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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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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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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퇴마당하는 유령처럼 비명을 내질렀지만 마왕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목소리가 워낙 귀여운 탓에 애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왕은 물컹물컹한 슬라임을 안정적으로 품에 안은 채 고풍스러운 소파에 옆으로 길게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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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벳으로 덮인 고급스러운 소파 위로 새카만 머리카락이 그림처럼 흐트러졌다. 마왕은 검지로 리안의 몸을 쿡쿡 찌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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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굴러다니는지 안 알려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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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아이리스와 노아를 구하고 돌아온 이후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왕은 말을 놓게 되었다. 말을 편하게 주고 받게 된 이후부터 마왕의 스킨쉽은 더 거리낌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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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야생 동물에게 가까이 다가와도 허락받은 인간처럼 거리감을 훅 줄여버렸다. 우울하다 못해 다 제 몸을 해하는 모습보단 보기 좋아 마왕이 찌르면 찌르는 대로 누르면 누르는 대로 얌전히 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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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버릇은 초기에 고쳐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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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쩍슬쩍 선을 넘어보던 마왕은 눈을 반짝거리며 리안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인데!’같은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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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에게 고백했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고백도 아니었고, 노아의 대답을 듣지도 못했다. 꿈속에서 자신과 결혼하는 꿈을 꿨으니 받아준 거나 다름없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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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분명 처음 리안을 보고 ‘가짜’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결혼생활을 ‘가짜’라고 여긴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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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니까 가짜라고 말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아니지만 -… 뭔가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부정한 것만 같아 쉽사리 노아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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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쯤 되면 모르는 게 이상한 수준이지만, 리안은 무려 유니콘의 특허(?)를 받은 순결한 인간이었다. 개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면 모를까, 연애에 대한 레벨은 제로에 가까워 고구마 세 개를 물도 없이 삼킨 것 같은 삽질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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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유로 리안은 마왕을 쉽게 밀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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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왕은 정신이 안정을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리안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리안 중독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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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일정 이상 떨어지면 지금처럼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품에 안기는 것 정도는 익숙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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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냠냠..”
    “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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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제 강아지의 발 꼬순내를 킁킁거리고, 고양이 배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마왕은 리안의 위아래 구분 없는 몸에 얼굴을 파묻고 입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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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한 몸통을 젤리 씹듯 거칠게 무는 건 아니었다. 좀 더 장난에 가깝게 앙앙 물고 쪽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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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그만둬! 내용물은 다 큰 남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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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무나 다름없는 입질을 견디지 못한 리안은 진작에 속 내용물이 다 큰 남자라는 걸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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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겉모습이 무해하고 목소리가 귀엽다고는 하나 안에 정체 모를 시커먼 남자가 있다고 하면 보통은! 보통은 거부감을 느끼는 게 일반적일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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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원래 몸으로 돌아가도 해줄게.”
   “그게 문제가 아니라…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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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리안이 슬라임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말랑한 슬라임 몸에 영역표시를 이어갔다. 워낙 말캉한 몸이라 그저 마왕의 고귀한 타액으로 범벅이 될 뿐이라 마왕은 심통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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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어김없이 마왕에게 잔뜩 괴롭힘을 당한 리안은 거친 싸움을 견딘 것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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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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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에는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슬라임 액을 코피처럼 뿜어내는 바람에 그대로 육체를 잃을 뻔했다. 영혼이 대부분이 빠져나갔다가 되돌아간 경험은 전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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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 경험 덕분에 굉장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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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슬라임 몸에서 빠져나갔다가 되돌아간 경험을 통해 ‘빙의’를 터득했다. 이젠 슬라임 몸이 아니어도 다른 몸을 훔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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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어째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슬라임 상태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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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와 노아를 돕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제 육체와 연결된 실 같은 게 매우 길게 늘어났다. 거의 제국과 마왕의 땅의 거리만큼, 아니 그보다 더 길어져서 이젠 아무리 거리가 멀어져도 원래의 몸 옆으로 소환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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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알아차리는 게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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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전쟁에 데리고 갈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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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저곳에서 알 수 없는 ‘처리’를 당한 제 육체가 어느 순간 마왕성에서 사라져버렸다. 말랑한 몸으로 이곳저곳에 구겨 넣어 돌아다닌 끝에 제 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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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과 마왕군이 거칠게 부딪치고 있는 제국의 국경, 전장이라 불리는 곳에 끌려갔다고 한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너무 당황해서 슬라임 육체를 버리고 당장 전장으로 날아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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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난 점술가가 리안에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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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홀…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 마침 잘됐다! 나 다시 그때처럼 제국으로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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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날아가면 전장까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고, 가다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뭣보다 전장에 참여한 마족, 몬스터, 타락한 인간의 수는 만 단위가 넘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제 몸을 찾아내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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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점술가가 구세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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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식에 사용할 재료가 부족한데다가… 당장 구할 방법도 없는 물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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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차원 주머니 같은 걸 가진 리안은 뭐든지 꺼내준다고 말했지만, 노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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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문제는 몸 근처까지 날아간다고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제 주술은 영혼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걸 전재로 펼쳐지는 거라, 몸을 빼앗아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직접 날아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중간에 악귀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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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파는 재차 홀홀 웃더니 1.2m 길이의 마법사 지팡이로 추정되는 것으로 가볍게 바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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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한 불 정도는 꺼드릴 수 있으니 저를 믿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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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긋나긋한 말투의 노파는 이내 밝은 분위기의 주술을 발동했다. 마왕성과 어울리지 않는 신성한 빛이 마왕성의 천장을 통과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파는 당황하여 살짝 단단해진 슬라임을 보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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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에 나가 있는 리안님의 몸에 가호를 걸었습니다. 오로지 죄인만을 벌할 수 있는 고결한 기사의 가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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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설마 하는 마음에 잔혹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죄를 저지른 이도 포함되냐 물었다. 그러자 노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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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은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죄책감 또한 느끼지 않습니다. 타인의 상처에 즐거워하고, 영혼의 때가 벗겨지지 않아 악취가 흘러나오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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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리안은 깊게 안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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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이라면 ‘죄인이라지만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다니…’같은 답 없는 절망에 빠졌겠지만, 리안은 목이 뚝 떨어져도 다시 주워 집으로 향하는 개그 세계 출신이었기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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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노파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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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리안은 제 몸이 전장에서 날뛰고 있다는 소식과 일부 인간을 살려 보내는 걸 보니 악취미를 가진 게 분명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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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가 없는 사람들을 놓아준 거 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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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호로 인해 죄가 없는 사람들은 ‘리안의 몸’에게 공격당할 일이 없었다. 문제는 이 세계가 ‘다크 판타지’라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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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신매매가 당연하다는 듯 이루어지고, 부패한 귀족 중 일부는 인육을 미식이라며 즐기기도 했다. 노예를 소모품처럼 사용하여 연료로 이용하는 마을도 있었고, 인간을 가축처럼 길러 10살이 되면 수명을 빼앗아 가는 농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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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 없이 바라본 다크 판타지 세계는 죄악 그 자체였다. 강자들은 너무나 손쉽게 죄를 저지르고, 약자들 또한 거리낌 없이 죄를 저지르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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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으로 선한 이들은 그런 잔혹한 현실 속에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그 탓에 전장을 가득 채운 인간 중 죄인이 아닌 자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나마 죄인의 비율인 적은 곳은 최전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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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은 사람이 죽는 곳이다 보니 제 목숨만 소중한 줄 아는 죄인들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소중한 사람을 약점으로 잡힌 순진한 청년들은 이를 악물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달려 나갔지만 ‘리안의 몸’은 그런 이들을 가볍게 지나쳐 뒤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놈들을 추수하듯 베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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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죄인만을 찾아내 베어 넘기는 ‘리안의 몸’은 진정한 기사 그 자체였지만… 아무도 리안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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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악의 수치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는 마왕의 땅과 제국군 쪽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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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은 물론 제국군까지 모두 ‘시시한 상대와 싸우기 싫다.’라는 의미나, ‘약한 놈들은 느긋하게 풀어놓고 하나씩 죽이면 재미있지. 뒤에 있는 놈들처럼 죽고 싶지 않다면 날 즐겁게 해봐라!’같은 의미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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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 해석이든 전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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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얼굴을 투구로 가리고 있어서 정체를 들킨 것 같진 않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겠지. 공작님은 물론 노아까지 전부 전장으로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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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말랑한 몸을 꿀렁거리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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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빠르게 내 영혼과 잘 맞는 몸을 찾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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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한 몸을 평소보다 살짝 단단하게 굳히며 의욕을 불태우는 것과 동시에 잊고 있던 기척이 다가와 몸을 콱 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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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햑..!?”
    “…날 옆에 두고 무슨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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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리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탈출 계획을 들킨 것만 같아 리안의 몸이 작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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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좀?비 상태인 리안과 검섞다가 기겁할 히로인들 생각하니 벌써 부터 배가 부르네요!

이젠 슬슬 정들었던(?) 슬라임 몸을 보내줄 때가 되었네요.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흐아악…!”

리안은 퇴마당하는 유령처럼 비명을 내질렀지만 마왕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목소리가 워낙 귀여운 탓에 애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왕은 물컹물컹한 슬라임을 안정적으로 품에 안은 채 고풍스러운 소파에 옆으로 길게 누웠다.

벨벳으로 덮인 고급스러운 소파 위로 새카만 머리카락이 그림처럼 흐트러졌다. 마왕은 검지로 리안의 몸을 쿡쿡 찌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왜 굴러다니는지 안 알려줄 거야?”

리안이 아이리스와 노아를 구하고 돌아온 이후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왕은 말을 놓게 되었다. 말을 편하게 주고 받게 된 이후부터 마왕의 스킨쉽은 더 거리낌이 없어졌다.

마치 야생 동물에게 가까이 다가와도 허락받은 인간처럼 거리감을 훅 줄여버렸다. 우울하다 못해 다 제 몸을 해하는 모습보단 보기 좋아 마왕이 찌르면 찌르는 대로 누르면 누르는 대로 얌전히 있어 주었다.

아이의 버릇은 초기에 고쳐야 한다고…

슬쩍슬쩍 선을 넘어보던 마왕은 눈을 반짝거리며 리안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인데!’같은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아에게 고백했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고백도 아니었고, 노아의 대답을 듣지도 못했다. 꿈속에서 자신과 결혼하는 꿈을 꿨으니 받아준 거나 다름없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노아는 분명 처음 리안을 보고 ‘가짜’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결혼생활을 ‘가짜’라고 여긴다는 말과 같다.

꿈이니까 가짜라고 말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아니지만 -… 뭔가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부정한 것만 같아 쉽사리 노아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솔직히 이쯤 되면 모르는 게 이상한 수준이지만, 리안은 무려 유니콘의 특허(?)를 받은 순결한 인간이었다. 개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면 모를까, 연애에 대한 레벨은 제로에 가까워 고구마 세 개를 물도 없이 삼킨 것 같은 삽질을 이어갔다.

그런 이유로 리안은 마왕을 쉽게 밀어내지 못했다.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왕은 정신이 안정을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리안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리안 중독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일정 이상 떨어지면 지금처럼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품에 안기는 것 정도는 익숙해졌지만..

“흠냠냠..”

“히약..!”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제 강아지의 발 꼬순내를 킁킁거리고, 고양이 배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마왕은 리안의 위아래 구분 없는 몸에 얼굴을 파묻고 입질했다.

말랑한 몸통을 젤리 씹듯 거칠게 무는 건 아니었다. 좀 더 장난에 가깝게 앙앙 물고 쪽쪽거렸다.

“그만, 그만둬! 내용물은 다 큰 남자라니까!?”

애무나 다름없는 입질을 견디지 못한 리안은 진작에 속 내용물이 다 큰 남자라는 걸 밝혔다.

아무리 겉모습이 무해하고 목소리가 귀엽다고는 하나 안에 정체 모를 시커먼 남자가 있다고 하면 보통은! 보통은 거부감을 느끼는 게 일반적일 거라 생각했다..!

“응, 원래 몸으로 돌아가도 해줄게.”

“그게 문제가 아니라…끄앙!”

마왕은 리안이 슬라임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말랑한 슬라임 몸에 영역표시를 이어갔다. 워낙 말캉한 몸이라 그저 마왕의 고귀한 타액으로 범벅이 될 뿐이라 마왕은 심통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왕에게 잔뜩 괴롭힘을 당한 리안은 거친 싸움을 견딘 것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견..뎠다..”

초반에는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슬라임 액을 코피처럼 뿜어내는 바람에 그대로 육체를 잃을 뻔했다. 영혼이 대부분이 빠져나갔다가 되돌아간 경험은 전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물론 그 경험 덕분에 굉장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크흑..’

리안은 슬라임 몸에서 빠져나갔다가 되돌아간 경험을 통해 ‘빙의’를 터득했다. 이젠 슬라임 몸이 아니어도 다른 몸을 훔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슬라임 상태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아이리스와 노아를 돕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제 육체와 연결된 실 같은 게 매우 길게 늘어났다. 거의 제국과 마왕의 땅의 거리만큼, 아니 그보다 더 길어져서 이젠 아무리 거리가 멀어져도 원래의 몸 옆으로 소환되는 일은 없었다.

그 탓에 알아차리는 게 늦어버렸다.

‘설마 전쟁에 데리고 갈 줄은 몰랐지.’

이곳저곳에서 알 수 없는 ‘처리’를 당한 제 육체가 어느 순간 마왕성에서 사라져버렸다. 말랑한 몸으로 이곳저곳에 구겨 넣어 돌아다닌 끝에 제 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제국과 마왕군이 거칠게 부딪치고 있는 제국의 국경, 전장이라 불리는 곳에 끌려갔다고 한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너무 당황해서 슬라임 육체를 버리고 당장 전장으로 날아가려 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난 점술가가 리안에게 말을 걸어왔다.

“홀홀…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 마침 잘됐다! 나 다시 그때처럼 제국으로 보내줘!”

직접 날아가면 전장까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고, 가다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뭣보다 전장에 참여한 마족, 몬스터, 타락한 인간의 수는 만 단위가 넘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제 몸을 찾아내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점술가가 구세주처럼 보였다.

“안타깝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식에 사용할 재료가 부족한데다가… 당장 구할 방법도 없는 물건이라..”

사차원 주머니 같은 걸 가진 리안은 뭐든지 꺼내준다고 말했지만, 노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몸 근처까지 날아간다고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제 주술은 영혼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걸 전재로 펼쳐지는 거라, 몸을 빼앗아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직접 날아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중간에 악귀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파는 재차 홀홀 웃더니 1.2m 길이의 마법사 지팡이로 추정되는 것으로 가볍게 바닥을 찍었다.

“급한 불 정도는 꺼드릴 수 있으니 저를 믿어보십시오.”

나긋나긋한 말투의 노파는 이내 밝은 분위기의 주술을 발동했다. 마왕성과 어울리지 않는 신성한 빛이 마왕성의 천장을 통과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파는 당황하여 살짝 단단해진 슬라임을 보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전장에 나가 있는 리안님의 몸에 가호를 걸었습니다. 오로지 죄인만을 벌할 수 있는 고결한 기사의 가호죠.”

리안은 설마 하는 마음에 잔혹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죄를 저지른 이도 포함되냐 물었다. 그러자 노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죄책감 또한 느끼지 않습니다. 타인의 상처에 즐거워하고, 영혼의 때가 벗겨지지 않아 악취가 흘러나오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리안은 깊게 안도할 수 있었다.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이라면 ‘죄인이라지만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다니…’같은 답 없는 절망에 빠졌겠지만, 리안은 목이 뚝 떨어져도 다시 주워 집으로 향하는 개그 세계 출신이었기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노파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후 리안은 제 몸이 전장에서 날뛰고 있다는 소식과 일부 인간을 살려 보내는 걸 보니 악취미를 가진 게 분명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놓아준 거 뿐이잖아!’

가호로 인해 죄가 없는 사람들은 ‘리안의 몸’에게 공격당할 일이 없었다. 문제는 이 세계가 ‘다크 판타지’라는데 있었다.

인신매매가 당연하다는 듯 이루어지고, 부패한 귀족 중 일부는 인육을 미식이라며 즐기기도 했다. 노예를 소모품처럼 사용하여 연료로 이용하는 마을도 있었고, 인간을 가축처럼 길러 10살이 되면 수명을 빼앗아 가는 농장도 있었다.

개그 필터 없이 바라본 다크 판타지 세계는 죄악 그 자체였다. 강자들은 너무나 손쉽게 죄를 저지르고, 약자들 또한 거리낌 없이 죄를 저지르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호통쳤다.

진정으로 선한 이들은 그런 잔혹한 현실 속에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그 탓에 전장을 가득 채운 인간 중 죄인이 아닌 자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나마 죄인의 비율인 적은 곳은 최전방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죽는 곳이다 보니 제 목숨만 소중한 줄 아는 죄인들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소중한 사람을 약점으로 잡힌 순진한 청년들은 이를 악물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달려 나갔지만 ‘리안의 몸’은 그런 이들을 가볍게 지나쳐 뒤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놈들을 추수하듯 베어 넘겼다.

오로지 죄인만을 찾아내 베어 넘기는 ‘리안의 몸’은 진정한 기사 그 자체였지만… 아무도 리안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죄악의 수치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는 마왕의 땅과 제국군 쪽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왕군은 물론 제국군까지 모두 ‘시시한 상대와 싸우기 싫다.’라는 의미나, ‘약한 놈들은 느긋하게 풀어놓고 하나씩 죽이면 재미있지. 뒤에 있는 놈들처럼 죽고 싶지 않다면 날 즐겁게 해봐라!’같은 의미로 해석했다.

어느 쪽 해석이든 전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얼굴을 투구로 가리고 있어서 정체를 들킨 것 같진 않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겠지. 공작님은 물론 노아까지 전부 전장으로 나왔으니까.’

리안은 말랑한 몸을 꿀렁거리며 각오를 다졌다.

‘최대한 빠르게 내 영혼과 잘 맞는 몸을 찾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자!’

말랑한 몸을 평소보다 살짝 단단하게 굳히며 의욕을 불태우는 것과 동시에 잊고 있던 기척이 다가와 몸을 콱 물어버렸다.

“햑..!?”

“…날 옆에 두고 무슨 생각해?”

마왕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리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탈출 계획을 들킨 것만 같아 리안의 몸이 작게 떨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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