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2

       

       

       

       

       

       

       “모르셨다고요?”

       

       실비아가 놀라서 물었다. 

       

       “네. 아니, 실비아 씨는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실비아는 메탈 스콜피온과의 전투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레키온이 실비아 씨한테 접근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데보라 님이 물어봤다고요…?”

       “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당연히 거절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막 당황하시던데요.”

       “…….”

       

       뭐지? 

       

       데보라가 레키온을 좋아했었다니.

       스토리에 그런 이야기는 안 나왔었는데?

       

       “저는 레온 씨가 전혀 모르고 계셨다는 게 더 신기한데요. 막 파이어 브레이슬릿이 잠들어 있는 유적지 위치나 마물들의 습성 같은 것도 다 꿰고 계셨던 분이….”

       “그건 그런데요….”

       

       듣고 보니 실비아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정말 금시초문인 걸 어떡하겠는가. 

       

       “그 원작 게임에서 미래에 대충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보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주인공 관련된 이야기니까 아예 안 나오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죠. 제가 했던 「레키온 사가」에서의 레키온의 미래도 알고는 있죠. 그래서 더 헷갈린다는 거예요.”

       “네…?”

       

       나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실비아를 보았다. 

       

       내가 분위기를 잡자 실비아가 침을 삼켰다.

       꿀꺽.

       아르도 손에 땀을 쥔 채 조마조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꼴깍.

       

       내가 곧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미래에서 레키온은 제국의 황녀와 결혼하게 되거든요.”

       “……!”

       “쀼우…!”

       

       나는 원작 스토리에 대해 실비아와 아르에게 설명해 주었다. 

       

       마왕 바할라크를 성공적으로 토벌한 후, 이드밀라를 포함한 드래곤들까지 전부 썰고 다녔다는 이야기에선 아르가 살짝 무서워했지만….

       

       우리가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선점해 이드밀라가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일을 막았으니, 정의감에 불타는 레키온이 드래곤에게 복수를 할 일은 없어졌고.

       

       여튼 모든 일이 끝나고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제국의 황제는 용사 레키온에게 어마어마한 상을 내리며 자신의 딸과 결혼하게 한다.

       

       “그렇게 뭐 용사는 마왕을 무찌르고 황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뻔한 엔딩이어서 저야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죠.”

       “구럼 데보라 온니는 어떠케 돼써?”

       

       아르는 두 손을 꼬옥 모은 채,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첫사랑 썰을 들려 달라고 조르는 학생처럼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그게….”

       

       나는 원작 스토리를 떠올리며,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키온이 황녀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행을 떠난다며 제국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어.”

       “헉.”

       “쀽…!”

       

       -레키온! 좋냐, 짜식아?

       -하하, 데비. 결혼식 때 안 보여서 걱정했었는데, 여기 있었구나. 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보여 다행이야.

       -당연하지, 인마. 뭐, 행복하게 잘 살고.

       -뭐야, 왜 어디 가는 것처럼 얘기해?

       -나, 여행 좀 가려고.

       -여행?

       -어. 이제 뭐 마왕도 봉인됐고, 세상 평화롭잖아? 나도 이제 좀 쉬면서 여기저기 다녀 봐야지.

       -나랑 마왕군 잡으러 다닐 땐 여기저기 쏘다니는 거 지겹다고 하지 않았어?

       -야, 그거랑 그거랑 같냐? 너랑 허구한 날 붙어 다니면서 검이나 휘두르고 다니니까 그게 지겹다는 거지. 이젠 맘 편하게 어디 구석진 데로 가서 편하게 살려고.

       -그래? 아쉽네…. 놀러 가서 시간 나면 소식이나 좀 전해 줘. 돌아올 때 귀여운 기념품도 사와 주면 고맙고.

       -뭐, 봐서. 그럼 난 간다. 

       

       그게 스토리에서 볼 수 있는 데보라의 마지막 대사였다. 

       

       딱히 더빙이 되어 있는 장면도 아니었고, 데보라가 원래 좀 털털한 말투라 말 그대로 진짜 휴양을 떠나는 줄 알았다. 

       

       스토리는 이미 엔딩이 났기 때문에 더 진행한다고 뭐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데보라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하나의 엔딩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였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엄청난 문제가 숨어 있었다니.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야 줄글로 몇 줄 나오는 스토리만 보니까 데보라 님이 그때 그런 말을 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까지는 전혀 생각을 못 했죠.”

       

       똑같은 대사였지만, 데보라가 레키온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보니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맙소사…. 정말 그때 데보라 님이 어떤 감정을 삼키면서 그런 말을 했을지 상상도 안 되네요.”

       “겨론식에 안 나온 것두 엄청 슬퍼서 구랬던 거 아냐? 아르 갑자기 슬퍼져써…. 힝.”

       

       데보라에게 감정이입을 한 듯, 초롱초롱한 아르의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실비아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을 들어 보니 데보라 님은 정말 끝까지 자신이 레키온 님을 좋아한다는 걸 숨겨 왔던 모양이네요.”

       “삐유우…. 그러케 조아하는데, 왜 조아한다구 말을 안 한 고야?”

       

       나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제 와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랑 이것저것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 아무래도 데보라 님은 성격이 좀 솔직하지 못한 편인 것 같아.”

       

       흔히 말하는 츤데레라고 하지.

       

       데보라는 아마 그쪽 과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초창기에 그런 게시글이 있기는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야 이거 데보라 완전 소꿉친구 속성 오지는데? 나중에 레키온이랑 이어짐?]

       ┗ㄴㄴ 나 메인스토리 다 밀었는데 걍 뻔한 황녀엔딩임.

       ┗아니 이 완벽한 소꿉친구 츤데레 캐릭터가 패배한다고? 똥망겜이잖아!!

       ┗어딜 봐서 츤데레야, 그냥 랄부친구 그 자체더구만.

       ┗ㄹㅇㅋㅋ ‘이 바보 레키온!’ 이런 대사 하나 없는데 뭔 츤데레 루트여.

       ┗애초에 데보라는 분량도 별로 없음. 걍 전투 보조 해주는 애지. 성능은 좋아서 잘 써먹긴 했다. 주인공 성장 속도 따라오는 쓸 만한 애가 얘밖에 없어.

       ┗하…. 얘네들이 뭘 모르네 진짜. 여튼 데보라랑 안 이어지는 스토리면 걍 겜 접음

       

       하지만 「레키온 사가」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인기가 사그라들고 커뮤니티 게시판도 금방 말라죽었기 때문에 데보라에 대한 떡밥은 가뭄에 콩 나듯 몇 개 나다가 시들어버렸었다. 

       

       “확실히 그렇긴 한 것 같아요. 처음에 저희가 방문했을 때도, 저를 굉장히 유심히 바라보시긴 했는데 막상 겉으로 티는 안 내려고 엄청 노력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데보라 온니가 실비아 온니 뚜러져라 보는 건 봤는데, 구냥 이뻐서 구런가 보다 해써….”

       “흐음. 지금 생각해 보면 데보라 님이 저희한테 자꾸 어려운 의뢰를 준 것도, 실비아 씨를 의식해서 그랬던 것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런 것 같아요.”

       

       이걸 어쩌지. 

       우린 좋다고 그 어려운 의뢰들을 팍팍 해 가지고 갔는데. 

       

       ‘사실 그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의뢰를 해 가긴 했겠지만.’

       

       일단 데보라의 견제가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간에, 우리의 목표인 ‘레키온과 합류해서 하무트교와 바할라크 군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방향성을 잡아 주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실비아 씨는 전혀 레키온과 잘되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으니 견제 자체도 헛방이기도 하고. 

       

       “어쩐지, 해 가면서도 좀 기준이 높은 의뢰를 준다 싶었죠.”

       “용사와 동행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뜻에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굉장한 걸 알아버렸다. 

       

       물론 우리가 이대로 레키온에 대한 데보라의 연심을 모른척한 채, 함께 스토리를 팍팍 치고 나가서 마왕을 잡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좀 찜찜하단 말이지.’

       

       후우.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진한 마나가 우러난 물이 증발하며 목욕탕을 뿌옇게 채운 기운이 몸에 기분 좋게 퍼져 나가며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밖에 나가서 생각해 볼까요?”

       

       ***

       

       대화를 나누느라 생각보다 목욕탕에 오래 있었더니 후끈한 기운에 머리가 살짝 띵했다. 

       

       “아르도 헤롱해….”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근 채 내 이야기에 잔뜩 몰입해서인지 아르도 걸음을 비틀거렸다. 

       

       중심을 잡기 위해 꼬리로 바닥을 꾹 누르는 모습이 귀여워 부축해 준 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드래곤도 오래 목욕하면 헤롱하긴 하구나.’

       

       하긴, 아직도 가끔 아이스크림 급하게 먹다가 골이 띵하다며 젤리로 관자놀이를 짚을 때가 있으니.

       

       우리는 몸을 말리고 편한 복장으로 거실에 앉아 음료를 한 잔씩 들이켰다. 

       

       나와 실비아는 시원한 얼음을 동동 띄운 옐로베리 주스를 들이켰고.

       

       아르는 꿀이 든 우유를 눈을 꼬옥 감은 채 쉬지도 않고 꼴깍꼴깍 들이켰다. 

       

       “캬아!”

       “끄하!”

       “삐유우!”

       

       달콤하고 시원한 액체가 쭉쭉 들어가자 생명수를 마신 것처럼 상쾌함이 온몸을 타고 퍼져 나갔다.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지 회의를 한번 해 볼까요?”

       “좋아요.”

       “쀼우! 가족 회의 한댜!”

       

       아르는 우유를 마시고 금세 회복되었는지 손을 번쩍 들며 발언권을 신청했다. 

       

       “아르는 데보라 온니 도와주고 시퍼! 사랑 이야기 두근두그내!”

       

       아르는 청춘 로맨스 소설에 빠진 아이처럼 볼을 붉히며 벌써부터 꼬리로 소파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면 좋긴 하지. 만약 우리가 도와줘서 둘이 잘 되면, 데보라 님은 일단 완전히 우리 편이 되는 거니까.”

       

       아무리 미래에 레키온이 황녀와 결혼한다곤 하지만, 지금 당장 제일 친한 사람은 데보라와 알렉스다. 

       

       데보라를 완전한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레키온과 우리의 관계도 돈독해지겠지. 

       

       ‘레키온이 지금 아르를 귀엽다며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드래곤인 걸 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성공만 하면 우리한텐 든든한 아군이자 보험이 하나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쀼우? 몬뎅?”

       

       나는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레키온의 마음이 어떤지부터 알아야겠지.”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