럼 데카르트 공작부군이 정식 호칭?”

       “귀찮군. 그냥 진이라 부르겠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러시게요?”

         

       만사가 귀찮은 듯한 케일을 카자르와 라데아가 쏘아붙였다.

         

       “케일 씨도 생각이 있으신데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으로 부르시진 않겠죠.”

         

       달리아의 말에 움찔거리는 케일. 정말 그럴 생각이었나?

         

       “크흠…….”

         

       대답은 헛기침으로 넘어갔다.

         

       “그러면 이제 진 바렌베르크가 아닌, 진 데카르트가 되겠네요.”

         

       카자르의 말대로 내 이름은 진 데카르트가 될 예정이다.

         

       아, 참고로 바렌베르크라는 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두 번째 이름으로 밀려났을 뿐이지.

         

       “새삼 시간이 지났다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군. 여기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케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네요. 예전과 달리 너무 많은 게 바뀌기도 했고요.”

       “저는 처음에 진 오빠… 공작부군님이 도망치신다고 했던 때가 기억나요.”

       “…도망이요?”

         

       달리아가 묻자 라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 오빠… 가 아니라 공작부군…? 님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보니까 케일 아저씨한테도 그리 말씀하신 거 같더라고요?”

         

       그때를 생각하니 머나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동기화를 통해 흘러들어온 기억을 봐서 그런가.

         

       “짧은 시간인데 많은 일이 있었군.”

       “그러게 말이에요.”

       “카자르 언니가 가장 먼저 오셨죠?”

       “맞아. 1년도 더 지났네.”

         

       카자르 얘기가 나오니 그때가 생각났다. 처음에 어찌나 놀랐던지. 남자인 줄 알았던 애가 여자였으니…….

         

       “다음은 나였다. 대뜸 찾아와서 내가 모실 사람이 있다고 말하더군. 거절했더니 두들겨 맞았다.”

         

       그리 말하니 뭔가 이상한데.

         

       “그건 네가 먼저 싸움을 걸었잖나.”

       “모욕을 한 것도 사실이지.”

       “그럴 생각은 없었다만…….”

         

       케일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한 대 맞고 뻗은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저는 부모님을 죽인 남작에게 복수해야 해서 안 간다고 했더니, 대신 로아크 남작을 죽이고 오셨어요.”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거기서도?”

       “거기서도, 라니요?”

       “날 데려가려고 백작을 죽이셨어.”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당시의 사건을 카자르가 간략하게 설명해주자,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라데아.

         

       케일도 내게 이상한 시선을 보냈다. 눈빛을 보아하니 ‘저 새끼 대체 뭐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진 씨… 아니, 공작부군님께서 많이 과격하시군요…….”

         

       달리아가 입을 벌린 채 쉽게 다물지 못했다.

         

       “…크흠, 공작님을 위해서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보다 프란체를 위해서 움직였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제국의 귀족을 두 명이나 암살하시다니…….”

         

       달리아의 말에 억울함이 몰려왔다. 내가 얘네들 강제로 데려가려고 귀족을 죽인 거 같잖나.

         

       “…애초부터 저 둘이 죽일 사람들이었어. 내가 대신 손을 더럽히고 데려온 것뿐이지.”

         

       카자르와 라데아가 맞아요, 하고 긍정했다. 이제야 불편함이 좀 가시네.

         

       “그런가요…?”

         

       달리아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거 같지만.

         

       추억을 되새기며 모두와 잡담을 나누던 그때. 덜컥, 문이 열리며 헬레나가 들어왔다.

         

       “결혼식 시작해요!”

         

       시간이 되었다.

         

         

       * * *

         

         

       데카르트 공작저의 드넓은 정원.

         

       수많은 종류의 음식과 음료가 올려진 테이블. 그 주변에는 공작가의 하인들과 기사들이 자리를 지켰다.

         

       중앙에선 청첩장을 받은 귀족들로 북적였고, 제일 앞에는 황족들이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공사다망하신 가운데, 데카르트 공작님과 바렌베르크 후작님의 고결한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제가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개회사를 맡은 엘반 자작의 목소리가 마도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게 된 데카르트 공작님의 충직한 부하, 엘반 자작입니다.]

         

       이어서 엘반 자작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지금부터 데카르트 공작님과 바렌베르크 후작님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기다리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빰- 빠밤- 빰!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며 경쾌한 음악이 정원을 장식했다.

         

       [오늘 주례를 맡아 주실 분은 라자 페델리안 황제 폐하십니다.]

         

       보통은 신관, 대신관이 주례를 맡지만, 나와 프란체의 결혼식은 특별히 라자가 직접 맡아 주었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고, 친목을 다지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럼 먼저 신랑이신 바렌베르크 후작님께서 입장하시겠습니다!]

         

       새하얗게 포장된 길을 걸으니 박수갈채가 시작됐다.

         

       [이어서 신부이신 데카르트 공작님께서 입장하시겠습니다. 다들 큰 박수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곳곳으로 퍼지는 박수갈채가 이어지며, 그녀가 입장했다.

         

       걸음만 봐도 느껴지는 우아함. 그녀만이 가진 기품.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가시 돋친 장미.

       

       그러한 그녀가 고결의 상징,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하얀 꽃을 든 모습은 무척이나 성스러웠다.

         

       새하얀 배일로는 가릴 수 없는 붉은 장미와도 같은 머리.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그녀의 아름다움이 화살로 다가와 심장에 꽂혔다.

       

       내게로 향하는 프란체의 매혹이다.

         

       [다음은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귀중한 혼인서약을 받으시겠습니다.]

         

       엘반 자작이 물러나고, 라자가 앞으로 나왔다.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시간이오. 그대들의 서약을 진행하시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마주했다.

         

       “저의 모든 순간이 프란체였습니다. 당신만을 위한 인생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한 삶을 살 것입니다. 아득한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하며, 당신에게 영겁의 사랑을 맹세합니다.”

         

       프란체는 예,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서약을 말했다.

         

       “당신의 모든 순간이 저였던 것처럼, 저 또한 모든 순간이 당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저를 가득 채워준 당신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것이며,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나도 예, 하며 대답하자 서약의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제국의 혼인 성명서에 성명했다.

         

       [이것으로 데카르트 공작과 바렌베르크 후작의 결혼이 성립되었소. 짐은 이 축복받은 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대들의 영원한 사랑을 보증할 것이오.]

         

       이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다.

         

       “이거로 드디어 이어졌네. 사랑해, 진.”

       “저도 사랑해요, 프란체”

         

       새하얀 베일을 벗겼다. 애정이 가득 담겨 꿀이 떨어지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 그곳에 비친 나는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입을 맞췄다.

       

       항상 하던 인사였지만, 완전히 색다른 기분. 마치 우리를 중심으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첫사랑이었다.   

       모든 순간이 그녀였다.

         

       짝사랑이었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모든 게 바뀌고, 그 첫사랑이 이어져.

       이 길었던 짝사랑은 막을 내렸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完-

    후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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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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