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2

       “언니가 준 걸 왜 버려? 바보야?”

       ​

       로즈마리는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요르문간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

       “충격받지 말고 잘 들어라. 네 언니는 사실상 인간 편에 붙었다.”

       “닥쳐, 네가 뭘 알아.”

       “닥치라고? 누가 누구보고?”

       ​

       요르문간드는 코웃음을 치며 로즈마리를 일갈했다.

       ​

       “멍청한 년아, 내가 네년보다 네 언니를 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

       짧고 강렬한 한 마디에, 로즈마리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요르문간드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

       “네 언니는 우리 중 유일하게 타락하지 않았다. 그 탓에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 정령을 전부 몰아내는 게 맞는 일일까? 여신을 적대하는 것이 정녕 금안족을 위한 일인가? 마왕이 대전쟁을 일으키는 그 순간까지도, 그런 잡생각을 늘어놓았던 녀석이었다.”

       ​

       로즈마리도 거기까진 알고 있었다.

       ​

       그간 금안족이 수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에테르는 끝까지 마왕군이 계획하고 있는 ‘정령 몰살’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

       그녀가 멍청하기 때문은 아니다.

       ​

       무식할 정도로 착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

       “녀석의 고뇌는 학식이 지나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

       이성과 감정을 분간할 줄 알았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

       “그리고 그런 번뇌는, 여신이 내린 저주나 진배없지.”

       “……저주?”

       “그렇다, 저주. 네 언니는 우리처럼 검은 피를 흘리기 전까지는 여신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게야. 우리 또한 여신으로부터 탄생한 존재에 불과하니까.”

       ​

       요르문간드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

       “이제 여가 무얼 얘기하려는지 알겠나?”

       ​

       로즈마리는 쓰읍, 하고 침음을 삼켰다.

       ​

       그녀의 시선이 원자폭탄을 향했다. 때맞춰 눈을 뜬 요르문간드가 공허한 눈빛으로 확언했다.

       ​

       “마음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저걸 터뜨릴 수도 있겠지.”

       ​

       마왕군의 행동이 도리어 금안족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일이라고 판단하기라도 한다면, 에테르는 동족이고 뭐고 상관없이 뇌관을 터뜨릴 작정이다.

       ​

       적어도 요르문간드의 시선에는 그렇게 보였다.

       ​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

       이번에는 로즈마리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자질구레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 품에서 에테르가 준 스크롤을 꺼내 흔들었다.

       ​

       “기폭 장치까지 나한테 맡겼거든.”

       “…가짜일 가능성은?”

       “없어.”

       ​

       스크롤 전문가인 로즈마리가 보기에, 이건 정제된 마력회로가 연결된 진품이었다. 즉, 일정량 이상의 마력을 불어넣는다면 언제라도 하늘에 표고버섯 농장을 차릴 수 있었다.

       ​

       “수상한데.”

       ​

       요르문간드가 눈을 가늘게 뜨며 턱을 매만졌다. 눈도 안 보이면서 괜히 폼만 잡고 있는 것이라고, 로즈마리는 생각했다.

       ​

       “수상하긴 뭘 수상해. 너 의심병 있어?”

       “연장자한테 ‘너’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나.”

       “지금 그게 중요해?”

       ​

       로즈마리의 입꼬리는 하늘을 찢고 올라갈 기세였다.

       ​

       “언니와 오래 종군한 건 너겠지만, 언니와 더 가깝게 지낸 건 다름 아닌 나야.”

       “……뭐라?”

       “그런 내가 언니가 무슨 생각 하는지도 못 알아챌까 봐?”

       ​

       에테르는 마수를 포함한 모두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고 말했다.

       ​

       즉, 인간이나 마수 중 한쪽이 먼저 뒤통수를 거나하게 치기 전까지는 중립을 유지한다는 의미였다.

       ​

       이 원자폭탄은 그걸 보증하기 위한 일종의 증표였고.

       ​

       단순히 터뜨리려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언니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리 판단하는 편이 타당했다.

       ​

       “다 차치하고 간단하게 얘기해 보자. 그냥, 언니를 이쪽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전부 해결되는 일이잖아? 인간에게 완전히 배신감을 느끼게 해서 말이야.”

       ​

       요르문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그럼, 내가 누구인데.”

       ​

       지금껏 계획이란 계획은 전부 박살 난 블루베리였다.

       ​

       하지만….

       ​

       하지만!

       ​

       “이번에는 다를 테니까.”

       ​

       꽈악. 로즈마리는 양손을 쥐며 입매를 비틀었다.

       ​

       그 어느 때보다도 비릿한 웃음이었다.

       ​

       ​

       **

       ​

       ​

       로즈마리에게 원자폭탄을 주고, 다음 날.

       ​

       하루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방으로 들어오니 로테와 프레이가 나에게 작은 보석함을 건넸다.

       ​

       “이게 뭔데?”

       “예술제 부상이래.”

       “너 올 때까지 안 열어보고 있었어!”

       ​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자를 받아들었다. 버멜, 메릴다, 에리카에 제롯까지.부실에는 로테와 프레이 말고도 몇 명이 더 눌러앉아 있었다.

       ​

       “그나저나 너희는 여기 왜 있냐?”

       ​

       내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

       “예술제 부상이라잖아요!”

       ​

       메릴다가 흥분하여 큰 목소리로 조잘댔다.

       ​

       “제가 알기론 틸레트 예술제에서 주는 부상을 정령들이 만드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당연히 보러 올 수밖에 없죠!”

       “그렇게 볼거리는 아닐 텐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틀림없이 인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희귀 아티팩트일 거라고요!”

       ​

       메릴다의 열변에도,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잘 안 와닿는다.

       ​

       아는 정보라고는, 이게 앞으로의 일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라는 것뿐. 어쨌거나 열어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

       덜컥.

       ​

       “……반지잖아?”

       “네 개나 있네.”

       ​

       각각 빨강, 파랑, 검정, 녹색 보석이 박힌 링이었다.

       ​

       “뭐지, 버프 아이템인가?”

       ​

       쌍으로 있지는 않은 걸 보니 우정반지나 결혼반지는 아닌 모양이다.

       ​

       붉은 반지를 함에서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던 중, 에리카가 경탄하며 입을 열었다.

       ​

       “…와,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져.”

       “그런 것도 알아?”

       “정령을 지니고 있으니까 알 수 있어. 이 반지들은, 정령왕께서 손수 빚어내신 귀중품이야.”

       ​

       메릴다와 에리카의 눈빛이 찬연하게 빛났다. 그 모습이 꼭 신내림을 받아 감읍 직전에 이른 신자와도 같았다.

       ​

       내 시선이 버멜에게로 꽂혔다. 나와 눈을 마주친 그가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

       “무슨 성능이 있는지는 알겠어?”

       “거기까진 모르지.”

       ​

       정황상 이걸 아는 건 버멜 정도겠지. 그러나 그가 여기서 처음 보는 반지의 성능을 그가 얘기한다는 건 정황상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

       혹시 양장본에게 물어볼 수 있나?

       ​

       그리 생각하던 참이었다.

       ​

       [네? 아, 알겠어요.]

       ​

       갑자기 헛소리를 늘어놓던 양장본은 푸욱 한숨을 쉬더니,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내 머릿속에 말을 불어넣었다.

       ​

       [원래 이런 건 알려주면 안 되는데…. 하는 수 없네요.]

       ​

       그리고 그 다음 순간.

       ​

       촤르륵! 양장본이 페이지를 벌리며 지식을 토해냈다. 나는 눈앞에 막 적히기 시작한 황금빛 글씨를 읽었다.

       ​

       [■ 의열의 반지(레전더리)]

       ​

       [화염의 정령왕, ‘이그니스’의 힘이 깃든 반지. 착용자에게 방대한 의지를 부여하고 절망으로부터 구제한다.]

       ​

       현재 들고 있는 붉은색 반지였다.

       ​

       기묘한 일이었다.이전까지 학문과 관련된 지식만을 알려주던 양장본이 이런 ‘쓸데없는’ 정보를 다 알려주다니.

       ​

       그러나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다음 줄을 읽어나간 내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

       [스트레스 피해 감소(-50%)]

       [스트레스가 160 이상일 때 높은 확률로 ‘극복’ 이벤트 발생]

       [착용자가 ‘집착’, ‘폭력’, ‘절망’ 상태의 붕괴에 빠지지 않음]

       ​

       의열의 반지 성능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

       말 그대로 ‘운이 좋군’을 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

       ​

       혹시나 몰라 다른 것도 확인했다.

       ​

       [■ 포말의 반지(레전더리)]

       [■ 지류의 반지(레전더리)]

       [■ 창공의 반지(레전더리)]

       ​

       하나같이 ‘의지의 반지’와 동급인 아이템이었다. 특성을 확인해 보니 하나같이 쓸만한 것을 넘어 없으면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로 출중했다.

       ​

       이제야 알겠다. 버멜이 왜 ‘이게 있으면 일이 한층 쉬워진다’라고 말했는지를.

       ​

       나는 부상을 공평하게 분배할 방법을 떠올렸다.

       ​

       조원은 나와 로테, 프레이 세 명. 반지는 4개이므로 삼등분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

       그렇다면.

       ​

       “로테, 프레이.”

       ​

       일단 그녀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보자.

       ​

       “너희 하나씩 가져. 로테는 빨강, 프레이는 검정이면 되지?”

       “어, 어…….”

       ​

       두 사람은 침을 꼴깍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

       “팔 떨어지겠다. 빨리 가져가.”

       “정말 그래도 돼?”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너잖아. 네가 전부 처분해도….”

       ​

       고개를 내저었다.

       ​

       “나는 필요없어.”

       ​

       이건 아까운 일이 아니다.

       ​

       호구 같은 짓은 더더욱 아니다.

       ​

       친구를 잃지 않으려면, 그리고 이 세계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돌아가려면 포석을 이렇게 두는 게 알맞다.

       ​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나에게도 크나큰 이득이 될 터.

       ​

       고개를 돌려보니 버멜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역시, 내 선택이 옳은 방향이다. 아니면 같은 빙의자이다 보니 떠올리는 것도 비슷해진 걸 수도 있다.

       ​

       “그, 그럼 고맙게 받을게!”

       “히히, 반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

       나는 로테와 프레이에게 각각 ‘의열의 반지’와 ‘지류의 반지’를 건넸다. 두 사람은 기뻐하는 얼굴로 반지를 착용했다. 손가락? 왼손 검지였다. 불변할 우정을 뜻하는 자리.

       ​

       “후우.”

       ​

       로테가 낀 반지 위치를 보며 내심 안도했다.

       ​

       붕괴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이었으니까.

       ​

       로테에게 준 반지에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프레이에게 준 ‘지류의 반지’에는….

       ​

       [연성 속도 증대(+200%)]

       [연성에 필요한 마력량 감소(-60%)]

       [‘삶에의 의지’ : 착용자가 자살하지 않음]

       ​

       그런 특성이 붙어있었다.

       ​

       마지막 건 별 상관없는 특성이라 치더라도, 위의 두 개 특성이 완전히 프레이만을 위한 물건이었다. 안 주려고 해도 줄 수밖에 없었다.

       ​

       자, 이제 남은 반지는 두 개인데.

       ​

       “…….”

       “…….”

       ​

       버멜…. 아니, ‘로멜’과 눈을 마주쳤다.

       ​

       지금 변장 중인 녀석에게 다짜고짜 이걸 주면 저번처럼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남은 반지들을 외투 속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이걸로, 겨울방학 대비책은 대부분 완성되었다.

       ​

       ​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가 막 끝난 시점.

       ​

       “나, 다녀올게!”

       ​

       나와 진득한 포옹을 나눈 로테는 일리야드 아카데미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

       이젠 그녀가 내 곁을 떠날 시간이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