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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기딘은 네르를 내려다보았다.

     

     

    …지난 1년 반 동안, 그녀는 많이도 달라져 버렸다.

     

     

    그녀는 베르그와의 이별 이후, 훨씬 더 아름다워졌다.

     

    네르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가꾸는데 많은 힘을 들였다.

     

    한때 기딘이 내뱉었던 호통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울며 무너져 있어봤자, 베르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이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듯 했다.

     

     

    그러니 언제라도 베르그를 만날 수 있게 준비하는 듯, 그녀는 스스로를 가꾸게 된 것이다.

     

     

    도자기 같이 하얀 흠없는 피부.

     

    비단 같은 머리카락과 꼬리털.

     

    은은한 화장과,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옷.

     

     

    그녀의 미모는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었다.

     

    간혹 영지를 돌아다니는 이런 네르의 모습을 보게 되는 블랙우드의 손님들은, 이후 그녀에게 구혼의 편지를 보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모두 깁슨과 기딘이 쳐내고 있었지만.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워진 그녀에게서 빼낼 수가 없는 단 하나의 흠이 존재했다.

     

    …….공허한 표정과, 죽은듯한 눈.

     

     

    아름다운 외모와 상반되는 표정과 분위기에, 기딘조차 안쓰러운 마음이 피어날 정도였다.

     

     

    짝을 잃은 그녀의 모습은…보기 편한게 아니었다.

     

    특히나 그녀가 얼마나 자신만의 사람을 원했는지 아는만큼.

     

     

    그 이유에는 자신의 행동이 바탕이 되었다는 걸 기딘도 알고 있었다.

     

    이제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안쓰럽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네르를 싫어했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이 주는 감정들도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네르의 모습에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르그를 향한 그녀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네르는 감정 없는 인형처럼 해야할 행동들만 이어나갔다.

     

    그녀는 매일 같이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매일 같이 거울 앞에 앉아 스스로를 단장했다.

     

    매일 같이 베르그와 영혼결속을 올렸던 숲마저도 찾아갔다.

     

    처음으로 자신의 명령을 들을 직속산하 부대까지 만들어 힘을 키웠다.

     

    분명 예전처럼 눈물만을 흘리며 쓰러져 있지는 않았지만, 표정만 본다면 그 이상으로 망가진듯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언제나 망가져 있던 모습에 생기가 들어찼다.

     

    마치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난것만 같았다.

     

    네르가 이런 감정을 다시금 표출 할 수 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베….베르그가요…?”

     

    “…”

     

    그 놀라움에 대답을 망설이자, 네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기딘 앞에 다가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펴…편지는 어디있죠?”

     

    그 표정에 기딘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품에서 베르그 라이커로부터 받은 편지를 꺼냈다.

     

     

    -탁!

     

    그와 동시에 네르가 편지를 낚아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펴 보았다.

     

     

    거친 호흡. 커진 눈동자.

     

    네르는 베르그의 편지를 보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

     

    어느새 편지의 냄새마저 얕게 맡은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베르그 냄새…”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흔들리는 감정을 진정시킨 네르는 편지를 읽어보았다.

     

    편지를 읽어나가는 네르의 눈동자를 보며 기딘이 말했다.

     

     

    “…역병이 스탁핀에도 퍼졌다는구나.”

     

    “…….”

     

     

    그 말에 네르가 다시금 동요하기 시작했다.

     

    “…베르그는 괜찮…”

     

    “모르지. 그에 대한 설명은 없었으니. 하지만 도움을 요청-”

     

    “-제가 갈게요.”

     

    네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리고는 기딘을 날카로운 눈으로 올려다보며 자신의 말을 확고히 했다.

     

     

    “……제가 갈거에요.”

     

    “…”

     

     

    당장 블랙우드 가문의 결정권은 상당 부분 기딘에게 위임이 되어 있었다.

     

    깁슨은 점차 정권을 놓고 싶다는 말을 한만큼, 맏이인 기딘이 가주로서의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런 상황속에서, 이번만큼 혼란스러운 적이 없었다.

     

     

    네르를 스탁핀으로 보내는게 옳은 걸까.

     

    그녀가 안쓰러웠던만큼 편지를 보여주었으나…걱정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동안 네르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일까.

     

    이 순간을 네르가 언제나 기다려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네르를 보내주어야만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주의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는 기딘으로서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허락은 해줄 수 있다만… 약속이 필요하다.”

     

    “….약속…?”

     

     

    기딘은 네르에게 상기시켜주어야만 하는 사실들이 있었다.

     

    네르가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만 했다.

     

     

    “…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거라.”

     

    기딘은 자신의 말을 자세히 설명했다.

     

     

    “…베르그 라이커에게는 이제 아내가 있다.”

     

    “…”

     

    “…네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네르와 베르그의 관계는, 베르그가 전 성녀와 혼인을 맺는 순간 끝이 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부다처제가 폐지되며, 인족은 더 이상 다수의 아내를 거느릴 수 없었다.

     

     

    네르가 끼어들 틈은 더 이상 없을거라는 이야기였다.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네르는 더 이상 베르그와 가까워질 수 없었다.

     

    특히나 늑인족에게는 짝이 있는 상대를 빼앗으려는 것보다 금기시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베르그에게 짝이 생겼고, 네르는 이제 물러서야만 했다.

     

     

    네르가 그 말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만.”

     

    기딘은 그런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은 무시하며 이어나갔다.

     

     

    “네가 아무리 베르그 라이커를 사랑한다고 해도…이제는 떠나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해. 가문의 명예를 실추-”

     

    “-그만….!”

     

    기딘의 발언에 네르의 손은 어느새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편지가 구겨져 있다.

     

     

    “….듣고 싶지 않아요.”

     

    “네르…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야.”

     

     

    “나도 알고 있다고요!!”

     

    네르가 기딘의 압박에 순간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감정적으로 한계에 몰린 사람의 비명이었다.

     

     

    베르그를 잃고 네르는 더 이상 기딘에게 대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르그 특유의 대담함이 그녀에게 옮아간것처럼.

     

    어쩌면 이제는 달리 두려워할게 없어서 그런걸지도 몰랐다.

     

     

    네르는 눈물을 참아내듯 말했다.

     

    “나도….알고 있다고요….베르그가…재혼했다는 것쯤은……”

     

     

    기딘은 그런 네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믿고 있어도 되겠지?”

     

    “…”

     

    “…그저 라이커 가문을 돕고, 곧장 돌아오는 걸로 알고 있으마.”

     

    “…….”

     

    “너는 베르그에 대한 마음을 이번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오거라.”

     

     

    기딘은 대답이 없는 네르를 보며 말했다.

     

    “약속하지 못하겠다면 널 보내줄 수 없다.”

     

    그 말에 결국,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

     

     

    네르는 침대에 누워 베르그의 편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렴풋이 편지에서 묻어나오는 베르그의 향기를 맡는다.

     

    이 향기는 얼마나 오랜만일까.

     

    네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향이었다.

     

     

    과거 밤이면 밤마다 몸을 비볐던 냄새였다.

     

    이보다 그녀가 사랑하는 냄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네르는 결국 스탁핀을 찾아가게 되었다.

     

    얼마나 오랜만일까.

     

    순식간에 다가온 그 기회에 네르의 심장은 격렬히 달리고 있었다.

     

     

    베르그를 드디어 만나게 될거라는 사실에 몸이 저렸다.

     

    1년 반 만이었다.

     

    마치 10년처럼 느껴졌던 기간.

     

     

    베르그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단 한번도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그를 생각했다.

     

     

    그와 공유했던 추억부터 받은 행복, 그의 냄새와 외형, 온기를 기억했다.

     

    이제 그 존재의 곁으로 다시금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분명 기딘과 약속은 맺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베르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로.

     

    “…”

     

    하지만 당연히도, 그 약속은 거짓으로 맺은 것이었다.

     

    네르는 베르그를 조금도 포기하지 못한 상태였다.

     

    앞으로도 그를 포기 못할 것이었고.

     

     

    지난 1년 반 동안 베르그를 향해 쌓이고 억눌렸던 마음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칠것만 같았다.

     

    자신의 선택을 그 동안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도 알지 못했다.

     

    손아귀에서 흘러나간 행복에 지금까지도 피눈물이 흘렀다.

     

     

    그런만큼, 이 기회는 놓칠수 없었다.

     

    아무리 기딘이 약속하라 말해도 네르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온 생각은 그의 곁을 되찾아오는 것에 집중이 되어있었다.

     

    베르그가 다시금 자신을 바라봐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 얼마나 위험한 생각들이 맴돌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불안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앞으로 받을 상처들에도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베르그가 얼마나 명예를 중시하는지도 알았다.

     

     

    네르는 베르그의 아내였을 때 언제나 느껴왔다.

     

    외딴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베르그였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생각해보면…이번에 외딴 여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그가 자신을 쉽게 받아주지 않을거라는 걸 분명히 알았다.

     

     

    자신을 위해, 베르그가 전 성녀와 이혼할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끼어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확실한 계획을 만들어야했다.

     

    베르그가 자신을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그 결과, 불륜으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네르는 상관없었다.

     

    도덕성 따위는 내다버린지 오래였다.

     

     

    “….베르그…”

     

    그렇게 베르그만을 생각하다보니 몸이 뜨거워진다.

     

    1년 반만에 맡은 베르그의 향기는, 이성을 풀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사랑을 알게 된 이후….보름달마다 찾아온 발정기.

     

    하지만 지금까지 조금도 해소하지 못했던 그 성욕은 네르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욕구는 그녀의 이성을 천천히 비틀고 있었다.

     

    -쪽….쪽…

     

    네르는 베르그의 반지에 익숙하게 입을 맞췄다.

     

    편지의 향을 맡으며 계속해서 베르그를 상상한다.

     

    “…하아….하아….”

     

    눈이 풀려가는게 느껴졌다.

     

     

     

    -스윽…스윽….

     

    네르는 하복부가 뜨거워지자, 가만히 다리를 두지 못하고 두 허벅지를 비틀며 비볐다.

     

    그렇게 허벅지를 비비니 꼬리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이런 모습을 베르그가 본다면 뭐라 생각할까.

     

    아마 이렇게까지 성욕이 올라버린 자신의 모습에 질려버릴지도 몰랐다.

     

     

    그녀는 언제나 베르그 앞에서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썼다.

     

    이런 음습한 모습은 그에게서 숨겨야 할게 분명했다.

     

     

    “…하아….하아…베르그…”

     

     

    하지만 당장은 베르그가 곁에 없었다.

     

    그 어느때보다 솔직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네르는 베르그와 동침하는 꿈을 얼마나 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편안하게 그와 침대에 누워있는 꿈부터, 뜨겁게 몸을 섞는 꿈까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온몸을 쓰다듬어주는 그 꿈에서 깰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네르는 이제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걸 바칠 수 있었다.

     

     

    가장 짙은 사랑의 표현이 바로 성관계라 했다.

     

    그 애정표현을 베르그에게 받아내기 전까지는 그녀도 멈출 수 없었다.

     

     

    “….곧….”

     

    베르그가 자신을 만져준다 상상하니 몸이 찌르르 울린다.

     

    그와 몸을 섞는 꿈을 떠올리니 몸이 녹을 듯 뜨거워진다.

     

    불가능할것만 같은 그 희망에 달아오른다.

     

     

    “곧…만나러 갈게…”

     

    그녀가 속삭였다.

     

    반지는 입에, 편지는 코에 가져다댄채로 베르그를 떠올렸다.

     

     

    “…사랑해…내 남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관집아들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네, 항생제에 보태겠습니다.

    TIMID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더 정이 가신다니 기쁩니다. 넵.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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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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