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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익시온의 회의장.

   거기서 나타난 광도제 탓에 회의는 잠시 일단락되었다.

     

   “꼬마, 네가 진짜 광도제라고?”

     

   그중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어둠 속성 장귀종, 흑조였다.

   그녀는 무척이나 미심쩍은 눈으로 광도제를 직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도제는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방귀를 내쉬었다.

     

   “그럼 가짜겠냐? 애초에 이렇게까지 의아해하는 게 더 웃긴데. 너희들도 다 살아나는 방법 하나 정도는 들고 있잖냐.”

     

   광도제가 뻔뻔스럽게 세계 침식자들을 둘러보자 긍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저마다 생존 방법 정도는 있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가 살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이번에 의문을 제기한 건 노신사였다.

     

   “하.”

     

   광도제는 짧게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노신사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직접 확인해 보든가.”

   “그러지.”

     

   노신사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광도제의 앞에 다가왔다.

   그러더니 지팡이를 바닥에 쿵 찍었다.

     

   그 순간 퍼져 나간 울림이 광도제의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노신사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확실히 살아 있군.”

     

   광도제는 시체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가 에벨아스크의 시체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내 사과하지. 오래 살다 보면 원래 의심이 많아지는 법 아니겠나.”

     

   광도제가 거봐라는 눈빛으로 쏘아보자 노신사는 중절모를 내리며 순순히 사과했다.

     

   “그럼 빠져 있어. 영감.”

     

   광도제는 노신사를 지나쳐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익시온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흑마녀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흑마녀, 난 내 소중한 목숨 하나를 잃은 대가를 너한테 좀 물어야 할 거 같은데.”

     

   광도제의 눈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흑마녀의 실수로 광도제는 죽었다.

     

   그러니 그도 당연히 책임을 물을만한 위치에 있었다.

   흑마녀는 잠시동안 침묵하더니 살짝 고개를 까닥거렸다.

     

   “미안.”

   “하 썅, 개년이.”

     

   광도제의 분노는 지당했다.

   그래서인지 세계 침식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분노를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누구든지 분노를 표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사실은 세계 침식자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균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익시온이라는 단체에 모인 세계 침식자들은 서로를 신뢰해서 모인 게 아니다.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서 모인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모임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흑마녀다.

   그런 그녀의 실수로 인해 세계 침식자가 죽었다는 건 익시온의 균열을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시끄럽게 땍땍거리긴.”

     

   그 순간 분위기를 바꾼 건 야수왕이였다.

   그는 두꺼운 손가락으로 큰 귀를 후벼파며 후하고 불었다.

     

   “거기서 못 살아 나온 건 애초에 네가 부족해서지 않냐?”

     

   광도제의 상대는 분명 어느 사람도 무시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그러나 익시온의 최강 전력 중 하나인 야수왕의 눈에서라면 흑마녀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야수왕과 눈이 마주친 광도제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수왕은 그의 분노 섞인 시선 속에서도 여유롭게 자신의 흰색 수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광도제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야수왕 앞에서 밀린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야수왕의 발언은 세계 침식자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그들 또한 저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광도제를 옹호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 그들 또한 자신들이라면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졸지에 약해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역할이 되어버린 광도제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를 옹호해 줄 이는 여기에 없었다.

     

   “살아서 꽁지 빠지게 도망갔으면 그만 자리로 가서 얌전히 있기나 해라. 자기가 시체인지 아닌지도 스스로 증명 못 하는 놈이 무슨.”

     

   야수왕이 일갈하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광도제가 하는 수 없이 자리로 갔다.

   그를 보며 세계 침식자들 몇몇은 잠시 키득거렸으나 광도제의 마음을 마냥 모르지는 않았기에 금세 조용해졌다.

     

   ‘썩을, 당장 날 쳐 죽일 것 같지는 않게 만들었는데. 이제 만족 됐어?’

     

   그렇게 구석에 오게 된 광도제는 속으로 생각을 전했다.

     

   [ 그래, 잘했다. ]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벨아스크의 네크로맨서 술을 통해 지금 상황은 전부 크라슈에게 정보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광도제는 더더욱 과한 제스쳐를 취했다.

   자신의 제스쳐가 과해야 세계 침식자들을 둘러보는데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크라슈는 한가지 정보를 얻었다.

     

   지옥 선녀.

   그녀가 누구인지 광도제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녀석이다.’

     

   지옥선녀는 분명히 크라슈의 어느 기억 속에도 본 적 없는 이였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크라슈는 익시온의 잔당 및 뿌리를 뽑아 버리기 위해 창공의 세대와 함께 낱낱이 그들을 파헤쳤기 때문이었다.

     

   그중에 어디에도 지옥 선녀에 관한 것은 적혀 있지 않았다.

   분명히 익시온 단원들은 그녀를 익숙하게 대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황가와 연까지 있는 녀석인데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고?’

     

   크라슈는 이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

     

   ‘광도제의 사건은 분명히 이전 회차에서도 일어난 일이었어.’

     

   그때 지옥 선녀는 광도제의 사건에 개입했을까, 안 했을까.

     

   거기에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쉽다.

   회귀를 할 것을 가정한 채 살아오지 않았으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점의 정보가 너무 모자랐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있었다.

   지옥선녀는 이번 회차에 새롭게 생긴 변수다.

     

   이 시점에서까지 활동하고 있다면 분명히 변수일 테니 말이다.

     

   ‘지옥선녀가 황가와 연이 생긴 건 어쩌면 이번 회차일 가능성도 있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떠오르는 것은 하나였다.

   익시온 내에서도 이토록 큰 변화가 난 이유.

     

   ‘회귀.’

     

   크라슈를 포함한 아서와 여성진 세 명의 회귀.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이다.

     

   크라슈는 확신할 수 있다.

   적어도 메리와 시그린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

     

   두 사람의 동태는 크라슈도 줄곧 살피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딱 한 명 떠오르는 인물이자 저번에도 의심했던 이.

     

   ‘아벨라.’

     

   붉은 마녀, 아벨라.

   마법의 정점에 도달했던 그녀가 계속해서 걸렸다.

     

   ‘지옥선녀와 아벨라가 연관 있다면.’

     

   어쩌면 아벨라가 익시온 내부에 일부러 손을 뻗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 가지 문제는 크라슈도 아벨라가 익시온을 통해 무얼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아벨라는 우리랑 늘 목표가 달랐어.’

     

   그녀는 세계의 멸망을 막는 데 딱히 집중하지 않았다.

     

   마법사란 대개 미치광이투성이다.

     

   그러니 그녀에게 있어 멸망이란 더 이상 마법을 정진할 수 없기에 아쉬운 것뿐.

   멸망 탓에 모든 것을 잃는 것 자체는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가 멸망을 막기 위해 창공의 세대와 함께한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아서가 막고자 하니까.

     

   그녀는 지독한 아서 바라기이자 그에 너무나도 의존했다.

   마법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지만, 그녀의 내면은 뿌리부터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서는 그러한 그녀의 내면을 교묘히 이용해 평생토록 자신만을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 아벨라가 아는 아서는 없다.’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늘 지지해주는 아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서는 그녀의 기억 속 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짜 아서라는 존재가 나타난 시점에서 아벨라는 분명히 현재의 아서의 곁에 있다.’

     

   과연, 아벨라는 현재의 아서를 보고, 만족했을까.

   혹은, 그녀는 아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닐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가짜 아서가 나타난 것.

   진짜 아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

     

   이 전부가 아벨라의 의도가 아닐까.

     

   현재의 아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크라슈의 얼굴이 점점 더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정말로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크라슈는 오싹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큼은 절대 아니라고 믿고 싶으나.

     

   ‘이 미친년이라면 진짜 그럴 수도 있어.’

     

   이 세계에 진짜 아서는 없다.

   그렇다면 아벨라는 진짜 아서를 되찾기 위해.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다른 이들이라면 과한 생각이라고 치부하겠지만, 아벨라라면 정말로 그럴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원래도 미치광이였으니까.

     

   어쩌면 지옥 선녀는 아벨라가 준비한 한 수일 수도 있었다.

     

   ‘그럼 황가 쪽의 정보를 지옥 선녀에게 제공하고 있는 이를 찾아야 한다.’

     

   크라슈는 딱 한 명, 황가의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할 수 있는 이를 떠올렸다.

     

   ‘시즐리 에파니아.’

     

   제국의 4황녀이자 머리가 뛰어난 말괄량이 소녀.

   시즐리가 있다.

     

   ‘그 녀석 지금 제국에 가 있었지.’

     

   마침 잘됐다.

   그녀에게 연락할 수단을 만들어야 할 거 같다.

     

   문제는 그 연락할 수단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건데.

   크라슈는 곧바로 한 명을 떠올랐다.

     

   ‘메리 다이아나.’

     

   그 녀석은 시즐리에게 목줄이 잡혀 있다.

   그리고 그 목줄을 통해서 시즐리와 연락도 가능할 것이었다.

     

   황가의 각인이 마냥 일방통행인 것은 아니다.

   메리도 시즐리 쪽에 연락을 넣을 방법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였다.

     

   ‘메리 녀석도 다시 만나 봐야겠는데.’

     

   어차피 길든 짧든 메리의 마지막 다이얼을 풀기 위해 그녀와 만날 작정이었다.

     

   크라슈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점검을 마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직시했다.

     

   ‘지금 필요한 건.’

     

   지옥선녀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익시온의 앞으로의 행보를 점검하는 것.

   크라슈는 그것만을 목표로 보기로 했다.

     

     

   * * *

     

     

   익시온의 회의가 끝마칠 때까지 큰 이야기는 오고 가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의 주가 된 것은 크라슈와 관련된 정보를 모으는 것.

   더불어 검황의 유산을 이어받은 이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검황의 유산, 시그린이 움직였군.’

     

   크라슈는 검황의 유산과 관련된 이가 누구인지를 눈치챘다.

   오래전, 현재의 천상사강들이 활동하기 전 시절 활동한 이, 검황.

     

   그와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는 현재 라헬른 아카데미의 총장 투황 듀란달 말고는 없다.

     

   그러한 검황은 특별한 유산을 하나 남겼는데, 크라슈는 이것을 시그린이 흡수했을 거라 판단했다.

     

   ‘어차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시그린한테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것들 날 의식하고 있는 거 같은데?”

     

   돌아온 광도제는 머리를 박박 긁으며 짜증을 부렸다.

     

   녀석의 말대로 익시온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회의는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돌아온 광도제를 완전히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도 여기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애초에 광도제의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어쩔 게냐? 익시온 놈들이 본격적으로 너를 노리기 시작할 텐데.”

     

   크림슨가든이 물어오자 에벨아스크도 동의했다.

     

   “익시온 놈들은 위험해. 정말 감당 안 되는 이들도 있어.”

     

   급한 대로 결계를 만들어 두긴 했지만, 그것도 세계 침식자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정도다.

     

   지금 필요한 건 스스로를 지킬 힘.

   익시온을 끌어내어 궤멸시킬 힘이다.

     

   “해주사 벨투아 락로드.”

     

   세계 최고의 해주사이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상급 저주를 얻어낼 수 있는 이.

     

   “그 영감을 찾아야 해.”

     

   아이러니하게도 영감은 제국과 가까운 곳에 있을 거였다.

     

   ‘거기에 메리 녀석의 엑셀까지.’

     

   스킬과 저주, 둘 다 모으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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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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