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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누아르는 매독으로 죽었다.

     또 옛날 이야기냐.

     지겹지도 않느냐.

     ‘지겹지 않아.’

     항상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마도공장에서 인명사고가 난 걸 잊고 경시하다가 또 사고가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매번 과거의 사고를 떠올리는 것처럼, 가족들이 죽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경계하고 자각해도 모자라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누아르 지브롤터라는 인간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나타났다면, 나는 무조건 경계를 해야 한다.

     “저, 저기. 이사장님…?”

     내 앞, 청발청안의 여인이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있다.

     “머리카락이 푸른색이군,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

     “아, 네! 신입생들 사이에서 푸른색이 아무래도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염색을 했답니다.”

     원래는 금발벽안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머리카락은 저기 제국에서 들여온 특수염색약으로 머리를 푸른색-‘합스베르크 색’으로 물들인 것 같다.

     “마법은 아니고?”

     “그, 마법으로 염색을 하기에는 저희 가문이….”

     하르마니아 자작가는 그다지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은 아니다.

     딸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주변에 남자가 꼬일 것 같기도 하지만, 딸을 이용하면 어디 엄청난 가문과 사돈 관계라도 맺을 것 같았지만, 하르마니아 자작은 정작 그 일선을 넘지 못했다.

     “그렇군. 그래서 본 이사장은 자작 영애를 신입생 중 ‘지브롤터 장학생’으로 선정했다.”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만일 이곳에 아스타시아가 있었으면 직접 비교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아스타시아보다는 어머니와 비교를 하는 게 더 자웅을 겨룰 수 있겠다 싶은 크기였다.

     샤를로테 하르모니아.

     

     어머니가 한창 17세 꽃다운 나이에 미모를 떨칠 당시, 하르모니아 자작은 자신의 딸 이름을 어머니 샤를로트와 비슷하게 이름을 지었다.

     당시, 유행이었다.

     ‘샤를’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미녀가 태어날 것이며, 지브롤터 변경백과 같은 미남과 결혼할 거라는 꿈에 다들 부풀어있었다.

     이름을 비슷하게 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닮는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세이트’들이 망나니가 되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특이케이스.

     “소문대로 엄청난 미인이군.”

     “아, 감사합니다.”

     샤를로테 하르마니아는 모두의 예상대로 미인이 되었으나, 아직 공식적으로 그 누구와도 결혼하거나 연애를 한 적이 없다.

     “물론, 나의 아스타시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

     샤를로테 영애가 쓴웃음을 짓는다.

     눈앞에서 비교를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이 여인은 이 자리에 부담없이 나올 수 있었다.

     왜냐고?

     ‘솔로이자 처녀인 어머니 앞에서 가슴 안 설렐 남자가 어디에 있겠냐고.’

     어딜 가더라도 샤를로테 영애를 향해 추파를 던지는 남자가 많으니까.

     비록 어머니의 전성기에 비하면 24살이라는 나이는 귀족치고는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최근에는 제국에서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여자 나이가 25살이면 늦은 것도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협곡을 타고 흘러들어오고 있다.

     제국 기준으로 따지면, 결혼 적령기.

     노스트럼 왕국 귀족 입장에서도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품고 다니기에 어디가서 부끄럽지 않은 여인.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는 뭔가? 취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아카데미에 있는 남학생을 찾아 결혼하기를 바라세요.”

     “지금까지 하르마니아 자작이 결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것저것 조건을 많이 따지셨어요. 약혼까지 간 적은 없지만, 그런 조건을 따지는 자리에서 많이 파행되고는 했죠.”

     하르마니아 자작은 그런 딸을 최대한 고점에 팔려고 벼르고 벼르다, 결국 딸을 24살까지 결혼하지 못한 처녀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실제로 약혼한 적은 없고?”

     “만난 적도 없어요. 제가 나서기 전에 이미 아버지 선에서 전부 깨졌으니까. 아. 이건 패륜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 뿐이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는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으니까.”

     “…초면이지만, 감사합니다. 부담없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이 여자가 나를 편하게 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내가 자신의 몸을 노리는 남자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금 버겁긴 해요. 아무래도…주변에서의 시선에 제가 민감한 편이니까.”

     “미인의 숙명이지. 그래서 내가 아스타시아를 입학하자마자 옆에 딱 달라붙어다녔고. 아, 그런 걸 생각한다면 꿈도 꾸지 마라. 나는 전생과 현생, 미래를 통틀어 아스타시아말고는 없으니.”

     “……살짝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이사장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여자기에 이런 말을 듣는 게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수록 샤를로테의 경계가 수그러든다.

     “그래. 슬슬 내가 그대를 부른 이유가 궁금하겠지.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할 테니.”

     “…….”

     “왜. 설마 내가 신입생 중 가장 미녀라고 칭송받는 그대를 불러다가 ‘우리 아스타시아가 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녀다’라고 대놓고 면박을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나?”

     “조, 조금은…?”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잠시 솜누스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아스타시아는 그런 비교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미 절대적으로 사랑스러운 여신인 것을.”

     “…….”

     “다른 이들은 비교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비교할 수 없어. 아스타시아가 무조건 0순위이며, 그 다음을 논한다면 당연히 순위는 정해져있으니까.”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레타르 지브롤터. 나의 여동생.”

     “……그 다음은요?”

     “처녀 시절의 우리 어머니,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

     “…아, 그러시군요.”

     이제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미치광이를 바라보는 것 같은데, 다행히 덕분에 수컷을 향한 경계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림슨 지브롤터의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 그레이 지브롤터의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그 옆에 따라붙는 이름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모두가 인정하는 바.”

     나는 찻잔을 비웠다.

     “누아르 지브롤터.”

     샤를로테가 움찔거렸다.

     “노리고 있나?”

     “…….”

     “아니면, 노리라고 명령을 들었나.”

     “그게….”

     “솔직하게 말해야 할 거야. 나는 당장은 적대하더라도 타협을 통해 우군이 되는 자는 수용할 수 있지만, 거짓으로 다가오는 자는 영원히 적이라고 생각하거든.”

     “……명령을 받았습니다.”

     샤를로테 영애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답했다.

     “아버지로부터, ‘누아르 지브롤터를 어떻게든 네 남자로 만들어라’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그야, 지브롤터의 차남이잖습니까. 그레이 지브롤터가 검은 약해도 비룡을 타는 건 마스터급이라고 알려지기 이전까지…아니, 지금도 누아르 지브롤터가 적어도 ‘노스트럼의 지브롤터 백작가’ 주인이라고 하는 말이 떠도는 것처럼.”

     “지브롤터 백작가의 장남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를 하는군.”

     “저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을 그대로 옮길 뿐이에요. 귀족으로서 그게 문제가 되는 부분도 아니고.”

     자녀의 결혼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노린다?

     귀족 가문에 있어 딱히 문제가 된다거나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장려되는 부분이다.

     “잠시 실례를 하지. 누아르와 그대의 나이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혹시 알고 있나?”

     “…거두절미하고, 거의 10살 차이입니다.”

     “정확하게 9살이지. 그대가 나보다 6살 많으니.”

     여자의 나이를 언급하는 건 분명한 실례.

     하지만 이 또한 분명한 사실.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그대가 누아르의 학업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어째서죠?”

     슬슬, 나를 향한 감정이 드러난다.

     “제가 누아르 지브롤터 ‘선배님’에게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경계가 아닌, 적의.

     그건 명백히 자신의 감정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향한 분노.

     “맞아요. 제 나이는 24살이죠. 아카데미 재학이 아니라, 졸업은 커녕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워도 모자랄 그럴 나이.”

     “그런 걸 다 떠나서, 누아르랑 그대는 9살 차이….”

     “누아르 선배님이 20살이 되었을 때의 제 나이는 29살. 아직, 꺾이지는 않았죠. 그리고 저, 관리 철저하게 해왔어요.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요.”

     “…하아.”

     여러 가지로, 많이 꼬였다.

     “아버지의 명령 뿐만이 아니다, 이거지?”

     “예.”

     너무나도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왜?”

     “왜냐뇨?”

     “왜 그 ㅅ…누아르지?”

     “…이사장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사장님이 아스타시아 황녀님께 ‘그 우승’을 하기 이전에도 사교계에서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이성적으로 한 번 접근해보는 거, 좋겠지 않냐고.”

     “키스 마크가 붙은 편지라면 읽지도 않고 다 태워버렸는데.”

     “그렇게 간 러브레터보다 수 배는 더 많은 편지가 누아르 선배님께 갔을 거예요.”

     “그러니까, 왜?”

     “당연하죠. 좋은 분이니까요.”

     나는 회귀 이후, 누아르를 소위 ‘사람’으로 만들어뒀다.

     “능력은 그 나이에도 중급기사 수준에, 이미 키는 저보다 크고 몸도 다부져있죠. 지브롤터 가문의 차남이고, 장남이신 도련님께서 제국의 부마가 된다면 변경백 자리는 자연스레 누아르 선배님이 이어받게 될 것이다.”

     “…….”

     “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답니다. 처음에는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시험을 치기로 했어요. 현재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 지브롤터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의…환심을 사기 위해.”

     내가 형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나름 여자가 보기에는 장래가 창창한 소년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버지의 제안이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봤답니다. 그…사진이라고 했죠? 누아르 지브롤터를 찍은 사진을 봤답니다. 지난 1학기 말, 함께 훈련하는 선배님들과 대련장에서 찍힌 사진을.”

     “도촬일 건데.”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그리고 실제로 누아르의 장래는 적어도 성격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지브롤터의 피를 이어받은 만큼 얼굴도 몸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아르 지브롤터 도련님이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깔끔하게 포기할게요.”

     누아르가 욕을 먹었던 건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정확히는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

     “하지만 적어도 마음에 들지 안들지, 도전은 해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직 옆자리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아르가 과연 강제로 안았던 여자가 많았을까.

     아니면 누아르 지브롤터에게 계산기를 미리 두드리고 접근하여 술 한 잔에 사랑을 나눈 여자가 많았을까?

     “저, 이번에 입학식에서 재학생 선서로 나서는 거 보고 확신했어요. 앞으로 성인이 되실 때까지 5년만 기다리면 된다고.”

     “…….”

     “솔직히 저, 겉으로 보면 18살 정도로 보이거든요? 누아르 도련님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그 또래로 보일 거고. 정말이지, 예쁘게 태어난 거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순간이었답니다.”

     적어도 강제로 안겼다고 찾아온 사람이 없지는 않았어도, 그 중 열에 아홉은 조사결과 그렇게라도 이야기를 해서 매국노 그레이의 이목을 끌어보려고 했던 이들어있다.

     “…누아르는 여자 쪽으로 안 좋은데.”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 없는데요?”

     “아니, 그.”

     “제가 이사장님만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누아르 도련님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정보를 얻었답니다. 그분은…다른 노스트럼의 귀족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귀족으로서 귀감이 되는 의젓한 분이라는 걸!”

     “……하.”

     그랬던 누아르는 없다.

     그저 매국노 그레이와 대비되는, 노스트럼의 전통을 수호하며 아카데미에서 수석과 차석을 번갈아하는 차기 소드마스터만이 있을 뿐.

     “…저, 자신 있거든요.”

     그 바람에, 아무래도 귀족 영애들의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노리는 이들이 많아져버렸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답니다!”

     “아니, 아는데.”

     “아신다면, 굳이 막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저는 순수하게 이성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9살 연하라니까.”

     “20살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

     …아니, 당신.

     회귀 전에 몸에 매독균을 몰래 품고 누아르를 죽여버렸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회귀전 – 등신랑감
    회귀후 – 1등신랑감

    ※12월 30일~31일 연재 시각입니다
    184화 : 12월 30일 오후 3시
    185화 : 12월 31일 정오 12시
    186화 : 1월 1일 자정 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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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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