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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레카체프에서는 매주 수요일, 현역 곡예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선배를 만나다>라는 시간이 있었다.

       주로 예테린푸르크 근방에서 체류 중인 일류에서 일류 반 정도 되는 곡예사들이 초청 대상이었다.

         

       저기서 일류와 일류 반을 가르는 요소는 하나였다.

       초청받은 강사가 학생들에게 간식비로 얼마나 돈을 쓰느냐였다.

         

       학교로부터 받은 강연료를 학생들에게 다 쓰면 일류요, 아끼면 일류 반이라는 논리다.

         

       이 황당한 평가 기준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주장인즉, 이름난 곡예사 선배가 업계 후배들에게 간식비를 아끼는 쪼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본인의 벌이가 다른 일류 곡예사들에 비해 시원찮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강사로 초청받은 입장에서는 뭐 이런 도적놈들의 논리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레카체프의 초청을 거절하는 곡예사는 없었다.

         

       그만큼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이득이 컸기 때문이다.

       일단 강단에 서는 것만으로 그달 잡지에 기사로 실리는 것이 보장되었고, 레카체프 엘리트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것은 훗날 업계에서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강연이라는 것은 강사 본인의 준비도 준비지만, 듣는 사람의 호응도 중요했다.

       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지에 따라 강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강단에 오르는 곡예사들은 학생들에게 일류로 평가받기 위해 주머니 여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 첫 번째 주의 초대 손님은 일류를 넘어서 ‘특급’ 곡예사로 분류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는 사비를 들여 강연료의 몇 배나 되는 간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강당 입구에서 <슬라그보르트 제과>의 비싼 과자 선물세트 한 상자와 즉석에서 제조한 무알코올 칵테일, 그리고 예테린푸르크의 유명 공방에서 만든 기념품 세트를 받았다.

         

       확실히 서커스 그랑프리 기간이라 그런지 초대하는 곡예사들의 면면은 평소와 수준이 달랐다.

       한 서커스단의 단장급에 해당하는 인사가 아니면, 애초에 초청장이 발부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쓴 돈이 무색하게도 첫 주의 강연은 분위기가 험악했다.

       왜냐하면, 첫 주의 초청 강사가 바로 황금 카니발의 단장인 로드 판타스틱, 지몬 마기어였기 때문이다.

         

       그와 레카체프 사이는 결코 좋지 못했다.

         

       가뜩이나 서커스 그랑프리로 인해 외부인에게 배타적으로 구는 현재의 학생들이었다.

       그의 등장에 학생들은 공격적으로 달려들었다.

         

       덕분에 이번 학기 <선배를 만나다>의 첫 번째 시간은 마치 공개 청문회라도 열리는 자리처럼 되고 말았다.

         

       하필 엘라가 지난주에 드래프트 마무리 현장에서 그의 치졸한 행동들에 대해 폭로를 했기 때문에 그는 물어뜯길 거리가 많았다.

         

       그의 강연 중간중간에 해당 내용으로 학생들이 불쑥불쑥 농담을 던지거나 딴지를 걸곤 했다.

       로드 판타스틱은 그 때문에 상당히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레카체프에서 가장 논리정연하고 또박또박하게 말 잘하기로 유명한 클라라가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병을 핑계로 구석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만약, 그녀까지 나섰다면 로드 판타스틱은 그날 큰 망신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이 흘렀다.

       오늘은 <선배를 만나다>의 2번째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초청 강사는 바로 원더스타인이었다.

         

       엘라는 밤새 고치고 또 고친 강의 자료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로드 판타스틱이 당하는 것을 보고 놀라 1주일 내내 원더스타인을 위해 강의를 준비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혹시나 그가 창피를 당하면 어쩌나 내용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제 본 것과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대사 좀 다듬은 정도?”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내민 종이 뭉치를 받아들었다.

       거기 적힌 글자 한 자, 빗금 한 줄마다 그녀의 정성이 느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또 당신을 심하게 부려먹고 말았군요.”

       “무손 소리야. 난 당신의 부단장이잖아.”

         

       그녀는 하품을 한 번 하고는 그의 가슴에 풀썩 고개를 박았다.

       그날의 고백 이후로 그녀의 이런 접촉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제 부단장이라 생각 안 합니다.”

       “……무슨 소리야?”

         

       그녀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그는 그녀를 보며 후후 웃었다.

         

       “당신이 진짜 단장이고, 부단장은 저죠.”

         

       원더스타인이 종이 뭉치로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엘라는 피식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헤헷, 당신 아이디어가 워낙 좋았으니까 나도 자료 만들기 쉬웠어. 옛날부터 느낀 건데 당신 눈썰미 진짜 대단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떠올린 거야?”

       “음, 경험이지요.”

         

       원더스타인은 게임 방송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얼버무렸다.

       엘라는 이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 아, 그래. 당신 예전에 원더 스테이지에 서 본 적이 있다고 했지?”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잠시 멈칫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던가요?”

       “예전에 3만 명 앞에 서 봤다고 했잖아. 그런 곳이 원더 스테이지밖에 더 있어?”

         

       그녀의 말에 그는 침음성을 삼켰다.

         

       그걸 그런 식으로 해석할 줄이야.

       원더 스테이지는 검은 마도사와 연결될 수 있는 단서였다.

       괜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다행히 엘라는 그에 대해 더 캐묻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는 계기가 될까 겁나서일까.

       그녀는 요즘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일부러 더 알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오늘 있을 특강에 대해 다시 초점을 맞췄다.

         

       “정말 내 도움 정말 필요 없어? 시간 내서 수업 준비 도와줄 수 있는데.”

       “엘라 양은 그 전 시간 수업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의 말에 엘라는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학교 다니는 건 어디까지나 시간 나서 하는 여흥이야. 내가 있을 곳은 어디까지나 여기라고. 나는 당신의 파트너잖아, 안 그래?”

         

       나는 크게 웃었다.

       그녀가 나를 지지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든든했다.

         

       “그렇죠. 그럼 부디 당신의 단장을 믿어주세요, 부단장님.”

         

       그가 밤새 뻗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를 보며 얼굴을 붉히고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조, 좋아. 대신 버벅거리거나 우스갯거리가 되면 잔소리를 퍼부을 테니까 각오해.”

       “넵. 물론이죠.”

         

       두 사람은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따라 단원들은 평소보다 더 분주해 보였다.

         

       랫맨 일꾼들이 어디선가 들고온 짐들을 식당 구석에 차곡차곡 쌓았다.

       엘라는 그것들이 파티용품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그들이 식당에 들어갔을 때는 마야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던 참이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원더스타인을 앞에 서더니 입을 열었다.

         

       “저 오후에 실습이 있어요.”

       “음, 실습이요? 마야 양이 실기 수업도 들었나요?”

         

       그는 마야가 서커스 이론 정도나 배운다고 생각했다.

       환상이나 조명을 이용한 무대 연출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설마 곡예를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엘라도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단검 다루기 초급 과정이에요.”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칼이요? 마야 양에게는 위험할 것 같은데…….”

         

       워낙 활동도 없고 행동도 느릿느릿한 그녀가 칼을 어떻게 다루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엘라나 레이나처럼 날렵한 동작으로 무언가를 던지고 받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저 잘해요. 보러 오세요.”

         

       그녀는 조금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유라크네는 음식을 내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마야가 곡예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이 바로 붙어 있었기에 야밤에 그녀가 단검들을 안고 마당에 내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얌전히 그림만 그리던 아이가 갑자기 왜 곡예를 배우려고 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단장님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단장님, 마야 양이 하는 곡예를 한 번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오후까지 있다가 셋이 함께 돌아오면 되잖아요?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파티가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마야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파티?”

       “네. 오늘은 엘라 양의 생일이잖아요. 몰랐나요? 제가 그저께도 말했는데요.”

         

       유라크네의 말에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까먹었어요.”

         

       엘라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머리 좋은 애가 그것만 까먹었다고?

       이건 도발이지!

         

       “너한테는 선물 기대하기 글렀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그녀의 빈정거림에 마야는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필요하면 말해.”

       “됐네요. 그게 엎드려 절 받기지.”

         

       원더스타인은 또 싸움이 커질까 둘 사이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강연을 끝내고 마야 양이 하는 실습을 보러 가지요. 자, 엘라 양, 어서 밥 먹으러 가죠. 오늘은 조례가 있다면서요?”

         

       그렇게 엘라는 원더스타인에게 붙들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야는 혼자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드디어 단장님 앞에 곡예사로 설 수 있었다.

       멋지게 실습을 해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단장님의 제자임을 인정받을 것이다.

         

       그럼 자신 안에 있는 마음의 도화지가 조금 더 넓어질까?

         

       그녀는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짐들을 염동력으로 가방에 쑤셔 넣으며 엘라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엘라의 생일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처음 들은 자리가 단장님이 그녀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던 때라 일부러 무시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17번째 생일이 오늘이라니.

       우연이겠지만 별일이었다.

         

       마야는 품에 든 메모리 디스크를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그녀의 엄마가 죽은 날이었다.

       즉, 17년 전, 히포드롬에서 테러가 발생한 날이었다.

         

         

       ***

         

         

       레카체프에는 원래 조례 같은 것이 없었다.

       다만, 오늘은 추모식을 위해 다들 아침 일찍 강당에 모였다.

       레카체프가 서커스 학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이날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모두가 조기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엘파라는 추모사를 읊으면서 교수 중 한 명을 바라봤다.

       길들이기 교수인 파이렌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거기서는 한 톨의 슬픈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나 스승님을 찾던 소녀는 더 이상 없었다.

       자신이 그의 집무실을 찾을 때면,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쏘아보던 소녀는 더 이상 없었다.

         

       17년 전, 테러 이후로 그녀의 어딘가가 망가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친절함 속에 번뜩이는 광기를 다른 교수들도 종종 느꼈다.

         

       스승의 죽음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이후로 다른 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엘파라는 친구의 수제자가 저렇게 되어버린 게 안타까웠다.

         

       추모식 덕분에 아침부터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엘파라는 조금 신나는 소식을 들려주기로 했다.

         

       바로 신입생 환영회에 대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언제 울적해 있었냐는 듯 금방 활기찬 목소리로 그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신입생 환영회는 레카체프의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첫 주 동안은 시간표와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다들 바빴기에, 행사는 보통 개강 두 번째 주 토요일에 치러졌다.

         

       이러한 날짜의 배치는 신입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바로 선배들이 환영회 전까지 그들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신입생 환영회는 어디까지나 신입생들만을 위한 행사였다.

       행사를 주관하는 몇몇 최고학년들 외의 상급생들은 참가할 수 없었다.

         

       그들이 환영회에 참가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바로 신입생에게 파트너로 초대받는 것이다.

         

       신입생은 각자 한 명씩의 손님을 초대할 수 있었다.

         

       이번 신입생 환영회는 청강생들 역시 신입생으로 취급되어 같은 혜택을 누렸다.

         

       “여러분 앞에 든 봉투에는 두 장의 카드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의 입장권이고, 다른 하나는 파트너 초대권입니다.”

         

       파트너 초대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청강생 세 무리의 맨 앞에 선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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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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