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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3

   익시온의 일이 대충 끝나고, 크라슈는 우선 본가로 돌아왔다.

   할 일들이 대거 늘어난 만큼 청송관에서 정리를 마친 뒤 움직일 예정이었다.

     

   “기왕 온 거지 않느냐. 그냥 갔다간 그 아이를 다음에 봤을 때 감당할 수 있겠느냐?”

     

   거기에 크림슨가든의 조언도 있었다.

   그녀 말마따나 크라슈도 비앙카와 인사도 없이 가기는 그랬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 얼굴이니 말이다.

     

   그렇게 크라슈가 청송관에 들어섰을 때였다.

     

   “비앙카 님이시라면 지금 훈련 중이실 겁니다.”

     

   비앙카의 위치를 알려준 것은 청송관의 집사장인 알리오드였다.

   오랜만에 만난 딸인 알리샤여서일까, 알리오드의 얼굴은 부쩍 밝아 보였다.

     

   변색병을 앓던 딸이었으니 늘 걱정했었던 거겠지.

   잘 지내는 걸 보니 안도한 모양이다.

     

   “훈련이라.”

     

   크라슈는 라헬른 아카데미를 가기 전까지 비앙카의 훈련을 몇 번인가 봤었다.

   크라슈가 아카데미를 간 지도 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녀의 수준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크라슈가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이었다.

     

   “?”

     

   입구 앞에 얼음으로 된 자그마한 여우가 하나 있었다.

   몸과 머리가 차이가 없는 여우가 고개를 기울이자 크라슈는 곧 여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빙환수(氷還收)

     

   북부의 환수 술사 제나 에달시아의 환수 술이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제나가 만드는 환수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묘하게 더 차가운 느낌이랄까.

   아직은 살짝 투박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삐이!”

     

   그 순간 소리를 낸 여우가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크라슈가 안으로 들어서자 달려간 여우는 백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숨어들고 있었다.

     

   “피이, 착하지.”

     

   그런 얼음 여우가 도착한 장소.

   거기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훈련 때문인지 평소보다 좀 더 짧고, 가벼운 복장.

   목뒤를 감싸는 백색의 머리카락.

   거기에 청색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눈동자.

     

   비앙카 하덴하르츠.

   크라슈의 약혼자 되는 사람이었다.

     

   확실히 성장기의 아이들은 한순간에 변하는 걸까.

   불과 몇 달 만에 비앙카의 미모는 예전보다도 훨씬 물올라 있었다.

     

   예전에 있었던 어려 보이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고, 이제는 성숙한 면모가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고 있다 이건가.’

     

   항상 붙어 다녀서 몰랐지.

   이렇게 떨어져서 보니 확실히 처음 볼 때 비해 비앙카는 꽤나 많이 컸다.

     

   내년이면 성인이니 사실 당연한 말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비앙카의 왼손 약지에는 반지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훈련 중임에도 끼고 있는 반지는 다름 아닌 크라슈가 선물한 반지였다.

     

   “크라슈 님.”

     

   그러는 사이, 뒤늦게 이쪽을 알아차린 비앙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삐이.”

     

   그러자 비앙카의 목덜미 사이에서 아까 전 얼음 여우가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 이 얼음 여우는 비앙카가 만든 모양이었다.

     

   ‘고작 1년 정도 훈련을 한 걸 텐데.’

     

   이 정도 완성도라니.

     

   제나에 비하면 아직 못 미치긴 하지만 새삼 비앙카의 재능을 깨닫게 한다.

   하긴, 그녀는 백귀 시절 천하십강인 독왕을 죽였을 정도다.

     

   타고난 재능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훈련에 방해됐어?”

   “마침 끝났어요.”

     

   잘됐다.

   마침, 같이 식사할까 생각했으니까.

     

   “와아, 내 귀여운 제자는 표정이 없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표정이 다양했네.”

     

   그러는 순간 어느새 한 여성이 불쑥 나타났다.

   그녀는 비앙카의 스승으로서 그녀를 가르치고 있는 제나 에달시아였다.

     

   여전히 더위를 많이 타는지.

   이제야 초여름에 가까워졌는데 그녀는 가벼운 옷차림과 땀이 범벅이었다.

     

   “오랜만이네요. 크라슈 님, 저 기억하시죠?”

   “사람 기억력이 그렇게 나쁠 순 없어.”

   “요즘 아이들은 돌아서면 잃어버리는 줄 알았죠. 후후, 기억하신다니 영광이네요. 크라슈 님의 소문은 여기까지도 종종 들리거든요.”

     

   비앙카가 이야기해 준 건가 싶지만 그건 또 아닐 거 같았다.

     

   그렇다면 크라슈의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며 득을 취하는 인물이 있단 건데.

     

   ‘1왕자 짓이군.’

     

   스타론 왕국의 1왕자와 크라슈는 일종의 거래를 하였다.

   1왕자는 이참에 자신과 크라슈의 친분을 과시하고자 일부러 더 크라슈 쪽의 소문을 키우고 있는 거였다.

     

   ‘자기 전력과 명성을 키우려고 하면 귀족들이 견제를 해올 테니까. 일부러 나를 이용해서 기반을 더 다지고 있는 거겠지.’

     

   귀족들 사이에서 발하임은 불문율이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불문율.

     

   1왕자는 이런 불문율을 역 이용해 크라슈로 발판을 만들고 있는 거였다.

     

   ‘부풀림은 있어도 나도 마냥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명성이라는 건 그 사람을 우러러보게 한다.

   창공의 세대에서 선두에 서려는 크라슈 입장으로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비앙카, 식사는?”

   “아직이에요.”

   “잘됐네. 밥이나 먹자.”

     

   그 말을 들은 비앙카는 크라슈에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바로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하였다.

     

   킁킁하고 자기 옷소매 냄새를 맡은 비앙카가 이내 한걸음 물러서자 크라슈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땀 냄새나요.”

     

   땀 냄새가 난다고?

   크라슈는 의문을 가지며 비앙카 곁에 살짝 붙어 냄새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자 비앙카는 머리카락을 솟구치더니 이내 ‘확’ 하니 멀어졌다.

   흰색 병아리가 크더니 고양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

     

   “못됐어요.”

     

   절대로 맡게 해줄 생각 없다는 듯이 비앙카는 눈썹을 삐죽 세웠다.

   그러고는 경계하듯 크라슈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옆에서 천천히 이동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크라슈는 이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씻고 와.”

   “네.”

     

   오랜만에 봐서일까, 아니면 평소대로인 걸까.

   크라슈는 자신이 웃는 모습을 느끼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토록 편안하게 웃게 만드는 이는 비앙카 한 명뿐임을 말이다.

     

   “아주 오랜만에 약혼자를 만나니 입이 귀에 걸리는구나.”

     

   크림슨가든이 부리로 옆에서 괜히 쿡쿡 쪼아 대었다.

   크라슈도 할 말이 없었다.

     

   그야, 청송관에 돌아와 비앙카를 보자마자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집인가.’

     

   일이 다 끝난 후.

   청송관에서 비앙카와 이렇게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평생을 오직 멸망을 막겠다는 목표가 종착점인 크라슈였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크라슈는 멸망 뒤의 일을 떠올렸다.

     

   그 떠올림이 현실로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크라슈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설령 내가 없더라도.’

     

   그 미래를 비앙카에게 쥐여 주고 싶다.

   크라슈의 주먹이 살짝 쥐어졌다.

     

   조금 더 열심히.

   어쩌면 조금은 지쳤을지도 모를 마음이 다시금 결심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식사를 끝낸 뒤.

   초여름이 다가와 조금은 더워지기 시작한 시기.

     

   크라슈는 청송관의 정원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비앙카가 앉아 오랜만에 휴식다운 시간을 보내었다.

     

   크라슈는 자기 손에 손을 포개고 꼼지락거리고 있는 비앙카를 보며 물었다.

     

   “재밌어?”

   “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유달리 어리광이 많은 그녀를 보며 크라슈는 실소했다.

     

   최근에 있었던 굵직한 일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해줄 때는 손을 꽉 쥐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런 모습이다.

     

   아직은 쌀쌀함이 남아 있는 밤바람이 불어와 크라슈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비앙카의 머리카락도 따라 흔들리자 그녀의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미모로 소문날 만큼 뛰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다.

   그래서인지 크라슈마저 꽤 자주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혼자서 크라슈의 손을 꼼지락거리던 비앙카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크라슈와 눈이 마주친 비앙카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니, 그냥.”

     

   딱히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냥 바라봤을 뿐.

     

   그러자 비앙카는 한 번 더 고개를 기울였고, 그에 따라 그녀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꽤 길어져 일부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비앙카의 볼에 붙자 크라슈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었다.

     

   부드럽다.

   머리카락 결은 물론이고, 살짝 손에 닿는 볼마저 부드러웠다.

     

   크라슈가 머리를 정돈해주자 비앙카는 얌전히 그 손길을 느꼈다.

   하지만 눈가가 중간중간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 간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또 꽤 오래 못 볼 거다.”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나서 크라슈는 단 한 번도 쉬지를 않고, 달려만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뒤에도 변함없을 거였다.

     

   오늘처럼 청송관을 찾아올 수 있는 일도 이제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러자 비앙카는 어느새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감싼 크라슈의 손을 포개었다.

     

   “괜찮아요.”

     

   밤하늘 아래 그녀의 푸르른 눈이 선명히 빛났다.

     

   “제가 만나러 갈 거예요.”

     

   그녀에게는 굳은 결심이 느껴졌다.

     

   “크라슈 님이 설령 어디를 가신다고 하더라도 저는 크라슈 님을 따라갈 거니까요.”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비앙카는 그것이 평생의 목표인 듯 말했다.

     

   “그게 약혼자인걸요.”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연결고리를 내뱉었다.

     

   평생의 삶 중 가족보다도 더 소중하디 소중한 연결고리.

   그게 바로 크라슈와의 약혼이었다.

     

   크라슈의 손을 포갠 그녀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달빛을 따라 반짝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 어느새 비앙카는 크라슈에게 조금 더 다가와 있었다.

     

   좁혀진 거리 사이.

   비앙카의 목에 살짝 닿은 손가락을 타고, 그녀의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살짝 붉은 비앙카의 볼은 가로등 탓은 아닌 것 같았다.

     

   크라슈도 알고 있다.

   비앙카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말이다.

     

   그녀에게는 감정을 되찾아준 사람이고.

   버림받았던 가문보다도 더 많은 것을 해준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감정 없던 비앙카가 자신만 바라보면 환하게 웃는 것만 보아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크라슈도 마찬가지였다.

   투쟁의 삶과도 같았던 지난 삶 중, 크라슈는 비앙카와 늘 함께했다.

     

   강철의 정신력을 지닌 크라슈 또한 몇 번이고 어긋날 때가 있다.

   하지만 크라슈는 종종 자신의 품에 기대어 잠든 비앙카를 보며 일어날 수 있었다.

     

   비앙카가 크라슈 덕에 일어났듯 크라슈 또한 비앙카 덕에 서 있었다.

     

   크라슈는 회귀 전 비앙카에게 한 번 목숨을 빚졌다.

     

   그러니 크라슈는 비앙카가 원한다면 그녀의 삶을 위해 약혼도 파기해줄 생각이었다.

   혹시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기꺼이 자리를 피해줄 생각이었다.

     

   악당 역할도 해주라면 해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비앙카의 눈과 마주하자 그 생각들이 전부 무의미함을 느꼈다.

     

   비앙카에게 자신은 평생토록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크라슈 또한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절대로 비앙카를 그렇게 떠나보내지 못할 거란 걸 말이다.

     

   ‘인제 와서.’

     

   이런 욕심이 생겨 버릴 줄이야.

     

   어째선가 웃음이 나온 크라슈는 비앙카의 볼을 감싼 채로 고개를 숙였다.

     

   “비앙카.”

   “……네.”

     

   조금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살짝 긴장한 듯 비앙카의 숨결에서는 평소와 다른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 행동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크라슈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었다.

   그러자 비앙카는 이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스르륵 감았다.

   

   

   

   

     

   입술을 타고 서로의 온기가 느껴졌다.

   교환된 온기와 함께 입술에 머문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크라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얼굴이 취기에 당하기라도 한 듯 몽롱한 눈빛의 비앙카가 있었다.

   그녀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스르륵 크라슈의 품에 기대었다.

     

   붉어진 얼굴과 쿵쾅거리는 심장 탓에 몸이 힘이 쭈욱 빠진 탓이었다.

     

   아직 조금 쌀쌀한 초여름 밤공기 아래.

   월음지체임에도 불구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크라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신 그의 손은 비앙카의 손에 깍지를 낀 채 꽉 잡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영원히 놓치지 않을 거란 다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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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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