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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

         

         끔뻑끔뻑.

         눈꺼풀이 몇 번 느리게 움직였다.

         

         콧수염 끝자락이 중력을 거스르고 위쪽으로 호로록 말린, 굉장히 인상적인 조형미를 털을 이용해서 갖춘 중년 남자가 멍하니 이쪽을 쳐다봤다.

         

         내부에 다른 사람이 보이지도 않고 사장석에 태연히 앉아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걸로 보건대 분명 그가 사장이라고 생각되는데… 까탈스럽게 손님을 가리는 것과는 별개로 눈치가 빠른 건 아닌지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가 그다지 보이지 않았….

         

         아니, 아저씨. 손님 받으라니까?

         

         “크흠, 저기…… 아가씨? 방금 입점 불가 메시지가 재생되지 않았나…?”

         

         “……콜록.”

         

         목 안쪽에서 치솟은 기침을 작게 토해냈다. 고압적인 부자 작전은 시작부터 실패다.

         분명 돌아갈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당황한 거였군요. …아니, 그걸 또 안에서 쳐다보고 있었냐고!

         

         가게 전면에 설치된 반투명 유리창을 밉살스럽게 노려본 뒤, 무슨 대답을 돌려주는 게 좋을까 잠깐 고민해봤다.

         

         …그냥 기기 오작동이라고 우겨볼까? 하지만 그러다가 걸리면 쪽팔린 건 기본이고, 자칫 들어오자마자 거짓말부터 일삼는 클라이언트로 비춰지기는 좀 그런데.

         

         어쨌거나 이건 중개사 씨를 내 협상 대리인으로 고용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최소한의 상호 신뢰를 확보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다른 전문가를 찾는 게 낫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여기는 딱히 신분이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게 죄가 되는 동네는 아니었다. 게다가 열 받은 김에 에나마 시민증을 확 긁어서 통과하긴 했는데, 이 명의를 그대로 써서 집을 사면… 끔찍한 대참사가 날 게 뻔하고.

         

         어디까지나 위조한 가짜라는 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전부 진짜일 경우에만 넘어가는 사항이기는 한데, 발행하는 주체가 기업이고 검사하는 것도 기업이라면 그들이 믿어주는 건 사실이 된다는 뜻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 두 신분증은 어느 쪽이나 보증해줄 메가코프 고위 관료도 존재하는 공인된 신원이리라.

         

         물론… 인정하는 순간부터, 대강 ‘뭔가 시민권 여러 개를 돌려써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인간’이라는 그렇고 그런 딱지는 피하기 힘들겠지만!

         

         “……평소에 편하게 쓰던 신분이 안 먹혀서 다른 걸로 들어온 것뿐이야. 그래서, 여기 영업은 하는 거야 아저씨? 고객 평가는 대체적으로 높던데.”

         

         최대한 별일이 아니라는 듯. 저어어얼대 홧김에 저지른 내점과는 거리가 먼 예정된 방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평이한 말투로 접객을 재촉.

         

         그러자 정확한 해석의 방향성은 몰라도, 우리에게서 풍기는 무주택자의 큰 결심과 진한 돈냄새를 맡은 것인지 그의 얼빠졌던 얼굴이 순식간에 긴축되었다.

         

         받아도 처치만 곤란할뿐더러, 별로 달갑지도 않은 아저씨의 함박웃음은 덤으로 주어졌고.

         

         “아하…! 아이구야! 어서 오시지요 고객님! 요즘처럼 살벌한… 커허흠!! 지갑을 열기 어려운 불경기에 큰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선택과 꿈을 합리적인 가격에 현실로 만들어드리는 마술사이자, 접객 담당자이자, 세무사 겸 중개사 리처드라고 합니다.”

         

         “어…… 네, 그래요. 리처드 씨. 반갑긴 한데, 앞에서 떠들려 하다가 끊은 ‘살벌한’ 수식어는 뭔가요?”

         

         장황한 소개 인사보다도 노골적인 헛기침으로 감춘 뒷말에 더 관심이 가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이런 입지 좋은 곳에서 오롯이 사람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능력자가 그런 말조심도 할 줄 모르는 건 아닐 터이니, 되려 자신이 연기가 어설픈 익살꾼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이고. 뭐, 별로 새로운 건 아니고… 요즘 뉴스가 시끄럽지 않습니까? 한동안은 파라다이스가 웅성웅성하더니, 바톤이라도 이어받는 것처럼 이번에는 에나마와 헤이롱이.”

         

         “수술 당한 메가코프 관계자가 얼추 두 자릿수에 달한다는 루머가 도는데 말이죠. 힘이 실리는 사람이 달라지면 시장도 요동친다고, 아무래도 최근 파리가 날려…가 아니라! 선뜻 부동산 매매를 원하시는 분이 나타난 지가 좀 돼서 제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크흠, 머리 숙여 사과드리죠! 불쾌하셨다면 다음에 다시 찾아 주셔도 됩니다.”

         

         ‘……어라? 이 아저씨 제법?’

         

         고객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면 더 자세하게 알리고, 반대로 무관심하고 용무가 바쁜 이라면 두리뭉술하게 넘어간다?

         

         본격적인 상담 시작에 앞서 집을 찾는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명확히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은 손님이라면 돌아서 나갈 기회를 주었다.

         

         배려가 배려인 줄 모르게 하는 게 최고의 대접이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접객하는 손님 층을 선 그어 놓은 만큼 꽤 일처리에 자신이 있는 것 같았으니.

         

         어쩌면 내 요구에 맞는 보금자리를 찾아줄 믿을 만한 적임자를 단번에 찾을 걸지도 모르겠다.

         문전박대를 일삼으면서도 정작 이용한 사람들에게는 평가가 좋은 이유가 있었네.

         

         “…아뇨! 오늘 꼭 거래를 마치고, 가능하면 입주도 하려고 호텔 연장도 포기하고 왔으니까 잘 좀 부탁해요.”

         

         손을 리처드 아재 쪽으로 뻗었다.

         당신을 고용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아 가벼운 악수를 제안한 건데, 그는 손바닥을 마주잡은 걸로도 모자라 아예 양손으로 붙들더니 속사포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거 정말 단아하신 외모만큼이나 결단력도 정갈한 귀인이셨군요! 혹시… 어마어마한 혜안이나 크게 떠들기 어려운 정보가 있으셔서 이렇게 와주셨는지!?”

         

         “그…… 전. 혀. 저는 안타깝지만 아는 게 없네요.”

         

         ……믿을 만하다는 말은 잠시 보류, 사기꾼은 아닌데 손해도 안 보는 타입이셨군요. 음.

         

         저런 정세 문제는 크게 고민도 안 하고 과소비를 하러 나온 주제에, 나도 모르게 가벼워질 뻔한 입을 단속하면서 붙잡힌 손을 빼냈다.

         

         한가롭게 계속 잡담을 빙자한 신경전이나 나누고 차를 대접받는 것도 인생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괜찮을 수 있었지만.

         

         가지고 싶은 물건에 대한 열망이 뚜렷한데, 더는 시간을 허비하기는 싫어서 나는 바로 찾는 물건의 조건을 줄줄 읊어주었다.

         

         “12억 크레딧까지는 일시불로 낼 수 있어. 아저씨가 본인 수임료를 덜 받겠다고 자진해서 깎으면 12억 5천만도 될지도? 하여간 밤에 좀도둑이나 총맞을 걱정 안 할 정도로 주변 치안 좋고, 내부에서 로봇 굴려도 멀쩡한 소재로 지어졌고, 남은 가재 기물이 있다면 좋고, 또 편의 시설에서 가깝고, 시설물 증축 허가도 내가 이어받을 수 있는 집. 거래 매물로 나와있어?”

         

         “과연, 과연… 12억이라…!”

         

         1%의 수수료만 해도 기본적으로 천만 단위.

         기대했던 액수에 미쳤는지 확답할 수 없었지만 일단 충분히 구미가 당겼는지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서 착석한 그가 홀로그램 창을 쫙 펼쳐 놓고 조사에 착수했다.

         

         그럼 나는 뭐했냐고? 수수료 논의는 아직이지만 대리인도 뽑았겠다 느긋하게 손님용 소파에 몸을 뉘였지.

         

         – 정말 소독제를 꺼내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

         

         “…악수 좀 했다고 상대방을 무슨 보균자나 염산 테러범처럼 취급하는 게 더 실례인데? 돈에 대한 사심 말고는 별생각도 없어 보였고.”

         

         – 그건 당연합니다. 만약 다른 의도가 감지되었다면 이미 격리 조치에 나섰습니다. –

         

         겸사겸사 유난을 떠는 제로도 좀 진정시켰고.

         근데… 격리 조치가 대체 뭐니, 우리가 손님이고 여기는 저 사람 가게인데.

         

         그렇게 5분, 10분.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래 걸리는 만큼 후보지가 너무 많이 나오면 피곤하겠다. 오늘내로 다 돌아보기 힘들면 어쩐다 같은 희망찬 상상이나 하면서.

         

         그러니까 내가 리처드 씨의 엉뚱한 보고에 발작적으로 대응한 건 기대치가 너무 높게 쌓인 탓, 거기에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처참한 결과에 대한 기함이었다고 변명해보겠다.

         

         웬만큼 판매 의사가 있거나 있었던 집들을 전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소박한 조건에 부합하는 부동산이 없다는 결과 말이다.

         

         “살 수 있는 집이 없다고?? 대체 왜!?”

         

         “그… 그야,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매물이 없으니까요?!”

         

         흡사 태양은 왜 매일 아침 뜨나요~ 같은 질문을 들은 학부모 마냥 그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쉬움과 짜증을 집어삼키며, 어째서 이런 영수증이 출력되었나를 따져보고 있었다.

         

         역시 예산인가? 그렇지만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바란 것도 아닌데?

         아니면 입맛대로 마구 개조해서 벙커 비슷한 요새라도 만들어보려고 조건문을 덕지덕지 도배한 게 무리수였나?

         

         ……크으읏!

        무슨 자판기에서 간식 사는 것도 아니고, 일생일대의 쇼핑을 하는데 이 정도도 어렵다니!

         

         “아나스타샤 고객님, 제가 시장이 꽤나 굳어있다고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고객님의 요구사항이 다소… 구체적인 측면은 있었으나, 이 넓은 네오 헤이븐에서 일치하는 물건이 한 개도 나오지 않은 건 역시 시기가 안 좋은 탓이 큽니다.”

         

         “…그래요?”

         

         마치 내가 속으로 뭘 어떻게 깎아내고 얼마나 양보해야 현실적인 오답지를 돌려받을 수 있나 고민하던 걸 꿰뚫어본 것처럼 리처드 씨가 실망한 내게 그럴싸한 환경 요인을 알려주었다.

         

         의외다. 그냥 깔끔하게 물러나다니.

         보통 이런 때 중개사는 엇비슷한 다른 물건-타협안-이라도 제시해서 구매 욕구를 유지시키지 않나?

         

         “분명 단독 주택은 따로 없지만… 희망하신 내용에 부합하는 공실이라면 여기저기 많이 잡히는데 한 번 직접 둘러보는 게 어떠신지요?”

         

         “…….”

         

         아하, 아직 말을 꺼내기 전이셨군요.

         난 또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명함이라도 주는 줄 알았다.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오랜만에 온 청약 의사 확실한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리가 있나.

         

         …하지만 한도 예산을 12억이나 박고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 입주하라고? 당신… 추천할 정도로 끝내주는 매물이 있다면야 둘러보겠는데.

         발품 팔고도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밤새도록 여기서 저 주택 관리 프로그램이나 새로고침하게 만들 거니까… 각오하십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않이 이거 진상이 따로 없네.)

    원래는 쭉쭉 썼어야 하는데, 폭염 특보에 땀 뻘뻘 흘리고 정신 못 차리다가… 기어이 0.5화로 잘라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땀 때문에 앞이 안 보여요….

    f asd_361 님의 관대한 12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재밌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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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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