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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놈이 왔다. 

       

       지금 바로, 문밖이다.

       

       놈이 누군지는 모른다. 신문팔이일 수도 있고, 유리에게 들이대 보려는 수컷일 수도 있고, 말살대 동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인물이더라도 내게는 독으로 작용할 거다. 신문에는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길 테고, 동료라면 ‘저 녀석, 흑마법사야’ 하고 기습 규탄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배제하는 편이 안전하다. 다행히도 이 세계는 허술하고, 여왕의 NPC 제작 능력은 세련되지 못하다.

       

       유리의 저택으로 진입하는 문의 손잡이에는 정보 폭탄을 설치해 두었다. 그래. 가지고 온 정보 폭탄 중에서 조금 떼어 사용했다.

       

       문 앞까지 왔다. 기척을 느낀다. 나는 덫을 바라보는 사냥꾼의 심정으로 슬며시 웃었다.

       

       똑똑똑.

       

       놈이 노크한다. 유리가 반응한다.

       

       “⋯⋯사람? 연락은 따로 받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너한테 들이댄다는 놈팽이 아니야? 내가 쫓아내고 올까?”

       

       “됐습니다. 그 비실비실한 몸으로 어떻게 쫓아낸다는 말입니까? 급한 연락이 온 걸 수도 있고⋯⋯ 만약 발정난 수캐 놈이라면, 당신 친구로 만들어주고 오겠습니다.”

       

       원시적 체외 충격파 수술을 통해서 고자로 만들겠다는 소린가. 나는 덤덤하게 덧붙였다.

       

       “나는 안 서는 거지 없는 게 아닌데.”

       

       “⋯⋯안 물어봤어요. 제발, 안 물어봤다고요!!”

       

       살짝 찌르니까 유리가 펄쩍 뛴다. 그녀의 주의가 내게로 쏠리는 그 순간에, 손가락을 튕긴다. 정보 폭탄을 작동시킨다.

       

       틱.

       

       작은 폭발과 함께 악성 정보가 쏘아진다.

       

       아마도 그 모습은, 손잡이로부터 뻗어 나온 흉측한 가시가 사람을 찌르고. 맞은 사람이 온몸을 뒤틀다가,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터져나가는 모습이리라.

       

       툴툴대는 유리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 몇 톨이나 바닥을 굴러다닐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분명 노크 소리가 들렸는데요.”

       

       “동네 꼬마가 장난이라도 친 거 아냐? 노크하고 튄 거지.”

       

       “⋯⋯이제는 동네 꼬마조차도 저를 우습게 보는 걸까요.”

       

       내가 뒤에서 태연하게 덧붙이니, 유리는 살짝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나는 급히 달랬다.

       

       “어린애들이 막 복잡하게 생각하고 그러겠어? 아냐, 유리. 그냥 바람 스치듯이 우연히 닿은 게 여기였을 거고.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응?”

       

       “⋯⋯정말 그렇겠습니까?”

       

       “응, 정말 그럴 거야. 자⋯⋯ 돌아가서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이걸 구실로 쫄아서 도망갈 셈이냐? 아직 젠가는 한참이나 남아 있는데.”

       

       “방금 전까지 쫄아붙은 건 당신이었겠죠!”

       

       유리는 휙 돌아서 집안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먼지가 된 NPC의 잔해를 흘겨보며, 열린 문을 조용히 닫았다.

       

       이걸로 벌써, 열여섯 번째.

       

       다시금, 잠깐의 평온을 되찾았다.

       

       ===============================================================

       

       이 싸움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해 두어야 한다. 

       

       이 세계의 중심은 유리다. 여왕에게 휘둘리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이상하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는 디버프가 걸리고, 그녀가 망설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에는 버프가 걸린다.

       

       그러니 그녀의 시야 안에서는 규칙과 질서가 있다. 설정과 개연성이 지켜져야 하며, 지켜지지 않으면 디메리트를 받는다.

       

       여기에 침투한 게 어쭙잖은 마법사였더라면 모를까.

       

       나는 그 약간의 디메리트를 끌어다가 엿을 먹일 수 있는 실력이 있다. 그러니 여왕이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내가 있는 한 대결의 최소 조건은 성립하는 셈이다.

       

       여왕도 그걸 안다. 저번에 어거지로 나를 범인으로 몰아가려다 카운터 펀치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여왕도 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방금 전에 npc가 저택의 문을 두드렸던 것처럼 말이다.

       

       가볍게 정리하자.

       

       내게는 『붉은 재생』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마이너스 설정이 붙었다. 여왕은 궁극적으로 이 설정을 이용해서, 유리가 나를 미워하도록 만들 것이다.

       

       나는 이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해체하거나 / 유리와의 친밀도를 한껏 올려서 ‘이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겠지. 베네트의 이야기를 내가 꾸며주었던 것처럼, ‘복수를 위해 이중 스파이가 되어 『붉은 재생』에 잠입한’ 흑마법사 롤 플레이를 해본다거나.

       

       아니면 『붉은 재생』의 기술은 이롭게 사용할 수 있다며, 사형수들의 목숨을 빼앗아 선한 사람들의 장애를 고쳐주는 홍길동 메타 롤 플레이라든가⋯⋯.

       

       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은 GM이다. 이 공간을 장악한 것은 여왕이다. 내가 온갖 기술로 대항하고 있더라도 세계의 흐름을 조종할 수는 없다. 

       

       정확히는⋯⋯ 잠깐이라면 가능은 한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고 가성비가 안 좋다.

       

       “양치질했어? 세수랑 머릿결 관리는? 자기 전에 스트레칭은 했니?”

       

       “신경 끄십시오.”

       

       내가 유리한테 외모 관리를 시키려면 품이 많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간.

       

       내가 아무리 이중스파이나 사실은 착한 녀석이었어 어필을 해도. 여왕이 NPC를 딱 세 명만 등장시키면 빌드업을 몽땅 조져놓을 수 있다.

       

       희생자 1. 유리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어린 소녀로 설정. 자신의 마을이 저 녀석 때문에 모조리 죽어버렸다며, 나를 규탄하다가 사망.

       

       조력자 1. 유리의 말살대 직장 동료. 온갖 자료들을 들이밀면서 저 녀석 아주 나쁜 새끼라고 오피셜을 박음.

       

       악당 1. 우르르 등장해서 유리를 존나 팬 다음에, 내가 등장하면 “오셨습니까 형님. 여전히 악취미십니다. 이 어린애한테 친한 척을 해서 정을 쌓은 뒤에 죽이려 하시다뇨.” 이런 식으로 몰아가기.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와중이라면, 내가 아무리 탭댄스를 잘 춘들 크게 의미가 없는 거다. 그래서 내 결론은.

       

       카운터를 날려야 한다, 다.

       

       유리가 인지하고 있는 / 여왕이 준비한 살초를, 카운터로 받아쳐서 내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이야말로 최적해라고 보았다.

       

       개연성의 흐름을 타서 나를 공격하기 위해, 여왕은 슬금슬금 밑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내 집에 미리 수상한 오브젝트를 설치해 둔 것과⋯⋯ 또 하나.

       

       “흑마법사 집단 『붉은 재생』의 숨겨진 거점들, 그리고 협력자에 대한 정보입니다.”

       

       “암호화된 서류여서, 선배님들이 밤낮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만⋯⋯ 분석이 완료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유리가 언급했던 ‘암호화된 서류’. 상당히 위협적인 수다.

       

       유리가 인식한 이상, 이 서류는 세상 어딘가에 실존해 있을 것이며. 설령 없다고 해도, 정보를 뭉쳐서 만들어내기 쉬워진다.

       

       언젠가 npc를 통해서 유리에게 전달되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력해지는 폭탄이라고 해야 할까.

       

       2시간만에 휙 풀려버린 서류는 그 정보의 진의를 의심할 만하지만, 일주일이나 걸려서 간신히 풀어낸 서류라면 진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도 위험은 고조되고 있는 셈이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 가장 베스트는, 유리가 이 서류를 확인하는 순간에⋯⋯ 옆에 함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조작해서 내게 ‘무혐의’ 프레임을 씌울 수 있다면, 판세는 크게 기운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유리 옆에 딱 달라붙어서 함께 행동해야⋯⋯ 하겠는데.

       

       “⋯⋯슬슬 집에 안 가십니까?”

       

       “자고 가면 안 되냐?”

       

       “되겠냐고요.”

       

       그렇겠지.

       

       나는 순순히 짐을 챙겨서 물러났다. 괜히 친해진 사이에 긁어 부스럼을 낼 이유는 없다. 나는 떠나기 전에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일 또 보자!”

       

       “오지 마십시오!”

       

       입은 매몰차게 말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다.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하는 강아지 같은 눈이라고 하면 좋을까? 더 놀고 싶다는 마음이 훤히 보인다.

       

       그러니까 저건, 내일도 와 달라는 뜻이다. 나는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정신을 집중했다.

       

       정보를 꼬아서 조형한다. 여왕의 눈에 걸리지 않도록, 얇고 긴 관을 만들어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은 유리의 집 내부까지 닿는다.

       

       이전에 수도기사단의 심문실에서 당했던 수작을 응용한⋯⋯ 감청이다.

       

       내가 떨어진 이 타이밍이야말로 여왕이 수작을 부리기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겠는가. 아침이 밝아오고, 내가 유리의 곁으로 갈 수 있을 때까지 이대로 대기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진행도를 점검한다.

       

       지난 며칠간, 정보 폭탄 설치율은 50%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자잘한 방해가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 세계가 생각보다 좁다는 것을 파악했다. 맵 로딩이 덜된 게임처럼, 도시의 특정 구간 앞으로는 새까만 공허다.

       

       주요 거점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머릿속에 제작했다. 주로 말살대와 방위국 관련으로 싹 조사해서 기재해 두었다.

       

       내 구명줄은 여전히 튼튼하다. 여왕이 집요하게 공격을 날려댔지만, 자색 마탑주의 백업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보 폭탄 설치가 완료되면, 유리로부터 『열쇠』를 양도받는 대신에 박살 내고 들어간다는 선택지도 생긴다.

       

       그 전에 충분히 친해질 수 있으려나.

       

       3시간 정도 흘렀을까?

       

       지지직. 지직.

       

       수상한 소리가 관을 타고 넘어오기에, 반쯤 감은 눈을 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정보를 읽어 들인다. 연락용 수정구에서 불이 번쩍이고 있었고, 자다가 깬 유리가 비몽사몽인 채로 연락을 받았다.

       

       -암호 해독이 거의 완료됨. 보안 유지를 위하여, 말살대원은 지금 즉시 4번 창구에서 직접 정보를 수령할 것.

       

       “⋯⋯이쪽은 유리, 입감했습니다.”

       

       유리는 크게 하품하고, 잠기운을 내쫒기 위해 세수를 하러 움직였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왕이 오늘 날을 잡았구나.

       

       4번 창구에 해독 완료된 자료가 있다. 내가 그걸⋯⋯ 유리보다 먼저 닿아서, 유리가 확인하기 전에 바꿔치기할 수 있다면. 여왕의 이번 공세를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소리 없이 창문을 타넘어 달렸다. 4번 창구의 위치는 꾸준한 정보 수집을 통해서 알고 있다. 가자. 서둘러서 가자.

       

       가짜 달이 뜬 밤을 내달린다.

       

       유리의 시야 안에서는 규칙과 질서가 있다고 했었지. 그녀의 인식이 이 공간에서의 위력과 가성비에 영향을 주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유리의 시야 밖에서라면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뜻이다.

       

       푸하아아악-!!

       

       벽면이 터져 나가며, 오우거와 오크 수십 마리를 반죽해 놓은 것 같은 괴생명체가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등 뒤에서 날개를 뽑아내, 기동해서 피했다.

       

       땅이 기울어지며 반으로 접힌다. 저 하늘로부터 별똥별이 떨어진다. 인간이었던 NPC들이 배배 꼬여서 창의 모습이 되더니 내게로 쏘아진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지면은 순식간에 부글거리는 용암이 되었다.

       

       여왕은 내가 4번 창구 방향으로 이동하자, 세계를 움직여서 대공세를 날려왔다.

       

       인셉션마냥 아주 공격적인 악몽을 연출하시는군. 세상 전체가 나를 미워해서, 죽이려고 드는 것 같은 광경이다.

       

       쫄지 않는다. 비주얼은 그럴듯해도, 저 안에 든 정보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움직임도 조잡하다. 저 정도는 간단하게 돌파할 수 있다.

       

       여왕도 그걸 안다. 이건, 나를 붙잡아두려고 하는 거다.

       

       유리가 4번 창구에 도착해서 나보다 먼저 자료를 확인하게끔.

       

       나는 독수리가 되거나, 나비가 되거나 하며 악몽 속을 질주했다. 지면이 껌처럼 길쭉하게 늘어나며 거리를 벌리면, 공간에 구멍을 뚫어서 접어 달렸다.

       

       어느 시점부터는 여왕의 공격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유리가 집에서 나와 이동 중인 모양이다. 그녀가 세상이 반으로 접히거나 달에서 빔이 쏘아지는 꼴을 보면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 그렇다면, 조금 더 서두르자.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4번 창구에 닿았다.

       

       ===============================================================

       

       여왕은 겸허하게 인정했다. 저건 괴물이다.

       

       처음에는⋯⋯ 그를 죽이거나 반으로 쪼갤 생각이 없었다. 먹어야 하니까. 저 머릿속에 든 정보들을 남김없이 먹어 치워야 하니까.

       

       손실 없이 모조리 흡수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된다. 느긋하게 녹여서 먹어야 한다.

       

       산산이 부수었다가, 혹시라도 귀중한 지식이 날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그러니까⋯⋯ 상냥하게, 봐주면서 상대해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그는 고작 인간이었으니까. 자색 마탑의 마법사라고 한들, 이제껏 여왕이 봐 왔던 환상 마법사들은 그녀보다 열등했으니까. 태생부터 정보 생명체인 서큐버스와는 커다란 인식의 격차가 있었으니까.

       

       나이가 어리니까. 고작 수십 년을 살았을 뿐이니까. 백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꿈과 정신을 조종하는 여왕과는, 아득한 격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입장했을 때, 몸 곳곳에 눈을 뜨거나 하는 건⋯⋯ 순간 아찔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신이 우위에 있을 거라고 여겼다.

       

       아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힘을 빼놓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인간 녀석은, 지면이 갑자기 괴물로 변해서 집어삼키는 상황을⋯⋯ 상상도 못 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볍게 파훼 되었다. 오히려 한 대 얻어맞았다.

       

       그래? 그렇다는 거지. 그러면 정보가 조금 손실되어도 좋아. 부숴서 얌전하게 만들어주겠어, 하고. 인간이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낄, 불가해한 고대의 거인을 소환해서 공격했다.

       

       “짭 크툴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부터는, 정보고 나발이고. 산산이 으스러져도 좋으니까, 라는 마인드로 총공세를 퍼부었다. 창의력을 한계까지 짜내서 의표를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들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덤덤했다. 세계가 어그러지고 반으로 접히는 꼴을 이미 겪어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온 힘을 끌어서, 세계를 움직여서 공격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곳은, 그녀가 지배하는 영역일 텐데⋯⋯?

       

       그래서. 인정했다.

       

       저 미친 마법사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구나. 인정하고 나면, 길이 보였다. 내 의도를 모조리 읽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한 발 앞서서 함정을 파겠다.

       

       너는 이미 ‘암호화된 서류’에 대해 진작에 파악하고 경계 중이겠지. 

       

       자, 유리 랜스터에게 비밀스럽게 연락을 넣겠어. 4번 창구로 오라고 말이야. 내 감각과 마법으로는⋯⋯ 미친 마법사 네가, 그저 방안에 틀어박혀 명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니, 아닐 거야. 너는 내가 모르는 수단으로 유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틀림없어. 내가 이렇게 정보를 꼬아서 숨기고, 유리에게 수정구를 통해 연락을 넣으면.

       

       너는 분명히 이걸 알아차릴 거야.

       

       그래, 4번 창구로 가는구나.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들켜서는 안 될 것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살짝 당황한 척. 잠깐 뜸을 들이고 공격을 시작하겠어. 마치,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아니야. 나는 네가 4번 창구에 도착하기를 바라. 자.

       

       전황을 뒤집을 시간이다. 희극을 비극으로 바꾸고, 우스운 춘몽을 본래의 악몽으로 돌려놓도록 하자. 여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띤 붉은 입술을 만족스럽게 매만졌다.

       

       이걸로 한 수, 앞서가겠어.

       

       ===============================================================

       

       끼이익.

       

       어느 허름한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4번 창구다. 안에 말살대 소속인 NPC가 지키고 있길래 정보 폭탄으로 없앴다.

       

       안쪽에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강도 높은 블랙박스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정보를 아주 있는 힘껏 붙들어 놨다.

       

       때려죽여도 네가 이 정보를 삭제하게 두지 않겠다. 이런 느낌으로 잔뜩 강화해 둔 것이다.

       

       문 너머에 ‘암호화된 서류’ 어쩌구가 있겠지. 그걸 어떻게든 유리가 보게 하려고 보강을 해 둔 거고.

       

       유리의 위치를 체크한다. 앞으로 약 10분 정도면 여기에 도착할 것 같다. 10분이면, 서류를 말소하기에는 아무래도 빠듯하려나.

       

       이러면 정보를 파기하는 것보다는, 이대로 훔쳐서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버리는 쪽이 가성비가 좋다. 나는 서류를 챙기기 위해 문을 열었──

       

       후우욱.

       

       쿠당탕-!

       

       빨려 들어간다. 내 몸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인력에 이끌려, 방 안쪽으로 끌려들어 가고. 동시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쑤시는 몸을 달래면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는다. 열리지 않는다. 정보를 분해해 보려고 해도, 단단하게 잡아 놓아서 단기간에는 파쇄가 힘들다.

       

       갇혔다. 함정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방에 발을 묶어두는 걸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어이구, 이 새끼 봐라⋯⋯.”

       

       방 내부를 둘러본다. 피 칠갑이 되어 죽은 말살대원 시체가 하나, 그리고 잔뜩 훼손된 서류 모델링이 하나, 그리고 내 지문이 덕지덕지 사방에 묻어 있다.

       

       누가 봐도, 내가 증거인멸을 위해서 숨어든 상황인가. 이거.

       

       여기로 유리가 오고 있었지. 그녀에게 이 수상쩍은 정황을 보여주고, 나에 대한 의심을 확 끌어올리려는 수작이다. 

       

       그녀가 오기 전에 모조리 조작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모두 강화된 정보이기에, 꽤 시간을 들여야 분해할 수 있는 오브젝트들이다. 

       

       이 자리를 벗어나는 건? 그것도 시간이 문제다. 여왕의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나가려는 걸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게 눈에 선하다.

       

       “하⋯⋯.”

       

       유리에게 『붉은 재생』 끄나풀로 오해받기까지 10분 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헬로 마이 프렌즈. 오늘도 좀 넉넉하게 써왔습니다요. 그러면 내일 쉬고, 월요일날 다시 만나요!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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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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