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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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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을 어찌어찌 잘 달랜 후 리안은 익숙하게 작은 틈 사이를 파고들어 마왕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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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저건 안되고… 저건 크기가 너무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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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주로 노예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식사용, 실험용 등.. 마왕성에서 인간은 굉장히 빠르게 소모되는 자원이었다. 그 탓에 매일 수십, 수백의 노예들이 마왕성으로 팔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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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노예의 수가 많다 보니 기대감이 바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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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 루트는 찾아뒀으니까. 몸만 찾으면 된다. 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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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초코볼 같은 눈을 반짝거리며 노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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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며칠 동안 눈을 이리저리 열심히 굴리며 새롭게 들어온 노예들을 살펴보았지만 제 영혼이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몸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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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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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붕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대들보 위를 기어 작은 구멍으로 향했다. 막 몸을 좁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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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오자마자 0구역으로 배정된 노예 놈이 있다더군.”
    “허억,켁! 0구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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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목소리가 리안의 발목을 턱 하니 붙잡았다. 반쯤 들어갔던 구멍에서 나와 아래쪽을 바라보자 지성 높은 오크 한 마리와 검은색 갑옷을 갖춰 입은 타락한 기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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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오늘 오후 중으로 이송한다고 하니 정신 반짝 차리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하품이나 쩍쩍하고 있다간 머리가 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르니.”
    “으으… 겁주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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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귀엔 더 이상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0구역’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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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구역, 제로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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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뭔가 굉장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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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거기서 내 영혼과 딱 맞는 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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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감이 몸이 출렁출렁 요동쳤다. 명확한 목표가 정해지자 물렁물렁한 몸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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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성내를 마구 돌아다니면 ‘0구역’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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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0구역에 새로운 노예가 들어간다던데?”
    “이번 내 실험의 실험체로 딱일텐데… 한번 신청서라도 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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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구역에 새로운 노예가 들어오는 건 꽤 놀라운 일인지 이에 대해 떠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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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0구역이 ‘간부급의 강자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갖춘 노예’가 갇히는 곳이라는 것과 과거 0구역 노예 한명이 감옥을 탈출하여 성을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어 보안이 철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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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리안은 원하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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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 이거지? 바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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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구역의 위치를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몸을 빠르게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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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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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구역에 도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말랑한 슬라임 몸은 작은 틈은 물론 자물쇠까지 통과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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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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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한 것까진 좋았지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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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어두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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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암막 커튼을 몇 겹으로 쳐놓은 것처럼 감옥 앞 복도는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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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어둠 속을 더듬으며 걷기에는 무시무시한 마법진이 잔뜩 깔려있어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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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 완전 유적지나 다름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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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은 보이지 않아야 할 함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건, 0구역의 복도가 함정이 널리고 널린 유적지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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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에서 거대한 돌이 떨어져 굴러오고 갑작스럽게 땅이 꺼져 날카로운 창이 가득한 곳에 떨어지게 되는 함정이 난무하는 유적지는 온갖 이유로 휘말리게 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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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 안에 갇힐 경우 보통은 함정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튀어나와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기겁하며 두 손을 번쩍 든 채 도망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경우만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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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처럼 모든 함정이 눈에 훤히 들어올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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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이 엄청 많다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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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마어마한 양의 함정으로 개그 주민의 기를 팍 죽여 도망치게 하거나, ‘악당’의 처참한 미래를 암시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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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기 위해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했지만, 리안은 감옥에 갇혀있는 노예들을 확인하고 싶었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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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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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몸 일부를 길쭉하게 늘려 마법진의 일부를 슥슥 지웠다. 그러자 매직 스펀지로 지운 것처럼 마법진 일부가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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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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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진이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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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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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잔뜩 신이나 곧바로 마법진을 마구 지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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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구역의 보안 마법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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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 오랜만에 하는 청소라 그런지 너무 힘을 주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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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복도에 서서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복도가 번쩍번쩍 광이 나서 그런지 한 치 앞도 안보이던 공간이 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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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감옥이 생각보다 엄청 많네? 다 독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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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있는 문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이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으로 다가가 그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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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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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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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들어갔던 그 어떤 문보다도 틈이 좁아 거의 슬라이스 치즈 정도로 얇아진 상태가 되어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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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 생각보다 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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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는 감옥이라기엔 꽤 아늑한 풍경을 자랑했다. 천장에 랜턴이 감옥을 환히 비추고 있었고, 방 모서리엔 푹신한 침대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꽤 널찍한 크기의 책상과 의자가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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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4인용 식탁과 의자도 존재했는데 식탁 위에는 예쁜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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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이라기보단 게스트 하우스나, 기숙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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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것보다 노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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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몸을 꿀렁거리며 몸을 휙휙 돌리다가, 네 개의 침대 중 하나에 눈이 닿았다. 이불 안쪽에 누군가 들어가 있는 듯 살짝 부풀어있었다. 리안은 곧바로 벽을 타고 위로 올라 천장을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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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얼굴 앞에 나타나면 놀랄 테니까 우선 위에서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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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으로 천장을 꾸물꾸물 기어 낯선 존재의 머리 위에 도착했을 때 리안은 그대로 떨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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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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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원래 육체처럼 딱 들어맞아 보이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리안은 곧바로 아래로 기어 내려가 잠들어있는 걸로 보이는 노예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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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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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푹 패인 볼, 시커멓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석탄처럼 탁한 색의 머리카락, 바짝 마른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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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에 누워있는 노예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꼴을 하고 있었다. 리안이 놀란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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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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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있는 육체는 숨을 쉬고 있음에도 영혼이 없어 몸이 텅 비어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싶어 순간 말을 잃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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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어때! 마침 빈 몸이 필요했는데 잘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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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하나 따지는 건 제 성격에 맞지 않았기에, 복잡한 생각을 옆으로 가볍게 치워버린 후 슬라임 몸에서 빠져나와 눈앞에 있는 노예의 몸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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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가 희게 질렸다가 다시 검게 물들기를 반복했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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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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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쩍하고 갈라진 목구멍 안쪽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넘쳤고 나쁘게 말하면 음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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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힘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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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큭, 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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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얻은 것에 환호하려 했지만 목 쪽에서 찌르르한 통증이 밀려와 고개를 숙인 채 마른기침을 연신 쏟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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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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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식탁 쪽으로 향했다. 그 위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 제 입안으로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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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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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서 말라 죽어가던 이가 깨끗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미친 듯이 물을 삼켰다. 그러자 푹 패어있던 볼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퍼석했던 머리카락이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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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켈레톤이 “여, 친구!”라고 말할 정도로 깡말랐던 몸에 보기 좋게 살이 차올랐다. 턱 끝까지 내려올 것 같던 다크서클도 크기가 확 줄어들었다. 온몸을 둔탁하게 두드리던 통증도 순식간에 씻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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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어느 정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자 리안이 주전자를 입가에서 떼어낸 후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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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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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의 몸으로 지금 같은 행동했다면 청량한 이온 음료 광고모델처럼 보였겠지만, 새카만 머리카락에 다크서클이 살짝 내려앉은 퇴폐적인 외모를 신 육체는 위험한 약물을 복용한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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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알 리 없는 리안은 태연한 얼굴로 제 몸을 이리저리 내려다보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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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 역시 손가락은 다섯개씩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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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것에 감격하며 손을 폈다가 접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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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얻은 것 까진 좋긴 한데… 여긴 나뿐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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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감 없이 텅 비어있는 책상과 침대를 봐선 이 방은 검은 머리의 남자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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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주인인 척 연기 할 자신은 없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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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안도하며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책상에 놓인 여러 권의 책을 훑어보기도 하고, 옷장 안을 살펴보기도 했다. 똑같은 옷이 무려 열 개나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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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안 구경이 얼추 끝나갈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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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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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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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닫혀있던 감옥의 몸이 거칠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 한 상황에 리안이 덜컥 굳어 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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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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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문틈 사이로 익숙한 색의 머리카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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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3

하얀 머리카락, 금안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인자하고 부드러운 얼굴
퇴폐적인고 섹시한 얼굴

완전 반대되는 외모를 가진 리안을 과연 알아볼 것인가..!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마왕을 어찌어찌 잘 달랜 후 리안은 익숙하게 작은 틈 사이를 파고들어 마왕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음… 저건 안되고… 저건 크기가 너무 크고..’

리안은 주로 노예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식사용, 실험용 등.. 마왕성에서 인간은 굉장히 빠르게 소모되는 자원이었다. 그 탓에 매일 수십, 수백의 노예들이 마왕성으로 팔려 왔다.

워낙 노예의 수가 많다 보니 기대감이 바짝 차올랐다.

‘탈출 루트는 찾아뒀으니까. 몸만 찾으면 된다. 몸만…!’

리안은 초코볼 같은 눈을 반짝거리며 노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눈을 이리저리 열심히 굴리며 새롭게 들어온 노예들을 살펴보았지만 제 영혼이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몸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없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붕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대들보 위를 기어 작은 구멍으로 향했다. 막 몸을 좁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순간.

“들어오자마자 0구역으로 배정된 노예 놈이 있다더군.”

“허억,켁! 0구역이요!?”

낯선 목소리가 리안의 발목을 턱 하니 붙잡았다. 반쯤 들어갔던 구멍에서 나와 아래쪽을 바라보자 지성 높은 오크 한 마리와 검은색 갑옷을 갖춰 입은 타락한 기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오늘 오후 중으로 이송한다고 하니 정신 반짝 차리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하품이나 쩍쩍하고 있다간 머리가 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르니.”

“으으… 겁주지 마십시오!”

리안의 귀엔 더 이상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0구역’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0구역, 제로 구역.’

딱 봐도 뭔가 굉장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이름!

‘어쩌면 거기서 내 영혼과 딱 맞는 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기대감이 몸이 출렁출렁 요동쳤다. 명확한 목표가 정해지자 물렁물렁한 몸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안은 성내를 마구 돌아다니면 ‘0구역’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 0구역에 새로운 노예가 들어간다던데?”

“이번 내 실험의 실험체로 딱일텐데… 한번 신청서라도 올려볼까?”

0구역에 새로운 노예가 들어오는 건 꽤 놀라운 일인지 이에 대해 떠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리안은 0구역이 ‘간부급의 강자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갖춘 노예’가 갇히는 곳이라는 것과 과거 0구역 노예 한명이 감옥을 탈출하여 성을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어 보안이 철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리안은 원하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 이거지? 바로 가자!’

0구역의 위치를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몸을 빠르게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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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구역에 도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말랑한 슬라임 몸은 작은 틈은 물론 자물쇠까지 통과해버렸기 때문이다.

‘끙…’

도착한 것까진 좋았지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너무 어두워.’

리안은 암막 커튼을 몇 겹으로 쳐놓은 것처럼 감옥 앞 복도는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무작정 어둠 속을 더듬으며 걷기에는 무시무시한 마법진이 잔뜩 깔려있어 쉽지 않아 보였다.

‘으아아.. 완전 유적지나 다름없잖아..’

보통은 보이지 않아야 할 함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건, 0구역의 복도가 함정이 널리고 널린 유적지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탓이었다.

등 뒤에서 거대한 돌이 떨어져 굴러오고 갑작스럽게 땅이 꺼져 날카로운 창이 가득한 곳에 떨어지게 되는 함정이 난무하는 유적지는 온갖 이유로 휘말리게 되는 장소였다.

유적지 안에 갇힐 경우 보통은 함정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튀어나와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기겁하며 두 손을 번쩍 든 채 도망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경우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모든 함정이 눈에 훤히 들어올 때도 있었다.

‘함정이 엄청 많다는 거잖아…’

어마어마한 양의 함정으로 개그 주민의 기를 팍 죽여 도망치게 하거나, ‘악당’의 처참한 미래를 암시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했지만, 리안은 감옥에 갇혀있는 노예들을 확인하고 싶었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이럴 땐…’

리안은 몸 일부를 길쭉하게 늘려 마법진의 일부를 슥슥 지웠다. 그러자 매직 스펀지로 지운 것처럼 마법진 일부가 지워졌다.

후우웅…

마법진이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 된다!’

리안은 잔뜩 신이나 곧바로 마법진을 마구 지워나갔다.

….0구역의 보안 마법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휴… 오랜만에 하는 청소라 그런지 너무 힘을 주고 말았네.”

리안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복도에 서서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복도가 번쩍번쩍 광이 나서 그런지 한 치 앞도 안보이던 공간이 훤해졌다.

“오, 감옥이 생각보다 엄청 많네? 다 독방인가?”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있는 문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이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으로 다가가 그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으으…”

꾸우우웅!

지금까지 들어갔던 그 어떤 문보다도 틈이 좁아 거의 슬라이스 치즈 정도로 얇아진 상태가 되어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은 생각보다 밝네.’

내부는 감옥이라기엔 꽤 아늑한 풍경을 자랑했다. 천장에 랜턴이 감옥을 환히 비추고 있었고, 방 모서리엔 푹신한 침대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꽤 널찍한 크기의 책상과 의자가 자리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4인용 식탁과 의자도 존재했는데 식탁 위에는 예쁜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있었다.

감옥이라기보단 게스트 하우스나, 기숙사처럼 느껴졌다.

‘그런 것보다 노예는..!’

리안은 몸을 꿀렁거리며 몸을 휙휙 돌리다가, 네 개의 침대 중 하나에 눈이 닿았다. 이불 안쪽에 누군가 들어가 있는 듯 살짝 부풀어있었다. 리안은 곧바로 벽을 타고 위로 올라 천장을 기었다.

‘갑자기 얼굴 앞에 나타나면 놀랄 테니까 우선 위에서 확인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천장을 꾸물꾸물 기어 낯선 존재의 머리 위에 도착했을 때 리안은 그대로 떨어질 뻔했다.

‘찾았다!’

제 원래 육체처럼 딱 들어맞아 보이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리안은 곧바로 아래로 기어 내려가 잠들어있는 걸로 보이는 노예에게 다가갔다.

“…어?”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푹 패인 볼, 시커멓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석탄처럼 탁한 색의 머리카락, 바짝 마른 입술.

침대에 누워있는 노예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꼴을 하고 있었다. 리안이 놀란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혼이… 없어?”

눈앞에 있는 육체는 숨을 쉬고 있음에도 영혼이 없어 몸이 텅 비어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싶어 순간 말을 잃었지만..

“뭐, 어때! 마침 빈 몸이 필요했는데 잘됐지!”

하나하나 따지는 건 제 성격에 맞지 않았기에, 복잡한 생각을 옆으로 가볍게 치워버린 후 슬라임 몸에서 빠져나와 눈앞에 있는 노예의 몸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시야가 희게 질렸다가 다시 검게 물들기를 반복했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쩍하고 갈라진 목구멍 안쪽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넘쳤고 나쁘게 말하면 음습했다.

리안은 힘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드디어…큭, 쿨럭쿨럭!”

몸을 얻은 것에 환호하려 했지만 목 쪽에서 찌르르한 통증이 밀려와 고개를 숙인 채 마른기침을 연신 쏟아내야 했다.

“무,물…”

리안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식탁 쪽으로 향했다. 그 위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 제 입안으로 기울였다.

꿀꺽, 꿀꺽.

사막에서 말라 죽어가던 이가 깨끗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미친 듯이 물을 삼켰다. 그러자 푹 패어있던 볼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퍼석했던 머리카락이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았다.

스켈레톤이 “여, 친구!”라고 말할 정도로 깡말랐던 몸에 보기 좋게 살이 차올랐다. 턱 끝까지 내려올 것 같던 다크서클도 크기가 확 줄어들었다. 온몸을 둔탁하게 두드리던 통증도 순식간에 씻겨 내려갔다.

몸이 어느 정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자 리안이 주전자를 입가에서 떼어낸 후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캬!”

본래의 몸으로 지금 같은 행동했다면 청량한 이온 음료 광고모델처럼 보였겠지만, 새카만 머리카락에 다크서클이 살짝 내려앉은 퇴폐적인 외모를 신 육체는 위험한 약물을 복용한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를 알 리 없는 리안은 태연한 얼굴로 제 몸을 이리저리 내려다보기 바빴다.

“크흐… 역시 손가락은 다섯개씩 있어야지!”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것에 감격하며 손을 폈다가 접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몸을 얻은 것 까진 좋긴 한데… 여긴 나뿐인 건가?”

사용감 없이 텅 비어있는 책상과 침대를 봐선 이 방은 검은 머리의 남자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던 듯했다.

‘몸 주인인 척 연기 할 자신은 없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하며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책상에 놓인 여러 권의 책을 훑어보기도 하고, 옷장 안을 살펴보기도 했다. 똑같은 옷이 무려 열 개나 걸려있었다.

방안 구경이 얼추 끝나갈 때쯤.

철컹!

“…?”

굳게 닫혀있던 감옥의 몸이 거칠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 한 상황에 리안이 덜컥 굳어 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끼이익.

열린 문틈 사이로 익숙한 색의 머리카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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