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로 괜찮겠어?”
그날 저녁, 밤에 의식 안에서 만난 사라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걸로 괜찮냐니? 설마 그걸로는 너무 약했다는 말이야? 내가 양혜인 끌어안고 머리라도 쓰다듬어야 했을까?”
사라가 농담조로 그렇게 되묻길래,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내가 그것 때문에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알고 있어.”
농담도 못 받아주냐는 듯 입을 삐쭉거리며 사라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나한테 한 일이 있는데 그 정도로 용서 못하냐는 말이지?”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뭐, 나는 정말로 대단한 감정이 남아있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너가 그랬잖아. ‘나’한테 잘못한 거라면, 당연히 ‘내’가 용서해줘야 한다고.”
“……그랬지.”
그래서 아직도 불안한 거다. 사라가 정말 진심으로 용서한 건지, 아니면 그저 나의 그런 생각 때문에 용서하는 척을 한 건지.
적어도 양혜인은 사라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 같긴 하지만.
“……나도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야.”
내가 자기를 믿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사라는 힘 빠진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내 옆으로 와서 털썩 앉았다.
“솔직히 어떻게 용서해야 진심으로 용서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 사람이 나를 따돌리던 사람들과 한통속이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최나경 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으음.”
사라는 턱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양혜인이랑은 조금씩 말을 하긴 했어. 내 요구사항을 말하거나,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양혜인을 부르거나…… 그때는 나도 지금만큼 제대로 말을 하던 시절은 아니라서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양혜인에 대한 감정은 좀 옅게 가지고 있거든? 분노도, 복수심도, 적어도 최나경한테 가진 것 보다는 훨씬 적어. 그러니까, 그런 사람한테 사과받아도 당혹스러울 뿐이야.”
“그렇구나…….”
사라는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양혜인을 최대한 배려한 결과겠지.
“응.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야. 그 사람 속이 편해질 때까지 나를 도와보라고. 그래서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고 떠나면 그만인 거고, 그사이에 친해지면 좋은 거고. 안 그래?”
사라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이 어떻든, 양혜인을 용서할 권리는 사라에게만 있다. 용서하건 말건, 그 용서의 형태가 어떻게 되었건, 사라의 선택에 내가 반대할 권리 따위는 없다.
“…….”
게다가, 나도 사라한테 해야 할 사과가 있었고.
“왜, 또 뭔가 남았어?”
“아니, 그…….”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사라를 보면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그, 미안.”
“어?”
“미안해.”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던 사라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빼며 다시 물었다.
“미안하다니, 뭐가?”
“사실은 나도…… 양혜인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비슷한 생각?”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라에게, 나는 조금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너는 돈이 많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괜찮아졌을 거라고,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
“아…….”
사라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은 다음,
“그게 뭐?”
바로 다음 순간에 미간을 모았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면, 정말로 내가 왜 사과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이지? 나한테 대놓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남들한테 뒷담화를 까고 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생각했다고’ 사과를 하는 거야?”
“어…….”
사라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그건 그랬다.
“너,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 보고 엄한 생각이 들면 그 사람 붙잡아다가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을 보고 야한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하는 스타일이야?”
“어…….”
말문이 막힌 채로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건 성추행이잖아.”
결국 내가 겨우 생각해낸 말은 그런 말꼬리 잡기였다.
“그거 말고도, 다른 사람들 보고 불쾌한 생각 들 때 많을 거 아냐. 그럴 때마다 상대 붙잡고 일일이 사과를 하냔 말이야.”
“…….”
당연히 안 한다.
생각만 해서는 들킬 일이 없으니까.
물론 그런 생각이 길어지고 틀에 박히게 되면 언젠가는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 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억을 공유하니까……. 미리 사과해두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들켰을 때보다는, 차라리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넘어가는 쪽이 훨씬 나을 테니까.
“…….”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좋아. 너가 정 사과하고 싶다니까 받아줄게.”
“고마……”
워, 라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라가 다시 내 앞에 풀썩 앉았다.
그렇다. 내 옆이 아니라 내 앞이었다.
참고로 나는 거의 언제나처럼 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당연히 사라가 내 ‘앞에’ 앉으려면, 자리는 내 무릎 위 밖에는 없었다.
……그때 하늘이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지금의 사라는, 이상하게 나보다 조금 더 컸다.
원래는 사라가 나보다 조금 더 작은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보다 조금 더 몸집을 크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타이밍은 사라에 의해 처음으로 입맞춤을 한 뒤였던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사라가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그렇게 따지면 내 정신 연령은 사라보다도 훨씬 높을 텐데.
“……저기, 사라야.”
“응?”
내 부름에, 사라가 대답했다. 지금은 사라가 나보다 조금 더 컸기 때문에, 내 무릎 위에 앉은 사라의 시선이 나의 시선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나를 내려다보는 사라의 시선은 살짝 위압적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그런데, 우리 정신을 바꿀 때마다 굳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지 않아?”
“이럴 필요가 없다니?”
……눈이 무섭다. 눈이.
입가는 웃고 있지만, 이상하게 눈에는 감정이 없어 보였다.
아니, 감정이 없다기보다는……
사라의 눈매가 날카로워서 그런지, 그리고 나보다 조금 더 큰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사라의 얼굴은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고양잇과 맹수처럼 보였다.
“그게…… 우리 모두 서로 기억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의식 안에서 합의만 봐도 정신을 바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지난번에 사라와 양혜인이 단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사라가 나와 의식을 휙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도중에 잘 필요도 없이, 심지어 자극적인 기억을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이.
물론 그 이유로, 이렇게 잠이 들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쭉 사라가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아, 그거.”
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건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건 우연.”
“……우연?”
“응, 우연이야. 완전 우연.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걸로 바뀔 수 있었으니까. 안정적이지 못해. 응, 그래. 우연이야, 우연.”
‘우연’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중얼거리는 사라는, 역시 조금 무서웠다.
“아니, 저기…….”
그런 사라에게, 나는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봤지만,
“근데 있잖아.”
사라가 나의 말을 막았다.
사라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지금은 내가 너보다 크잖아.”
“어?”
“지금은 내가 너보다 크잖아.”
지금 똑같은 말 두 번 한 것 같은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눕혀버릴 수도 있는데, 지금 참고 있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기본적으로 내 의식 안이니까.”
“…….”
아무래도, 사라의 저 눈은 먹잇감을 보는 눈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너가 뭐라고 했더라?”
한 번은 잠이 들었더니, 사라가 내 위에 당당하게 올라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너는 아직 미성년자니까…….”
“그래, 아직 미성년자니까, 내가 참아주고 있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고, 사라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는 무게가 있었다.
아주 묵직한 무게가.
“지난번에 말했지? 나는 너가 너무너무 좋아. 이대로 목을 앙! 하고 깨물어버리고 싶을 만큼.”
나를 흡혈귀 씨라고 부른 건 너였잖아. 너가 물면 너가 흡혈귀가 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지금의 사라가 좀 무서웠으므로.
“……알았어.”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안 잡아먹히는 게 어디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 애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그래, 알았으에.”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사라는 내 양 볼을 잡았다.
아마 나는 또 붕어 같은 얼굴이 되었으리라.
“그렇지? 허락받았다?”
……허락이라고 쳐 주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라의 얼굴을 보고, 나는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