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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짙은 화염은 냉기를 만나 사방에 증기를 흩뿌렸다. 그 화염의 중심에 아리아가 서 있었다.

         

       화염 마법은 익숙했다. 황제가 된 이후, 가장 먼저 입문한 마법이 화계 마법이었으니까.

         

       뜨겁기는 커녕, 따뜻하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아리아 주변에 흩뿌려진 화염은, 그 주인에게는 그저 마력 덩어리에 불과했으니까.

         

       ‘……너도 나와 같겠지.’

         

       올리비아의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세찬 냉기 또한 그녀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아리아는 내심 이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수없이 만났음에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그 때문이리라. 물론 자신에게 직전 회차의 기억이 없는 덕도 없잖아 있었으리라.

         

       고오오……!

         

       지금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가까스로 잠재워둔 ‘황녀’는 더욱 불안정해졌고, 더욱 난폭해졌다.

         

       억지로 눌러놓은 노골적인 증오가 느껴진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억눌러두고 있었지만,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드는 증오에 자신조차 휩쓸려버릴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싶구나.’

         

       츠츠츠츠츳……!

         

       아리아는 천천히 올리비아를 향해 다가갔다. 둘이 가까워질수록 피어오르는 증기의 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불과 얼음.

         

       서로 완벽히 상극의 마법을 익힌 탓인지, 이제 증기는 단순한 증기의 수준을 넘어서 안개 수준으로 불어났다. 안개는 순식간에 대평원을 하얗게 물들이고, 수만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두 마법사만큼은 서로에게서 눈을 뗴지 않았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뒤로 화염이 이글거린다. 표정은 읽을 수 없다. 하지만 분위기까지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올리비아는 천천히 마력을 가라앉혔다.

         

       “아리아 락테아.”

       “……그래. 그것이 내 이름이지.”

       

       수백, 수천 번을 회귀하여, 끝끝내 ‘올리비아’의 시간을 따라잡은 대마법사.

         

       화염과, 시공간의 진리를 깨달은 초월자.

         

       눈 앞에 있는 여인은 그런 존재였다.

         

       올리비아가 물었다.

         

       “언제부터였지?”

       “내가 이 육체의 원 주인을 집어삼킨 시점 말이더냐?”

       “그래.”

         

       아리아가 웃었다.

         

       “며칠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집어삼켰다’는 표현에도 어폐가 있구나. 단지 억누르고 있을 뿐이지.”

       “……억누르다니?”

       “후후. 아직 그것까지 말해줄 수는 없겠구나.”

       

        아리아가 씁쓸한 미소를 피어올렸다.

         

       고작해야 시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길 뿐인, 시간.

         

       하지만 그 오만했던 생각이 꺾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망각……범인(凡人)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내는 그 간단한 일을, 아리아는 해낼 수 없었다.

         

       잊고자 해도 잊히지 않는다.

         

       수백 회차 전에 있었던 일이 방금 전에 겪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재생된다. 본래는 망각해야 마땅할 기억들이었지만, 초월적인 기억력은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올리비아의 마지막 불살(不殺). 그때 아리아는 직감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매 회차마다 아득히 쌓이는 정보량을, 더는 머리가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시간 마법의 진리를 깨달은 탓에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에 불과했다.

         

       [……젠장할. 너는 황제 짓 하는거 질리지도 않냐?]

         

       그러던 중에 만나버렸다.

         

       사실 대마녀와 만난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회귀는 아니었지만, ‘계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과거를 기억하는 그녀와는, 어떠한 방식으로라든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피폐해지고, 이제는 삶의 의욕까지 잃어버린 마녀.

         

       [후후. 그러는 너도 아직도 창관에 다니지 않던가?]

       [……그냥 가기만 하는거야.]

       [짐도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이다.]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지언정, 그 과정까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모든 생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현실이 그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는 그 사실이 아리아를 안도시켰다.

         

       ……하지만, 분명 지쳐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들이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그보다 더 힘든 길을 걸어온 친우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티를 내서야, 도움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올리비아를 만날 때면 표정을 관리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했다. 아리아는 의연하고 여유로운 황제를, 아우렐리아는 장난기 많고 퇴폐적인 마녀의 모습을 연기했다.

         

       괜찮다. 힘든 것은 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지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리아는 두려워졌다. 멜리나가 말했던 ‘황녀’가 정신이 망가져버린 자신의 미래일까봐.

         

       올리비아를 돕지는 못할 지언정, 그녀를 죽이기 위해 득달같이 덤벼들까봐…….

         

       두렵다.

         

       망가져가는 정신보다도, 처참할지도 모를 미래가 더 두려웠다.

         

       차라리 기억력이 이렇게 좋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오성(悟性)이 평범했더라면.

         

       올리비아의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었을텐데.

         

       몇 년이 흘렀다.

         

       또, 마신을 죽였다. 언제나 그랬듯 대륙은 평화로워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한 명도 없었으며, 대도시들은 융성한 문명을 이루었다.

         

       그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보다 더 완벽한 결말은 없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 누구도 상처입지 않았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말이었다.

         

       단 한 명만 빼고.

         

       [……올리비아 이 망할 년이. 또 혼자 사라졌어.]

         

       아우렐리아는 벽면을 쳤다. 그녀의 주변은 온통 술병으로 가득했다. 감히 황제의 어전에서 술을 들이키냐던 신하들은 반쯤 피떡이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리아는,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개자식.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개 호로 잡년. 또 조용한 곳에서 망할 싸이코 꼬맹이한테 목을 대줄 생각이겠지. 그 개고생을 해놓고, 즐길 줄도 모르는 등신.]

       […….]

         

       아리아는 언제나처럼 미소짓지 못했다. 아우렐리아가 황궁에 찾아와 주정부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짐은 여기까지다.]

       [……뭐?]

       [후후. 짐이 너보다 먼저 포기를 선언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아리아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더 따라가고 싶어도 따라가지 못하느니라.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라도 회귀하고 싶지만, 그리한다면 정신이 망가진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리아는 들고 있던 술잔을 비웠다. 그 잠깐 사이에, 겹쳐 보이는 수천 개의 잔상들. 아리아는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한계다.

         

       수천 개의 기억들이 겹치며, 그녀가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하지만, 아예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마신. 그 빌어먹을 존재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러니, 짐 대신 올리비아에게 이것을 전해다오.]

         

       아리아는 싱긋 웃으면서 기록물을 건넸다. 아우렐리아는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짐, 아니.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그럴 필요 없어.]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 아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올리비아였다.

         

       그녀는 원래 마신을 잡은 이후에는 잘 웃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나도……알아냈으니까. 마신을 소멸시킬 방법을.]

         

       파지지직!

         

       그 순간. 풍경이 깨져나가는 듯한 환상과 함께, 아리아가 감았던 눈을 뜬다.

         

       “……!!”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린 아리아가 자조하듯 웃는다.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폭발음은, 지금 그녀가 어느 세계선에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자각시켰다.

         

       아리아는 쓰게 웃으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후우…….”

         

       이제는 의식조차 제 마음대로 붙잡아 둘 수 없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거늘.’

         

       하늘은 아무래도 그 조금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몇 분 정도 남았지?”

         

       올리비아가 아리아를 응시하며 말했다.

         

       “황녀의 의식을 억눌러둘 수 있는 시간 말이야.”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

       “……그래?”

         

       올리비아는 웃으며 내뱉었다.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잖아?”

       “……틀린 말은 아니느니라.”

       

       잠시 잠에 드는 것 뿐이다. ‘황녀’의 의식이 다시 주도권을 양보할 때까지. 물론 그 날이 영영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아리아는 올리비아가 이 다음 무슨 말을 꺼낼지 알 것만 같았다.

         

       자다 있으면 다 끝나 있을거라고 말하겠지. 어쩌면 빨리 꺼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무리하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

         

       올리비아가 말했다. 빨리 가라는 듯한 손짓은 덤이었다.

         

       아리아는 힘없이 웃으며 올리비아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이길거라고 생각하는구나.”

        “고작해야 100년도 못 살아본 꼬맹이한테 지겠어?”

        “후후. 어리다고 너무 방심하지는 말거라. 그래도 ‘나’이니.”

       “퍽이나.”

         

       그 대답에 아리아는 웃었다.

         

       “믿겠다.”

         

       아리아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올리비아를 응시하다가, 눈을 감았다.

         

       다음 순간.

         

       ‘아리아’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

         

       화염이 쏘아졌다. 그건 올리비아가 경험했던 그 어떤 마법보다 빨랐다.

         

       꽈아아앙!

         

       올리비아가 만들어낸 얼음 방벽과 화염이 충돌하며 폭발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무해한 다람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7

    감사합니다!!!

    -마일드바나나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7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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