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2

       데카르트 저택에 있는 넓은 광장의 파티장.

         

       새하얀 수정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천장 아래, 나와 프란체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귀족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아직 정식적인 연회의 시작 전인지라 자연스레 사교계 현장이 만들어졌고, 그 중심은 황제인 라자 페델리안이 되었다.

         

       현재 그는 대외적으로 데카르트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황권도 올라간 거겠지.

         

       “…연회에 나오는 술이라 기대했는데.”

         

       술잔을 기울이던 케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에 안 드나?”

       “기대했던 것보단 별로군.”

         

       연회에 나온 술의 이름은 페델리안 사자의 눈물. 제조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들어 비싼 값을 가진 귀한 술이랬는데 취향이 아닌 듯하다.

         

       ‘…나도 먹어볼까?’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술잔을 기울였다. 꽃과 같은 향긋함이 머리 전체로 퍼지며 달콤씁쓸한 맛이 났다. 괜찮기만 하구만.

         

       “그런데 공작은 뭘 하고 있지?”

       “가문의 일로 바쁘셔.”

         

       프란체가 데카르트의 가주인지라, 현재 웨딩드레스에서 연회 옷으로 갈아입고 귀족들을 상대하고 있다.

         

       나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직접 상대하는 게 빠르다며 만류했다.

         

       “확실히. 저 귀족들 사이에 있는 걸 보니 바쁠 만도 하군.”

         

       케일이 고개를 까딱이며 방향을 가리켰다. 프란체는 귀족들에게 둘러 싸여서 미소짓고 있었다.

         

       호선을 그리고 있지만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눈살. 억지로 올린 듯한 입꼬리. 얼굴에 대놓고 귀찮다고 쓰여 있는 듯한 표정.

         

       ‘구하러 가야겠네.’

         

       제국과 가문에 관련된 일인 만큼 중요한 과정이지만, 결혼식의 주인공은 우리인데 저렇게 시간 낭비를 하게 할 순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려고?”

       “공작님 구출하러.”

       “나는 그럼 이만 돌아가지.”

       “마음대로 해.”

         

       프란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코앞까지 다가가자 내가 온 걸 확인한 프란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진!”

         

       나를 부르자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모였다.

         

       “데카르트 공작부군님을 뵙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작부군.”

         

       가장 먼저 허리 숙여 인사한 건 제국에서 영향력이 커 대귀족이라 부를 만한 자들이었다. 분명 이름이…….

         

       ‘자이츠 후작, 레클랜드 백작.’

         

       사업과 관련되어 둘 다 데카르트의 직속이라 해도 무방한 자들이다.

         

       “반갑습니다, 자이츠 후작. 레클랜드 백작.”

         

       환히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둘은 굽실거리며 손을 맞잡았다.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계셨나요?”

       “그리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공작님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나는 픽 웃으며 프란체의 어깨를 당겨 품에 안았다. 그녀는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보시다시피 오늘 연회의 주인공은 저희인지라. 머리 아픈 공적인 얘기는 나중으로 미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작과 백작은 눈썹을 들썩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만날 기회가 별로 없던지라…….”

       “허허, 축복의 시간에 괜한 얘기를 했군요. 송구합니다.”

         

       알아서 다행이다. 다행히 눈치는 있군.

         

       “그럼 이만.”

         

       나는 프란체와 손을 맞잡곤,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며 웃었다.

         

       “가죠?”

         

       프란체는 배시시 웃으며 사랑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

         

       “좀 멋있었어.”

       “그런가요?”

       “응. 내 남편이라는 게 실감 날 정도로.”

         

       뭐야, 그 감상은. 문득 그녀의 귀여움이 느껴져 미소가 지어졌다.

         

       “케일은 저기 있고, 라데아랑 카자르는?”

       “달리아랑 같이 있는 거 같아요.”

       “아, 달리아는 연회에 참가 못 했지.”

         

       달리아의 정체를 들키면 곤란해지기에 그녀는 현재 공작가의 지하실. 즉, 내가 생활하던 곳에 숨어있다.

         

       결혼식도 참여하지 못했고.

         

       “잠깐 만나러 갈까요?”

         

       그리 묻자 프란체는 고개를 내저었다.

         

       “연회가 끝나면. 이 자리에 우리가 없으면 안 되니까.”

         

       하긴, 가장 중요한 게 남았으니.

         

       “그럼 날도 저물었겠다, 슬슬 시작할까요?”

       “그러자.”

         

       우리는 파티장 2층으로 올라왔다. 모두의 정수리가 보이는 중앙에서 크게 외쳤다.

         

       “이번에 영광스럽게도 공작님과 혼인을 치른 바렌베르크 후작, 데카르트 공작부군입니다.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널리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샴페인 잔을 들고 대화를 나누던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지금부터 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시작을 알리자 고용된 악단이 예정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음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파티장에 울려 퍼졌다.

         

       “이제 춤추러 가죠.”

         

       연회가 시작했으니 주인공인 우리가 처음으로 춤을 출 시간.

         

       프란체는 춤을 배운 적이 없다. 급히 결혼식을 올린지라 준비할 시간마저 없어 다소 곤란했지만, 내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프란체와 손을 맞잡고 1층으로 내려오고. 파티장의 정중앙에 마주 보며 섰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 맞니?”

         

       프란체가 물었다.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

         

       “괜찮아요. 저만 믿으세요.”

         

       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번쩍 들곤, 한쪽 손을 맞잡았다. 이어서 내 발 위에 착지한 프란체. 한껏 밀착해 그녀의 숨결이 맞닿았다.

         

       “시작할게요.”

       “그, 그래…….”

         

       나는 프란체를 끌어안은 채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그녀는 한쪽 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 반대쪽 손은 나와 맞잡은 채 움직임에 집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발놀림.

         

       “…춤 잘 추네.”

       “배웠으니까요.”

       “…….”

         

       프란체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이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귀족이 되어서 기본 소양인 춤을 배우지 못한 게 부끄러운 건가.

         

       ‘어쩔 수 없었잖아.’

         

       그녀는 고위 귀족 영애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사생아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핍박받는 인생. 배우지 못한 교양이 산더미고 부족한 것도 많다.

         

       그러나, 지금의 프란체에겐 언제나 내가 있으니 괜찮다.

         

       “안 넘어지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절 똑바로 보세요. 지금은 저한테 집중하셔야죠?”

         

       프란체가 고개를 올리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일렁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웃는 내가 비쳐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비로소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 서로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만개했다.

         

       너무나도 행복한 이 순간이 마치 현실 같지가 않아서 음악도 들려오지 않았고, 주변인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음악에 몸을 맡겼다.

         

       연주에 맞춰 춤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파티장을 가득 메웠다. 나와 프란체는 정중히 인사한 뒤 자리를 비켰다.

         

       “이제 뭐가 남았지?”

       “귀족들 선물 받는 거랑 공연이 남았네요.”

         

       예정된 연주가 끝나면 축하와 함께 그들의 선물을 받고, 제국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연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거다.

         

       “…빨리 단둘이 있고 싶은데.”

         

       프란체가 입술을 삐죽였다.

         

       “조금만 참죠. 금방 끝날 거예요.”

         

       웃으면서 달래듯이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주억였다.

         

       이어서 악단의 연주는 계속되었고, 한 시간쯤 지나서야 마침내 축하와 선물의 시간이 되었다.

         

       “데카르트 부부를 생각하여 짐이 직접 준비한 선물이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처음 주자는 라자였다. 그가 우리에게 건넨 건 두 개의 보석이 박힌 귀걸이. 각각 붉은색, 검은색이다.

         

       “궁정 마법사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세공한 물건이라네.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마법이 새겨져 있지.”

         

       한 마디로 위치 추적기. 성능도 좋고 고마운 선물인 건 맞지만 우리에겐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이다.

         

       ‘어차피 내 존재가 프란체한테 귀속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좋은 선물을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프란체가 싱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공작 부부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하지. 청첩장을 보내줘서 고마웠네.”

         

       그렇게 라자의 차례가 끝나고, 귀족들의 선물 공세가 이어졌다.

         

       결혼에 관하여 종교적 의미를 지닌 물건, 사랑을 상징하는 장식품, 예술품 등. 여러 선물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길었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페라 가수가 등장했다.

         

       “유명한 사람입니까?”

       “황실에도 초대받았던 가수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 무대가 시작됐다.

         

       묵직한 첼로가 음악의 시작을 알렸고, 이어서 바이올린이 선율을 울렸다.

         

       그리고 귓가로 들려오는 맑고 청량한 음색. 성량은 어찌나 큰지 파티장 전체에 퍼지는 듯했다.

         

       화려한 녹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나와 프란체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노래를 불렀다.

         

       “좋네요.”

       “그렇지?”

         

       아름다운 노래에 정신을 빼앗긴 채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주억였다. 프란체는 내 뺨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어디에 시선이 팔린 거야? 날 봐야지?”

       “아.”

         

       나도 모르게 무대에 집중했다. 아니, 원래 이게 맞지만…….

         

       “당장 키스해.”

       “…여기서요?”

       “다들 무대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볼을 부풀린 채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프란체. 무엇이 그녀를 화나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빨리.”

       “…짧게만 할 거예요.”

         

       고개를 내밀어 그녀와 입술을 마주쳤다. 혹여나 누군가 볼까 걱정되어 빠르게 끝내려 했지만, 프란체는 내 목덜미에 팔을 휘감았다.

         

       “웁…?!”

         

       이어서 입술이 벌려지더니 촉촉한 혀가 속으로 침투해 내 혀를 범했다.

         

       “츄웁…….”

         

       끈적하면서도 달콤한 키스. 매일 끊이지 않고 하루에 열 번씩은 해서 그런지 실력이 나날이 늘어간다. 그녀가 주는 황홀함에 눈이 풀렸다.

         

       시간이 흘러 오페라 가수의 무대가 막을 내리자, 그제야 프란체의 키스도 끝이 났다.

         

       입술을 살짝 떼니 서로의 침이 섞여 길게 늘어진 상태로 이어져 있었다.

         

       “후으, 좋아…….”

         

       프란체의 눈이 여름에 닿은 서리처럼 녹아내려 풀어졌다.

         

       “…만족하셨나요?”

       “응.”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맞잡는 프란체. 왜 분위기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만, 행복해 보이니 됐다.

         

       [데카르트 공작님의 결혼식과 같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모여 제 노래를 들어주신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대가 끝난 오페라 가수가 방향을 바꿔가며 허리를 숙였다. 다들 만족스러운 무대였는지 단체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마주쳤다.

         

       “끝났구나.”

       “그렇네요.”

         

       이것으로 일정은 끝. 연회를 즐기고 싶은 자는 남으면 되고, 돌아가고 싶은 자는 떠나도 된다.

         

       “이제 남은 건 부부로서의 첫날밤이네…?”

       “어…….”

         

       아까까지만 해도 꿀이 떨어지듯 사랑이 가득했던 시선이 단번에 독사처럼 매서워졌다. 프란체의 눈빛이 너무나도 살벌하여 일순간 오한이 들었다.

         

       “그, 그렇네요.”

       “뭐야, 그 반응은?”

       “아니요. 가슴이 두근거려서요.”

         

       서둘러 어깨를 으쓱이곤 방긋 웃었다.

         

       “흐응…….”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프란체는 눈을 얕게 뜨고 의심의 눈초리를 건네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남은 건 침실에 가서 확인할 거야.”

         

       비릿하게 미소 짓는 프란체. 음흉한 분위기를 보니 그때보다 더 많이 할 생각인 거 같은데…….

         

       ‘…괜찮을 거야.’

         

       근 일주일간은 결혼식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불안정했던 내 몸 상태를 고려해 관계하지 않았다.

         

       덕분에 정기를 충분히 회복한 지금의 나는 만반의 상태. 결심의 증거로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정말 다를 거예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저 야스 쓰고 싶어오.

    외전은 매일 8시에 올라갑니당!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