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82

       못났다.

        

       진짜 못났다.

        

       양혜인은 쓰레기를 들고 나가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애당초 이런 식으로 성질을 낼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냥 얌전히 사라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거고,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을 테니까.

        

       지금 이 상황은 전부 끝까지 고집을 부린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래, 알고 있다.

        

       양혜인은 사라에게 있어서 굳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 친구들처럼 사라의 삶을 구원해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대단히 유용한 메이드가 되지도 못했으니까.

        

       이전에는 사라의 삶을 좀먹는 기생충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돕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지금 당장 양혜인이 그만둔다고 해도, 사라는 굳이 굶을 필요도 없고,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곤경에 처할 일도 없다.

        

       그래,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건 양혜인이 가진 이기심 때문이다.

        

       어떻게든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싶은 그 이기심.

        

       그렇기에 상대가 자신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추하게 매달리고 있다.

        

       “…….”

        

       추하다.

        

       이런 자신이 추하고 역겹게 느껴졌다.

        

       사라는 다 가졌으니까, 어린 시절을 조금 힘겹게 보내도 괜찮을 거라면서 자신을 안도시키다가,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자신이, 그런데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아직도 멀쩡하게 지내고 있는 자신이 너무 추악하게 느껴졌다.

        

       ……쓰레기는 있어야 할 곳에 놓았지만, 정작 자신은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자신도 저기 있는 것과 아무 차이도 없는, 필요 없는 사람일 뿐인데.

        

       좋은 대학교를 나오고, 좋은 곳에 취직해놓고도, 정작 고른 곳은 자기 능력을 쓸 필요도 없는 직장이었다. 그저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골랐다.

        

       그 직장에서, 다른 직장 동료들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를 고용한 존재가 소름 끼치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하는 일에 동참했다.

        

       그동안에 한 번도 외부에 그 사실을 알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편하고 돈 많이 받는 직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그저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

        

       양혜인은 허리를 숙였다.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로, 한동안 숨을 고른다.

        

       가슴이 답답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것을 가진 존재에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갚아야 하는 걸까? 자신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존재에게, 어떻게 해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결국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양혜인 개인의 이기심일 뿐이었다.

        

       그래, 애초에 ‘사라’는 양혜인이 사과하건 말건 상관하지도 않았으니까.

        

       이미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떻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걸 양혜인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녀가 막 쓸 수 있는 도구가 되어보려고 해도, 그런 도구조차도 필요 없는 ‘사라’였으니까.

        

       “…….”

        

       집 밖으로 나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제 고작 15분 지났다.

        

       …….

        

       들어가기 싫다.

        

       하지만, 말도 없이 사라지면 사라가 걱정하겠지. 그만큼 착하고 좋은 아이니까.

        

       사라가 어젯밤에 양혜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보인 반응이 가슴에 걸렸다.

        

       사라가 보인 감정은, 연민이었다.

        

       양혜인의 과거를 듣고, 양혜인이 여기 오기 싫어했던 이유를 듣고, 사라는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애처롭게 여겨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을 잇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 안 되는데.

        

       사실 그런 말을 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라가 양혜인을 동정하게 되면……

        

       그러면, 누가 그녀를 심판해준단 말인가?

        

       *

        

       마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겉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확실하게 변한 부분이 있었다.

        

       아무래도 강원도 산골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가끔 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민박집이 몇 개 생겼고, 그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아마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지어진 듯한 작은 공원이 하나 있어서, 양혜인은 그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래도 15분보다는 훨씬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시계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뒤로 겨우 5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너무 막막했으니까.

        

       이제는 정말로 가야 한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다.

        

       양혜인의 속에서, 그 두 마음이 마구 충돌하고 있었다.

        

       표정을 없애는 것은 쉬웠다. 늘 하던 일이니까. 하지만 그 마음을 잔잔하게 바꾸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다시 얼마간 고민하고 있는데,

        

       “혜인 언니.”

        

       저 멀리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고, 양혜인은 몸을 일으켰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가씨.”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었는데요.”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양혜인을, 사라는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집 밖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동네잖아요? 동네 어르신들한테 들키면 할머니 귀에도 들어갈 테니까.”

        

       “……죄송합니다.”

        

       “하아.”

        

       양혜인 사과하는 것을 듣고, 사라는 한숨을 푹 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어, 양혜인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일단…… 뭐, 좋아요.”

        

       한참 말이 없던 사라는 그렇게 말한 뒤, 손으로 바로 조금 전까지 양혜인이 앉아있던 벤치를 가리켰다.

        

       “다시 앉아주세요. 할 말도 있고.”

        

       “……네.”

        

       “아니, 존댓말은…… 아, 됐으니까, 일단은 앉아요.”

        

       양혜인은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녀가 다시 벤치에 앉자, 사라도 따라서 옆에 앉았다. 다만 평소 자기 친구들과 앉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 거리를 두고서. 당연한 일이긴 했다.

        

       “방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혼자 들어온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어쩌면 그때 그 15억 가까운 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께 지원해드렸다가, 사라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받아 갔던 그 돈.

        

       “할머니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사라의 질문에, 양혜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이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양혜인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할머니는 그렇게 입이 무거운 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라에게서 들려온 말은 달랐다.

        

       “우리 손녀는 참 좋은 애고, 언제나 착하고 성실하고, 자기한테도 엄청나게 잘해준다고.”

        

       “…….”

        

       “그런 효녀가 또 없을 거라고.”

        

       “…….”

        

       양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가 그 말 듣고 뭐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요?”

        

       “…….”

        

       양혜인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아, 나한테 저런 할머니가 있었으면, 나는 굳이 서울로 갈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

        

       양혜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너무 답답해서 제가 직접 물어보러 온 거에요. 솔직히 말해봐요. 여기 안 내려온 지 얼마나 됐어요?”

        

       “……고등학생 때 한 번 내려오고,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거 봐.”

        

       사라는 다시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받은 월급은, 평소에 어떻게 했어요? 전부 혼자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대부분은, 할머니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 때문에 그 돈을 다시 돌려받았고?”

        

       “……그렇습니다.”

        

       “…….”

        

       사라는 다시 한번, 검지와 엄지로 콧잔등을 꾹 눌렀다.

        

       “그렇게 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자기 생활이나 가족까지 등한시하면서?”

        

       “…….”

        

       “아니, 나 때문에 그랬다니까 또 뭐라고 하지를 못하겠네. 참. 기가 막혀서.”

        

       양혜인은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었다.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사라는 그런 양혜인에게 말했다.

        

       “할머니께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알겠습니다.”

        

       끝났다.

        

       이걸로 끝인 것 같다.

        

       사라는 결국, 양혜인 자신과의 관계를…… 아마도 끝맺으려는 것 같았다.

        

       역시, 휴가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얌전히 따랐어야 했는데.

        

        “……그리고.”

        

       하지만, 사라는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막상 입을 열어두고서, 사라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지난번에 구해준 건, 고마웠어요.”

        

       그렇게 말을 꺼냈다.

        

       “……예?”

        

       “도움이 되었다고요. 그리고, 지금도 도움 되고 있고.”

        

       “…….”

        

       양혜인은, 드물게도 입을 멍하니 벌리고 사라를 바라보았다.

        

       “이거, ‘내’가 하는 말이니까 확실하게 들어요.”

        

       사라는 ‘내’라는 말에 강세를 두었다.

        

       “그러니까, ‘나’ 말이에요. 조금 전까지 양혜인 씨와 말하던 ‘그 사람’ 말고. 당신이 괴롭혔던 나.”

        

       “…….”

        

       “왜요, 이렇게 쉽게 자리를 바꿔서 신기해요? 아, 그건 귀찮으니까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사라는,

        

       “정 나를 돕고 싶으면, 도와요. 죄책감 다 덜어낼 때까지 기회 줄 테니까. 내가 그걸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몸이 부서져라 도와봐요. 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은 돌볼 것. 무슨 죄책감이라도 뒤집어씌우려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돕고 싶으면, 그 도움 받는 사람이 죄책감 받지 않도록 제대로 해요. 가족도 좀 챙기고.”

        

       그렇게 말했다.

        

       “…….”

        

       그리고, 그 말이 너무나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양혜인은, 그저 사라를 향해 몸을 튼 채 깊게 깊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자신의 눈을 사라가 보지 못하도록.

        

       ……더 이상의 죄책감을 가질 일이 없도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산금 이벤트 때문에 연참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해버렸습니다…ㅠㅠ

    주말에 한번 다시 도전해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