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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2

   EP.182

     

   엔리코의 이상은 충분히 들었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고 그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하지만 탑이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돌직구로 날린 나의 질문에 엔리코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있다. 내가 성좌가 되며 깨달은 것이 그저 각성을 막 끝냈던 당시보다 많았듯, 힘을 얻어가며 알게 된 다양한 사실들이 있다는 말이다.

     

   탑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것. 그것은 고작 한 명의 성좌에게서 뽑아낸 마력과 12층의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격으로 이룬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 저는… 저는 잘……”

   “나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예?”

   “탑을 오르며 내가 알게 된 세상에 관한 정보들이 있어. 그리고 그걸 취합해 보면 네가 원하는 이상에 다가가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거야.”

     

   엔리코가 원하는 이상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의 기준으로 만든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있었다.

     

   다시 말해 ‘성좌의 화신’이라는 입장에서 탑을 이해하려 하니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그 모든 것은 엔리코가 ‘성좌’가 되면 해결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성좌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조금 전에 말했지? 탑의 층을 오르면서 도전자들이 받는 임무는 해당 도전자의 성향에 따라 바뀌는 거라고.”

   “……그렇습니다만?”

     

   엔리코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주도적으로 임무를 클리어해야 하는 ‘도전자’의 입장이 아닌 성좌를 돕는‘ 조력자’에 가까운 입장이었으니까.

     

   “나는 조금 생각이 달라. 솔직히 말해서 나도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거든? 그런데 내가 11층에서 받았던 임무는 그 세상의 영웅의 과거를 찾아보는 게 다였으니까.”

   “으음…… 생각보다 특이한 임무였군요.”

   “그치? 그런데 내가 그 과정에서 느꼈던 게 뭔지 알아?”

   “……뭡니까?”

     

   나는 11층에서 내가 겪었던 과정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과거의 전쟁이 종식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들을 도왔다.

     

   내면의 어둠이 있는 자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일정한 선은 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배려했으며 잘못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꺾이지 않을 신념이 있다면 그것 하나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의심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은 ‘량’의 노력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가 해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며 나는 그 안에서 나의 신념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다시 한 번 설명할 게. 이 탑은 도전자들에게 고작 ‘성향’에 맞는 임무 따위를 내릴 정도로 허술하지 않아. 탑이 성좌들에게 바라는 것은 조금 더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

   “……아.”

     

   엔리코의 입이 열리며 작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이제 조금 알겠어?”

   “성좌들의 성장을 위해 마련된 시련의 장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런 셈이지. 그럼 네 성좌인 이세계의 대부가 받은 11층의 의의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물음에 엔리코가 과거를 회상하듯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엔리코가 들려주었던 11층의 과거에는 자세히 고민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몇 가지 힌트가 숨겨져 있었다.

     

   우선 이세계의 대부가 받았던 11층의 임무.

     

   ‘11층 성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라.’

     

   대결이라는 대목에서 머릿속에 싸움밖에 들어 있지 않았던 이세계의 대부는 첫 번째로 ‘전쟁’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층에서 같은 임무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며칠간은 조용히 몸을 숨긴 상태에서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았겠지.’

     

   이 세상의 사람들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대결’이라는 단어와 이 세상이 가지는 ‘대결’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같은가.

   어쩔 수 없이 성좌와 맞부딪치게 된다면 무력으로 나에게 승산은 있는가.

     

   그리고 엔리코가 말했던 그 11층의 특징을 떠올려 보자면 그 대결이라는 것은 단순히 ‘싸움’에 국한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다분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면서도 아주 단순해. 한마디의 글귀를 통해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경우가 있는 반면 수백 장에 달하는 경서를 읽고 나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기도 하니까.”

     

   그들이 겪은 11층의 화신들은 자신의 세상을 짓밟은 침입자들에게 관대했다.

     

   그저 웃으며 그들의 칼을 맞았고 상처 입은 팔로 자신을 공격한 적의 상처를 치유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조금은.”

     

   나의 물음에 엔리코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탑은 저희의 성좌에게 인내를 가르치려 했던 거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정확한 건 탑이 너에게 알려 준 것은 ‘인내’라는 것이지.”

     

   나의 애매모호한 답변에 그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정작 그가 궁금해하던 답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내가 조금 전에 네가 말한 이상이 실현 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

   “정말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 말에 엔리코가 조용히 눈을 빛낸다. 눈앞이 캄캄해 목적지를 볼 수 없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충분히.”

   “방법을! 방법을 알려주십…”

   “네가 성좌가 되면 돼.”

   “……예?”

     

   엔리코가 성좌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내가 성좌에게 받은 ‘업데이트’라는 고유 스킬을 활용해 성좌가 되었던 것처럼. 그도 성좌의 힘을 흡수해 격을 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 마력 직접 뒤집어쓸 생각해본 적 있어?”

   “아, 아뇨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아니라……”

   “하… 이놈의 개구리들을 어떡하면 좋을까.”

     

   이전부터 느꼈지만 대부의 화신들은 그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한계의 선을 그어 버린 상태였다.

     

   뭐… 더 넓은 세상을 본 적이 없으니 우물에서 바라보는 하늘만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격이라는 것은 한계를 초월하는 과정이야.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어.”

   “그렇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대부는 전투와 관련된 성좌였습니다. 저는 고작 옆에서 누님과 화신들이 사용할 포션을 제조하던 연금술사였고요.”

   “그리고 지금은 헤라클레스를 만들어서 성좌의 마력을 주입할 수 있는 천재시고.”

   “그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마. 나도 탈람바르 이후로 진심으로 싸운 건 처음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용기를 좀 내라고 과장을 한 면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끌고 내가 이끌게 된 아우트라나를 침공한다면 그걸 하나라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생각하니 그것도 나름대로 고민해볼 문제였다.

     

   ‘그나마 진 하트나 로그 브리트만이라면 가능하긴 하겠네.’

     

   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이 아주 헛소리는 아닐 정도로 강력한 마법 병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재하던 게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엔리코였다.

     

   “성좌가 되면 어떤 기회가 주어질 거야. 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건지, 아니면 탑을 오르기 위해 도전할 건지.”

     

   내가 성좌가 되고 한 세상을 떠맡게 되며 받았던 탑으로부터의 제안.

     

   만약 엔리코가 성좌가 되는데 성공하고 나와 같은 제안을 받게 된다면 앞으로 3000년간은 힘을 기르며 그 뭣 같은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고민해 봐도 되겠습니까?”

   “내일까지 고민해 봐. 하지만 내가 예언하건데 너는 도전할 거야.”

     

   호언장담에 엔리코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좌를 봉인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며 다양한 기적을 일으킨 화신. 그 정도의 신념이라면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

     

   “하겠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다음날 엔리코를 찾았을 때 그는 어제보다 조금 더 개운해 보였다.

     

   “그런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성좌의 마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까?”

   “일단 그 성좌가 봉인되어 있다는 그 방부터 가자. 의심하지는 마. 딱히 명예랄 건 없지만 내 명예를 걸고 먼저 성좌를 공격할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엔리코를 따라 연금술사의 탑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래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올라가는 길. 직진인가 싶더니 또 나선형 계단이 나오기도 하고 꽤 좁은 통로를 몇 차례 지나기도 한다.

     

   “이거 직접 찾으려고 했으면 한참 걸렸겠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니까요.”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 엔리코는 거대한 결계가 몇 겹이나 덧씌워진 거대한 철문이 있는 넓은 공간에 다다랐을 때, 걸음을 멈췄다.

     

   “여깁니다.”

     

   거대한 철문. 그 옆에 배치된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계와 거대한 기둥.

     

   “무슨 실험실 같네.”

   “보통 이 문은 열지 않고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저기 있는 기계로 받아내죠. 그리고 저 기둥을 통해 연금술사의 도시 전역에 마력을 공급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가 선 이 장소가 하나의 발전소라는 말과 같았다. 물론 그 에너지원이 다른 무엇도 아닌 성좌라는 게 달랐지만.

     

   엔리코가 긴장이 되는지 천천히 심호흡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의에 찬 눈빛을 나에게 보냈고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며 운을 띄웠다.

     

   “내가 알기로 성좌가 되는 방법은 보통 세 가지야.”

   “뭡니까?”

     

   내가 알고 방법 그 첫 번째.

     

   “탑을 차근차근 오르면서 격을 쌓아 올린다. 특별한 업적을 통해서 쌓는 경우인데 느낌상 이게 정석이야.”

     

   이것은 토끼가 알려 준 루트였다. 누군가의 화신이 되고 함께 탑을 오르며 격을 쌓아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하지만 지금 엔리코의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방법은 아니었기에 이것은 넘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로는 스킬을 통해서 격을 얻는 것. 사실 이제 제일 특이 케이스 같기는 한데 나는 그렇게 성좌가 됐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다 보니 코인 같은 재화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성좌에 턱걸이를 할 수 있는 격을 얻은 거지.”

     

   ‘업데이트’라는 고유 스킬. 성좌가 된 이후로 더 이상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스킬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사용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인데……”

     

   내가 뜸을 들이자 엔리코가 입술을 깨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어진 나의 설명에 그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격이 높은 상대를 제압하는 거다.”

   “……”

   “탑이 인정할 만한 업적을 이뤄야 해. 훨씬 강한 상대를 이기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계를 돌파하는 식으로.”

   “……그 말은?”

     

   내가 5층을 클리어할 당시에 그곳의 보스 몬스터였던 마왕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격을 지니고 있었다.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주변의 괴물들을 집어삼키며 수백 년간 쌓아올린 업적이 일개 5층의 보스를 반쪽짜리 성좌로 만들었다.

     

   “문을 열고 성좌의 봉인을 풀어. 그리고 직접 녀석의 심장에 칼을 꽂아.”

     

   내가 아는 가장 빠르게 격을 쌓는 방법.

     

   그것은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성좌를 죽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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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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