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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문신투성이 여자는 공원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 옥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협회 병력이 3명씩 뭉쳐서 공원 전체를 통제하고 있었다.

    보통 오브젝트 현장에는 직원 한두 명만 파견되어서 무성의하게 ‘들어가지 마세요’만 반복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관리였다.

    게다가 위험한 오브젝트로부터 일반인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 갖춘 무장이라기에는 조금 흉흉해 보였다.

    도대체 저 공원이 얼마나 위험하길래, 저런 경비를 서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와, 협회가 저렇게 열심히 경비 서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아.”

    여자 옆에서 같이 구경하고 있던, 여동생은 신기한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여자는 표정을 조금 찡그리면서, 말했다.

    “말했다시피, 엄청 위험할 수도 있어. 집에서 기다리는 게 어때?”

    “절대로 싫어.”

    여동생은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여자는 뭔가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뱉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

    어쩔 수 없지.

    여자는 여동생과의 만남부터 특별했기에, 뭔가 강하게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여동생은 멀쩡해 보이지만, 분명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럼, 내 뒤를 잘 따라와야 해. 내 지시는 잘 듣고.”

    “응.”

    해맑게 웃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여자는 여동생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

    한때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던 공원에 마련된 오브젝트 협회 임시 캠프.

    그 캠프 안에서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는 한 협회 소속 직원이 서류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휴가자를 포함해서, 예비 인력은 모두 공원으로 향하라는 협회 공문이었다.

    그래서 오브젝트 협회 건물에 황금 사신이 나타난 사건 때문에 다쳐서 휴가 중이었던, 협회 소속 연구원도 끌려 나온 상태였다.

    ‘가용 인원을 죄다 주변 경비에 쏟아부었네. 딱히 인명 피해도 없었는데 과해.’

    이번 협회의 대응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협회 건물 내에서 정신 오염이 의심되어도 무시로 일관했으면서, 인명 피해도 없는 사건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투입한다고?

    정작 중요한 오브젝트 근처로 접근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허가받은 인원만이 오브젝트 근처로 접근할 수 있어서, 현재 조사 상황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돌입한 조사팀이 있었을 텐데, 감감무소식이었다.

    협회 직원은 현재 상황이 답답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떠나거나 잘렸고, 적당히 무능력한 사람만이 자리를 지켰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말단을 전전했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 보면 협회가 정상화될 거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협회를 망치는 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유나 목적을 알 수 없어서,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여기는 공원 A블록 2팀. 교대를 시작합니다.]

    [확인.]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교대를 시작한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협회 직원은 들려온 무전을 기록하며, 상념을 지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

    살금살금, 문신투성이 여자와 여동생은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쉽사리 뚫기 힘든 오브젝트 협회의 삼엄한 경비였지만, 여자는 생각보다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여동생은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소근소근 말을 걸어왔다.

    “언니, 이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으면서 왜 안 알려줬어?”

    “음?”

    “투명화 가루라니.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걸 혼자만 가지고 있었던 거야?”

    두 명은 서로 손을 꼭 맞잡은 채 공원 내부의 산책로를 걷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투명해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별로 쓸모는 없는 가루야. 지금처럼 육안에만 의존해서 경비를 설 때만 좀 쓸모가 있지.”

    여자는 위령비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오브젝트를 가리키면서 이어서 말했다.

    “저 수호자를 봐봐, 우리를 정확하게 쳐다보고 있잖아.”

    여자가 가리킨 곳에는 하얀색 근육질 석상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투명화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으엑. 징그러워.”

    여동생은 석상의 근육도 징그럽고, 머리 옆에 달린 사람 귀도 징그럽다며 투덜거렸다.

    “언니가 만든 수호자가 훨씬 귀여운 것 같아.”

    여동생이 여자가 품에 안고 있는 형형색색의 아귀의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딱딱한 아귀의 머리에서는 ‘통통’하는 귀여운 소리가 났다.

    짧은 팔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이며 웃는 아귀를 보며, 여동생은 만질만질한 표면을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언니 아귀는 귀엽고, 세희 연구소 아귀는 왠지 시무룩하고, 저 근육 아귀는 징그럽게 생겼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여동생은 언니와 함께 칠흑 같은 구멍 앞에 섰다.

    지하에 뚫린 구멍을 지키는 것처럼 서 있던 석상들은 자매가 다가가자,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만 자리를 비켜선 석상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크게 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가까운 데다가, 부릅뜬 눈이 징그러워서 여동생은 조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여동생은 애써 시선을 돌리고 무시하고 있었지만, 석상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씨익.

    석상은 촘촘하고 이상하게 징그러운 이빨을 한껏 드러내며 웃었다.

    깜짝 놀란 여동생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만약 언니가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다면, 정말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언니, 언니. 얘네들 이상해.”

    너무 놀라서, 살짝 눈물이 맺힌 여동생이 언니를 다급히 불렀다.

    입구 너머가 안전한지 확인하고 있던 여자는 다급한 목소리에 석상 쪽을 바라보았지만, 석상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자매들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여동생의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뭐가 이상했지?”

    “그… 그게, 사람 같은 이빨이 막 징그럽게 돋아나 있고, 이빨이 엄청 많고….”

    “!”

    횡설수설 당황한 채 설명하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여자는 여동생을 끌어안고 그대로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질감을 가진 어둠이 자매의 몸을 휘감는 것과 동시에, 위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딱.

    뭔가를 물어뜯으려다 실패해서, 이빨을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였다.

    ***

    하늘에서 태양 빛을 받으며 만세를 했지만, 결국 끝까지 빔은 나가지 않았다.

    힝.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봐도, 황금 사신은 이상한 소리를 하며 해맑게 웃기만 했다.

    ‘태양!’

    ‘엄마!’

    ‘빔!’

    모르겠어.

    도대체 어떻게 빔을 쏜다는 거지?

    아귀의 파괴 조건보다 어려운 황금 사신의 힌트로 고민을 거듭하던 도중, 어느새 구름 고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확실히 느껴지는 오브젝트의 기척.

    구름 고래 위에서 아래를 살펴보면, 끝없는 어둠으로 물든 입구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미니 사신들과 함께 무저갱의 입구를 향해서 뛰어내렸다.

    황금 사신들은 구름을 가르고 떨어지는 것이 즐거운지 공중에서 팔다리를 헤엄치는 것처럼 휘둘렀다.

    그렇게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우리들은 엄청난 속도로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둠을 통과해서 단단한 지면 위에 내려서자,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동굴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 눈에서는 빛이 쏘아지고 있었기에 별로 불편하진 않았지만, 푸른 사신이 허공 위에 문자열을 늘어놓았다.

    <별빛으로 어둠을 물리쳐 주세요.>

    물로 만들어진 문자열이 깨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고운 물안개가 우주에 있는 성운처럼 흐릿한 빛을 뿜으며 우리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물 입자들은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빛과 함께, 동굴 속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뚜방뚜방.

    내가 앞장서서 걸으면 미니 사신들도 똑같은 포즈로 팔다리를 흔들며 신나게 내 뒤를 따라왔다.

    그 모습이 약간 아기 오리들 같아서 조금 재밌었다.

    그리고 동굴 끝에 도착하자, 신기하게 생긴 도시가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어둠 속에 잠긴 도시는 익숙한 모습과 생소한 모습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용산구의 모습.

    그리고 하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생소한 도시의 모습.

    미니 사신들을 이끌고 도시 안을 거닐었다.

    어린 시절 사 먹었던 분식점부터 시작해서, 온갖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것도 내 추억 속에 흔적처럼 남은 건물들만.

    마치 누군가가 내 기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은 광경이었다.

    지금은 용산구에 가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엄마 괜찮아?’

    어깨 위에 앉아 있던 황금 사신이 내 볼을 토닥이면서 걱정했다.

    ‘괜찮아.’

    나는 그렇게 의지를 전하며 천천히 거리를 구경하며 걸었다.

    뚜방뚜방.

    천천히 추억 속을 거닐며 돌아다니던 중, 저 멀리에서 우리들을 바라보는 하얀 무언가가 보였다.

    기묘하게 아귀랑 닮은 석상이었다.

    석상은 일정 거리를 두고 우리들을 쫓아오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척 보기에는 아귀랑 상당히 닮아 보였는데,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구경하려고 천천히 다가갔지만, 석상은 다가갈수록 거리를 벌리며 도망쳤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가?

    유령화와 시간 가속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따라붙자, 손쉽게 코 앞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악취미적으로 만들어진 석상이었다.

    아귀처럼 새하얀 피부.

    리얼하면서도 징그러운 근육. 

    아귀처럼 하찮은 머리.

    그리고 거기에 달린 인간의 귀가 화룡점정이었다.

    신기하게도 아귀를 소환해서 직접 비교해 보니, 별로 닮은 것 같은 기분이 안 들었다.

    그나저나 저 석상 피 냄새가 나네.

    핏자국은 하나도 없었지만, 방금 인간을 해체한 것처럼 짙은 혈향을 풍기고 있었다.

    ‘나쁜 오브젝트!’

    미니 사신들도 사나운 표정으로 둘러싼 채 노려보고 있었다.

    나쁜 오브젝트는 죽여야겠지.

    기왕 죽이는 김에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시멜로 아귀가 돌처럼 딱딱해 보이는 석상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커다란 하얀 아귀를 불러내서, 석상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하얀 아귀는 특유의 억울한 표정을 한 채, 석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들은 짝짝 박수를 치며,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서 간이 콜로세움을 만들었다.

    평온해 보이는 아귀랑 달리, 아귀 머리 석상의 얼굴은 분노로 뒤틀려 깊은 주름을 잔뜩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석상은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퉁. 퉁. 퉁.

    석상의 주먹이 아귀를 가격할 때마다, 묵직한 타격음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석상의 주먹은 통통한 아귀의 턱살을 진동시킬 뿐이었다.

    아귀의 마시멜로는 예상치 못한 탄력성으로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자신을 공격하는 석상을 내려다보던 아귀는 더는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폴짝 뛰어서 그대로 석상을 들이받아 버렸다.

    거대한 아귀가 석상을 날려버리는 것은 꽤 박력이 있었다.

    ‘아귀 박치기!’

    특히 황금 사신들이 허공에 뚜시뚜시를 날리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아귀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입에서 미니 아귀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입속에서 데굴데굴 굴러서 쏟아진 미니 아귀들은 작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널브러진 석상에게 달려들었다.

    끊임없이 달라붙은 미니 아귀들은 아무리 튕겨 나가도 끊임없이 달라붙었고, 단단한 석상의 피부를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석상의 돌 같던 피부는 미니 아귀의 공격에 마치 사람의 피부처럼 늘어나고 짓눌렸다.

    싸움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끼에엑.

    이빨조차 없는 아귀의 입에 물린 석상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발버둥 쳤다.

    마시멜로가 석상을 물어뜯을 수 있던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건 석상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목이 늘어났을 때, 징그러워서 한 번 놀랐다.

    그리고 입속에서 촘촘한 사람 이빨이 드러났을 땐, 진짜 깜짝 놀랐다.

    저런 건 아귀가 아니야!

    실수로 ‘뀩’ 해버릴 뻔한 혐오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놀란 장작을 진정시키며 미니 사신들도 놀랐을까 봐 돌아봤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귀 강해!’

    미니 사신들은 생김새에 호불호가 없는지, 그저 아귀를 응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

    희미한 빛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방 안에 커다란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커다란 침대 곁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는 작고 동글동글한 하얀 구슬 같은 것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작은 구슬에는 앙증맞은 팔다리가 달려있었고, 짧은 꼬리와 더듬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하얀 아귀처럼 생긴 공예품이었다.

    그중 하나가 점점 금이 가다가, 깨져버렸다.

    분명 공예품마다 푹신한 방석을 마련해 둘 정도로 소중히 여기던 것이었을 텐데,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가 덮어준 것처럼 이불을 덮고 있는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의 몸 위에는 먼지가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숨도 쉬지 않고 그저 평온하게 누워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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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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