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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

       어느덧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날이 쌀쌀해지자 사람들은 내의를 껴입었다. 나 또한 로테가 준 목도리를 자의로 두르고 다녔다.

       ​

       기온이 내려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

       때가 다가오고 있다.

       ​

       작고의 때가.

       ​

       “감기 걸리지 말고. 나 없는 동안 잘 있어야 한다?”

       “애 아니라니까.”

       ​

       일리야드 아카데미가 반파된 지 거의 1개월.

       ​

       카우렐리아에서의 습격 소식으로 인해 교환학생 취소 여부를 고민하던 로테는 큰 마음을 먹고 엘프국으로 향하는 기차에 발을 내디뎠다.

       ​

       우리는 서로 아쉬워하며 몇 번이고 포옹을 나누었다. 정신이 남자였던 나로서는 머쓱한 인사였다.

       ​

       “머리 관리 잘하고, 아침마다 이부자리 정리하는 거 잊지 말고, 바쁘다고 밤새우지 말고, 그리고 또…….”

       “아, 알았다니까.”

       ​

       그렇게 로테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서, 기차가 소실점을 향해 사라질 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지평선을 바라보다가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요. 영원히 못 보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

       그래, 그렇겠지.

       ​

       어쨌거나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

       예술제 다음에는 두 이벤트가 존재한다.

       ​

       발명대회, 그리고 소논문 경진대회.

       ​

       두 대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쪽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낸 학생들은 대개 다른 쪽에도 출사표를 던진 모양이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새로이 발명한다는 건 그에 관련한 특허를 제출한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특허 관련된 것이야말로 몇 쪽짜리 소논문으로 쓰기에 적합한 주제였다.

       ​

       [역시, 소논문 쓰실 건가요?]

       ​

       “당연하지.”

       ​

       논문 쓰는 거 너무 좋아. 하나도 안 질려, 늘 새로워.

       ​

       물론 발명대회에 참가하는 건 이런 감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

       “야.”

       ​

       기차역에서 같이 돌아온 버멜이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

       “발명대회 빌미로 뭐 좀 만들어줄 수 있어?”

       ​

       곧바로 만들 게 생겼다.

       ​

       ​

       **

       ​

       ​

       “헤헤, 끗내준다아…….”

       ​

       쾅!

       ​

       술에 취한 프레이를 옆구리에 안은 채 동아리방 문을 발로 찼다.

       ​

       “대낮부터 얼마나 마셔댄 거야?”

       “모올라아앗……!”

       ​

       혀까지 꼬인 걸 보아하니 이미 글렀다.

       ​

       은은한 술기운이 물먹인 한지처럼 공기를 적셔나간다. 알딸딸한 알코올 향해 나까지 정신이 몽롱해진다.

       

       술에 약한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

       “…치얼스!”

       “치얼스는 개뿔이.”

       “나 코 잘래에….”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요, 꼬맹아.”

       ​

       프레이는 반쯤 감긴 눈으로 계속 칭얼거렸다. 꼬맹이라는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실 쪼개는 것을 보아하니 제대로 취했다. 이래서야 개박하에 놀아나는 고양이나 다름없었다.

       ​

       프레이는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자세로 팔을 쭉 뻗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자칫하면 모자가 어긋나서 여우귀가 보일 수 있는 상태였다.

       ​

       비록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나는 슬쩍 벗겨지려는 모자를 붙들어서 잘 씌워주었다.

       ​

       “그래, 오늘은 나 혼자서 한다.”

       ​

       예술제에 출품한 원자폭탄이 대상을 타 버렸으니 발명대회에는 다른 걸 제출해야 한다.

       ​

       발명대회로 얻을 수 있는 건 마석. 그렇게 매력적인 보상은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

       어차피 상금을 기대하고 나가는 게 아니다.

       ​

       지금 나에게는 돈보다 먼저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인망과 명예였다.

       ​

       작금의 입장을 헤아려볼 때, 이 두 가지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변수를 최대한 줄여두려면 에토스로 포석을 깔아두어야 한다.

       ​

       발명대회는 인망과 명예를 쌓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전장이다. 우승이든 준우승이든, 만들어낸 것의 특허를 포기하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층 더 포근해질 것이다.

       ​

       플레어를 만들었을 때가 그러했고, 모기 방지 스크롤을 만들었을 때도 그러했다. 이미 몇몇 사람에게 나는 ‘착한 사람’이었다.

       ​

       그래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

       더 많은 사람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그래야만 뒤탈이 없다.

       ​

       로즈마리는 그날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틀림없이 마왕성에 가서 1석이나 아카샤에게 내가 만든 걸 보여주며 자랑하고 있을 터.

       ​

       그 사이에 끝내야 한다. 나는 비품실로 들어가 남은 물품을 꺼냈다.

       ​

       그중에는 던전 탐색 실습 때 가져온 펜릴의 창자도 있었다. 말이 창자지, 커다란 솔레노이드에 불과하다.

       ​

       전기 전도성을 포함하여 이것저것 테스트한 결과 고품질의 물건이었다.

       ​

       “EMP 발생원으로 쓰기엔 딱이야.”

       ​

       [펄스 가동기를 만들게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다른 누구도 아닌 버멜의 요구다. 빙의자의 부탁은 들어줄 수 있는 만큼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이 술술 풀리지.

       ​

       어쨌거나 난 미래를 전부 모르고, 이 세상의 공략법을 실타래처럼 줄줄 꿰고 있는 건 녀석이니까. 마왕을 잡을 때까지 우리 둘이 협력하여 움직인다는 계약은 변하지 않았다.

       ​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

       [새 아이템을 작성합니다.]

       ​

       나는 양장본을 펼치며 도안을 그려냈다. 토카막과 원자폭탄을 거쳐 쌓아 올린 경험 덕분에 작성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무엇보다.

       ​

       [현재 ‘자유연성’의 숙련도는 78%입니다.]

       ​

       숙련도로 습득 여부를 판별하는 최상급 지계마도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고된 연습의 성과였다.

       ​

       아무튼.

       ​

       [비핵 EMP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

       [1. 코일에 순간적인 대규모 전류를 흘리기]

       [2. 큰 전류가 흐르는 코일을 폭파하기(일회용)]

       ​

       솔레노이드를 감고 전류를 흘린다고 해서 우수한 EMP가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회로 파괴 역할은 할 수 있다.

       ​

       버멜이 주문한 건 딱 그 정도였다. 회로가 전부 드러난 마수를 상대로 치명타를 먹일 만한 펄스 발생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

       아무래도 겨울방학 때의 이야기겠지.

       ​

       시간상의 이유로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겨울방학 전후로 보스전이 있다고 한다. 이는 그걸 대비하기 위한 장치이다.

       ​

       핵물리학도에게 너무한 주문인가 싶었지만, 이 몸의 원주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쉬운 일이다.

       ​

       어차피 시간은 널널하다. 두 달 남짓이다.

       ​

       그렇게 발명품 초안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

       덜컥, 하고 문이 열리며 엘프 셋이 부리나케 뛰쳐 들어왔다.

       ​

       “야, 큰일났어!”

       ​

       독사에게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한 표정이었다. 세 엘프의 안색을 살피던 내 표정이 곧 밋밋하게 변했다.

       ​

       금안족 특유의 포커페이스가 발동한 건 아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워낙 별거 아니었기 때문이다.

       ​

       “방금 불의 로스스톤이 박물관에 들어왔어요!”

       ​

       로드스톤.

       ​

       대전쟁에서 패배한 마왕의 사념 일부가 갇혀 있는 돌덩어리.

       ​

       동시에, 과거에 여신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1+2 행사로 봉인된 두 사천(四天)의 혼령까지 섞여 있는 흉물이다.

       ​

       아니, 내 입으로 흉물이라 할 건 못 되지만.

       ​

       “삿된 기운이 너무 심해. 저긴 못 있겠어.”

       “토악질 나올 것 같아요…….”

       “잠시 여기 대피해 있을게. 다른 데 갈 곳이 없어서 그래.”

       ​

       마왕의 기운이 남아있으니 대부분의 정령이 경기를 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그 정령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세 엘프도 마찬가지일 테고.

       ​

       그나저나 로드스톤이라니.

       ​

       이 몸으로도 본 기억이 없었다.

       ​

       호기심이 동한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등 뒤로 가지 말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다고 멈추어 설 내가 아니었다.

       ​

       내가 있는 동아리방은 교내 박물관으로부터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 가는 데에만 10분 가까이 걸렸다.

       ​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온갖 쇠사슬과 마력석으로 꽁꽁 싸맨 돌이 시야에 들어왔다.

       ​

       전고는 5m가 조금 넘는다. 내가 만든 원폭보다 살짝 크다.

       ​

       그 주변으로 이사장이고 학생들이고 죄다 몰려있다. 마왕을 봉인해 놓은 물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을 테니까.

       ​

       [예상대로네요. 정령을 사역하는 엘프들은 거의 안 보여요.]

       ​

       로드스톤은 코치닐처럼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메스꺼움이 올라올 정도였다.

       ​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었다. 사기(邪氣)였다.

       ​

       – 주군께서 원하신다.

       ​

       나는 반사적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관리 인력이 인챈트 처리한 천으로 로드스톤을 감싸자 그나마 괜찮아졌다.

       ​

       “방금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로드스톤은 모든 면이 비대칭성을 갖고 있습니다. 지계마도사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의도된 것이라고 하네요.”

       ​

       익숙한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로베스피에르가 학생들에게 로드스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

       한참 떠들던 이사장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관리 인력을 박물관 내부로 들여보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

       그가 샐긋 웃으며 다가왔다.

       ​

       반가움, 동시에 지난함.

       ​

       두 감정이 그의 눈동자에 교대로 나타난다.

       ​

       “에테르 양.”

       ​

       그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

       “저번에 얘기한 건 완성했습니까?”

       “네.”

       ​

       나는 그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

       “물론 약속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플레어를 소형화하여 그에게 넘기겠다는 약속이었다.

       ​

       그 대가로 나는 수많은 연구자금과 물품, 그리고 2학기 등록금 면제라는 혜택을 선불로 받았다. 남은 채무는 나에게만 있었다.

       ​

       “혹시 너무 늦었나요?”

       “당치도 않습니다.”

       “하나 준비해 놓았어요. 여기.”

       ​

       손을 코트 깊숙한 곳으로 찔러넣었다. 레이저 포인터만한 크기의 은색 원통이 튀어나왔다.

       ​

       “플레어인가요?”

       “그것보다 셀 겁니다.”

       ​

       이사장은 잇새가 다 보일 정도로 웃었다.

       ​

       “혹시 더 없습니까?”

       “카이뤼삭 교수님 연구실에 설계도면과 시제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분에게 가서 부탁하면 주실 거예요.”

       ​

       말을 끝마치자마자 로베스피에르는 카이뤼삭의 연구실이 있는 방향으로 부리나케 뛰어가려 했다.

       ​

       “이사장님.”

       “음, 왜 그러죠?”

       ​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

       “…혹시라도 거사를 치르실 생각이시라면, 겨울방학 이후로 날을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흐음…?”

       “학업을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

       이사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

       그러고는 이전보다 더 빠른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나는 이사장의 신형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앞섶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

       내 시선이 박물관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

       “이상하네.”

       ​

       로드스톤이 도착했는데도 로즈마리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

       틀림없이 뒤에서 뭔가 수작질하고 있을 텐데…….

       ​

       그리 생각하던 참이었다.

       ​

       “호외요, 호외!”

       “……응?”

       ​

       약삭빠른 신문부원 하나가 대로변을 뛰어다니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

       “1황자께서 풀려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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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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