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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남자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얼핏 들으면 ‘시현류의 능력이라면 주술 의식 따위는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주술 의식이라는 게 쓸데없이 요란하고 흔적이 많이 남아서 들킬 수밖에 없다.’라는 뜻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묘한 어투 때문일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보자. 그렇다면 저주는 아닌 것 같으니 다른 문제라는 소리인데…. 혹시 앞서 방문한 분들이 하나같이 악령, 혹은 악귀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만.”

       “제 생각도 비슷하기는 합니다. 주술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얼굴을 나무 하나하나에 만들어놓을 필요가 없는데….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하는 것은 악령, 혹은 악귀 정도밖에 없지요. 아, 물론.”

         

       남자는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웬 정신병자가 그랬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시현류의 무인분들이 잔뜩 있는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잠입해서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은…. 하하하. 어지간히 간이 붓지 않은 이상에야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는 시현류를 띄워주는 듯한 말을 뱉었다. 아부라고 보기에는 진실성이 묻어나오고, 그냥 그대로 듣기에는 조금 낯간지럽고, 그렇다고 귀에 듣기 싫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닌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달콤하게 느껴지고, 개인이 아닌 시현류라는 집단을 띄워주는 것이기에 거부감이 없는 칭찬과 찬양의 표현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체면을 세워주는’ 말들이었다.

         

       체면에 집착하는 무인에게 시현류라는 유파 자체를 극찬하는 진성의 표현은 달콤하기 그지없는 것이었고, 앞서 만났던 사기꾼 같았던 전문가들의 딱딱하고 냉정한 태도에 내심 질려있던 사범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에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범은 남자에게 호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고,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와중에 자신에게 좋은 소리를 내뱉으며 조사를 열심히 행하는 남자의 모습에 잔뜩 차올라있던 짜증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게다가 호감이 가는 요소가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전문적 지식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앞서 방문하신 분들이 왜 고전했는지 알겠군요. 분명히 귀신의 짓임이 분명한데 귀신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귀신이 아니라고 단정을 짓기에는 귀신이 하는 짓과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럴 때는 소거법을 쓰는 것이 제일 좋더군요.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뭐가 뭔지 모를 때에는, 그 숫자를 하나하나 줄여가며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고 후보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좁히고 나면 마침내 진실이 보이기 마련이거든요. 어디 보자, 앞서 방문한 전문가분들이 물리적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랜 시간 동안 이 산중에서 수련해온 시현류의 무인분들 역시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악귀는 제외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럼, 사람도 제외해야 합니까?”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데, 일단 배제해보겠습니다. 그 가능성까지 생각하기에는 단서가 너무 없으니까 말이에요. 그렇다면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흠. 악령의 짓…이라고 보기에도 조금 어려울 것 같군요.”

       “악령의 짓이 아니라고요?”

       “네. 그런 것 같군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남자는 사범의 물음에 품 안에서 삼각형 모양의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은으로 만들어진 듯 반짝이는 목걸이는 역삼각형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깔때기를 닮기도 했다. 그리고 표면에는 이리저리 흘려쓰기라도 한 듯 꾸불꾸불한 알파벳이 있었다.

         

       A B R A C A D A B R A

        A B R A C A D A B R

         A B R A C A D A B

          A B R A C A D A

           A B R A C A D

            A B R A C A

             A B R A C

              A B R A

               A B R

               A B

                A

         

       꿈틀대는 듯한 기묘한 필기체로 쓰인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라는 단어는 끝이 잘려가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 기묘한 모습은 깔때기 형상의 몸체와 어우러지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마치 주문이 폭풍 같은 힘을 품고 회전하며 내려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혹은 ‘A’라는 한 글자에서부터 폭풍이 시작되어 마침내 주문이 완성되는 것으로도 보였다.

         

       “아브라카? 다브, 라. 아! 아브라카다브라! 유명한 주문 아닙니까?”

       “네. 옛날 서양 마법사들이 사용한 신비의 주문이기도 하고, 부적을 만들 때 사용하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그 부적이 악령이 없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 부적은 기본적으로 치유와 축복의 힘을 품고 있어요. 게다가 한껏 빛을 받아낸 은으로 만들어서 그 힘이 증폭되기까지 했죠.”

         

       남자는 햇빛에 반짝이는 목걸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치유와 축복. 악령이 가지고 있는 부정하기 짝이 없는 힘과 반대에 위치한 것이지요. 악령이 되지도 못한 어중간한 것들 대부분은 이 부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쫓을 수 있고, 악령이라면…. 쫓지는 못해도 알람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요. 악령이 가지고 있는 부정하기 짝이 없는 기운에서 사용자를 보호해주고, 그 대신에 모습이 변화하면서 위험을 알려줍니다.”

       “흠. 목걸이가 변함이 없는데, 그렇다면 악령이 없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건 확실해요. 악령이 있거나 그 흔적이 남았다면 이 목걸이가 이렇게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겠지요. 검게 변색이 되거나, 글자가 지워지거나, 표면에 상처가 생기거나, 혹은 목걸이 자체가 찌그러집니다. 하지만 보세요. 멀쩡하지 않습니까?”

       “흠.”

       “이거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군요. 악령은 아니지만, 악령과 비슷한 짓이라….”

         

       남자는 목걸이를 그대로 든 채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나무에 몸을 기대고 한참이나 턱을 쓰다듬었고, 이윽고 사범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사범님. 혹시 이 산에 나무가 몇 그루가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무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만.”

       “흠. 대략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물어봐도….”

         

       사범은 질문을 듣고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리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나무는 나무고….

       나무는 그냥 옛날부터 대충 심겨 있었던 것이고, 그냥 일상의 풍경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딱히 관리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관리하려고 하는 의지조차 없었던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대뜸 그것이 몇 그루냐고 물으면 그것을 어찌 대답한다는 말인가.

         

       차기 신관은 사범의 곤란한 듯한 모습에 질문을 바꿨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사범님. 이 산에 있는 나무가 10,000그루는 넘나요?”

       “그건 뭐. 넘겠죠?”

         

       사범은 그 질문에 산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나무를 떠올렸다.

         

       땅에 햇빛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자리를 잡으며 그늘을 만들어내는 나무들이다. 그것도 수련장 근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산 전역이 전부 그렇다.

         

       당연히 1만 그루는 우습게 넘지 않겠는가.

         

       “흠. 1만이라?”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주술적 의미와 관련이 좀 있습니다. 1만이라는 숫자는 예로부터 동양에서 ‘셀 수 없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곤 했거든요.”

       “그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사범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물음에 대답해주는 대신, 말을 툭 던졌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진짜입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던져진 말.

       하지만 무인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남자는 살았다는 듯 화색을 띠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범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어서 기쁘다는 것처럼 활짝 웃었고,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에서 비롯되는 후련함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와 오행(五行)에 대해서 아십니까?”

       “풍수지리는 모르고, 오행에 대해서는 좀 압니다.”

       “그렇다면 설명이 쉽겠군요. 제 생각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괴현상은, 풍수지리와 오행, 악령이 되지 못한 혼령.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일 같습니다.”

         

       남자는 설명을 시작했다.

         

       “가끔 말입니다. 사람이 건드리지 않고도 자연 스스로 주술적 힘을 품은 곳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진법이 만들어져 미로처럼 들어온 사람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굶겨 죽이기도 하고, 부정이 점점 겹겹이 쌓이기만 하고 해소되지 않게 만들어서 끔찍한 재앙을 가져오는 일도 있고, 특정 벌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그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형태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흠.”

       “중국의 진법 전문가들은 이것을 오행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균형이 깨져서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거나, 혹은 그 균형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죠.”

         

       치우친다는 것은 극단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베네수엘라의 리오 카타툼보(Rio Catatumbo)에서는 넘치는 양기와 화기로 인해 어마어마한 양의 번개가 치고, 미국의 오클라호마(Oklahoma)는 넘치는 목기로 인해 토네이도가 자주 생기곤 하지요. 이것이 바로 오행이 파괴되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발생하는 일입니다.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자연재해를 동반하게 되지요.”

         

       그리고 부족하다는 것은 그것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파괴되면 결핍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환경이 조성되게 됩니다.”

         

       남자는 전문가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여기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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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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