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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을 하며 가라사대, 생이란 곧 고통이다……같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또다시 찾아온 고통의 시간. 칼에 찔린 듯한 아랫배와 망치에 두들겨지는 듯한 허리 중 어디가 더 아픈지를 고민하던 중에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명치 정도 아래로 몸을 떼어내는 방법은 없으려나, 하는 생각에 이어서.

       

       이불을 온 몸으로 꽉 움켜쥔 채 침대에서 신음하며 생각해보자니, 옛 성현들의 말씀은 정말 무엇 하나 틀린 게 없더라.

        

       아마, 틀린 말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미 몰매를 맞고 사라졌기 때문 아닐까. 동네 사람들, 여기 이 못난 조상놈이 뭐라고 헛소리한지 좀 보세요- 하고.

        

       몰매는 내가 맞고 있는 기분이었지만.

        

       아무튼……생은 고통이고, 그중 으뜸은 아무리 봐도 육체적 고통이라는 깨달음이 머리를 가득 메우는 와중에도-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은 남아있었다.

        

       그냥 미루고 싶은 마음이 넘실거렸지만……약속은 약속이었으니까.

        

       세상 만사 원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의욕에 가득 찼다가도, 심신이 조금 아프면 다시 집에서 쉬고 싶어지고. 그래도, 약속한……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으면 결국은 무거운 몸뚱이를 끌고 나가야 하는.

        

       그리고,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우스워서. 그리 고난을 뚫어가며 달성한 일은……괜스레 더 뿌듯하고 기쁜 법이더라.

        

       [MPain(Rogue) has been slain!]

       [아따먹(Paladin) → MPain(Rogue)]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내게 이 부계정이 소중한 건 당연한 일이다. 내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빚어낸 작고 소중한 아이니까.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전파할……나누어 줄.

        

       * * * *

        

       흰 튜닉과 짧은 가죽 반바지만 걸친 기사의 충격적인 외관 탓일까. 킬로그가 영어로 뜨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예나가 송출하는 화면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영문 클라이언트였음에도.

        

       기사의 머리 위에 적힌 아이디가 이상한 특수문자의 연속이었기에, 평소 플레이하던 아이디가 아닌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사흘 간의 휴방을 선언했던 사람이 그 사이에 다이아 랭크의 북미계정을 들고 올 거라고 대체 누가 예상한단 말인가.

        

       『본 토 정 벌』

       『이게…기사?』

       『본인 저러고 다니는 기사한테 죽으면 진짜로 울면서 게임 접을거같다』

       『기사 특집이라면서요 선생님』

       『도적은 사실 쓰레기가 아닐까?』

       『한미동맹의 종말』

       『이건 무역보복당해도 할말 없다』

       『빤스 입은 고인물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좆망한 게임의 상징이었는데』

        

       《북미계정은 언제 만들었냐……지난 사흘간 열심히 했어요. 진짜 힘들었어. 아니, 빌드 짜는 거 말고……배치 돌리고 다이아 초입까지 올려두는 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전파속도 생각하면 역시 본토에 풀어야 되니까. 열심히 준비해왔어요.》

        

       뿌듯함이 은은하게 서려 있는 목소리였다.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팬티 바람으로 걸어나가는 근육질 남자의 뒷모습과 이보다 안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을까. 어깨에 걸친 거대한 대검의 검날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유독 그로테스크했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옷은 그렇다 치고 아이디는 또 왜 저 지랄입니까 선생님】

        

       《한글로 아따먹이라고 썼는데, 영문 클라이언트에서는 깨져서 그래요. 왜 북미서버를 하면서 한글로 했냐……그래야 못 읽고 못 부르잖아요. 유용한데. 임팩트도 있고.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의 빌드……소문나기 좋아보이지 않나요.》

        

       아직 평소 활동하는 곳보다 낮은 티어이기 때문일까. 이예나는 평온하고 나른한 어조로 시청자들과 소통까지 해가며 게임에 임하고 있었다.

        

       《일단 기사를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할 거예요. 그 다음엔 다시 사흘 쉬고……다음은 아마, 마법사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네. 아, 여기 있네.》

        

       흡사 관전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여유로움이 배어나왔다. 화면 속, 격하기 그지없는 기사의 움직임과 대비되는-

        

       -콰앙!

        

       일격.

        

       예고없이 휘둘러진 검이 허공을 가르고 바닥에 꽂혔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 떠올랐다. 퇴마라도 하냐는 비아냥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 저 편에서 도적이 스르륵 나타났다.

        

       지켜보던 시청자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은신 상태에서 역으로 기습당한 도적의 당혹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리라.

        

       《……사실 이 기사는 도적의 은신을 감지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는 건지는 얘기 안 할 거긴 한데. 도적 상향이 필요하지 않나요.》

        

       태연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 * * *

        

       어처구니없는 공격이었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공격 모션을 취하지도 않았고. 은신한 채 은밀한 발걸음을 키고 접근하던 자신의 위치를 대체 어떻게 예측해낸 건지.

        

       그러나 과거를 반추할 여유는 없었다.

        

       동작이 큰 공격으로 스태미너를 소모했고, 은신해있던 도적의 생존기를 뽑아냈으니- 한번 호흡을 갈무리할 타이밍. 그 틈을 타 자세를 정비하려는 도적을 향해, 피로 물든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걸음을 성큼 파고 들었다.

        

       머리 근처까지 대검을 들어올려, 내리깔리는 검끝으로 도적의 가슴팍을 겨눈 자세. 과도한 무게가 부담스러웠는지, 유일하게 갑옷 비슷한 것이나마 착용한 왼손은 손잡이가 아닌 검신의 3분의 1 지점을 가벼이 지탱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높이와 질량이 모두 힘으로 치환된 찌르기가 쏘아질 것만 같은 압박 속에서, 도적의 머리는 전에 없이 빠르게 돌고 있었다.

        

       기사와 맞닥뜨린 건 악재였고, 생존기마저 잃은 건 비상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장은 비좁은 골목. 심지어 코너가 코앞이었다. 과도하게 큰 무기를 휘두르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이 산재한 구간이다.

        

       지하 대검기사를 선호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였다. 피할 공간이 부족한 비좁은 전장에서, 압도적인 크기의 무기는 일단 위압감부터 상당했으나- 위압감이고 뭐고 일단 무기를 휘두를 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지하에는 대검기사의 선택지를 박탈하는 구간이 너무나 많았고, 지금 도적과 대치한 전장 역시 그러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격이라 해봐야 찌르기와 내려찍기 뿐. 어설픈 횡베기를 시도했다가는, 검신이 벽에 가로막히며 샌드백으로 전락하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 가뜩이나 이미 체력이 부족해보이는 기사였다. 아무리 성장이 말린 도적이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카운터 한 번만 넣을 수 있다면 명줄을 끊기에 충분한 상태.

        

       그리 생각하며 몸을 벽에 붙인 채 천천히 접근하던 도적에게, 위협적으로 움직이던 대검이 확대되듯 훅 다가왔다.

        

       호흡의 틈을 노린- 하지만, 예측한 찌르기다. 여유롭게 피할 수 있는. 옆으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안면에 카운터를 넣으면-

        

       그렇게 떠올린 전략을 수행하려 몸에 힘을 주는 순간, 다가오던 검끝은 어느새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페인트.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찌르기 아니면 내리찍기다. 옆으로 피하던 움직임은 여전히 유효했다.

        

       안심한 도적이 회피 후의 카운터 궤적을 고민하던 그때.

       

        -부우웅!

       

       기사는 온몸을 비틀어가며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니, 저걸 휘두른다고 할 수 있을까. 과도한 크기에 과중한 무게의 대검은 주체와 객체를 바꾸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회전이 시작된 대검의 원심력에 몸마저 끌려가는 것을 가까스로 버텨내며- 기사는 그렇게 전신을 던졌다.

        

       도적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저 정신 나간 사거리에서 벗어나기엔 늦어도 한참 늦었으니.

        

       하지만, 닿을 리가 없는 일격이었다. 저 거대한 대검은 도적의 살에 스치지조차 못하고 벽에 가로막힐 터다. 저 단단한 지하의 벽은 성기사의 대방패보다도 든든했다. 채 절반도 휘두르기 전에 검이 튕겨 나가며 자세가 무너지리라.

        

       그리 생각하며 카운터를 위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은 도적은, 붉게 빛나는 대검이 바위를 두부처럼 가르며 자신을 향해 질주하는 광경을 목격했고-

        

       《The fu-》

       

       -콰아앙!

        

       안타깝게도, 그 대검이 벽을 산산조각 내며 가슴을 가벼이 양단할 때까지 유언을 채 마무리지을 수 없었다.

        

       그리 멎어버린 단말마의 빈자리를 메우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찢어발겨진 도적의 상반신이 조각난 파편들과 함께 흩날렸다.

        

       * * * *

        

       《지하 도적 카운터 중 하나, 홀레기사예요. 홀리 레이지 팔라딘. 사거리로 압도하고, 지형지물을 무시해서 은발도적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워요. 왜 영어냐……아. 음…… 북미서버니까요.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고, 북미에선 영어를 써주려고 합니다. 친절하지 않나요.》

        

       건조한 목소리. 간단한 요리라도 소개하는 듯한 이예나의 설명에 만족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게 대체 뭐냐, 어떻게 한 거냐, 벽이 원래 부서지는 거냐 등등의 의문을 토하는 이들로 가득한 채팅창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들끓고 있었다.

        

       《원리가 뭐냐……음. 복잡한데, 간단하게 말씀드리면……그렇네요. 핵심은 방어력을 낮추고……잃은 체력을 극대화하는 거예요. 그리고 벽이 있는 구간에 혼자 진입해서 일인 군단 발동시키면서, 장애물이랑 충돌하기 직전에 타이밍 맞춰 용의 분노를 키면 됩니다. 벽이 안 부서지는 것도 결국 방어력 판정이어서. 모르시는 분들 가끔 계신데, 이 게임이 같은 코드를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여둬서……도끼날 함정은 크기만 키운 도끼고, 바위 벽은 방어력 높은 갑옷이에요. 판금 위에 돌 있는 느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키보드를 가벼이 두드리며 전진할 뿐이었다.

        

       《패치에서 지형지물 다 부수면서 싸우는 게 의도된 바라고 했었는데. 벽이 부서져도 그럴까요. 궁금하네요. 아……벽 부서진 공간이 시커멓네. 여긴 리소스를 투입 안 했나봐요. 다음 패치에선 보완했으면 좋겠는데……이런 게 진짜 급한 패치사항 아닌가.》

        

       여상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하며.

        

       《아무튼, 자세한 빌드는 레딧에 올렸고……링크, 위게더 공지로 적었어요. 많은 추천 부탁드려요. 레딧 화제글은 기준이 뭐였더라.》

        

       화면 속, 피로 물든 기사의 어깨에 걸쳐진 대검이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가벼이 흔들거렸다.

        

       

       약 5시간 후, 영어권 최대 커뮤니티인 레딧 나오나 채널에서 화제글 1위에 등극할 동영상의 마무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빨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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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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