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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그녀에게 승부욕이 부글거린다는 건 옛저녁에 알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처음 대면했을 때도, 서로 기 싸움을 하다가 마차에서 입술 박치기를 해버리고 말았잖은가. 기본적으로 사람 자체가 승부욕이 왕성한 거다.

       

       측은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셀비어가 두근두근 메이드카페 체험을 크툴루로 바꾸었을 때, 옆에서 기겁하며 말리지 않았던가. 

       

       좀 더 과거로 가면, 고향 마을에서 셀비어를 만났을 때도 그녀는 은근히 신경을 쓰곤 했다. 선한 마음이 분명히 있는 거다.

       

       그러한 본성을 송두리째 태워버릴 정도로 증오가 컸던 거고.

       

       승부욕과 측은지심.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밀어붙이면, 빠르게 친해질 수 있다. 나는 유리네 집 문짝을 쾅쾅 두드리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유리야 나 샴푸가 눈에 들어가서 눈이 안 떠져!”

       

       연기에는 디테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말로 머리를 감았다. 샴푸가 눈에 들어가서 눈이 안 떠지는 것도 맞았다.

       

       그러자 유리가 혈압이 오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씩씩대며 문을 열고는, 악! 하고 나한테 소리를 질렀다. 어린 유리는 감정이 통통 튀는 편이었다.

       

       “이게 몇 번째입니까, 그냥 나가 뒤지든지 하십시오 좀⋯⋯!!”

       

       “어제 체스 개털렸을 때 유리 1회 자유이용권 준다매! 그거 쓸 테니까, 빨리 물 한 동이만 퍼 와 봐⋯⋯!!”

       

       “저는 그런 말 한마디도 뱉은 적 없습니다만?!”

       

       “계약서에 작게 쓰여 있었어!”

       

       “사기 계약입니다!”

       

       계약서를 잘 읽어봤어야지.

       

       진지한 계약서가 아니긴 했다. ‘너 체스 개 못하잖아’ 하고 살살 긁어서, 여기서 패배하는 사람은 개가 된다는 등의 놀리기 위한 조항을 잔뜩 집어넣은 물건에 서명하도록 유도했다.

       

       어른 핑발레즈였더라면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세 바퀴 돌아서 리얼하게 짖어댔겠지만, 유리는 수치심으로 부들거리면서 “⋯⋯멍.” 하고 내뱉었더랬다.

       

       귀여웠지.

       

       핑발레즈에게도 놀리는 맛이라는 게 실존했었구나. 그런 묘한 감상을 느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잔뜩 씩씩대면서도, 문전박대하는 대신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양동이에 물 떠올 테니까 기다리십시오!”

       

       “이대로 눈이 멀어버리면⋯⋯ 나는 더이상 네 모습을 눈에 담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걸까⋯⋯?”

       

       “지금 물 떠온다니까요!”

       

       우당탕. 그녀가 다급하게 안쪽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양동이, 양동이 어딨⋯⋯’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도.

       

       그녀의 이웃사촌으로 며칠 지내면서 나는 친근하게 다가감과 동시에, 내가 성욕 컨트롤을 아주 잘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바지를 까거나 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서큐버스는 척 보면 이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냥감을 고르려면 필요한 능력이 아니겠는가?

       

       유리 또한 당연히 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편해졌다.

       

       성욕 억제 마법으로 인해, 매번 만날 때마다 잔잔하고 고요한 내 마음을 보고,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열린 틈을 비집어 열어서 온몸으로 들이댔고, 이게 그 결과다.

       

       촤아아악──!!

       

       찬물이 내 머리를 겨냥하고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나는 샴푸 거품을 쓱쓱 닦아냈다. 물을 전부 부어버리고 나자 유리가 물었다.

       

       “한 동이 더 퍼 옵니까?”

       

       “아, 대충 씻겼어. 그래도 반동이 정도는 더 있으면 좋겠는데. ”

       

       “대충 씻겼으면 직접 하십시오!”

       

       유리는 나무 양동이를 휙 던졌다. 나는 휘청이면서 양동이를 받아낸 뒤에,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말을 붙였다.

       

       “아이, 정 없게 또 왜 그런담. 집에 수건 있어?”

       

       “이번에도 훔쳐 갈 셈입니까?”

       

       “훔쳐 간 게 아니라, 세탁도 하고 잘 말려서 돌려주려고 잠깐 맡아 둔 거지. 그리고 지금은 상반신이 축축하게 다 젖었잖아. 물기 안 닦아내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

       

       “그건 당신 사정이고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쫒아 낼 기색은 없다. 츤데레 번역기를 돌린 결과, 수건을 써도 좋다는 뜻이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유리의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틈날 때마다 침투한 결과, 내부 구조는 대강 파악하게 되었다.

       

       분명 마른 수건은 이쪽이었던가. 욕실 근처에 쌓아뒀던 것 같은데.

       

       있다. 하나 집어서 머리를 탈탈 털었다. 그러고 있자니 저 멀리 부엌 쪽에서 유리가 외치는 소리가 멀찍이 들려왔다.

       

       “얌전히 빨랫감 바구니 안에 넣어두십시오! 이번엔 훔쳐 갈 생각 하지 말고요!”

       

       이번엔 훔칠 생각은 없었다. 수건을 되돌려준다는 이유로 집에 찾아갈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두 개의 수건은 굳이 필요가 없다.

       

       빨래 바구니에 다 쓴 수건을 넣으려고 보니, 안에 선객이 있었다.

       

       품질이 좋지 않은 싸구려 천으로 만들어진, 디자인도 미학도 없는 민무늬 속옷이다. 참담하다.

       

       나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고, 속옷을 쥔 채로 부엌으로 달려가고야 말았다.

       

       유리는 스튜를 끓이려고 준비하는 듯 보였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나는 속옷을 손에 쥔 채로 그녀를 규탄했다.

       

       “이 지지배야, 너는 뭐 이런 속옷을 입고 다니니?”

       

       “⋯⋯앗, 아앗⋯⋯!! 뭐, 뭘 들고 다니는, 뭐 하시는 겁니까?!”

       

       유리는 망치로 머리라도 맞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쌍심지를 켰다.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어떻게든 분노로 포장하려는 느낌.

       

       하지만 나도 분노하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성의한 착장이란 말이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신경 쓸 때 비로소 패션은 완성되는 법인데, 돈도 나름대로 버는 애가 뭘 이런 걸 사 입고 앉았어!”

       

       “그, 그거 당장 내려놓으십시오. 죽여버립니다?! 진짜로 죽일 거예요-!”

       

       “네가 죽이기 전에 내 속이 타서 죽을 자신이 있다. 얘, 이쁜 얼굴 놔두고 낭비란 낭비는 아주 다 하고 있어 그냥. 남자 싫다 좋다 이전에, 이거는 아까움의 문제라니⋯⋯ 악! 아파, 진짜 아파!”

       

       “내려, 내려놔! 당장 돌려놓고 오란 말입니다!!”

       

       유리는 강펀치 세례를 날려대며 내 의견을 무력으로 묵살했다. 취약하기 짝이 없는 이 아바타로는 천마-무빙이 어렵다. 대항할 수 없다.

       

       나는 외압에 굴복하여 속옷을 돌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기능성을 생각해도 저런 천 쪼가리는 에반데. 꾸미기 싫어하는 건 이해를 해도, 적어도 품질은 신경 쓸 만하다니까? 착용감이 다르다니까?”

       

       “아이씨, 진짜아-!!”

       

       툴툴대다가 한 대 더 맞았다.

       

       ===============================================================

       

       식사 시간이다. 유리가 대충 끓인 스튜를 테이블 가운데에 놓고, 국자로 나무 그릇에다 퍼 담아서 먹는 구조다.

       

       나는 숟가락으로 한 술 크게 떠서 먹어보고는, 냉철하게 평가했다.

       

       “소금이 2.5꼬집 정도 더 들어갔으면 좋았겠는데.”

       

       “⋯⋯그럼 당신이 만드십시오, 당신이!”

       

       “좋아. 내일 아침은 내가 스튜 요리사다. 맡겨두라고.”

       

       “맛없으면 재룟값은 물어주셔야 할 겁니다!”

       

       좋아.

       

       이걸로 내일 방문할 명분도 챙겼다. 이렇게 멈출 수 없는 친해짐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거다. 내 캐릭터성에 대한 어필도 충분히 했고, 유리는 툴툴대면서도 내 존재가 썩 반가운 눈치였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 번 대 달라고 하는 양아치들이 우글거리던 삶 속에서, 편하게 장난 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의 존재는 제법 긍정적이겠지.

       

       이대로 차근차근 시간만 쌓아가면, 원래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꿈이 아니다.

       

       아직 남아있는 어색한 거리감을 완전히 좁히고, 다시 한번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목적을 잊고 있던 건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나는 핑발레즈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있으며, 지하 2층으로 향하는 단서를 손에 넣어야 한다.

       

       이 세계, 지하 1층은 핑발레즈의 정신방벽을 개조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꾹 닫힌 성문과 다를 바 없으며, 정신의 더욱 깊은 곳인 지하 2층으로 향하는 자들을 막으려 한다.

       

       그러니까 나는 ‘허락’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추측했다.

       

       문지기인 어린 유리가 나를 믿고 인정하여,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줘야 하는 방식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듯 친밀도를 쌓고 있었다.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단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리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열쇠』의 존재다. 줄에 묶여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수상할 정도로 정보량이 많은 오브젝트다. 그리고 한껏 인위적인 느낌이 났다. 아마 여왕의 손길이 닿은 부분일 터다.

       

       언젠가, 그녀에게 “그 열쇠는 뭐야?”라고 물었을 때.

       

       “알 필요 없습니다.”

       

       라며, 어린 유리는 극도의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초대면에 내게 향하던 경계심보다도 곱절은 더 강했다. 

       

       아주 완만하고 조심스럽게 관련 정보를 캐낸 결과, 그녀에게는 이 『열쇠』를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충동이 존재하며. 온갖 사람들이 『열쇠』를 훔치거나 절도하려던 기억이 심어져 있었다.

       

       말살대에서 그나마 친했던 친구도 자신의 『열쇠』를 훔치려고 들어서, 결국 절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순간 느꼈다. 열쇠에 대해 이 이상 접근하려고 들면, 내가 지금껏 쌓은 관계성이 모조리 무너지겠구나. 그래서 관심 없는 척을 해 오고 있다만.

       

       나는 핑발레즈에게 그런 중요한 열쇠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 과거사를 숨기는 편이긴 했지만⋯⋯ 조금씩 단서가 있었던 것과, 단서가 아예 없는 것은 다르다.

       

       기억을 점검한다. 핑발레즈는 행동, 습관, 패션, 그 모든 부분에서 ‘목걸이’를 걸었던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여왕이 일부러 만든 오브젝트다.

       

       여왕은 단서를 세계 이곳저곳에 흩뿌리는 대신, 『열쇠』라는 명확한 상징 하나에 클리어 조건을 몰아둔 것 같다.

       

       따라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려면 저 『열쇠』를 얻어야 한다.

       

       이 명제는 참으로 보인다.

       

       생각을 정리하는 겸사겸사 웃으면서 유리를 관람하고 있자니. 그녀는 시선을 느꼈는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곤, 툭 뱉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먹는 모습이 이뻐서.”

       

       화닥닥 얼굴이 붉어진다. 어린 유리는 마탑주에 비견될 정도로 방어력이 낮다. 그녀는 숟가락을 나이프처럼 쥐고 나를 겨누며, 화를 내는 척 부끄러움을 숨겼다.

       

       “당신, 진짜로 고자 맞습니까⋯⋯?!”

       

       “보여주랴?”

       

       내가 바지를 벗는 시늉을 하자, 그녀는 부리나케 고개를 홱 돌린다.

       

       나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승리의 기쁨을 느꼈다. 이겼다. 내가 핑발레즈를 압도하고 있다⋯⋯!!

       

       시종일관 처맞기만 하다가 패는 입장이 되니, 흡족하다.

       

       뭐⋯⋯.

       

       이대로 차근차근 신뢰를 얻어서 『열쇠』를 양도받는 그림이 베스트겠지만, 상황이 여의찮다면 물리적으로 훔치는 방법 또한 고려 중이다.

       

       그녀의 경계심을 충분히 누그러뜨린 후에, 결정적인 타이밍에 습격해서 열쇠를 손에 넣는 것이다.

       

       그 경우에는⋯⋯ 어린 유리는 분명히 상처받겠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해야 하니까.

       

       소리장도라고 해야 할까. 나는 웃음 속에 흑심을 숨기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요즘은 좀 어때? 말살대 일, 꼬였다면서. 흑마법사 집단을 추적 중이라고 했던가?”

       

       “⋯⋯곤란하긴 합니다. 방위국 측에서 거점이라고 알려 준 지점을 선배들과 습격했습니다만, 잔챙이뿐이더군요. 건진 정보도 하나뿐입니다. 일 좀 똑바로 하십시오, 방위국.”

       

       “우리 애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거야. 그래도 정보가 나와서 다행이네, 뭔데?”

       

       “흑마법사 집단 『붉은 재생』의 숨겨진 거점들, 그리고 협력자에 대한 정보입니다.”

       

       440년도의 말살대가 추적하고 있는 『붉은 재생』이라는 집단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새롭고 건강한 몸을 얻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주로 귀족들에게 접근하여 그 못생긴 얼굴을 고쳐주겠다든가, 허약한 몸을 근육질로 바꿔주겠다든가, 매력적인 조건으로 꼬드겨 후원을 받아낸다더라.

       

       “암호화된 서류여서, 선배님들이 밤낮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만⋯⋯ 분석이 완료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바람이 불겠구만.”

       

       “불어도 좋은 피바람입니다.”

       

       유리는 딱 잘라서 말하며 흑마법사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반으로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나는 턱을 괴고 있다가, 문득. 머릿속에 전류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서.

       

       “⋯⋯⋯⋯.”

       

       “⋯⋯왜 그러십니까?”

       

       “아니, 내가 깜빡하고 잊은 일이 있어서. 지금 떠올랐어. 황실로 보고서를 부쳐야 했거든.”

       

       “미쳤습니까? 얼른, 얼른 가서 보내세요!”

       

       유리에게는 그렇게 둘러댄 뒤에, 일단은 빠져나왔다.

       

       ===============================================================

       

       수상할 정도로 조용한 여왕에게 불안은 줄곧 느끼고 있었다.

       

       시야를 뒤집는다거나 갑자기 작열통이 느껴지는 등, 견제구야 지금도 날아오고 있었지만⋯⋯ 큰 거 한 방이 안 온다고 해야 할까?

       

       가끔 디펜스를 뚫고 들어오는 고통 정도는, 맞고 버티면 그만이었다. 그걸 여왕도 잘 알고 있을 거다.

       

       다른 시기를 골라도 좋았을 텐데, 굳이 440년도의 이 지점을 고른 데에는 분명히 의도가 있을 터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사건을 이용하려는 속셈이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추정컨대 흑마법사 집단 『붉은 재생』에 대한 건은, 말하자면 메인 시나리오다.

       

       나는 이 시나리오로 하여금 유리를 절망하게 하려는 걸까 추측하고 있었는데⋯⋯.

       

       “⋯⋯이 새끼, 앙큼한 장난을 쳤나?”

       

       유리를 일별하고 돌아온 나는 이 육체가 스폰한 장소, 집구석을 이 잡듯이 뒤졌다. 카펫도 들춰 보고, 다락방의 판자를 까 보기도 했다.

       

       그리고 집안 구석의 찬장을 옆으로 밀면 나오는 비밀 공간에서, 시뻘건 손바닥이 찍힌 연판장과 흑마법에 쓰이는 제례 도구들을 발견했다.

       

       손바닥을 펴서 바라보았다. 연판장에 대 보니까 똑같다.

       

       이 몸, 여왕이 나를 엿먹이기 위해서 준비한 아바타의 정체가⋯⋯ 흑마법사 집단 『붉은 재생』 소속이라는 뜻이다. 유리가 추적하고 있는.

       

       이렇게 나오시겠다?

       

       좋다. 유리와 적대 관계로 얽어버리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는 개과천선한 악인 스탠스를 잡으면 그만이다. 여기 떨어진 나는 그 누구도 해친 적이 없지 않은가.

       

       분위기 착 깔고, 사실 내가 병약한 몸을 고치고 싶어서 헛바람이 들었었는데. 널 보니까 뉘우치게 됐다. 미안하다. 하지만 아직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으니 한 번 봐줘라. 협력하겠다.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잠깐.

       

       잠깐만.

       

       나는, 그러니까⋯⋯ 못생긴 외모를, 수정했다. 들어오기 전에.

       

       아바타의 모델링을 수정한 거지, 이 세계의 설정 자체를 덧씌운 것은 아니니까. 나는 말하자면, ‘돼지 오크였다가 갑자기 핸섬해진 청년’이 된다.

       

       그건, 겉으로 보기에는⋯⋯ 『붉은 재생』에게 열심히 비벼서, 사람들을 희생시켜, 기어이 자기 외모를 바꾸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내 꾀에 내가 당했나!

       

       “지금이라도 정보를 바꾸면⋯⋯!!”

       

       어림도 없지. 여왕은 건수를 제대로 잡았다는 듯, 관련 정보를 꽉 쥐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대로 날 악역으로 몰아갈 생각이다. 이 개새끼.

       

       나는 졸지에, (어떤 의미로는 도시의 치안을 지키는) 히어로에게 집착하는 악당이 됐다⋯⋯!

       

       ===============================================================

       

       『둥지』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여왕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는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의 인간을 뛰어넘는 기교에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지만⋯⋯.

       

       『열쇠』를 얻어야만 지하 2층, 마음의 심층부로 진입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는 『붉은 재생』의 끄나풀이라는 설정이 붙었으며, 유리 랜스터는 열쇠를 아주 소중하게 지키고 있다.

       

       찰칵찰칵찰칵.

       

       운명은 그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쪽으로 흐를 거다. 왜냐하면, 여왕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

       

       궁지에 몰려라, 마법사. 한껏 초조해하고, 발버둥 쳐라. 그리고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유리 랜스터를 위해서라고 소리치면서, 그녀에게서 열쇠를 빼앗아라.

       

       그 순간.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 유리의 의식, 정신방벽으로부터 마법사가 ‘적’이라고 규정당하는 순간.

       

       이 작은 세상이 그를 적대하는 순간. 여왕은 발톱을 드러내 그를 사냥하고, 잘게 뜯어서 먹어버릴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숭배합니다 GOAT⋯⋯.
    오늘도 날씨가 참 좋네요. 그러면 마이 프렌즈, 내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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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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