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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허접 주신의 메시지에서 시선을 떼고 앞을 노려보면 불로 이루어진 거인이 손을 치켜들고 있다.

   

   ‘알새틴!’

   “정보팔이!”

   

   “알겠습니다!”

   

   알새틴의 이름을 소리치기 무섭게 그가 활시위를 당긴다.

   

   그가 쏘아낸 화살은 영원한 겨울의 마석을 화살촉으로 만든 녀석이다.

   

   저 마석은 본래 자신이 품은 냉기를 주변에 퍼트릴 뿐이지만 극한에 가까운 불꽃 앞에서는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냉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던 막이 깨짐과 동시에 마석이 펑하고 터져버리거든!

   

   마석이 폭발함과 동시에 불로 이루어진 거인의 겉부분에 얼음이 맺힌다. 게임이었을 적에는 이 폭발 한 번이면 불의 거인이 사라졌지만 지금은 어떠려나.

   

   방패에 신성을 두른 채 기다리고 있으려니 거인을 멈추게 만들었던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이렇게 되나?!

   

   방패를 앞으로 치켜들며 거인을 살핀다.

   

   마석은 분명 거인에게 큰 데미지를 선사했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확연이 줄어든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저 정도면.

   

   지금의 나라도 막아낼 수 있어.

   

   방패에 실은 신성을 가운데에 집중한다.

   

   그러자 빛이 한 가운데로 집약되다 이내 퍼지더니 방패의 앞에 새로운 방패를 형성한다.

   

   내가 메네스테일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일주일 간 할배와 죽어라 수련한 것의 보상.

   

   게임에도 존재하지 않던 개념의 방어술.

   

   콰아아앙!

   

   거인의 주먹이 방패에 닿은 순간 다리에 힘을 더했다.

   

   팔이 부들부들하고 떨린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내지른다.

   

   발이 점차 밀려나며 바닥에 돌의 잔해들을 만들어 낸다.

   

   방패의 앞을 가로막은 신성에 자그마한 금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허나 그 끝에 먼저 사라진 것은 불의 거인이었다.

   

   거세게 피어올랐던 불의 거인은 생겨났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흩어지고 말았으니.

   

   나는 거인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방패의 앞에 머무르던 신성이 흩어짐과 동시에 힘이 풀려 주저 안고 말았다.

   

   흐아아아. 진짜 더럽게 빡세네. 할배한테 새 기술을 배워서 다행이야.

   

   그러지 않았으면 저걸 막을 엄두조차 못 냈을 테니까.

   

   “입만 산 건 아니구나. 건방진 꼬마야.”

   

   거친 숨을 다스리던 나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서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제단 위에 선 카리아가 날 재단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

   

   불의 거인 패턴이 끝나면 그로기 상태에 들어가야 하잖아.

   

   강화되면서 그런 약점조차도 사라졌다 그거야?

   

   하. 씨발 진짜. 이런 컨텐츠가 있으면 게임일 적에 내주든가. 왜 현실이 되고 나서 난리인 건지 모르겠네.

   

   아르마디의 손길을 사용해 체력을 회복한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멍청하게 누워있다간 어느 순간 목과 몸이 작별하게 될 테니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카리아의 신형이 사라졌다.

   

   우리에게 쉴 시간은 허락되지 아니했다.

   

   카리아가 지속적으로 근접전을 시도한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도발을 한 덕에 표적이 나로 한정된 것이 그나마 호재였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나나 알새틴은 카리아가 노리는 대상이 누군지조차 알아내지 못하다 연이어진 기습 속에서 무너져 내렸을 테니까.

   

   끊임없이 위험을 고하는 철벽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카리아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가 움직이는 전조를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뒤! 품 안에서 약병을 꺼내…>

   

   할배가 내지른 소리를 듣자마자 인벤토리에서 준비해둔 병을 꺼냈다.

   

   정화의 성수. 효과는 부정적 효과를 지닌 것의 접근을 막는 것.

   

   지금 카리아가 사용한 독병 같은 경우에도 이는 유효했다.

   

   “신기하군. 이걸 어떻게 알았지?”

   

   안도하기 무섭게 뒤 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고갤 돌리지 않았다.

   

   철벽이 위협을 고하지 않았으니까.

   

   내 뒤를 지키던 칼이 카리아의 단검을 받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도 집중을 잃어버려선 안 될 순간들이 연이어진다.

   

   멀리서 불로 이루어진 수십의 단검이 쏘아진다.

   

   알새틴이 폭풍의 스크롤을 찢어 그를 흩어버린다.

   

   그 폭풍을 뚫고 파고 든 카리아의 연격.

   

   방패로 받아내고 있자니 칼과 알새틴이 합류해 역공을 가하려 했으나 카리아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공격이.

   

   공격이.

   

   또 다른 공격이 연이어진다.

   

   이는 전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카리아의 사냥놀이였다.

   

   그녀는 우리라는 사냥감을 가지고 놀며 우리에 건 목줄을 서서히 좁히고 있었다.

   

   나로써는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우리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더라면 우리는 진즉에 박살이 났을 테니까.

   

   그러다 문득 시간을 확인해 보면 이제야 1분이 지났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랄 맞은 상황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접 주신의 무능이 미워지네.

   

   죽어라 1분을 더 버티고 있으려니 서서히 카리아의 움직임이 눈에 익어갔다.

   

   여전히 그녀가 마음을 먹고 뛰면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전에 보이는 자그마한 전조들은 아니었다.

   

   그건 지금의 내 안력으로도 보는 게 가능했다.

   

   오른 손에 단검을 쥐고 적을 바라본다.

   

   근접 공격을 시도하겠네.

   

   신성을 몸에 두르고 그를 기다린다.

   

   왼 손에 단검을 쥐고 오른 손은 뒤편에 숨긴다.

   

   단검 투척.

   

   알새틴에게 미리 스크롤을 꺼낼 것을 요구했다.

   

   단검 없이 꼭 쥔 오른 주먹.

   

   근접에서 화염을 터트리는 패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밀어붙일 것을 칼에게 명령한다.

   

   결국 카리아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해졌지만 그래봐야 이 곳의 보스일 뿐이다.

   

   악신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자신의 판단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인형.

   

   그러니 그녀의 움직임 또한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 때 맨손으로 저 녀석을 잡는다고 연구했던 것들이 이제와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네.

   

   일만 시간의 노력이 보답 받았단 사실에 웃음을 흘린 나는 방패를 다잡았다.

   

   점차 카리아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내가 지시를 내리는 속도도.

   

   거기에 칼과 알새틴이 반응하는 속도도.

   

   그에 따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대치 속에 자그마한 여유와 믿음이 자리 잡았다.

   

   여전히 한 번 실수하는 순간 큰 위기가 찾아오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가 불리하다는 사실은 동일했다.

   

   여전히 우리는 카리아에게 상처 하나 선사할 수 없었다.

   

   허나 아무런 상관도 없다.

   

   우리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지연이었으니까.

   

   [준비 시간이 끝났습니다.]

   [던전탈출권이 사용됩니다.]

   

   내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오름에 따라 우리의 주변에 진이 그려진다.

   

   평범한 마법진과는 다른 허접 주신의 신성이 새겨진 진에 헛웃음이 절로 샜다.

   

   이런 식으로 도와줬다는 티를 내고 싶냐?!

   

   “아르마디?”

   

   봐! 티배깅 하니까 저렇게 화를 내잖아!

   

   어차피 바깥으로 나가버릴 거니까 아무 관계없지만 저 사람이 진심으로 노려보면 피부가 따끔따끔 거린다고!

   

   야!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내보내줘!

   

   나 쟤랑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단 말야!

   

   [던전에서 탈출…#%#%#%#@@!!@#]

   

   …응? 뭐야?

   

   장난치는 거야?

   

   왜 갑자기 오류라도 난 것마냥 문자열이 깨지는 거야?

   

   허접 주신님?

   

   지금 삐졌다고 장난칠 타이밍이 아니거든요?! 당신 사도의 목숨이 달린 순간이거든요?!

   

   빨리!…

   

   [아그라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아.

   

   너였냐?

   

   하아. 어쩐지 던전 공략하는 동안에 얌전하더라.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었던 거구나?

   

   새끼. 그래도 꼴에 악신이라고 제일 개 같은 타이밍에 들어오네.

   

   …좆 된 건가?

   

   던전에서 탈출할 수 없다면 카리아를 상대해야 해.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카리아를 쓰러트릴 수 없어.

   

   지금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야.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실감이 나지 않아 멍하니 메시지 창을 보고 있으려니 또 다시 메시지의 문자열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그라가 #%#%#%#]

   [던전탈출권을 재사용합#@#!#%#)#@]

   [아그라#@#$$!]

   [던전탈출권을 재사용합니#!#!#@#]

   

   메시지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걸 보니 알 수 있었다.

   

   허접 주신이 쪼잔 악신과 주도권을 두고서 다투고 있다는 것을.

   

   하여간 허접 주신이고 쪼잔 악신이고 간에 페도에 마조에 변태 새끼들밖에 없다니까.

   

   예쁜 사람들이 이래서 곤란해 하는 거구나?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다른 녀석들이 집착을 해대니까 말야.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방패를 다잡았다.

   

   희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거면 족했다.

   

   우리 허접 주신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뭐 어쩌겠어.

   

   믿어야지.

   

   방패를 다잡고.

   

   몸 안의 신성을 끌어올리고.

   

   심호흡을 한 후에.

   

   목소리를 낸다.

   

   “허접들♡ 버텨♡”

   

   그리 말을 꺼내자 칼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죠.”

   

   알새틴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이 살 방법이라면 해야겠죠.”

   

   우리가 자세를 다잡는 동안 카리아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저건 뭐 하는 거지?

   

   내가 아는 패턴은 아니고 새로운 무언가인데.

   

   주신과 악신의 기싸움 탓에 고장난 거면 좋겠다.

   

   그럼 날로 먹을 수 있잖아.

   

   당연하게도 그 희망은 헛된 희망이었다.

   

   카리아가 고개를 내리고는 우리를 노려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정이 존재했던 그녀의 눈가가 무표정해져 있었다.

   

   기계와도 같은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등줄기를 타고서 공포가 전해졌다.

   

   감정이 사라졌다가 생겨나기를 반복한다.

   

   공포라는 감정은 뇌리에 새겨져서 아무리 지워도 지워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닭살이 돋는다.

   

   이빨이 부들거린다.

   

   근육이 굳는다.

   

   억지로 굳어버린 머리를 움직이려 노력하던 순간 카리아의 신형이 사라졌다.

   

   쨍!

   

   무엇인가가 유리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난 내 앞에 당도한 카리아의 단검을 볼 수 있었다.

   

   수호의 브로치.

   

   지난 번 현장학습의 보상으로 받았던 그 물건이 내 목숨을 구원해 준 것이다.

   

   뭐야?

   

   철벽이 반응하지 못했어.

   

   아니 애초에 방패를 움직일 틈조차 없었어.

   

   수호의 브로치가 아니었더라면 난 목이 떨어진 채 내 몸을 구경해야 했겠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댐이 무너지듯 공포가 내 머리를 사로잡으려…

   

   “수호하라!”

   

   째애앵!

   

   귓가에 여성의 목소리가 울리고 나서 또 다시 유리창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이어졌다.

   

   혀를 차는 카리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인간의 형상을 취한 얼빠여우의 얼굴이 보였다.

   

   “미적 감각이 없구나 멍청한 것아! 어디 감히 이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를 내려 드느냐!”

   “시끄러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카리아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단검을 휘둘렀고, 얼빠여우는 그 동안 쉼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다시 행했다.

   

   나도.

   

   알새틴도.

   

   칼도.

   

   멍하니 바라보는 것 이외에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경외로운 대결 속에서 내 앞에 새로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아무런 비틀림도 없는, 평소에 내가 자주 보던 메시지 창이.

   

   [던전 탈출권을 사용합니다.]

   

   아르마디의 신성이 우리를 뒤덮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빠여우! (안)믿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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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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