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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183 – 운명공동체>

     

    “…그래서 나보고 이 비키니아머를 입으라고?”

     

    모브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가린 면적보다 안 가린 면적이 더 많은 갑옷.

    심지어 가슴부위마저 선정적인 디자인으로 커버하고 있다.

    여자가 입어도 부끄러울 갑옷인데.

    이걸 남자한테 입으라고?

     

    “응!”

    “내가 왜!”

    “이걸 100일 동안 입고 있으면 회피력이 잔뜩 올라가. 강해지고 싶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괜찮아. 저주템 위에는 원래 망토 말고는 입을 수 있는 장비가 없지만 같은 저주템은 중첩해서 입을 수 있어. 아무도 모브가 이거 입은 건 몰라!”

    “…정말?”

    “응. 지금도 훈련용 갑옷만 입고 다니잖아? 그 안에 비키니아머를 입었는지 맨몸인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알겠어?”

    “갑옷이 파손되면?”

    “파손 안 되면 그만이지!”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끙. 하필 회피력이 올라가지고.”

     

    기능도 너무 뛰어나다.

    오크노디가 직접 권유하는 심정도 알겠다.

    아카데미 밖에서도 회피율을 영구적으로 올려주는 아이템이 있다면 기꺼이 100일쯤은 변태라는 오명을 무릅쓰겠다는 이들이 널려있겠지.

    100일 동안 의뢰를 수행하지 않고 어디 수련장에 짱박혀서 개인수련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게다가 비키니아머를 입고 있으면 착용 자체만으로도 회피력에 보정이 있어. 중간고사에도 엄청 도움이 될 걸? 그런데도 입어보지도 않고 포기할 거야?”

    “으으음. 중간고사…”

    “이거 1000포인트나 주고 사온 건데.”

    “그렇게까지 비싼 거였어!?”

     

    결정타였다.

    결국 모브의 굳은 심지도 꺾이고 말았다.

    필요하다면 230cm 근육떡대마초남캐여도 네코미미도 장착하고 메이드복도 입고 원시부족의 형광페인트도 온 몸에 끼얹던 짬으로 짐작했다.

    원래 남자는 성능만 좋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다 쓰기 마련이다.

    모브도 분명 좋아할 줄 알았어.

    다음에도 좋은 저주템이 있으면 소개시켜줘야지!

     

     

    * *

     

     

    -인간의 마음도 모르는 놈.

    -피의 차가움이 뱀과 다를 바 없군요.

    -썩 꺼져라. 다시는 가문으로 돌아오지 마라.

     

    금기를 범한 가문의 일원을 자신의 입으로 손수 고발한 뒤, 들었던 이야기들.

    장래가 유망한 제국마도사가 관직을 버리고 달아나듯이 아카데미를 찾은 이유였다.

     

    ‘그놈의 뱀이 뭔지 한 번 알고 싶었지.’

     

    레이브 교수는 실험동에서 실험용으로 키워지던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이 애완 도마뱀과의 5년에 걸친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쉭쉭.”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눈동자로 무심히 쳐다보다가 혀만 낼름거리는 녀석.

    덩치가 커지니 날벌레로는 성이 안차서 큰 먹이를 달라고 앞발로 철창을 흔들고 밥그릇을 땡땡 두들기는 것이 안에 사람이 들지는 않았나 의심도 갔다.

     

    사사삭.

     

    그래도 제 손 위에 올라타서 팔위를 오르락내리락 정신없이 쏘아 다니는 꼴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 멋대로 평가하는 것과 달리, 이 도마뱀은 제법 애교가 있는 편은 아닐까 하고.

     

    “오다 주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면서 도마뱀이 좋아할만한 맛 좋은 실험실 배양쥐도 하나씩 구해다가 먹이로 툭툭 던져주었다.

     

    “우와. 조교님. 얘는 이름이 뭐예요?”

    “짱 멋지다. 광택질 좀 봐.”

    “교수님 닮아서 무서운데 멋있게 생긴 듯?”

     

    학생들과의 거리도 줄어들었다.

    사람 대 사람.

    인간적인 관계가 가능해졌다.

     

    “저 친구는 애완동물 키우길 참 잘했어. 전에는 인간미가 안 느껴졌잖아?”

    “아. 나도 도마뱀은 아니어도 파충류 애완동물을 키우는데 필요하다면 이 사료도 가져가보게. 우리 애는 입맛이 안 맞아서 안 먹는데 혹시 모르지 않나. 그쪽 애완동물 입에는 맞을지.”

     

    제국교수들과도 학부 내에서 업무적인 회화 외에는 한 마디도 오가지 않던 교류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그에게 도마뱀은 평범한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인간성을 녹여주는 친근한 동물이자 세상과 소통할 마음을 품게 만드는 작은 창구였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이 학생이 높으신 분의 자녀라는데 레이브 교수도 잘 좀 부탁하네.”

    “변방 것들이 요즘 이 악물고 공부만 해대서 높으신 분들의 심기가 불편하다네. 이참에 자네도 변방 쳐내기에 가세해줄 수 있겠나?”

     

    그 작은 창구에서 몇몇 학생들을 향한 특별혜택을 요구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 정도야 친한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변방출신 학생들에게는 ‘우연한 실수’로 전달되지 않은 출제범위 변경사항을 제국학생들에게만 전달하는 일도 개의치 않았다.

    파충류의 훌륭함을 아는 교수나 학생들에게 그 정도도 못해줄 의리 없는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포이즌 큐어, 아크 힐링!”

     

    그것이 거품을 물고 축 늘어진 도마뱀을 품에 안고 거듭 마력을 불어넣는 이유였다.

     

    “일어나라. 제발 일어나란 말이다.”

     

    마력은 더 이상 도마뱀의 몸에 깃들지 않았다.

    신체가 내포할 수 있는 마력한계치를 능가하는 투여에 마력이 튕겨나갔다.

    소용없다.

    이미 늦었다.

    그의 애완동물은 죽었다.

    레이브 교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탕…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멍청한 비키니전사 뾰이가 오크노디에게 받았던 독사탕.

    그것을 자신이 뺏어 애완동물에게 먹여준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알고 빼앗긴 걸까, 모르고 빼앗긴 걸까.

    그저 멍청한 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오크노디의 농간에 넘어간 것도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을 배신할 작정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장난이 심했군, 뾰이. 심해도 너무 심했어.”

     

    애완도마뱀의 최적 온도를 위해서 섭씨 20도를 준수했던 실내온도계의 수치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밑으로 곤두박질 쳤다.

    쩌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는 책상과 지면, 초여름에도 냉기에 살얼음이 이는 창문과 테이블의 유리.

     

    “장난꾸러기에게는 벌을 줘야겠지.”

     

    레이브 교수의 눈에 차갑게 벼려낸 번들거렸다.

    우선은 뾰이.

    다음은 오크노디.

    선을 지켜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교수의 분노가 두 학생을 노리기 시작했다.

     

     

    * *

     

     

    “자, 이거야. 어때? 너도 입고 싶지 않아?”

    “음… 나중에! 여름방학에 착용할래!”

    “흐흥. 매출이 늘면 나야 좋지. 입고 싶어 하는 다른 친구들이 있으면 꼭 알려줘.”

     

    뾰이는 약속대로 모브에게 입힐 AAA컵 전용의 비키니아머를 가져왔다.

    땅땅.

    가슴부위를 보호하는 흉갑이 주먹으로 두드려도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이니 내구도는 안심이다.

     

    “이왕 가져온 거 모브한테 직접 전해줄래?”

    “나야 좋지.”

     

    신이 나서 앞장서는 뾰이.

    망토 사이로 쑥쑥 나오는 팔다리와 뒤로 묶은 꽁지머리가 참 씩씩하게도 흔들렸다.

     

    “비키니전사단은 어때? 재밌어?”

    “좋은 사람이 많아! 다들 성격이 밝거든.”

    “그런 차림이면 싫어도 밝아질 수밖에 없긴 하겠네!”

    “너 맞을래?”

    “힝. 미안.”

     

    즈앙이랑 카드놀이를 하다가 너무 압도적으로 이겨버리는 바람에 화가 난 즈앙 앞에서 티토소가가 곧잘 짓곤 하던 불쌍한 표정을 따라해봤다.

    한번 봐준다며 금방 화를 푸는 뾰이.

    티토소가가 이 표정을 자주 짓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음엔 힝잉잉 표정도 따라해봐야지!

     

    “다 왔어!”

    “헤에. 굉장하네. 여자애가 남자들도 드나드는 공용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니. 진지하게 기사학부를 노리나봐?”

    “응? 여자 아닌데?”

    “어?”

    “응?”

    “어? 왜? 어째서 여자가 아닌데?”

     

    예상 못한 입력어에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삐걱거리는 뾰이.

     

    “아~ 알았다!”

     

    논리오류를 찾아 수정하는 디버깅이 완료되었는지 뾰이의 눈에 다시 생기가 감돌았다.

     

    “여자처럼 귀여운 남자애 맞지? 가끔 있더라고. 남자인데도 비키니아머를 입는 사람이. 너무 여자처럼 생겨서 헷갈려서 입힌 경우라고 선배들한테 들었어!”

    “우와. 그런 경우도 있어?”

    “응응. 선배들은 심화과정? 고급취향? 그런 소리를 하던데 애들한텐 아직 이르다고 나한테는 남성한테 비키니아머를 입히는 걸 허락 안한 거 있지?”

    “치사하네~. 회피율 100이 아무데서나 얻을 수 있는 수치도 아닌데.”

    “응?”

    “어?”

    “응?”

     

    또 한 번 고장 났던 뾰이가 고개를 붕붕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치. 너랑 얘기하면 자꾸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들어. 그 모브라는 애가 어디 있는지나 알려줘. 아니다. 내가 찾아볼게.”

     

    음.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하던 뾰이가 침이 묻어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기구에 앉아 숄더프레스를 하던 남성을 가리켰다.

     

    “저기 쟤 맞지? 남자치고 머리 긴 애. 헤에. 취향이 제법이잖아. 금발에 미남이라니.”

    “저 사람은 모브가 아니라 안데르센 대공자야!”

    “뭐야. 진짜 귀공자였어? 칫. 너무 거물이네. 아니어도 한 번 입혀볼까 생각했었는데.”

     

    숄더프레스를 하던 안데르센이 갑자기 흠칫 놀라며 기구에서 일어나 주변을 경계했다.

    <어디서나 잘 자기> 강의로 단련된 기감이 자신을 노리는 포식자의 기척을 읽어냈나보다.

     

    “그럼 저쪽의 냉미남이야? 머리도 길고 마른 체형에 위험한 분위기가 거슬리기는 해도… 으음. 오히려 저런 사람을 비키니아머 타락시키면 더 짜릿하겠어!”

    “저 사람은 싱이야! 손버릇이 나쁜 동방검객이니까 잘못 권유하면 죽을지도 모를걸?”

    “에엣. 그런 위험한 사람은 무리잖아.”

     

    제 이름이 불린 싱이 원 핑거 푸쉬업One finger Push-up을 하다가 째릿 이쪽을 노려봤다.

    안데르센 대공자와 달리 자신을 노리는 기척을 정확히 읽어내는 솜씨에서 과연 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모브는 저기에 있어!”

    “…저거, 흑기사잖아. 맨날 새카만 깡통갑옷 안에 들어가 있는 이상한 사람.”

    “풋. 모브 별명이 흑기사야?”

    “니 친구 별명도 몰라?”

    “친구가 너무 많아서 다는 몰라!”

    “…흥. 짜증나니까 빨리 주고 돌아갈래.”

    “그래도 여기서 주는 건 좀 미안하니까 탈의실에 들어가서 주자!”

     

    내 딴에는 나름의 배려를 해주었다.

    비키니아머를 입는 것부터 수치는 확정이지만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단련실에서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보여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모브! 잠깐 이리 와봐.”

    “어어? 옆에 있는 사람은 차림새가 왜 저래?”

    “너한테 듣고 싶지는 않거든?”

    “그렇대! 됐으니까 빨리 따라와봐.”

    “으아앗, 질질 끌고 가지 마! 내 발로 갈 테니까, 내 발로 걸어서 갈 테니까!”

     

    갑옷의 중량에 적응하고 벤치프레스까지 하던 모브를 끄집어내고는 탈의실로 질질 끌고 갔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만 운동 중에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서 그런 거겠지?

     

     

    * *

     

     

    오크노디가 나타났다.

    싱의 예민한 기감은 그녀뿐만 아니라 오크노디의 머리 위에 나타나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쥐고 트윈테일을 만들며 노는 동생에게도 향했다.

    애가 대범한건지, 귀신이라 겁이 없는 건지.

    남들 눈에 들키면 퇴마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자각도 없이 참 엄청난 짓을 저지른다.

    다행히 옆에 비키니아머에 망토라는 굉장한 변태차림의 여학생이 모든 시선을 다 끌어서 망정이지, 싱은 내심 가슴을 졸였다.

     

    “근데 쟤들은 왜 온 거야?”

    “운동하러 왔나?”

    “아닌데? 흑기사 녀석을 끌고 가고 있잖아.”

     

    운동을 하던 남학생들은 세 사람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쭉 따라갔다.

     

    <남자탈의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오크노디.

    문턱에 덜컹 어깨가 걸려서 아야야 비명을 지르는 흑기사 모브.

    마지막으로 손인사를 하며 안뇽~ 하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손인사를 하고 문을 쏙 닫아버리는 비키니아머 여전사까지.

     

    “…저 자식, 여자 둘이랑 남자탈의실 안에서 뭘 하는 거야!?”

    “상대는 어린애에 비키니아머 전사라고!”

    “제기랄. 저 부러운 녀석.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저런 조합에 어울릴 수 있는 거지!?”

     

    폭발하는 남성들의 질투심에 싱은 코웃음을 쳤다.

    저 괴물꼬맹이가 대낮부터 남자와 그런 짓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분명 터무니없는 짓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탈의실 문 앞으로 슬금슬금 모여드는 남학생들.

     

    “거기까지다.”

    “네가 뭔데 방해를… 허억!”

    “윽. 하필이면 싱 저 자식이 버티고 서다니.”

    “탈의실의 이용은 잠시 뒤로 미뤄라. 오크노디가 나오면 그때는 출입을 허가하지.”

    “네가 뭔데 공용시설의 이용을 막는 건데!”

    “맞아. 애초에 남자탈의실에 들어간 여자가 잘못한 거잖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건 여자들 잘못이라고!”

     

    눈까지 충혈 되어서 소리치는 녀석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심상치 않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변태들의 헛소리야 귓전으로 흘려들었지만 자신의 오크노디의 무엇이냐는 물음은 조금 신경 쓰였다.

    정말로 뭘까.

    나와 오크노디의 관계는.

    한 마디로는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관계였다.

     

    여동생 린이 귀신이라는 비밀을 지키는 관계.

    졸업 후에는 함께 동방으로 향해 복수를 도와줄 자.

    이를 위해 조력을 약속한 사이.

     

    검사에게는 그런 복잡한 관계를 칼 같이 정리하는 논리력이 있다.

    싱은 자신의 논리가 정의하는 관계를 드러냈다.

     

    “오크노디는… 나의 운명공동체다.”

    “뭐어어!?”

     

    느닷없이 싱의 입에서 나온 운명공동체 이슈 앞에서 체력단련실의 학생들은 생각했다.

    오늘 운동은 다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남성향 맞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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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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