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1

   검은색의 칠흑의 공간 속.

   초대받은 이들이 하나둘 공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복장을 한 그들은 마치 파티에 초대 받은 듯 느릿한 발걸음이었다.

     

   “오, 이거 참, 오랜만인 손님이 오셨소.”

     

   그러는 순간 수염이 기다란 땅딸보 남자가 너털웃음과 함께 누군가를 반겼다.

   거기에는 기다란 키와 한쪽 눈만 보이는 가면을 눌러쓴 늘씬한 미녀가 서 있었다.

     

   “지옥 선녀, 웬일로 회의에 참여했소? 한동안 뜸하더니.”

     

   땅딸보 남성이 웃음을 흘리며 말을 건 여성은 다름 아닌 지옥선녀였다.

   그녀는 땅딸보 남성의 관심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광도제가 당했다는 말을 들었어.”

     

   대신 그녀가 이번 회의에 참여한 이유를 고했다.

     

   익시온, 세계 침식자 집단.

   이곳은 흑마녀가 만든 공간, 익시온의 정기회의 장소였다.

     

   “하하, 그렇다지. 광도제 놈, 매일 강자강자, 왕강자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에는 본인이 당했구려. 줄행랑은 잘 치는 놈이라 명줄은 끈질긴 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오.”

     

   호탕한 웃음과 함께 그는 그리 말했다.

     

   땅딸보의 이명은 명장(名匠).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망치를 다루는 땅의 정령인 사내였다.

     

   “검 한 자루 만들어 달라고 조르던 녀석이었는데. 없다고 하니 또 서운하기도 하오.”

     

   그는 손에 쥔 망치를 가볍게 던졌다 받았다.

   망치를 다루는 손놀림은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흑마녀가 있었는데 당했다는 게 이상해.”

   “흑마녀라도 실수하는 법이 있는 거 아니겠소? 보나 마나 광도제 놈이 신나서 설치다가 되려 당한 거겠지.”

     

   지옥선녀의 의문에 그는 그다지 신경 쓸 거 없다는 듯 경쾌히 대답했다.

   지옥선녀와 달리 그는 광도제의 죽음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공간에는 속속히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인사도 없이 구석진 자리에 가는 이도 있었고.

   다른 이들과 면식이 있는 듯 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크하암.”

     

   반면에 바닥에 안짱다리 자세로 앉아 커다랗게 하품을 쩍 하니 내뱉는 사내도 있었다.

     

   야수같이 거대한 몸과 인간 같지 않은 커다란 귀.

   거기에 몸 전반을 덮은 백색의 털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렸다.

     

   그런 사내의 곁에는 유달리 다른 이들이 접근하지 않았다.

     

   “어이쿠, 야수왕도 왔구먼.”

     

   명장이 사내를 보며 오 하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주 보기 힘든 인물들이 오늘 꽤나 많이 온 탓이다.

     

   분명 그들도 지옥선녀와 같이 광도제가 당했다는 말에 흥미를 느낀 거겠지.

     

   흑마녀의 실수일지 아니면 광도제의 자폭일지.

     

   이 두 가지를 확실히 짚고 가야만 했으니까.

     

   또각-

     

   그 순간 공간 안쪽에서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된 순간 거기에는 기이한 감각이 드는 이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을 주는 꺼림칙한 존재는 얼굴을 다 가리듯 기다란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머리카락 아래 검은색 일색의 드레스와 폭이 넓고 긴 치마는 그녀의 상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흑마녀(黑魔女)

   그러한 이명답게 누구보다 마녀처럼 느껴지는 이였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이 곧 회의에 시작과 같았다.

     

   “흑마녀.”

     

   제일 먼저 회의에서 입을 뗀 이는 야수왕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광도제는 네 실수로 죽은 거냐?”

     

   그는 여전히 바닥에 앉은 자세 그대로 바로 회의에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다음 말은 모두 다 궁금증을 지녔다.

     

   세계 침식자의 죽음.

   세상이 이렇다 보니 없는 일도 아니지만, 익시온은 흑마녀가 직접 모은 집단이다.

     

   광도제의 상대가 천상사강이었다면 모를까, 천하십강.

   흑마녀의 도움이 있었다면 도망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니 야수왕이 질문하자 흑마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곧 얼마 후 그녀의 검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소실 되었다고 생각한 이그니스가 발견됐어.”

   “이그니스라고?”

     

   그녀의 다음 말은 회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이그니스.

   세계 침식의 신을 만들기 위해 가장 순수한 세계 침식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스킬.

     

   익시온에 모인 세계 침식자들의 공통된 목표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서일까.

   모두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가진 놈이 누구냐. 저번에는 발하임 놈이었던 거 같은데.”

     

   벨로킨 발하임.

   당시 발하임의 셋째가 이그니스를 가졌다는 정보를 모두가 입수했었다.

     

   그러나 그는 세계 침식으로 인해 사망했었다.

   그런 지금 새로운 이그니스의 보유자가 나타난 것이다.

     

   “크라슈 발하임, 발하임 가문의 막내야.”

     

   그 순간 흑마녀의 대답이 돌아왔다.

   또 한 번 들린 발하임의 이름에 세계 침식자들은 달갑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게 발하임은 세계 침식자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마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도제를 살리지 못한 건 이그니스에 정신 팔려서다. 이 소리로 들리는데.”

     

   야수왕이 절묘하게 치고 들어오자 흑마녀도 별다른 대답을 못 했다.

   그의 말마따나 광도제를 구하지 못한 건 흑마녀가 순간 눈이 돌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그니스는 익시온은 물론 그녀에게 있어서도 꼭 필요한 거였으니까.

     

   흑마녀의 침묵을 보던 야수왕의 눈빛이 서서히 날 서기 시작했을 때쯤.

     

   짝짝!

     

   누군가가 박수 소리를 내었다.

   모인 시선의 중심에는 중절모를 눌러쓴 한 노신사가 방긋 웃은 채 서 있었다.

     

   “흑마녀 양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게나. 광도제 그치의 죽음이야 아쉽긴 해도 이그니스를 다시 찾지 않았나. 이것만으로도 큰 득이지.”

     

   노신사는 분위기를 가볍게 환기하게 했다.

     

   “흑마녀 양, 그래서 이그니스를 지닌 크라슈 발하임이라는 소년에 관해 정보를 모아왔다면 좀 보여주겠나?”

     

   자연스럽게 노신사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흑마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노신사의 질문대로 흑마녀는 차근하게 크라슈 발하임이라는 인물에 관해 세계 침식자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세계 침식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중에서는 크라슈에 관해 아는 이들도 있었다.

   그야, 최근 매일 같이 화두로 오르는 유명인이었으니까.

     

   하지만 흑마녀가 푸는 이야기를 곱씹으니 다시금 느꼈다.

     

   “발하임에 새로운 별이라도 떨어진 거냐?”

     

   야수왕의 의문대로 크라슈가 보인 행보는 나이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치러온 전적만 곱씹어 봐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근 시일 내에 크라슈 발하임은 반드시 상정하기 힘든 커다란 적이 될 것이란 걸 말이다.

     

   그 말은 즉, 이그니스가 있어야 하는 익시온의 큰 걸림돌이 될 거란 소리였다.

     

   “지금 조져서 데려와야겠는데.”

     

   야수왕이 백색의 수염이 난 턱을 쓰다듬었다.

     

   “그놈 지금도 살피고 있냐.”

     

   다음 질문에 흑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야수왕이 고개를 기울였다.

     

   “네 눈으로 살피지 못하고 있는 거냐?”

   “결계 같은 걸 쓴 거 같아.”

   “허어, 그렇다면 그놈 우리가 살필 걸 알고 수를 준비했단 거잖냐.”

     

   야수왕이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이건 영락없이 저쪽이 이쪽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야. 그놈, 느낌이 심상치 않은데.”

     

   앞서 세운 전적부터 시작해 이제는 흑마녀의 눈까지 막았다라.

   골 때리는 놈이 나타났다.

     

   “그야, 그렇겠지. 그 꼬마의 곁에는 그 여자가 붙어 있거든.”

     

   그러는 순간 익시온의 또 다른 인물이 입을 열었다.

   거기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복장의 여성이 있었다.

     

   가릴 곳만 아슬하게 가린 그녀는 흑색의 피부 위에 기다란 귀가 눈에 띄었다.

     

   그녀의 이명은 흑조(黑早).

   어둠 속성 장귀종이었다.

     

   “크림슨가든.”

     

   그 이름을 언급한 순간 익시온 단원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이들은 저마다 그녀를 겪어 봤기 때문이다.

     

   불사자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한때 익시온 최강의 전력이자 세계 침식자 사이에서 가장 악명 넘치는 이였다.

     

   “그 여자가 지금 그 꼬마 곁에 머물고 있어.”

   “불사자가? 익시온에서 깽판을 치고 나가더니 이그니스를 가진 녀석을 종으로 삼았다고?”

     

   흑조의 말에 야수왕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크림슨가든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그였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몰라. 단지, 그 여자가 붙어 있는 건 확실해. 그 여자의 종들이 여럿, 꼬마의 곁에서 발견됐거든.”

   “불사자가…….”

     

   야수왕은 홀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하지만 아까와 같이 무대포인 면모는 줄어들었다.

     

   그도 섣불리 크림슨가든과 정면 대결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크림슨가든은 그만큼 까다로운 상대였다.

     

   “에벨아스크 베나포치도 거기에 있어.”

     

   그러자 흑마녀가 다음 말도 덧붙였다.

   이번 익시온의 신생 멤버가 될 예정이었던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그녀의 네크로맨서 술은 인해전술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빈자리는 분명 익시온에게도 아쉬운 한 수가 될 터.

     

   “불사자에 네크로맨서까지, 상황이 매우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

     

   야수왕은 이를 딱딱 부딪쳤다.

   변수는 짜증 나 하는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니…….”

     

   흑마녀가 다음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고개가 우뚝 멈춤과 함께 천천히 시선이 돌아갔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다른 이들도 덩달아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곧 거기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느릿하고, 경박 맞은 발걸음 소리.

   그 소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하나씩 의문을 보였을 때.

     

   “왕창 모여 있네.”

     

   거기에 핏빛 같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가 나타났다.

   평소와 같이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입꼬리가 좌우로 쫘악 째졌다.

     

   “왜, 다들 나 기다렸었어?”

     

   광도제.

     

   분명 죽었을 터인 그가 익시온의 회의에 나타났다.

     

   그가 나타난 순간 세계 침식자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경악, 놀람, 어이없음, 허탈, 반가움, 짜증, 분노, 의심.

     

   이 중 의심이 광도제의 몸을 강렬히 찔러 들어온 순간 광도제의 핏빛 같은 두 눈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내가 살아 돌아온 게 꼬아? 지금 눈빛 쏘아 보낸 녀석들은 한 판 붙던가.”

     

   그리고 다음 말이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그는 진짜 광도제였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