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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나는 귀엽게 구는 시청자들과 도돌순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보마.”

       

        약 하루의 시간을 되돌려서…….

       

       

        *            *            *

       

       

        “큰일입니다!”

       

        야영을 준비 중이던 우리 앞으로, 루이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탁!

       

        “뭔데?”

       

        부들부들…….

       

        아나티샤가 맨손으로 잡아 온 새의 목을 식칼로 단숨에 자르는 모습에, 루이라는 인간이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사실 길을 나섰던 첫날에는 이러지 않았다.

        아나티샤에게 한 방 먹었던 일을 꿈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뭔가 속임수가 섞였다고 생각했는지.

        루이는 아나티샤에게 구애의 행동을 보였다.

       

        “황녀님! 부디 저의 마음을…….”

       

        “꺼지라고!”

       

        투콰아앙!!

       

        “쿠억?!”

       

        그리고 그 행동은 아나티샤의 주먹질에 힘입어, 약 3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3일 동안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3일째에 정식으로 아나티샤에게 대련을 요청하고,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 맞고서야 구애 행동을 멈추었을 정도니까.

       

        ‘마음만은 진심이었던 모양이군.’

       

        멍청해서 그렇지, 저런 수컷이 자기 짝에게는 지고지순한 법이다.

        물론 아나티샤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보통 짝짓기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암컷에게 주도권이 있는 법이니…….

       

        어쨌든 그 이후로 아나티샤의 곁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그랬던 그가 우리를 직접 찾아왔다.

        즉, 그만큼 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뭐 해? 말해.”

       

        “네, 네?”

       

        “말.”

       

        쿠구구구구구구-!!

       

        근육 압축을 해제한 거대화 아나티샤가 기세를 내뿜으며 루이를 내려다본다.

        그녀의 손에 들린 목이 사라진 새에게서 피가 흘러나오고, 반대쪽 손에는 피가 묻은 식칼이 들려 있다.

        그 광경에 다른 인간들이 창백한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이 광경이 무섭나?’

       

        역시 인간들의 시선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멍한 얼굴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한숨과 함께 다시 근육을 압축한 아나티샤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뭔데요?”

       

        “……후우! 지금으로부터 하루거리에, 적들의 군대가 나타났습니다.”

       

        “……네?”

       

        “???”

       

        나와 아나티샤는 나란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그리고 이전의 상황이 된 것이란다. 이제 이해가 되느냐?”

       

        – 아뇨.

        – 중간 어디 갔어요?

        – ㅋㅋㅋㅋㅋ

        – 아직 설명이 안됨.

       

        = “그래서 왜 아나티샤가 혼자 싸우기 시작했냐고요!”

       

        시청자들의 불만에,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청자들에게 실망한 것이 아닌, 나의 말재주에 실망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재주가 없었던가?’

       

        최대한 이야기를 잘라 내고, 핵심만 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냥 내가 말을 못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해야겠구나.’

       

        그래.

        드래곤이었던 내가 무슨 재주로 이야기를 편집하겠는가?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 “라나님 탓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설명이 아직 부족해요.”

       

        “그래.”

       

        아나티샤가 왜 갑자기 혼자 싸우기 시작했냐고 했던가?

       

        “그런데 아나티샤 혼자서 싸우기 시작했다고는 안 했는데?”

       

        – ?

        – ??

        – ?

        – 읭?

        – 네?

       

        = “……네?”

       

        나는 ‘아나티샤가 300여 명의 군대를 혼자서 전멸시켰다’라고 했지, ‘아나티샤 혼자서 싸우기 시작했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 “아니…… 라고요? 그럼 왜 아나티샤 혼자서…….”

       

        “아나티샤도 다른 기사들과 함께 싸우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다른 기사들이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아나티샤 혼자서 끝낸 거지.”

       

        – 와.

        – 엌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ㅋ

        – 진짜 인간 병기였넼ㅋㅋㅋㅋㅋ

        – 패왕이냐곸ㅋㅋㅋㅋㅋ

        – 넌 이미 죽어 있닼ㅋㅋㅋㅋ

       

        = “헐…….”

       

        ‘ㅋㅋㅋ’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채팅창.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한 도돌순이의 목소리.

       

        = “아니, 그럼 왜 이야기 안 해주셨어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너희들이 막 소리쳤지 않으냐?”

       

        먼저 내 이야기를 끊은 놈들이, 왜 나한테 화를 내느냐?

        나는 볼을 부풀렸다.

        인간들은 ‘삐졌다’라는 표현으로 이런 행동을 하던데…… 이게 맞겠지?

       

        – ㄱㅇㅇ

        – ㄱㅇㅇ

        – 개 귀엽네.

        – 삐진 라나님도 귀여움.

        – ㅋㅋㅋㅋㅋ

        – 미아내. 우리가 잘모태써여.

       

        = “큼큼! 죄송함다 라나님!”

       

        “…….”

       

        사과하는 시청자들과 도돌순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적당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계속 이야기해 보마.”

       

        – 와아아아!!

        – 라나님! 라나님!

        – 싸랑해용!

        – 감사.. 압도적 감사!

        – 조아용ㅎㅎㅎ

        – 하투하투!

       

        = “감사함다!”

       

       

        *            *            *

       

       

        우리를 가로막았던 군대는 아나티샤 혼자의 힘으로 궤멸되었다.

        어딘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아나티샤를 바라보았던 병사와 기사들의 시선엔, 어느새 경외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저것이…… 우리의 황녀님?”

       

        “쩐다…….”

       

        “내 레이디가…….”

       

        “하지만 멋져…… 동경하게 되어 버려…….”

       

        일반적으로 ‘암컷’은 새끼를 낳는 역할을 가진다.

        그렇기에 암수를 구분하는 동물들은 ‘수컷’이 위협을 감당하고, ‘암컷’은 보호를 받게 된다.

        그것이 종의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성체’까지 적용될 경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암수의 구분에 따른 ‘차별’이 생긴다는 것.

       

        수컷은 목숨을 걸고 가족과 무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만한 책임을 지는 만큼, 그만큼의 권리와 대가를 가져간다.

       

        지성이 부족한 일반 짐승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본능과 관성에 따르는 것일 뿐이니까.

        하지만 지성이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는, 이런 당연한 일에도 ‘불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확신하냐고?

        내가 지금껏 관찰한 지성체들의 대부분이 그러했으니까.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 전생에서도 남녀 갈등 문제는 항상 있어왔지.’

       

        하지만 지금, 아나티샤는 자신이 수컷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전사’임을 이곳에서 증명했다.

        목숨을 걸고 적들의 한가운데로 들어갔고, 무리의 적을 무찔렀다.

        이전까지는 ‘지켜야 하는 존재’였던 아나티샤가, 사실은 ‘같이 싸우는 동료’임을 수컷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순식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 황녀 전하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아아아!!

       

        “???”

       

        갑자기 아군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근육을 다시 압축한 아나티샤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인들은 당황해하는 아나티샤의 주위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고는 일제히 무릎을 굽혔다.

       

        “황녀 전하께 제 검을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강한 우두머리에게 고개를 숙이는 무리의 전투원들.

        강대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를 따르는 전사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두가 아나티샤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에? 에에에?!”

       

        아나티샤는 당황스러운 소리를 낼 뿐이었다.

       

       

        *            *            *

       

       

        아나티샤가 해치운 이들은 황제파에 속한 근처 영주들의 연합군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루이 볼레스토 공작은 버럭 화를 내면서(하지만 보이는 감정은 ‘기쁨’, ‘환호’였다)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근처 영지들에 파발을 보내곤, 뭔가 협상을 맺어왔다.

       

        “이것으로 저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만만해하는 루이 볼레스토 공작.

        그리고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나티샤.

       

        “뭐, 실력은 확실하겠죠.”

       

        “그, 그렇습니다.”

       

        루이 볼레스토 공작이 아나티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완벽하게 서열이 정리된 모습이었다.

       

        “…….”

       

        그보다 나는 이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누구, 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드래곤에게 설명이라도 해주지 않으련?

       

        “그럼, 계속 제 영지로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루이 볼레스토 공작이 멀어진다.

        그리고 내가 타고 있던 마차로 돌아온 아나티샤는, 마차 문이 닫히자마자 내 품에 안겨 왔다.

       

        “엄마~!”

       

        “그래그래.”

       

        내 품에 안긴 채(몸집 차이 때문에 내가 아나티샤에게 안겨 있는 모양새에 더 가까웠지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하는 아나티샤.

        그녀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 배에 얼굴을 가져다 댄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루이, 그 XX끼가 또 나한테 말 걸었어! 기분 나빠! 때리고 싶어!”

       

        “…….”

       

        “그래도 다른 사람들 환호는 좋았을지도…….”

       

        “…….”

       

        “엄마 냄새 좋아…….”

       

        “…….”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나티샤가 이렇게 나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아나티샤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그동안 ‘가족의 정’이라는 것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를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인 아나티샤는, 나와 단둘이 된 이후부터 이렇게 어린아이가 된 듯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다.

       

        부비부비……!

       

        “엄마 볼 말랑말랑…….”

       

        “…….”

       

        내 볼에 자기 볼을 마구 비비기 시작하는 아나티샤.

        그런 아나티샤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나는 이유 모를 오싹함에 몸을 떨었다.

       

        ‘왜지?’

       

        왜 이런 오싹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그냥 기분 탓일까?

        아니면 초월자가 된 이후로 가지게 된 육감 같은 것일까?

       

        “엄마. 헤헤.”

       

        “…….”

       

        나는 나에게 안겨 있는 아나티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별거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            *            *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느낌을 외면해서는 안 되었는데 말이다.”

       

        – 헉!

        – 허크!

        – ㅎㄷㄷ

        – 이것은…… 역키잡의 맛?!

        – ㅎㄷㄷ

        – 무셔!

       

        = “헐. 설마…… 아니죠?”

       

        나는 시청자들과 도돌순이의 시선에서 눈을 돌리듯,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 주마.”

       

        – 아 왜요!

        – 저희는 그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 백합각 떴냐?!

        – 헥헥헥헥헥!

       

        = “아오……!”

       

        “자자! 그보다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지 않느냐?”

       

        나는 헛기침과 함께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 때는 초월자로서의 자각이 조금 부족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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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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