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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젊다 못해 어려 보이기까지 한 외모.

         

       아무리 잘 쳐주어야 20대 초반을 넘지 못했을 법한 젊은 남자와 여성이 사범의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남자는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남자의 몇 걸음 뒤에서 천천히 무녀복을 입은 채 뒤따라가고 있었다.

         

       “신사에서 오셨다고요?”

       “네. 의뢰하실 일이 있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거리가 있는지라 해가 채 뜨지도 않은 새벽녘에 발걸음을 옮기셨을 것 같은데….”

       “하하하. 신경 쓰지 마시지요. 다른 곳도 아니고 시현류에서 곤란하다고 하는데 모든 일을 제치고 와야지요.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신사에서 차기 신관이라는 과분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차기 신관이요? 아, 그렇다면 혹시 뒤에 계신 무녀분이?”

       “네. 제 내자(內子)가 될 사람입니다.”

       “사이고 신사에는 딸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네. 제가 데릴사위로 들어가 성을 잇게 되었습니다. 하니, 저를 부를 때에는 사이고라고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사범은 차기 신관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사실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귀하신 분들이 오셨군요.”

       “아닙니다. 어찌 신을 모시는 사람이 귀하다 불릴 수 있겠습니까?”

         

       사범은 겸손한 태도로 말하는 차기 신관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해해보이는 인상.

       단련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자기 관리는 잘 되어 있는 듯한 몸.

       듣기에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와 말 곳곳에 묻어나오는 교양과 겸손.

       그리고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묻어나오는 기품까지.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 * *

         

         

         

       좋은 첫인상이 길조(吉兆)였던 것일까?

         

       남자는 어려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꽤 솜씨가 좋았다.

         

       “흠. 앞서 방문한 전문가분들의 말에 따르면 이 거뭇한 것이 곰팡이라고 했던가요? 곰팡이의 얼굴로 그려진 지장보살의 얼굴이라. 일단 이 얼굴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얼굴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니?”

       “이 얼굴 자체가 어떤 힘을 품고 있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얼굴을 보거나 만지는 것만으로 저주에 걸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남자는 앞서 불렀던 사기꾼 같았던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풍부한 지식과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푸는 재주가 있었고, 그러한 남자의 말재간은 사범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아마 익숙하실 겁니다.”

       “이건…. 액막이 인형 아닙니까?”

       “네. 이게 저주였다면 이 액막이 인형에 반응이 나타났어야만 했지요. 그리고 설령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들 주술흔은 남아야 했는데 그런 게 없었습니다. 즉, 이 지장보살 얼굴은 그냥 섬뜩하기만 한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냥 흉가나 폐허에 짓궂은 아이들이 와서 페인트로 이상한 낙서를 한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주술과는 관련이 없는 겁니까?”

       “흠. 글쎄요. 실험해볼까요?”

         

       남자는 눈웃음을 치더니 사범과 무녀를 뒤로 물렸다.

         

       그리곤 양손을 합장이라도 하듯 슬며시 모으더니, 검지를 안으로 말아 넣고 첫 번째 마디에 엄지손가락을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은 가볍게 깍지를 낀 형태로 만들고, 합장 인사를 하듯 상체를 슬쩍 숙였다.

         

       “옴 쁘라 마니 다니 쓰와하(ॐ प्रमर्दने स्वाहा).”

         

       사범은 신사에서 왔다는 남자의 입에서 절에서나 들을법한 말이 튀어나오자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뒤에서 자신을 꿰뚫을 듯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한 채 다시 진언을 외웠다.

         

       “옴 쁘라 마니 다니 쓰와하(ॐ प्रमर्दने स्वाहा).”

         

       차기 신관은 혀를 잔뜩 굴린 듯한 진언을 총 세 번을 외우고 나서야 수인(手印)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지장보살의 얼굴이 찍힌 나무를 바라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관련이 없군요.”

       “지금 하신 건 대체…?”

       “방금 제가 한 것은 진언입니다.”

       “진언이요?”

       “네. 제가 방금 한 진언은 지장보살 멸정업진언(地藏菩薩滅定業眞言)이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과 관련된 주술과 연관이 있나 싶어 외워봤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군요. 다행히 아닌 듯합니다.”

         

       차기 신관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정말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사범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 잠깐. 차기 신관님? 그, 지장보살과 관련된 주술이었으면 무슨 큰일이 날 뻔했던 겁니까?”

       “네? 아, 그렇습니다.”

       “그, 그게 무슨? 설명을 좀 해줄 수 있습니까?”

       “음. 이거 어디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지…?”

         

       남자는 사범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지장보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지옥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아, 제대로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지장경, 그러니까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 그 모습이 나오지요. 죄를 지어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행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난 다음에서야 성불하겠다는 뜻을 가지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로 사범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크시티가르바(क्षितिगर्भ)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크시티는 땅을, 가르바는 모태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대지모신(大地母神) 숭배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농경시대에 숭배하던 우상들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또한 옛날부터 대지는 저승과 연관이 많이 되었습니다. 깜깜하고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대지의 아래, 즉 지하가 죽음 이후에 도달할 끔찍한 공간과 연관되기 쉬웠기 때문이입니다.”

       “저승….”

       “당장 지장보살께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곳 역시 지옥(地獄)이지요. 땅속에 있는 감옥이라…. 하하하.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차기 신관의 목소리에는 흥이 묻어 있었다.

       설명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서 참을 수가 없다는 것처럼.

         

       “게다가 말입니다. 이 지장보살이라는 분이 참 묘하거든요. 관음보살님이 보이는 세계와 현실을 담당한다면 이 지장보살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내세를 담당해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내세…. 즉, 영적 세계를 말하는 것이지요. 지장보살님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 대지와 모태를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차기 신관은 휘어지는 눈꼬리로 말했다.

         

       “이래서 주술이라는 것이 참 재미가 있어요. 신과 종교, 상징이 변질하였어도 그 흔적은 반드시 남게 되거든요. 시체가 치워진 뒤에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 감도는 시취(屍臭)처럼, 혹은 잘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처럼. 그렇게 반드시 어떠한 흔적이 남아서 역사를 생각하게 해주죠. 이래서 고고학과 민속학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의 말끝에는 산산이 흩어져버릴 듯한 옅은 광기가 묻어나왔다.

         

       “지장보살을 이용한 주술은 이러한 역사의 흔적 위에 존재합니다. 지장보살이 품고 있는, 혹은 품고 있었던 상징과 일화를 기반으로요.”

       “상징과 일화…?”

       “흠. 네.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지와 모태의 의미를 품고 있으니 풍년을 기원하거나, 액이 쌓인 땅을 정화하거나…. 그런 용도로 쓸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리고?”

         

       차기 신관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지옥과 관련된 주술을 쓸 수도 있죠.”

         

       지옥?

         

       사범은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

       “하하하. 네. 지장보살님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가 지옥과 관련된 것이니까요. 당연히 지장보살님으로 행할 수 있는 악독한 주술은 지옥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아니, 지옥이라면….”

       “네. 생각하시는 그게 맞습니다. 혀 자르고, 바람에 찢겨나가고, 서로 죽이고, 끓는 물에서 삶아지고…. 그 지옥이요.”

       “맙소사.”

         

       사범은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지옥과 관련된 주술이 발동될 뻔했다고…?”

       “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이게 지장보살과 관련된 주술의 전조였으면 그랬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다행히 이건 주술과는 관련이 없으니 그런 걱정은 덜어두셔도 좋습니다.”

         

       차기 신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범을 진정시켰다.

         

       “게다가 말이 지옥과 관련된 주술이지, 의식을 행하는 수준이 아니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도 없어요. 의식 없이 행한 주술이면. 흠. 좀 실력 있는 주술사가 사용해도 사람 하나 얼리거나 태우는 정도? 혹은 좀 무른 철의 모양을 가시처럼 바꿀 수도 있겠네요. 아, 대가로는 아마 고통과 상처를 좀 입지 않았을까 싶어요.”

       “의식이 행해졌으면?”

       “의식이 행해졌으면 조금 곤란해지기는 했겠지만…. 만약 의식이 진행되었으면 당연히 눈치를 채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니 문제가 일어날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요. 주술 의식이라는 게 얼마나 요란한데….”

         

       그는 방긋 웃었다.

         

       “그럼요. 주술 의식이라는 게 몰래 하기 참 힘든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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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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