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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처음에는 말려야 하나 싶었다.

        

       실제로 몸을 조금 일으키기도 했고,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속으로 ‘다시!’를 외칠까 고민하기까지 했지만—

        

       글쎄, 내가 만약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앨리스가 의자를 던지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까?

        

       상황을 이미 알고 있던 내가 들어도— 게다가 남자로 꽤 길게 살아봤던 내가 들어도 기분이 더러운데, 아직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가진 십 대 소녀가 그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는 쪽이 더 이상했다.

        

       의자 던지는 걸 막으면 곧장 자기 몸이라도 날리겠지.

        

       원작에서 레오는 남작가의 아들이었고, 그렇기에 공작위를 세습 받지는 못하더라도 공작과 꽤 가까운 친척인 조지 린드버러를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다만 여러 증거를 수집해 은근히 압박하여 로티의 어머니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었을 뿐.

        

       흠.

        

       나는 앨리스에게 걷어차이며 신음하는 조지 린드버러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공작가 사람을 막 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도 로티한테 기사 작위를 내리기 위한 밑작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황녀님.”

        

       내가 앨리스를 불렀지만, 앨리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앨리스.”

        

       다시 발을 들어 올리는 앨리스의 이름을 부르자, 앨리스는 그제야 몸을 멈췄다.

        

       “지금은 그쯤 해두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행히 응접실은 방음이 잘되기라도 하는지, 이 안에서 벌어진 이 일을 하인들이 눈치채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눈치채는 것도 금방이긴 하겠지만.

        

       나는 몸을 살짝 앞으로 숙여서 조지 린드버러의 상태를 보았다.

        

       운 나쁘게도 날아온 의자의 각진 부분에 맞은 듯 머리가 살짝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오른쪽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입술도 터지긴 했지만, 그 안쪽의 이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니 그쪽도 이미 걷어차인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누가 죽어 나간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앞으로 황실과 공작가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 때, 이게 빚으로 달릴 수도 있으니까요.”

        

       대우를 보면 린드버러 공작이 조지 린드버러를 딱히 아끼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가문의 장으로서 가문 구성원이 당한 일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조지 린드버러 본인이 입은 상처가 문제가 아니다. 린드버러 공작가의 이름이 입은 상처가 문제라는 뜻이지.

        

       “리디아…… 아니, ‘아샤’에 대한 건은, 사실 당신에게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아샤’는 리디아의 본명이다. 제국이 남대륙을 식민지화했을 때 성씨를 없애고 이름도 제국어로 통일시키며 생긴 이름이 바로 ‘리디아’였고.

        

       뭐, 저 인간은 관심도 없었겠지만.

        

       내 말에 조지 린드버러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사실 아샤는 원래부터 자유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나라는, 그러니까 제국의 법령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외부 영토와 식민지에는 노예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모든 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빚을 돈으로 갚을 능력이 없기에 노동으로 대체하고 있을 뿐 아닙니까?”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지금 여기 있는 이 돈은, 굳이 당신에게 줄 필요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혹시라도 아샤에게 직접 주었다가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몰라 저희가 대신 전해주러 왔을 뿐.”

        

       갑자기 생긴 거금을 아샤가 어떻게 관리할지도 알 수 없고, 무엇보다 그 저택의 다른 백인 하녀와 하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인간의 본성은 피부색과는 상관없는 것이니까. 자기보다 더 약한 이가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면 당당하게 빼앗으려는 인간이 나타날 거고, 그런 인간이 하나 나오면 그걸 따라 하는 인간들이 뒤로 줄줄이 이어질 거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아샤의 빚이 일단은 당신에게 묶여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당신을 찾아왔지만, 사실 굳이 당신을 찾아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샤에게 직접 주지 않는다 쳐도, 바로 공작에게 가서 거래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공작이 온갖 이유를 가져다 대고 자기 저택으로 아샤의 자리를 옮겨버린 것이 이 인간의 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 아이가 로티 하나로 끝나지 않았을지 모르지.

        

       “…….”

        

       조지 린드버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샤가 법적으로는 자유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샤가 당한 일에 대한 재판도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그렇다. 어쨌거나 이 나라에 노예는 없으니까.

        

       애초에 노예제가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온갖 복잡한 핑계를 대면서 사람을 차별할 이유가 없다. 이미 노예제가 있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문명화되고 잘난 나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겠는가.

        

       제국인과 이 땅에서 핍박받던 이들로 이루어진 식민지 경찰은 식민지인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순순히 사건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식민지 원주민 사이의 일이라면 모를까, 만약 제국인과 식민지 원주민 사이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무조건 제국인 편이다.

        

       하지만, 만약 그 법적인 순서를 황실이 직접 나와 따지게 된다면 어떨까.

        

       귀족들은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할지 모르겠지만……

        

       …….

        

       반발하면 뭐 어쩔 건데.

        

       “그러니, 그냥 이 돈을 받고 조용히 물러나 주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공작가에 엄청난 스캔들이 일어날 겁니다. 안 그래도 앞으로 일어날 스캔들에 대비 중인 공작이신데, 그 전에 당신이 직접 그런 일을 터뜨리면 정말 좋아하시겠네요.”

        

       공자 제이크와 식민지 원주민의 피가 섞인 로티의 약혼, 혹은 결혼.

        

       그 자체로 굉장한 스캔들이 되겠지만, 공작이 내 이야기를 듣고 일단 허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티에게도 린드버러의 피가 반은 흐르기 때문이다. ‘완전한’ 원주민은 아니었기에 허락받을 수 있었단 소리다.

        

       나와 대화할 때는 나름대로 여유 있는 태도였지만, 그렇게까지 양보하게 된 것도 상대가 ‘나’였기 때문이다. 레오 같은 하급 귀족이 가서 말했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 소식만으로 린드버러라는 이름에 조금 금이 가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차남이나 삼남도 아니고 장차 공작위에 오를 공자가 피부색이 다른 이와 결혼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조금이나마 그 타격을 경감하기 위해 공작은 이미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주로 자기가 그 결혼을 허락함으로써 황실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 암시하는 쪽으로.

        

       그런데, 그 대비가 미처 끝나기 전에 공작의 사촌이 원주민을 강간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스캔들이 터지면.

        

       “…….”

        

       “계속 침묵하시면 긍정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했는데도 조지 린드버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앨리스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 자체는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우리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응접실 문으로 향했다.

        

       “설령 그렇게 저의 사랑을 막아서더라도.”

        

       하지만 뒤쪽에서 들려온 그 소리에 나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이상 말하면, 그때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장담해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발을 옮겨, 바닥에서 겨우 일어나 앉은 조지 린드버러에게 다가갔다.

        

       “제가 나서지 않은 것은, 이미 앨리스가 먼저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괜히 저까지 나서서 당신을 폭행하다가 죽여버리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테니까요.”

        

       내 표정을 보고 뭔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조지 린드버러는 입을 다물었다.

        

       “만약, 당신이, 저의 ‘친우’ 중 하나인 로티의 어머니, 아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왔다가는.”

        

       나는 일부러 말을 잠깐 쉬며 조지 린드버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 앨리스에게 얻어맞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다.

        

       이제야 정신이 들기라도 한 건가? 자신이 진짜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기라도 한 걸까?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건 죽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평생 이 남쪽 땅에 계속 계시지요. 어떤 이유에서건 본국으로 돌아오시면 제가 직접 당신 멱을 따러 가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습니다. ‘부디’ 본국으로 한 번쯤 방문해주시지요. 그때는 제가 ‘직접’ 나서서 맞이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나눌 대상도 따로 준비해두지요. 당신이 아샤에게 했던 것처럼, 제가 제대로 경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있는 자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드리죠.”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그렇게 말했다.

        

       대답은 굳이 기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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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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