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2

        

         네오 헤이븐의 마이홈 기능은 간단하면서도 가볍지만, 또 한편으로는 복잡하고 속이 깊은… 플레이어가 집 꾸미기나 아지트 만들기에 얼마나 진심이냐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는 콘텐츠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외형에 무관심한 성능충 게이머도 캐릭터가 챙길 수 있는 휴식 보너스 개념을 깨우치거나 마이홈 내부에 드론 오퍼레이팅 시스템 같은 걸 설치하고 나서 얻게 되는 실시간 지원 어드밴티지 등을 알게 되면 각종 설비들을 우겨 넣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확고한 컨셉 플레이어나 이런 자유도를 원래부터 좋아했던 이들은 예사롭지 않은 장식품 가짓수와 배치 자유도를 보고는 알아서 머리를 박고 몰입했으니.

         

         어느 쪽이나 결국엔 한 번쯤 뒤적거리게 되는, 필연적으로 거쳐가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애당초 캐릭터와 마이홈 자체가 상호 보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효율적인 크레딧의 소비처를 찾다 보면 소유한 무장에 걸맞은 부대 시설을 자가 소유로 갖추는 게 더 강력하고, 또한 이치에 맞는 행위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짜 케어봇처럼 집안에서만 굴리는 것도 아니고, 모래먼지에… 납탄 폭풍에… 물벼락에… 여하간 기계에 좋을 리가 없는 오만 환경에 다 끌고 다니면서 운용하는 주제에.

         

         담당 정비소나 샵을 따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니오, 그때그때 필요해지면 거리상 가까운 곳을 찾아서 방문하는 건 다소 무책임한 관리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반성해야지.

         허면 내가 직접 메카닉 자격증을 따진 않더라도 최소한 제로가 스스로 파손부를 수리할 수 있는 정비 시설을 갖춰주는 게 맞으리라.

         

         ……크흠! 도중에 자기비판적 사고가 약간 섞여 들어갔는데 어쨌거나, 모든 캐릭터의 시작 위치는 동일하다.

         

         네오 헤이븐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은 신출내기답게 외곽 지역의 값싸고 좁은 월세집에서 스타트.

         

         초반에야 별다른 문제없이 거점으로 삼고 지내지만…… 플레이타임이 조금만 쌓여도 금세 입에서 ‘아이씹…!’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들어주는 단점들로 가득하다.

         

         슬슬 활동 반경이 넓어져 동선이 늘어지거나 미션이 꼬여서 시간이 지체되면, 컨디션 관리 때문에 캡슐 모텔 등에서 외박을 하게 되는데 그럼 당연히 휴식 보너스는 날아가지.

         

         어라? 무기고랑 부품 개조대랑 같이 놓을 공간이 없네?

         엥? 거주지가 도심지 근처가 아니면 못 받는 퀘스트가 있어?

         시발? 여기는 차고 설치가 아예 불가능해서 차량도 못 사?

         심지어 재수없으면 도난이 일어나서 창고 템이 증발해?? 크아아악! 이걸 사람이 어떻게 참아줘…!

         

         같은 일련의 -좆 같은. 내가 아무리 네오 헤이븐의 광팬이래도 옹호하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제 점차 비싸고 입지도 좋고 호화로운 거주지 중 하나를 골라서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구조가 되시겠다.

         

         뭐, 그마저도 없어서 그동안 염치없이 남의 가정집을 전전하다가 호텔로 넘어간 내가 할 말은 아닐 수도 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끝.

         

         이 몸?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부채? 없음! 어음?? 발행한 적조차 전무한, 무려 순자산 13억 크레딧의 자산가. 당장 밖에 나가서 길가던 행인의 뺨을 때리더라도 총 맞는 대신 극적 타협(위자료)이 수천 번은 가능한 능력자.

         

         주거지 매매라는 게 무슨 업그레이드나 스킬 트리 해금처럼 순서대로 해야 하는 일도 아닌 만큼, 공연히 애매한 레벨의 주택이나 건물을 알아볼 필요도 없을뿐더러.

         게임이라는 제약…이라기보단 틀에서 벗어났으니 지정된 부동산이 아니라 더 이동이 편리하고 안전이 보장된 곳을 고르면 장땡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장땡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때만 해도.

         

         “살 수 있는 집이 없다고?? 대체 왜!?”

         

         “그… 그야,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매물이 없으니까요?!”

         

         이 망할 네오 헤이븐에는 왜 이리 잘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데.

         수도권 인구 밀집 현상을 여기서도 이렇게 체감하다니.

         

         

         

         

         “좋아…! 이제 그만 가볼까?”

         

         – ……중남미풍 살사 로하(Salsa roja; 붉은색 살사 소스), 중위험군 식재료에 등록했습니다. 다음 주문 시에는 판단을 필히 보류하실 것을 당부드리겠습니다. –

         

         살짝, 들이부은 음료수로 인해 생긴 멍한 느낌이 가시자마자 야심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쓸데없는 소프트웨어 갱신을 일삼는 애는 일단 제쳐 두고.

         지금부터, 진짜로, 집을 사러 간다. 그런 실감이 들어서 심장이 막 두근거렸다.

         

         자취방 구하는 데도 보증금에 붙은 0이 너무 많다며 벌벌 떨던 내가 시기와 여건 좀 잘 맞아떨어졌다고 불과 일이 년 만에 이런 쾌거를 이루어 내다니.

         

         역시 기회주의와 한탕의 땅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고야, 늘 짜릿해. 아찔해서 죽을 것 같아…!

         

         “…크흥!”

         

         차오르는 헛바람을 털어냈다.

         기대감에 휩싸인 내가 싱글벙글하는 동안에 제로가 몸을 옮겨준다는 선택지도, 먼저 선행되는 결정이 내려져야 가능한 법이니까.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이 동네에서는 어떻게 집을 사느냐?’ 에 대한 답변이 되시겠다.

         

         모니터 너머의 세계에서는 익명의 용병 전문 부동산 중개사(Realtor) 아저씨가 알아서 연락을 받고 찾아와주었다.

         초고가 매물로 넘어가면 블랙 마켓에서 나온 늘씬한 미녀 안내원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아마 주인공이 활동하면서 얻은 인맥이 작용한, 일종의 게임적 허용이라고 납득했는데… 현재의 나는 그런 게 전혀 없네?

         

         인터넷으로 찾아본 바에 따르면 여기서는 부동산 매입자와 매도자가 각각 따로 중개인을 두고, 사는 사람이 집을 고르면 마치 재판처럼 중개인끼리 피나는 혈투를 벌여 가격을 절충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만큼 떼어가는 보수료도 꽤 강하다나?

         …누가 소송에 환장한 나라가 아니었다고 할까 봐 참.

         

         하여간 그럼 나는 골라야 한다.

         유명한 부동산 중개사를 찾을지, 아니면 괜찮은 중개 법인을 찾아가서 담당자를 배정받을지를.

         

         – 약 138m 거리에 마켓 공인 중개소가 있습니다만. –

         

         “으음…….”

         

         먼저 시선을 힐끔 돌려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는, 오늘도 거무칙칙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뒷세계 인간들로 들어찬 암시장 거리를 훑었다.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하는데도.

         근처 가게에서 파는 무기는 얼마나 살상력이 출중할지…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린 중고품이 있다면 얼마나 박박 기록을 지웠을지 무형의 신뢰가 마구 샘솟는다.

         

         마치 내부에서 사람이 트럭 단위로 실종됐어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을 것 같은 치밀함이 느껴져서… 어, 음. 그러니….

         

         “……어디, 기업 자치 구역에 있는 제대로 된 법인으로 갈까?”

         

         – 탁월한 혜안이십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뻗어진 기계 팔을 잡고 냅다 제로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얘는 안 그래도 예전부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매몰찬 경향이 강했고, 태생이 메가코프 소속인만큼 이런 잿빛 세력에 대한 불신도 있어서 이 결정을 좋아할 줄 알았다.

         

         이름모를 정장 누님… 왠지는 모르겠는데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도 원래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런 방면의 계약을 할 때는 개인보다는 단체가, 그리고 음지보다는 양지가 믿음직스럽다는 뿌리깊은 편견이 남아있네요.

         

         나중에 주인공한테서나 많이 뜯어먹어주시길. 네.

         

         그렇게 우리는 네오 헤이븐의 여러 구역과 구역 사이, 지표면과 지하를 걸쳐 거미줄처럼 펼쳐지고 잡초처럼 뿌리내린 암흑가로부터 뻗은 수많은 출입구 중 하나를 통해 슬그머니 빠져나와 대로변 인파에 합류했다.

         

         비록 도시에서 공인된 구역이라고 그다지 햇빛이 강하게 드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여태까지 얼굴 팔리거나 음습한 의도를 가지고 뒤쫓아온 인간이 있을까 경계했던 게 부끄러워질 만큼!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했다.

         

         “어으어… 점심은… 어떡하지….”

         “아일하기싫다. 하지만일을안하면죽는데. 아니죽는것도나쁘지않을지도…?”

         “…시발(Fuck)! 썅(Shit), 시발! 인생(Life Sucks)!!”

         

         흡사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 직장인 무리를 보는 것 같았다.

         한데 뭉쳐서 타고 내리고, 서로의 상황에 얼추 공감은 하나 절대 간섭하지는 않는. 그런 평행선의 집합체들.

         

         나와 제로를 향한 상호작용이라고 해봐야 간혹 얼굴을 흘끔거리거나, 유별나게 자가용 로봇을 타고 다니는 나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 정도? 부잣집 자녀라고 보는 거려나.

         사실 그쯤이야 하베스트 플래닛에서도 수도 없이 겪어봤고, 외려 제로의 상흔을 보고 근처에서 따끈따끈한 총격전이 발발했나 굳은 채로 메신저를 살피는 게 더 자주 보여서 어색했다.

         

         이거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중소규모 기업들의 사무실이 포진한 구역으로 가려다 보니 조우한 모양인데, 거 부르주아 듀오는 금방 지나갑니다? 부디 크게 신경 쓰진 말아주세요. 아하하하….

         

         삐릭!

         

         역시 하루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한 직장인들의 무덤이라 그런가?

         유난스러운 신분 검사나 소지품 확인 따위는 없이 간단하게 몇 명이 지나쳤나만 세고 있는 구역 경계선을 통과, 목표했던 부동산 중개 법인을 향해 나아갔다.

         

         보자… ‘반드시 매매 계약 전에, 가상 자료만 확인하지 말고 꼭 죽어도 실물을 두 눈으로 확인할 것’이 일순위로 튀어나오는 게 벌써 흥분되네.

         

         ……죽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면 바로 핏자국부터 찾게 제로를 출격시켜야지.

         

         –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격언은 그런 경우에 적용하는 게 아닙니까? –

         

         “…사고 매물은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인류 역사의 일부야. …아마도.”

         

         

         [ 셀링 다크니스Selling Darkness 부동산 중개업자들Real Estate Traders ]

         [ 메가코프 자산 매매경력 다수 보유 !! ]

         

         신뢰와 의심, 양극단의 속성 중간 어딘가를 부유하는 부가 설명은 그렇다 치고.

         있는 물건 없는 물건은 물론이요, 억지로 미등록 매물을 찾아내서라도 팔아줄 것 같은 듬직한 상호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이 가게 문턱을 넘어선 후에 질의응답 몇 번만 거치고 나면 이어질 즐거운 쇼핑 시간.

         그리고 모두가 가지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기대감에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발을 내디뎠….

         

         [ 죄송합니다. 아나스타샤 발렌타인님! 저희 가게는 그린 등급 시민권자의 악성 민원에 힘입어, 현재 그린 및 옐로우 시민 여러분의 내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이 더럽고 치사한 샊…!”

         

         냉혹한 현실에 뒷목 잡고 급발진을 박으려다가. 자칫 내 흥분을 확대 해석한 제로가 도어 브리칭이라도 시도할라 급하게 말을 끊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지하, 지상으로도 모자라서 공중 정원 비슷한 인공 플랫폼까지 만들어가며 인구 밀집도를 올린 메트로폴리스에 얼마나 악질적인 사람이 많겠어?

         가게 또한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는 있다. 암,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입장하기도 전에 사람을 진상 취급하다니!

         구매 상담은 DM으로 문의해주세요오… 그런 거냐? 얼굴보고 양해를 구하면 모를까, 다짜고짜 주문 거부부터 박아?

         

         “이씨…!”

         

         방금 내가 망할 스캐너에 입점 거부당한 광경을 혹시 누가 봤나 주변을 한 번 체크해주고, 재빨리 신분증을 다른 걸로 교체.

         마카로비치 쪽 신원을 활성화해서 한 번 휘젓는 걸로 출입문을 돌파한 나는 중개소 안으로 박차고 들어갔다.

         

         손님 받아라, 콱씨!

         13……이 아니지, 여유금은 언제나 옳으니까 12억 크레딧 한도 내에서 제일 잘난 집 가져와! 목록 전체를 다 가져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박차다 : 1)어려움이나 장애를 강하게 물리치다. 2)진짜 발로 차다(!)

    거창한 부동산 이름은 모 리얼리티 프로에서 따왔습니다. 우아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너무 날 것이라 시청은 포기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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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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