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3

    잠시 서율이와 시간을 보낸 뒤, 옷과 속옷을 챙겨 욕실에 들어갔다.

    이젠 나름대로 적응이 된 휘황찬란한 욕실의 내부. 흔히 돈 좀 써야 하는 호텔의 욕실 같은 모습이다.

    하얗고 매끈한 바닥에는 갈색 융단이 깔려있고, 한쪽 벽면에는 기다란 거울이 붙어있다.

    그 아래에는 깨끗하게 관리된 세면대와, 가운과 화장품 등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선반이 있었다.

    선반에 갈아입을 옷을 올려놓고, 입고 있는 옷은 벗었다.

    몸도 되돌렸기에 스승님과 신체훈련도 진행했다.

    사실 오늘은 재활훈련 비슷하게 진행해서 빡세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삐걱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덕분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입고 나간 생활복은 폐품이 되어버렸다.

    물론 의복 자체에 수복과 청결 기능이 달려있고 내가 정화마법도 사용했지만, 생활복은 많았기에 미련 없이 빨래통에 투척했다.

    직후 유리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장치를 조작했다.

    – 솨아아아…

    천장에 달린 해바라기 샤워기에서 따듯한 물이 쏟아졌다.

    [걱정]

    [우려]

    [트라우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손끝을 뻗어 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적당히 따듯한 온도. 그제야 몸을 밀어 넣어 정수리로 몸을 우수수 받아냈다.

    – 푸후우…

    머리카락이 푹 젖어 들고,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곧 유리 칸막이 안쪽은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찼다.

    그 수증기 속에 파묻혀 물줄기를 맞고 있자니 오늘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했다.

    …그래봤자 지금도 분할의식 한구석에선 피로가 누적되고 있지만…

    어찌 됐든 마냥 물을 맞고 있을 수는 없어 손바닥에 샴푸를 쭉 짜냈다.

    기본적으로 구비된 샴푸를 짜내 머리에 비비고, 몸도 바디워시로 낸 거품을 덕지덕지 발라준다.

    – 우우웅…

    이제 물을 뿌릴 차례였는데, 옆에서 푸른색 빛무리가 뿅 튀어나왔다.

    물의 정령이었다. 녀석의 몸체가 짧게 깜빡였다. 샤워기에서 일자로 쏟아지던 물이 자유롭게 움직여 내 몸을 구석구석 씻어주었다.

    ‘오…’

    아주 편안하다. 왜 나왔냐고 묻기도 전에 이어지는 간편한 도움에 슬쩍 별말 없이 몸을 맡겼다.

    덕분에 거품 덜어내기도 금방 끝났다.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와 입욕제도 구비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넘겼다.

    나중에 서율이랑 같이 한번 써볼 생각이다. 노란 오리 인형이라도 둥둥 뛰어주고 같이 입욕하면 좋아할까?

    욕조의 사용은 후일을 기약하며 칸막이 밖으로 나왔다.

    나 잘했지?라고 묻듯 몸체를 비벼오는 물의 정령을 쓰다듬어주고, 길쭉한 수건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까처럼 빛무리가 뿅 튀어나왔다.

    연두색과 빨간색… 바람과 불의 정령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잠시 기다렸다.

    그런 내 기대감에 부응하듯, 적절한 세기의 바람과 따스한 열이 내 몸과 머리카락을 휘감아왔다.

    [편안…]

    들어 올렸던 수건을 슬쩍 내려놓았다.

    리아나 교수가 왜 일상에서 정령을 조심하라고 주의했는지 알겠다.

    가만히 있어도 씻겨주고, 말려주고 따듯하게 해주니 직접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리아나 교수도 이런 심정을 느꼈던 것일까?

    왜 리아나 교수의 방이 어질러져 있는지 이해됐다…

    이러다간 글러먹은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자기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시무룩해하는 다른 속성의 정령들을 달래주며, 도로 수건을 집어 들었다.

    .

    .

    .

    “도련님, 저녁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 부엌을 뒤적이고 있자 서율이의 옆에 있던 에리얼이 후다닥 다가왔다.

    [아, 말씀은 감사합니다]

    [근데 이번엔 제가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도련님께서 요리를…?“

    [네]

    [조금은 할 줄 알거든요]

    에리얼이 눈을 깜빡였다. 내가 요리한다는 것에 의심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우려가 담긴 반응이다.

    [혹시 옆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연화랑 엘리아 님도 곧 오신다고 해서 미리 만들어 두려고요]

    “과연..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달라는 말을 덧붙이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얼. 뭔가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단다.

    홍연화의 뒷바라지 경력이 십 년 이상인 에리얼이다.

    내가 망친다고 해도 요리 실력이 뛰어난 본인이 수습하면 된다는 생각이겠지.

    나도 그를 믿고 도와달라고 한 거다.

    어쨌든, 그리 요청하고서 재료와 도구를 가지런히 꺼냈다.

    메뉴는 별거 없었다.

    그냥 베이컨 볶음밥이랑 크림 파스타… 간단한 수프랑 베이글이 전부니까.

    메뉴가 많은 게 아닌가 싶지만, 일단 서율이를 포함해 대략 4.5명에다가, 4명 전부가 초인이다.

    즉, 섭취하는 양이 일반인보다 훨씬 많다. 당장 보조계열인 엘리아도 밥 한 공기는 거뜬히 해치우니까.

    오히려 적을 수도 있어 많이 만들 예정이다.

    여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손을 다시 깨끗하게 씻고 요리에 착수했다.

    “…?”

    옆에 서있던 에리얼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녀의 시선은 내 등 뒤에서 수많은 갈래로 갈라지는 하늘의 날개깃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상천외한 광경을 보는 듯한 시선 속에서, 하늘의 날개깃을 조작했다.

    갈라진 하늘의 날개깃을 뻗어 도구와 재료를 쥐었다.

    이어지는 재빠른 요리 과정.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하늘의 날개깃들이 재료를 씻고, 다듬었다.

    몇 개의 갈래는 냄비에 물을 올려 끓이고, 하나는 물이 끓을 때쯤 파스타 면을 투하.

    또 다른 갈래는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칠하고 손질해 둔 채소를 볶았다.

    볶음밥의 재료와 양송이수프에 쓸 양파와 양송이도 잘 볶아졌다.

    한쪽에서는 베이글 빵을 자르고, 속을 두툼하게 채우고 빵뚜껑을 덮는 작업을 이행 중.

    그 과정에 정령들도 개입했다. 덕분에 요리 과정이 더욱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워졌다.

    그게 제법 볼거리가 되었는지, 서율이도 내 근처에 다가와 눈을 빛내며 구경하는 중이다.

    [서율아, 가까이 오면 위험해요]

    [조금 떨어져서 볼까요?]

    “넹.“

    [옳지, 착해요]

    요리 중에 바짝 달라붙으려는 서율이에게 작은 주의를 주고, 요리를 이어 나갔다.

    위의 모든 과정은 관측을 통한 계산, 계량을 거치고 진행됐다.

    관측으로 도서관을 뒤적이고 요리 장면을 얼떨결에 살피며 얻어낸 정보. 팔방미인의 숙련도를 힘입자 나름 과정이 괜찮았다.

    솔직히 요리는 레시피만 따라 하면 어지간해서는 먹을 만한 요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을 토대로, 관측으로 불의 세기, 재료와 향신료의 용량, 익히고 삶는 시간 등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옆에 서있던 에리얼이 떨떠름해하며 물었다.

    에리얼 답지 않은 노골적인 감정 표현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

    .

    .

    “와아… 이게 다 뭐야?”

    딱 맞는 타이밍에 일행이 기숙사에 도착했다. 사실 그를 의도하여 요리를 시작한 것은 맞지만, 일단 운이 좋았다.

    식탁을 살핀 홍연화가 입을 쩍 벌렸다. 그녀의 동공이 음식들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고 가며 감탄을 뱉었다.

    [어때요?]

    그 만족스러운 반응에 방긋 미소가 나왔다.

    그녀의 뒤로 성큼 다가서자 퍼뜩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는 홍연화. 그녀의 시선이 내가 갖춰 입은 앞치마를 살폈다.

    “…이거 하율이가 다 한 거야?”

    “예, 제가 손을 보태드리고자 했지만 저는 쓸모도 없더군요.”

    에리얼이 어딘가 분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뭔가 아까부터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다고 느끼고 있자, 홍연화의 눈망울이 감동에 들어찼다.

    그것이 두 눈으로 아주 잘 보였다. 코끝으로 포근한 냄새가 물씬 감돌아서, 지끈거리는 두통이 잦아들 정도다.

    [후후]

    나는 성취감에 가슴을 활짝 폈다.

    – 정말 돌아왔구나? 다행이야… 응, 지금도 좋다. 어린 모습도 좋지만… 그건 너무 죄책감이 들었어. 오늘은 같이 자자

    아까 현관에서도 내가 정상으로 돌아왔음에 크게 안도한 홍연화는 나를 꽉 끌어안아 주기도 했다.

    –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 모습도 귀엽네요!

    엘리아도 낯간지러운 말을 하면서도 축하해줬고.

    “어? 베이글도 했어요?”

    [네]

    [영국에서 베이글도 먹는다길래, 레시피 보고 따라 해봤어요]

    “와! 저 이거 엄청 좋아해서 갈 때마다 먹었는데!”

    뒤따라 들어온 엘리아도 손뼉을 치며 벌써부터 기쁨을 드러냈다.

    아직 입도 대지 않았으면서 기대해 주는 모습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흐흐흥]

    자꾸만 이어지는 칭찬과 감탄에 입꼬리가 헤실거렸다.

    “정말 원래대로 돌아오셨네요? 축하드려요!”

    다른 목소리도 끼어들었다. 

    물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들어선 백아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네, 방금 막 만들었어요]

    [그런데 백아린 님은 왜 오셨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어디쯤 도착했을까 관측할 때부터 의아했던 점을 이제서야 물었다.

    “헉! 하율 씨 발언이 너무 매몰차게 들려요… 저희 사이에 그냥 놀러 올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내 물음에 백아린은 호들갑을 떨며 대꾸했다.

    흑흑 인위적인 울음소리를 흘리더니, 눈물을 닦는 양 눈가를 훔치기까지.

    표정이 절로 떠름해졌다.

    “아하하! 표정 봐… 알았어요. 장난은 그만 칠게요. 혹시 얻어먹고 가면 실례일까요?”

    키득키득 흘리던 웃음을 멈춘 백아린이 돌연 물어왔다. 그 물음에 나는 잠시 식탁을 관측했다.

    양은 일부러 넉넉하게 해둔 참이다.

    백아린 한 명이 끼어든다고 부족할 양은 아니다.

    [양은 충분해요]

    [같이 먹어요]

    “고마워요! 나중에 제 쪽에서도 보답할게요!”

    백아린은 맑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물론 딱히 양이 부족해도, 내가 먹을 몫을 줄이든 더 음식을 차리든 같이 먹자고 했을 거다.

    무엇보다 백아린에게 받은 것이 많으니까. 또 며칠 전만 해도…

    – [아린도 젖 안 나와요?]

    – 나중에 나올걸─

    [끄으윽…]

    느닷없이 뇌리에 재생되는 기록에 머리를 움켜잡고 허리를 숙였다. 주변 사람이 화들짝 놀라 내게 달라붙었다.

    그 모두가 후회스러운 기억의 당사자들이었다.

    [수치심]

    [격렬한 후회]

    주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더욱 가슴이 후벼파였다…

    .

    .

    .

    저녁상은 오순도순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거실에 틀어둔 tv에서는 언제 적인지 모를 예능 프로그램 음성이 흘러나오고, 식탁 위로는 연신 달깍이는 식기 소리가 울렸다.

    슬쩍 살펴보니 다른 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홍연화는 볶음밥을 선호했다.

    야채랑 베이컨, 향신료를 넣은 간단한 볶음밥인데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다.

    불의 정령이 불길을 조율해 준 볶음밥은 뭔가 다른 걸까?

    호기심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맛볼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엘리아는 주로 베이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베이글은 두 종류로 만들었다.

    베이글을 가로로 자르고,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빵에 싱싱한 연어살과 토마토를 끼운 종류.

    염장 소고기에 머스터드를 뿌리고 빵 사이에 끼워 만든 종류… 해서 총 두 가지.

    소고기를 끼운 쪽이 흔히 말하는 런던 식이라고 하던가? 혹시 몰라서 연어 쪽도 준비했는데, 다행히 두 종류 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다.

    사실 이쪽은 크게 조리할 것이 없어 조미료랑 치즈를 조금 수정한 것밖에 없다.

    영국에서 흔히 저렇게 먹는다는데, 그쪽 출신인 엘리아의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백아린과 에리얼은… 크림 파스타를 선호하는 기색이다.

    크림 파스타도 크게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정석대로 만들고, 베이컨을 넉넉히 넣은 게 전부다.

    에리얼은 나중에 따로 먹겠다며 사양했지만, 같이 먹자고 부탁해 결국 한 식탁에서 먹게 되었다.

    “와, 개맛있어…”

    “정말로요. 런던에서 사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흐흐흥]

    다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가슴 한편에 남아있던 불안감이 씻겨 내려갔다.

    제아무리 관측의 권능으로 실패하진 않았다고 생각했고, 모든 음식이 팔방미인의 보정으로 더 맛있기는 하겠지만… 실제 사람의 입맛은 어떨지 모르니까.

    하지만 이젠 그런 불안감이 사라졌다. 더부룩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에, 나도 방긋 웃으며 기계적으로 수저를 움직였다.

    “그럼 하율 씨도 이제부터 입탑 준비하시는 거예요?”

    한창 볶음밥을 섭취하던 중.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내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백아린이 돌연 입탑을 거론해 왔다.

    [네, 정보는 전해 들었으니까]

    [그전에 정상으로 돌아온 몸에 적응하려구요]

    열심히 밥을 씹는 입 대신 목걸이가 대답했다.

    “벌써 입탑이야? 다음 주부터였나?”

    “응응. 1학기 때랑 똑같이 월부터 금까지 5일 동안.”

    벌써 입탑 시기가 도래했다. 덕분에 리아나 교수와 스승님도 바빠져서 저녁 식사를 권유했음에도 시간을 내지 못하셨다.

    흡사 피눈물을 흘리듯 억울해하는 스승님과, 무척 아쉬워하던 리아나 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선했다.

    그에 슬쩍 냉장고의 내용물을 관측했다.

    ‘재료는 넉넉하네.’

    다행히 재료는 충분했다.

    따로 더 만들어서 다음에 전해드려야지.

    그러고 보니 리아나 교수에게는 학기 초에 샌드위치를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엔 그 답례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관조… 구현된 자신과의 대결이었나요? 저번처럼 다른 생도들한테 쫓길 일은 없겠네요.”

    “대신 다른 어려움도 많을 테니 준비도 많이 해야겠죠.”

    “근데 준비하면 할수록 시련이 어려워지는 게 묘하네요.”

    대화를 슬쩍 듣자 하니 각자 입탑을 철저히 준비하는 모양이다.

    나도 준비는 열심히 하고 있었다.

    덕분에 머리가 좀 피곤했지만, 밥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수련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서율이? 아~]

    “앙…”

    “……”

    그렇게 서율이를 보살피며 식사하고 있자, 홍연화가 이쪽을 슬쩍 곁눈질로 살폈다.

    홍연화는 잠시 본인 몫의 수프와 서율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수저로 수프를 떠서 천천히 서율이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무척 어색해 보이는 태도.

    서율이는 인상을 구기며 입을 다물었다. 홍연화가 애써가며 호감작을 시도했지만, 서율이가 홍연화에게 가지는 영문 모를 벽은 굳건했다.

    그 모습에 저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나중에 어, 엄마가 될 사람하고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러면서도 엘리아나 리아나 교수 등에게는 나름 잘 따르고 있으니…

    오늘도 고민이 깊어졌다.

    두통을 애써 무시하며, 수프를 호호 불어 서율이에게 먹여주었다.

    * * *

    토너먼트에서 이하율에게 당한 처참한 패배.

    기량으로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처참하게 털린 것도 모자라, 나름대로 용써가며 이룬 확장능력을 단번에 간파한 것도 모자라 베껴지는 충격적인 경험.

    솔직히 허탈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학기 초의 패배를 가지고 놀려먹을 때는 언제고, 진심으로 걱정해 오는 주변 동기부터.

    그 까칠한 아틸라가 아닌 척 위해주는 것만 생각해도, 주변에서도 에이든이 얼마나 상심을 느꼈을지 걱정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에이든은 금방 떨쳐냈다.

    애당초 특례입학생이 자신과는 수준이 다른 잠재력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던가.

    사실 이제 와서 절망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충격받고 상심한 것도 맞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애당초 나랑 같은 비교선상이 아니었다.

    사실 학기 초에 붙은 대련이 에이든이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현자였다는 평을 듣는 마당이다. 이젠 이하율과의 차이는 너무 벌어졌다.

    그런 마인드 덕분에 에이든은 괜히 재능 차이를 씨근거리며, 토너먼트 패배 다음 날부터 묵묵히 훈련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 에이든이 이상한 것을 발견한 건 방학 말쯤부터였다.

    – 퍼벙!

    – 콰가가앙!

    늘 방문하는 훈련시설.

    막 훈련을 마치고 목에 차가운 수건을 매단 채로 1층을 지나던 중 들려오는 폭음에 에이든은 고개를 기울였다.

    “대체 뭐지?”

    폭음이 들리는 방문 앞에 다가갔다. 머리 남짓에 달린 창문에 눈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보안장치 덕분에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미세한 폭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당초 훈련시설이니만큼, 훈련 과정에서 폭음이 새는 경우도 있다.

    특히 공격마법은 소음이 크니까, 미세하게나마 들릴 법했다.

    – 콰가가강!

    “…언제까지 저러는 거야?”

    이상한 점은 있었다.

    방학 말부터 이 훈련방에 불이 들어왔다.

    아침 일찍 도착한 에이든은 누가 쓰고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해가 넘어간 늦은 밤에 터덜터덜 나오며,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훈련방의 모습에 나지막이 감탄하며 그냥 지나쳤다.

    다음 날 아침에도 불이 켜져 있다.

    해가 떨어진 밤에도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

    …낮밤이 바뀌어 새벽에 도착해도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

    호기심이 들어 한동안 살펴봤는데, 저길 출입하는 사람이 없다.

    저기에 전세를 내고 누가 들어가 있는 듯,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거기까지도 그냥 넘겼다.

    어차피 방학인데, 누가 틀어박혀 폐관 수련 비슷하게 할 수도 있지.

    그저 그런 의지에 감탄하며 나도 분발해야겠다며 다짐할 뿐이었다.

    – 퍼버벙!

    미세한 폭음이 또 들려왔다.

    앞쪽에서 들리지 않았다.

    에이든은 떨떠름하니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훈련실도 불이 켜져 있고, 미세한 폭음이 들리고 있다.

    – 콰아아앙!

    그 옆에도.

    – 콰자자작!

    그 앞쪽에도…

    사람의 출입은 없지만 불은 항상 켜져 있고, 미세한 소음이 흘러나오는 기이한 방이 어느 순간 6곳으로 불어나 있었다.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커뮤니티에서 이상 현상 목격담이 자주 떠오르곤 했다.

    사람없는 도서관에서 갑자기 책이 저 혼자 떨어지거나, 가만히 놓여있던 무기가 멋대로 덜그럭거린다거나…

    오류인가 싶어 시요람 행정부에 문의해 봤지만, 정상작동 중이라는 답변을 받을 뿐이었다.

    “…모르겠다.”

    에이든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폐관 수련하는 생도가 6명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도 있다.

    뭐 귀신이… 영체형 몬스터가 기어들어 와서 수련하는 건 아닐 테고…

    에이든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선작과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원동력이 됩니다!

    +

    얀카 님의 200코인 후원!
    며칠 전에 ‘나데나데’ 태그를 추가했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그쪽이 맞고, 그런 의도로 적어 내린 글도 맞기에 슬쩍 추가해 봤습니다. 헤헤…
    그, 그나저나 읍읍 태그라니… 저는 그런거 모릅니다!!!
    거액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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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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