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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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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빨간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짐승의 길쭉한 동공, 머리 위로 솟아오른 복슬복슬한 늑대의 귀, 얌전히 늘어져 있는 붉은 꼬리.
   
   
   이곳에서 절대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동료가 그곳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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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스?! 제스가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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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입에 파리가 들어갈 것처럼 입을 헤 벌린 채 제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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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밝은 미소와 애처롭게 반짝거리던 눈동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고, 항상 미소를 머금은 채 휘어있던 입술은 일자로 꾹 다물려있어 날카로운 분위기가 더욱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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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을 느리게 훑어보던 시선이 리안과 딱 마주친 순간, 리안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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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하다 못해 살기가 번들거리는 시선은 그를 조각조각 내어 부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넘실거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삐죽 튀어나와 서늘하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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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송곳니는 도리어 제스의 귀여움을 강조해줬지만, 그 기능까지 귀여운 건 아니었다. 송곳니를 마력으로 강화한 채 적을 물어뜯으면 물린 곳이 종이 찢어지듯 뜯겨 나갈 정도의 위험한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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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벌한 시선을 마주하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늑대 굴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불쑥 치솟았다. 리안은 목뒤가 물린 짐승처럼 덜컥 굳은 채 멍하니 제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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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면 된다. 나머지 설명은 같은 방 노예에게 듣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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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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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역 0에 배정되는 존재들은 모두 간부급의 강자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틴다 수준이었지 제압할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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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다 들여온 노예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송 중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해 도주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을 이송하는 과정은 시한폭탄을 직접 두 손으로 운반하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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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수는 손에 든 폭탄을 최대한 빨리 타인에게 던져버리고 싶어 0구역에 대한 설명을 같은 방의 죄인에게 떠넘겼다. 리안이 차지한 몸 주인은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기에 고기 방패로 사용하자는 심리가 깔린 행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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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유로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은 방 안에는 제스와 리안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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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이나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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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눈앞에 있는 제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제스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제스는 애교가 많고 외로움을 잘 타는 여린 아이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자는 얼굴과 몸이 지나칠 정도로 닮았을 뿐 분위기는 칼날처럼 날 선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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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혹시 모르니까 아는 척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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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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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속으로 결심을 굳히는 것과 동시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제스가 성큼성큼 리안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거를 때마다 손목과 발목에 달린 사슬이 거칠게 흔들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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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어설프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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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안녕하 -.. ”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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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리안의 얼굴 코앞까지 다가와 코를 찡긋거리며 어떠한 향을 맡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거리감에 리안은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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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과 불안, 분노와 애정이 뒤섞인 시선이 리안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루비처럼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눈동자 속에 검은 머리를 한 육체가 그대로 비춰 보였다. 마치 그 속에 자신이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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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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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가벼운 비음을 흘리더니 이내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 몸을 휙 돌려 비어있는 침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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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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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붉은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멀어지는 제스의 등을 쫓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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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순간 잡아먹히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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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덜미가 물어뜯길 것 같던 아찔한 공포 때문인지 리안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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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시골 강아지 같다면 저 사람은 뭔가… 고양이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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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이 사뿐사뿐 걸어 침대 속에 몸을 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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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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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조금 전 간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붕붕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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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감옥에 대한 설명을 해주라고 했는데… 난 아는 게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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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끙끙거리며 침대로 돌아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머리카락을 괴롭혔다간 가운데가 허해질 수 있었기에 대신 머리를 양손으로 꾹 누르며 등을 보인 채 누워있는 붉은 머리의 수인을 흘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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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으로 누운 탓에 몸매 라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몸매의 선을 따라 시선을 굴리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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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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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몸을 함부로 훑어보면 안 된다는 상식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간부급의 강자라는 것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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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도의 강자라면 내 시선 정도는 전부 눈치채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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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의 손상까지는 회복이 가능하겠지만 제 원래 육체처럼 용암에 들어갔다가 뼈다귀 상태로 빠져나오는 짓은 불가능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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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리안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와작와작 부숴버리기라도 한다면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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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조용히 빠져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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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불쑥 치솟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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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만 하면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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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시선이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과 뾰족하게 솟은 동물 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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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제스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두고 갈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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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착하다고 해서 그녀의 가족까지 착하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이대로 떠나보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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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말 정도는 섞어보자. 그러다 죽으면… 다른 육체를 찾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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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0구역을 전부 돌아온 건 아니었으니 자신이 차지한 몸보다 더 좋은 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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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희망찬 생각을 하며 슬금슬금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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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뭐, 뭐라고 말을 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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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가족도,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적 있는 이성도 아닌 정말 처음 보는 미녀에게 말을 거는 건 유니콘의 인정을 받은 리안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증거로 리안의 머릿속에 온갖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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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침이죠? 라고 말해볼까? 잠깐, 여긴 창문이 없어서 언제가 아침인지 알 수 없잖아! 그, 그것도 아니면 밥은 드셨나요… 라고 할까? 만약 배가 고프다고 하면 어쩌지? 여긴 먹을 게 없는데?! 차라리 무릎을 꿇고 기어가서 조심스럽게 불러볼까? 적어도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대화정도 는 해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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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왕을 마주하게 된 평민처럼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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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무릎을 턱하고 꿇은 채 간신처럼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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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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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입을 열어 조심스럽게 상대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붉은 머리의 여자가 몸을 휙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리안은 곧바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입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리안의 머리 위쪽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격이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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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이익!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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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반달 모양의 공격이 리안의 머리 위를 스쳐 건너편 벽을 두드렸다. 위험한 이들을 가둬두는 장소답게 단단한 벽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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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머리 잘릴 뻔했다! 잠깐! 머리카락 멀쩡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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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식겁한 얼굴로 제 정수리를 더듬었다. 다행히 땜빵하나 없이 멀쩡했다. 안도의 숨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손톱 크기만큼 뾰족하게 튀어나온 손톱이 인상적인 예쁜 손이 리안의 턱을 가볍게 쥐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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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몸을 일으켰는지 제스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여자가 침대 끝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리안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려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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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도 나중엔 저런 분위기로 자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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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시한 누나 포스에 압도된 리안은 얼굴을 옅게 붉히며 가벼운 생각을 이어가다가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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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말을 걸 수 있는 기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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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다급히 입을 열어 제 소개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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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안녕하세요. 같은 방… 아니, 감옥을 사용하게 된 리안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함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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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제 소개를 끝내자 조금은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의 얼굴 위로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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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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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너무 익숙해 리안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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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정말 쌍둥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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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얼굴을 리안의 얼굴 옆으로 훅 내렸다. 붉은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게 스치고 향긋한 숨결이 귓가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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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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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여자는 리안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몇 번이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뭔가를 찾는 듯 예쁜 코가 목덜미를 닿을 정도로 얼굴을 박은 채 연신 코를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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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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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게서 고개를 떼어낸 여자의 표정은 묘했다. 기뻐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원하던 걸 찾진 못한 것 같았다. 말없이 딱딱하게 굳은 리안을 내려다보던 여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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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제스야.”
   “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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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슬슬 피하던 눈동자를 곧바로 직시했다. 제스의 가족이라 확신했던 존재가 제스 그 자체였다는 사실에 당황한 리안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내보이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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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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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얌전히 늘어져 있던 제스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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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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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주인에게서만 볼 수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정을 발견한 제스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제 주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겉모습과 냄새가 달라졌다고 해도 애정을 가득 담은 시선과 목소리는 숨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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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제스 너… 지금 쭈인님이 아니라 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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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 한 마리의 야수가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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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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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도하게 반짝거리던 제스의 눈동자는 어느새 별이라도 박아넣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다른 사람에겐 도도하고 차갑지만 제 주인 앞에서만 행복한 강아지가 되는 제스..

리안 : 나를 구하러 왔구나!?
제스 : 아니 나도 잡혀왔는데?
리안 :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빨간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짐승의 길쭉한 동공, 머리 위로 솟아오른 복슬복슬한 늑대의 귀, 얌전히 늘어져 있는 붉은 꼬리.

이곳에서 절대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동료가 그곳에 서있었다.

‘제,제스?! 제스가 왜 여기에?!’

리안은 입에 파리가 들어갈 것처럼 입을 헤 벌린 채 제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언제나 밝은 미소와 애처롭게 반짝거리던 눈동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고, 항상 미소를 머금은 채 휘어있던 입술은 일자로 꾹 다물려있어 날카로운 분위기가 더욱 진해졌다.

방 안을 느리게 훑어보던 시선이 리안과 딱 마주친 순간, 리안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무심하다 못해 살기가 번들거리는 시선은 그를 조각조각 내어 부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넘실거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삐죽 튀어나와 서늘하게 반짝거렸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송곳니는 도리어 제스의 귀여움을 강조해줬지만, 그 기능까지 귀여운 건 아니었다. 송곳니를 마력으로 강화한 채 적을 물어뜯으면 물린 곳이 종이 찢어지듯 뜯겨 나갈 정도의 위험한 무기였다.

살벌한 시선을 마주하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늑대 굴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불쑥 치솟았다. 리안은 목뒤가 물린 짐승처럼 덜컥 굳은 채 멍하니 제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면 된다. 나머지 설명은 같은 방 노예에게 듣도록.”

끼익, 철컹!

구역 0에 배정되는 존재들은 모두 간부급의 강자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틴다 수준이었지 제압할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아니었다.

거기다 들여온 노예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송 중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해 도주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을 이송하는 과정은 시한폭탄을 직접 두 손으로 운반하는 것과 같았다.

간수는 손에 든 폭탄을 최대한 빨리 타인에게 던져버리고 싶어 0구역에 대한 설명을 같은 방의 죄인에게 떠넘겼다. 리안이 차지한 몸 주인은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기에 고기 방패로 사용하자는 심리가 깔린 행동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은 방 안에는 제스와 리안만이 남게 되었다.

‘제스가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이나 뭐,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눈앞에 있는 제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제스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제스는 애교가 많고 외로움을 잘 타는 여린 아이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자는 얼굴과 몸이 지나칠 정도로 닮았을 뿐 분위기는 칼날처럼 날 선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끙… 혹시 모르니까 아는 척은 하지 말자.’

잘그락.

리안이 속으로 결심을 굳히는 것과 동시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제스가 성큼성큼 리안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거를 때마다 손목과 발목에 달린 사슬이 거칠게 흔들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리안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어설프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 안녕하 -.. ”

“킁킁.”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리안의 얼굴 코앞까지 다가와 코를 찡긋거리며 어떠한 향을 맡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거리감에 리안은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의문과 불안, 분노와 애정이 뒤섞인 시선이 리안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루비처럼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눈동자 속에 검은 머리를 한 육체가 그대로 비춰 보였다. 마치 그 속에 자신이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흐응…”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가벼운 비음을 흘리더니 이내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 몸을 휙 돌려 비어있는 침대로 향했다.

“아..”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붉은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멀어지는 제스의 등을 쫓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꿀꺽, 순간 잡아먹히는 줄 알았네…’

목덜미가 물어뜯길 것 같던 아찔한 공포 때문인지 리안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제스가 시골 강아지 같다면 저 사람은 뭔가… 고양이 같네.’

소리 없이 사뿐사뿐 걸어 침대 속에 몸을 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리안은 조금 전 간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붕붕 떠올랐다.

‘여기 감옥에 대한 설명을 해주라고 했는데… 난 아는 게 없잖아!’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끙끙거리며 침대로 돌아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머리카락을 괴롭혔다간 가운데가 허해질 수 있었기에 대신 머리를 양손으로 꾹 누르며 등을 보인 채 누워있는 붉은 머리의 수인을 흘긋거렸다.

옆으로 누운 탓에 몸매 라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몸매의 선을 따라 시선을 굴리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러면 안 되지!’

타인의 몸을 함부로 훑어보면 안 된다는 상식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간부급의 강자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 정도의 강자라면 내 시선 정도는 전부 눈치채고 있을 거야.’

어느 정도의 손상까지는 회복이 가능하겠지만 제 원래 육체처럼 용암에 들어갔다가 뼈다귀 상태로 빠져나오는 짓은 불가능할 터였다.

상대가 리안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와작와작 부숴버리기라도 한다면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조용히 빠져나갈까?’

그런 생각이 불쑥 치솟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잘만 하면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리안의 시선이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과 뾰족하게 솟은 동물 귀로 향했다.

‘어쩌면.. 제스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두고 갈 순 없어.’

제스가 착하다고 해서 그녀의 가족까지 착하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이대로 떠나보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말 정도는 섞어보자. 그러다 죽으면… 다른 육체를 찾지 뭐.’

아직 0구역을 전부 돌아온 건 아니었으니 자신이 차지한 몸보다 더 좋은 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희망찬 생각을 하며 슬금슬금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으으… 뭐, 뭐라고 말을 걸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가족도,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적 있는 이성도 아닌 정말 처음 보는 미녀에게 말을 거는 건 유니콘의 인정을 받은 리안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증거로 리안의 머릿속에 온갖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죠? 라고 말해볼까? 잠깐, 여긴 창문이 없어서 언제가 아침인지 알 수 없잖아! 그, 그것도 아니면 밥은 드셨나요… 라고 할까? 만약 배가 고프다고 하면 어쩌지? 여긴 먹을 게 없는데?! 차라리 무릎을 꿇고 기어가서 조심스럽게 불러볼까? 적어도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대화정도 는 해줄지도 몰라.’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왕을 마주하게 된 평민처럼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리안은 곧바로 무릎을 턱하고 꿇은 채 간신처럼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저 -..”

리안이 입을 열어 조심스럽게 상대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붉은 머리의 여자가 몸을 휙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리안은 곧바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입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리안의 머리 위쪽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격이 더 빨랐다.

쉬이익! 콰아앙!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반달 모양의 공격이 리안의 머리 위를 스쳐 건너편 벽을 두드렸다. 위험한 이들을 가둬두는 장소답게 단단한 벽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머..머리 잘릴 뻔했다! 잠깐! 머리카락 멀쩡한가?’

리안은 식겁한 얼굴로 제 정수리를 더듬었다. 다행히 땜빵하나 없이 멀쩡했다. 안도의 숨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손톱 크기만큼 뾰족하게 튀어나온 손톱이 인상적인 예쁜 손이 리안의 턱을 가볍게 쥐어 올렸다.

언제 몸을 일으켰는지 제스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여자가 침대 끝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리안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려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스도 나중엔 저런 분위기로 자라려나?’

섹시한 누나 포스에 압도된 리안은 얼굴을 옅게 붉히며 가벼운 생각을 이어가다가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 말을 걸 수 있는 기회잖아!’

리안은 다급히 입을 열어 제 소개를 쏟아냈다.

“저, 안녕하세요. 같은 방… 아니, 감옥을 사용하게 된 리안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함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제 소개를 끝내자 조금은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의 얼굴 위로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리..안?”

“어?”

슬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너무 익숙해 리안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 정말 쌍둥이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얼굴을 리안의 얼굴 옆으로 훅 내렸다. 붉은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게 스치고 향긋한 숨결이 귓가에 퍼져나갔다.

“킁킁..”

뒤이어 여자는 리안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몇 번이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뭔가를 찾는 듯 예쁜 코가 목덜미를 닿을 정도로 얼굴을 박은 채 연신 코를 찡긋거렸다.

“…”

리안에게서 고개를 떼어낸 여자의 표정은 묘했다. 기뻐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원하던 걸 찾진 못한 것 같았다. 말없이 딱딱하게 굳은 리안을 내려다보던 여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제스야.”

“제스..?”

리안이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슬슬 피하던 눈동자를 곧바로 직시했다. 제스의 가족이라 확신했던 존재가 제스 그 자체였다는 사실에 당황한 리안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내보이는 것과 동시에.

스슷.

얌전히 늘어져 있던 제스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인님?”

제 주인에게서만 볼 수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정을 발견한 제스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제 주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겉모습과 냄새가 달라졌다고 해도 애정을 가득 담은 시선과 목소리는 숨겨지지 않았다.

“어? 제스 너… 지금 쭈인님이 아니라 주인 -…”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 한 마리의 야수가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쭈인님!”

도도하게 반짝거리던 제스의 눈동자는 어느새 별이라도 박아넣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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