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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백화령의 입장에서 이는 충격이었다.

       

       그녀가 어디 자그마한 단체의 수장이던가.

       

       천마신교가 아무리 외부와 어느 정도 격리된 곳이라고는 하나 그 규모는 어지간한 파벌과 비견될 수준.

       

       백화령이 아무리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하여도 미식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그녀는 한 때 궁중에서 일했다던 요리장의 손에서 만들어진 온갖 귀한 음식을 먹어보았고, 그러니만큼 스스로가 상당히 까탈스러운 혀를 지녔다고 자부했다.

       

       백화령이 음식을 먹으러 나가잔 말을 들었을 때 떨떠름해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자신이 길거리의 음식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다 생각했으니까.

       

       이전에 그녀가 무림에 나와 보았을 적에 먹었던 그 어떤 음식도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겨우 십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여서 그게 달라질 리가 있겠는가.

       

       허나 그는 백화령의 착각이었다.

       

       십년이라는 세월은 수십 개의 새로운 문파가 나타났다가 저물 정도로 기나긴 세월이었으니.

       

       그녀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게 뒤집히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해야. 거기 서있으면 방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백화령은 민가의 손에 이끌려 의자에 앉고 나서야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난 십 몇 년 간 무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 물음은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무림이 멸망했음을 묻는 것처럼 비장했다.

       

       정작 그 안에 담긴 것은 왜 이리 음식이 발전했느냔 물음이었지만.

       

       “어리석은 질문이구나. 무림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것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않으냐?”

       

       촌놈 같은 백화령의 한심한 모습에 신이 난 것일까.

       

       여태껏 백화령의 존재에 대한 불평만 하던 바루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외부인. 그래. 그 놈들은 이상할 정도로 식문화에 진심이었지.”

       

       천마신교의 수장이란 입장에 서 있는 백화령은 알고 싶지 않아도 세상의 동향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다녔다.

       

       개 중에는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한 외부인들에 관한 것도 존재했다.

       

       그들은 기이할 정도로 식자재를 수급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 이곳저곳을 뒤지며 온갖 식재료들을 수급하고,

       

       농장을 계약해 그것들을 키워냈으며,

       

       그 후엔 세상 여기저기에 식당을 차려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음식을 팔기까지 했다.

       

       허나 천마신교는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무림에 존재하는 여러 단체들의 동향과 교단의 위세를 어떻게 하면 더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뭣보다 외부인들이 아무리 식문화를 발전시키려 노력한다한들 기반도 뭣도 없는 저들이 만들어낸 음식이 신교의 음식보다 뛰어날 리 없잖은가.

       

       그것은 실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외부인들이 지닌 음식에 대한 지식은 당초 신교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던 것이다.

       

       겨우 십 년 남짓한 세월 만에 이만한 발전을 이룩할 정도로.

       

       “신교의 폐쇄성이 발전을 저해한 것인가.”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하고 먹고 싶은 메뉴나 고르거라.”

       

       묘하게 신이 난 바루가 건네준 메뉴판을 받아 든 백화령은 적어도 열 댓 개는 될법한 글귀를 보고서 당혹감을 느꼈다.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은 것인가.

       

       유부 초밥. 유부 튀김. 유부 조림. 유부. 유부. 유부.

       

       “이 중 하나를 고르란 것이냐?”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저 알아 추측을 해야 하는 백화령의 입장에서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실로 지난한 일이었다.

       

       방금 전 먹은 유부의 맛을 생각해보면 여기 적힌 것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맛을 보장할 터인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다 시키거라.”

       

       난해한 무공서적을 해독하는 것 마냥 메뉴판을 탐독하던 백화령은 민가의 말을 듣자마자 벌떡 얼굴을 들었다.

       

       “그래도 되느냐?”

       “그래.”

       “그럼 여기에 적힌 것들을 다 시키자꾸나.”

       

       그녀의 얼굴엔 무림을 살아가는 이라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천마라고하기엔 너무도 해맑은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

       

       – 이 사람 천마 맞아?

       – 그렇다기엔 리액션이 너무 여고생인데.

       – 좀 더 위엄 넘치고 살벌한 카리스마가 있을 줄 알았는데.

       – 화룡무인 NPC들은 왜 이런 사람을 무서워 하는 거임?

       – 그러게.

       

       종업원에서 맨 위부터 아래까지 다 달라는 주문을 전한 후부터 백화령은 기다림이 즐거운 듯 은근한 미소를 지은 채 턱을 괴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그 손가락이 그녀가 이 기다림을 즐기고 있음을 드러냈다.

       

       백화령 이 녀석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더욱 독기가 빠진 상태구나.

       

       이 시절의 본인이 저렇게까지 허술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백화령과 나의 본질적인 차이인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제자가 된 한서우가 그만한 변화를 불러온 것일까.

       

       어느 쪽이더라도 보기는 좋구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어도 뚱한 표정을 지은 채 곰방대나 피워대고 있었다면 음식을 사 줄 맛이 나지 않았을 테니까.

       

       “민가야.”

       

       바루가 부르는 소리에 슬쩍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느냐?”

       “가격이 꽤 나올 듯 싶다만 돈은 충분히 챙겨온 것이더냐?”

       “물론이지.”

       

       지난 번 무림맹의 습격과 관련해서 받은 배상금이 있거든.

       

       일의 진행이 어찌 되었든 간에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무림맹의 비열한 습격을 받아낸 입장이었다.

       

       쉬이 말해 명분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소리다.

       

       거기에 더해 지난 번 본인이 무림맹을 박살냄으로써 무력에서도 우위를 차지했음을 증명했지.

       

       힘과 명분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면 얼마든 바라는 대로 뜯어먹을 수 있다는 것은 무림의 상식이잖나.

       

       무어. 본인도 그리 무자비한 인간은 아니었던지라 적절한 선은 지켰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돈을 뜯어냈다.

       

       그 덕에 화산의 운영비용으로 절반을 주고, 지난 번 하린에게 졌던 빚을 갚은 지금도 본인의 지갑엔 상당한 금액이 들어있지.

       

       그러니 이런 가게에서 음식을 시키는 정도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맨날 돈이 없단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드디어 빈곤에서 탈출한 게로구나.”

       

       – 왜 바루가 저렇게 짠한 눈으로 보는 거임?

       – 화령님 뭐 했어요.

       

       “뭘 했냐니. 그저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를 고를 적에 제한을 걸었을 뿐이다.”

       

       이전까지 본인은 무작정 싸움을 벌이고 다녔을 뿐 돈벌이 다운 돈벌이를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지닌 것이 없으니 당연히 사용하는 데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잖느냐.

       

       “이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전의 가난을 회고하듯 바루가 그리 이야기를 하자 채팅창의 반응이 격했다.

       

       – 가난한 엄마랑 딸이야?

       – 엄마. 나 배고파. 그치만 참을게.

       – 크흑. 효심이 깊은 딸이네.

       – 천마망. 우리 이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거야?

       – 싸움 밖에 모르던 엄마가 드디어 성공했구나!

       

       “누가 엄마더냐. 누가.”

       

       본인은 저런 딸을 둔 적이 없다.

       

       애초에 바루가 본인보다 몇 배는 긴 세월을 살아왔을 터인데 어찌 그녀가 내 딸이 될 수 있겠는가.

       

       연배로 따지자면 본인은 바루의 딸도 아니고 손녀여야 할 터인데.

       

       그리 항의를 해보았지만 시청자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 할매라고 불리지 않은 게 어디더냐.

       

       슬슬 곰방대를 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종업원이 쟁반을 들고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걸 우선해서 가져왔다는 그녀는 유부초밥과 유부튀김등과 함께 여러 반찬을 내려놓고서 자리를 떴다.

       

       종업원이 떠나가기 무섭게 젓가락을 든 바루와 백화령이 각자 음식을 집어 들었다.

       

       둘이 노린 것은 똑같이 유부튀김이었다.

       

       거의 동일한 시간에 유부튀김을 입에 던져 넣은 두 사람은 입술을 한 번 우물거리더니 눈을 크게 뜨고서 재차 유부 튀김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무어냐. 그렇게나 맛있는 것이냐?

       

       기껏해야 유부의 안에 속을 채우고 그것을 튀겼을 뿐인 음식이지 않나.

       

       고갤 갸웃거리며 젓가락으로 유부튀김을 집어 들고 그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둘의 반응이 왜 저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겉의 바삭한 튀김을 넘어서자 안의 보드라운 유부와 함께 속이 씹혔다.

       

       불고기? 내가 아는 음식 중에서 비교하자면 그와 가장 비슷할 것 같구나.

       

       간장을 기본으로 한 양념과 겉에 배어있는 진한 불향.

       

       씹는 맛이 있는 고기와 식감을 다채롭게 해주는 여러 채소들.

       

       그 모든 것이 입 안에서 어우러지니 나도 모르게 눈을 치뜰 수밖에 없었다.

       

       과연. 놀라운 맛이구나.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음미하지만 말고 설명을 해주세요!]

       

       “아아. 미안하구나.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는 그러니까.”

       “지금 장난합니까?!”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해주려던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고함을 내질렀다.

       

       교양이 없는 자로구나. 여기에 식사를 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거늘.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옮기니 무인으로 보이는 자가 반대편에 있는 이를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이제와서 돈을 줄 수 없다니요!”

       “자네들이 임무에 실패한 건 사실이지 않나.”

       “실패? 실패?! 의뢰를 완수하기 직전에 취소를 명한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대충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돈을 주고 싶지 않은 이와 자신이 일한 바만큼의 임금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의 싸움이었다.

       

       무림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중 하나였다.

       

       이 곳은 현대처럼 법적인 규율이 엄격하지 않으니까.

       

       이전에 정파가 이 도시를 지배했을 때야 그들이 시시비비를 가렸겠지만 지금은 판결을 내려줄 이가 없겠지.

       

       “하. 알겠네. 내가 양보하지. 약속했던 절반을 주겠네.”

       “지금 모든 돈을 준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절반이 말이 된다 생각합니까!”

       “그럼 뭐 어쩌란 겐가.”

       “이 사람이 진짜!”

       

       무인 집단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다른 무인들도 함께 무기를 뽑아 들었다.

       

       “돈 내놔. 그렇지 않으면!”

       “뭐 어쩔텐가.”

       

       상인이 말을 꺼냄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뒤 편에 앉아 있던 이가 몸을 일으켰다.

       

       대충 보기에 절정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은 상인의 옆에 서더니 다른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꺼져라. 쓰레기들아.”

       “당신은 흑운파의 설도!”

       “내 이름을 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알겠지?”

       “사파의 사람들은 도리도 모르는 것이오!”

       “그러니까 사파 아니겠나.”

       

       소꿉놀이는 바깥에 나가서 해주면 좋으련만.

       

       그리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만 저대로 내버려 두면 칼부림이 나겠지.

       

       그럼 주방의 사람들도 음식에 집중하지 못 할 테고.

       

       어쩌면 가게가 영업을 종료할 지도 모른다.

       

       적당히 쫓아내고 오도록 할까.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무인 중에 하나가 상대를 향해 술병을 집어 던졌다.

       

       그 동작은 너무도 뻔했던 지라 반대에 서 있는 자는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술병을 피했고 목적지를 잃은 술병은 우리에게로.

       

       “예의를 모르는 작자들이구나.”

       

       날아오던 술병이 빨려 들어가듯 백화령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할 때에는 개새끼조차 예의를 지키거늘.”

       

       방금 전까지 허술한 미소가 지어져 있던 그녀의 입가가 굳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식당에서 깽판나는 건 항상 있는 일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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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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