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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그리고 황녀가 둘씩이나 찾아왔다는 소식에 곧바로 튀어나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당연히 린드버러 공작은 아니었다. 공작씩이나 되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면 당연히 아무리 황녀라고 할지라도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

        

       의전상으로는 황녀가 더 우위에 있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공작위라는 위치는 절대로 쉽게 대할만한 위치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도 공작 본인에 관한 이야기일 뿐.

        

       황가라고 하더라도 직계를 제외하면 대단한 힘을 가진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은 가문의 돈으로 유유자적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갈라진 뿌리가 백년씩 차이 나는 사람이라면 황실이라는 이름을 대는 것 자체가 우습게 여겨지기도 한다.

        

       황실이 이럴 정도인데, 공작가는 어떻겠는가.

        

       이미 정당한 계승자가 있고,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나 그 계승자가 불구가 되거나 죽을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공작가의 다른 이가 그 계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에 가깝다, 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황실에서 인정해주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 린드버러—

        

       조지 린드버러는, 자기 사촌과는 다르게 우리가 언제 어떤 식으로 방문하건 문 앞으로 마중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소리다.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보통 이럴 때 방문하는 것은 이렇게 반길만한 일은 아니다. 황족이나 귀족이 밤중에 방문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급하게 다룰 일이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정계에서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 특히 자기 자식 대에서는 아예 정계에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누추한 곳이지만 부디 편하게 계시다가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작가에 비해서 작은 저택이기는 했지만, 사실 누추하다고 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뭐,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태도는 예법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환대에 감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대는 우리의 태도가 별로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응접실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이곳의 메이드들은 린드버러 저택과는 다르게 백인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식민지 원주민계통이었고, 가끔 혼혈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보였다.

        

       앨리스의 눈길이 아주 잠깐 그런 메이드들을 향했다. 어쩌면 저 메이드들도 로티와 같은 처지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원작에서도 꽤 인상 깊은 이유였으니, 이 세상도 그렇겠지. 이 남자가 로티의 어머니 외에 다른 이를 건드렸을 리는 없다.

        

       “잠시 사람들을 물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둥근 테이블을 감싸고 앉자마자 앨리스가 말했다.

        

       조지 린드버러는 곧바로 방 안에 있던 사용인들에게 눈짓했다.

        

       앨리스는 그 사용인들이 다 나가기를 기다린 뒤, 품 안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정확히는 수표였다.

        

       이 지역 은행이 보증하는 수표.

        

       “이것은…….”

        

       수표에 쓰여있는 숫자는 린드버러 사람이라고 해도 순간 혹할만한 금액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레오가 직접 약점을 잡아 이리저리 캐묻고, 괜한 추문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린드버러 공작에 의해서 돈 없이 끝낼 수 있는 퀘스트이긴 했지만.

        

       황녀 좋다는 게 뭐겠는가.

        

       “이것으로 누군가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빚이라니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조지 린드버러는 우리가 대체 무슨 이유로 여기에 왔는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로티의 어머니, 리디아의 빚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조지 린드버러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창백해졌다.

        

       “어디서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정확히 따지자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앨리스 대신 내가 대답하자, 조지 린드버러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변했다.

        

       사실 백인이 원주민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는 일은 흔하다. 물론 그 이야기는 거의 백인 남성과 여성 원주민에 한하는 이야기이긴 했다. 아직 여성 참정권도 없는 세상이다. 자식은 어머니의 혈통을 따르지만, 아내는 남편의 혈통을 따른다. 그렇다고 원주민이 남편 따라 귀족이 되는 것도 아니다…… 뭐 그런 흔한 이야기.

        

       그러니 엄밀히 따지자면, 색마라고 뒷담화 거리는 될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흠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귀족의 시선으로 보기엔 그저 유흥거리를 즐겼을 뿐이니까.

        

       하지만 린드버러 가에는 누구보다 그런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심지어 자기 저택의 사용인마저 식민지 원주민이 아니라 제국인을 쓸 정도로, 피가 섞이는 것을 혐오하는 인물이. 식민지 원주민을 어느 정도 고평가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제국인과 섞여서는 안 되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정확히는, 대외적으로 그런 ‘척’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린드버러 공작이었으니까.

        

       조지 린드버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린드버러 공작이 로티의 존재나 정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걸 몰랐다면 굳이 로티의 어머니를 자기 저택에 데려다 둘 이유가 없지.

        

       그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괜히 여기에 계속 두었다가는 또 다른 혼혈 사생아를 낳게 될지 모르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던 조지 린드버러가 말했다.

        

       “어째서입니까?”

        

       “……여기까지 알고 오셨으니 더 숨길 것도 없겠군요.”

        

       조지 린드버러는 마치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도 하는 고고한 인물이라는 것처럼 얼굴에 각오가 서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리디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계급 때문이 아니라—

        

       “엑.”

        

       이미 나와 함께 리디아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앨리스가 한순간 평정심을 잃었을 정도로, 이 인간의 헛소리는 도를 넘었다.

        

       심지어 이미 상황을 알고 있던 나조차도 순간 귀를 의심했을 만큼.

        

       “사랑, 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와 어떻게 몸을 섞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연회에서 리디아를 향해 마구 화를 내고 있었던 일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린드버러 공작에 의해 저희의 사랑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런 명분이라도 있어야 하니까요.”

        

       앨리스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시선을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말없이 각설탕을 하나 더 집어 찻잔에 떨어뜨렸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앨리스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조지 린드버러는 앨리스의 그런 태도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기 몽상에 잠겨있는 표정이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저를 볼 때마다 그녀가 짓는 애수 어린 표정을. 갈망하는 몸짓을! 언젠가 그 모든 벽을 뛰어넘어서, 린드버러라는 이름 아래 우리 둘이 함께하게 된다면 그때는 로티의 이름도 로티 린드버러라고 칭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그래서 그녀에게 로티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겁니까? ‘자유민’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잠자코 있으려다가 결국 참지 못한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린드버러 공작이 아니라면, 예, 그 아이는 자유민이 될 수 있었겠죠. 그 공자만 아니었다면…….”

        

       조지 린드버러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리디아의 본래 이름은 알고 계십니까?”

        

       이어서 앨리스가 물었다.

        

       “…….”

        

       잠깐의 침묵.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부르건, 그 사랑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그럼,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지나가도록 하죠.”

        

       앨리스가 거의 이라도 갈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여기까지 들어본 것만으로도 조지 린드버러라는 인간이 단단히 미친 인간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황녀가 되어서 본인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당신과 리디아가…… 아니.”

        

       앨리스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깨를 몇 번 크게 움직이며 숨을 쉬더니 말했다.

        

       “로티가 생겼던 그날에, 리디아는 당신과 진짜로 사랑을 나누었습니까? 리디아가 그날 어떻게 말했죠?”

        

       “물론 우리 둘의 사이를 신분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으니, 리디아도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인간이!”

        

       결국 듣다 듣다 참지 못한 앨리스는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들어 조지 린드버러를 향해 집어 던졌다.

        

       “엑.”

        

       아무리 그래도 앨리스가 그렇게까지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순간 그런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앨리스를 말리려고 일어났을 땐 이미 앨리스가 펄쩍 뛰어 조지 린드버러를 걷어차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후원 감사는 최대한 빠르게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암컷천마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첫 후원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작년 내내 그렇게 쭉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제가 글을 쓸 때마다 와서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한해동안 정말 뿌듯할 수 있었네요. 올 한해도 작년처럼 열심히,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기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지난 1년동안 제게 투자해주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올 한해도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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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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