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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나는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블랙우드 가문과 게일, 그리고 바란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들을 바라보다, 나는 빈 자리에 착석하며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이 땅의 영주로서 나는 포문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리면,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블랙우드 가문의 차남인 가란이 가문을 대표하여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과거 빚에 대한 보답일 뿐이죠.”

     

     

    그 말에 네르의 눈길이 잠시 가란을 향했다.

     

    이내, 눈을 깔며 그녀는 침묵을 지킨다.

     

    가란이 이어갔다.

     

     

    “라이커 공, 하지만 하나 알려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저를 필두로 블랙우드 가문의 여러 병사들은 다시 영지를 향해 돌아갈 것입니다. 짐마차를 호위하느라 이토록 큰 규모로 왔다는 점을 이해해주시죠. 게다가, 병사들은 역병에 관하여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곳에 상주하여 문제를 키우기보단, 돌아가는게 더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대신 여러 지원물자를 가져왔으니 그걸로 만족해주시길 바랍니다.”

     

    “이해합니다.”

     

    그 정도 쯤은 당연히 알고 있는 바였다.

     

    수많은 블랙우드의 병사들이 스탁핀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들을 우리가 전부 챙겨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쓰러진 대원들을 대신해 마을에 놓인 작업들을 해줄 수 있다면 더 좋았겠으나, 그것도 바랄 수 없는 부탁이었다.

     

     

    가란이 설명했다.

     

    “라안과 네르는 남을 것입니다. 더불어 간호를 도울 여러 인력도 말이죠. 부디 부탁드리자면, 이 사람들을 부디 저희에게 안전히 돌려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역병이 퍼진만큼 나도 미래에 관한 일은 약속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가란은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네르를 바라보았다.

     

    그녀까지 남게 된 상황이었다.

     

    일이 어떻게 풀려갈지는 알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녀와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될 듯 했다.

     

     

    네르는 이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는 수도 없이 했던 눈맞춤.

     

    하지만 이제는 어째서인지 그 느낌이 달랐다.

     

     

    가란은 이내 네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는 그게 신호였는지 입을 열었다.

     

    “베르그. 상황은 언제부터 이랬던 거야?”

     

    네르는 회의장의 예절도 내려놓으며 내게 물어왔다.

     

    친근했던 우리 사이를 떠올리려는 듯.

     

     

    나는 잠시 어떤식으로 대답해야하는지 고민하다… 결국, 한숨과 함께 편히 답했다.

     

     

    “…이제 15일이 지나가고 있어.”

     

    네르의 입꼬리가 잠시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딱딱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몇…명이나 역병에 걸렸어?”

     

    “103명.”

     

     

    바란이 곁에서 첨언했다.

     

    “오늘 12명이 더 감염됐습니다.”

     

    “…그러면 115명이겠네.”

     

     

    역병의 문제는 감염자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점이다.

     

    당장은 어떻게든 이 정도로 막아선 상태였지만, 역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지면 문제가 심화된다.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데?”

     

    대화를 이어갈수록 이전의 그녀와 편히 대화할때가 떠올랐다.

     

    한 때 그녀보다 편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기도 했었다.

     

    “격리실이 있어. 그곳에서 치료를 이어가는 중이야.”

     

    “음식은 뭘 주고 있고?”

     

    “…죽. 아직 식욕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일반식을 제공하고.”

     

    “청결은 어떻게 신경 쓰고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못쓰고 있어.”

     

    미안한 이야기었지만, 당장은 격리실에 들어간 환자보다 외부의 사람들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중이었다.

     

    환자들을 씻기고자 방을 떠나게 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병 난 그들을 관리하고자 간호인력을 방에 오래 두기에는 불안했고.

     

    “환기는?”

     

    “…모두가 방에 들어간 새벽에만 잠시.”

     

     

    네르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규칙들을 좀 세워야할 것 같아.”

     

    “말해봐.”

     

     

    “환자들을 한 곳에 뭉쳐두는 건 반대야. 경중은 나눠서 방을 구분하는게 나을 듯 해.”

     

    네르는 확고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 또한 이 역병은 처음일것임에도, 마치 답을 알고 있는 듯 했다.

     

     

    “3단계…아니, 5단계로 나눠서 환자들을 구분하자.”

     

    게일이 네르의 말에 말한다.

     

    “…스탁핀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네. 자네들이 왔으니 쉴 수 있는 곳은 더 한정되겠지. 그런 상황속에서 병실을 더 늘리는 건… 거기다 더해, 병실을 늘려 환자들을 이곳저곳에 두었다가, 역병이 더 퍼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네르가 그에 답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정 자리가 없다면 주인이 있는 집을 잠시 빌려서라도 환자들을 구분해야만 해요. 경중에 따라 나눠놓아야지만 간호도 확실히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네르가 나를 보았다.

     

    “베르그. 어떻게 할래?”

     

    그리고는 내게 선택을 맡긴다.

     

    “…”

     

    게일의 말대로 스탁핀에는 빈 집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새로운 집들도 많이 지었으나, 그만큼 새로운 주민들도 영지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거기다 더해, 역병이 퍼질까 두려워 병실의 창문조차 열지 않는 상황인데…병실을 늘리는 순간 조심해야할 것들이 배는 많아질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바란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방을 구분하도록 해.”

     

     

    블랙우드 가문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었더라면 그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당장의 선택에 수많은 목숨이 달려있다.

     

    나는 네르의 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내 긍정에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어서 규칙들을 제안해 나갔다.

     

    “앞으로 모든 주민이 얼굴에 복면을 두르도록 해.”

     

    게일이 또 놀라 묻는다.

     

    “…모든 주민?”

     

    “네. 역병을 억누르는데 큰 효과가 있을거에요.”

     

     

    그런 그녀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불편하겠지만, 그 정도의 불편은 모두가 모두를 위해 감수할 수 있을것이었다.

     

     

    “집에서조차 벗으면 안돼, 베르그. 잘때도 쓰고 있어야해.”

     

     

    고개를 또 끄덕인다.

     

    “주민들한테 말해놓을게.”

     

    …네르는 나를 보다,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동시에…애정표현도…하면 안돼.”

     

    “…………..”

     

    “…그래야 의미가 있으니까.”

     

     

    게일이 그 말에 물었다.

     

    “…부부들의 애정표현을 금지하겠다는 건가?”

     

    “…..”

     

    “다들 어차피 밤에는 같은 침대에서 잘텐데, 의미가 있나?”

     

    “…평생 그러라는게 아니라, 특수한 상황인만큼 참는게 좋다는 의미에요.”

     

     

    나는 어째서인지 대화 내내 네르의 감정을 전달받는 느낌이었다.

     

    착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내게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이는 듯 했다.

     

     

    의도가 없는 말이었을까.

     

    아까 전, 나와 시엔의 입맞춤 때문에 그러는 걸까.

     

     

    “…응? 베르그…”

     

    “…”

     

    네르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그녀가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참을 수 있잖아.”

     

     

    나는 그 말에 시엔과 나의 아이를 떠올렸다.

     

    내가 역병에 걸린지 모르고 있다, 시엔과의 입맞춤을 통해 그녀에게 역병을 전염한다면…그 사실을 견딜 수 있을까?

     

    혹시라도 문제가 커졌을때의 현실을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아닐것이었다.

     

     

    따지고 본다면, 역병이 퍼진 이 상황에 입맞춤은 참아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의 말에 꺾인게 아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

     

    네르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그녀는 이어서도 여러 규칙들을 세워나갔다.

     

    게일은 계속해서 네르의 의견에 대한 걱정의 말을 표출했다. 딱히 네르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기보단, 돌다리를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끝내 네르의 규칙이 채택되어도, 그는 큰 불만 없이 모든 걸 받아들였다.

     

    결국 최종 선택권은 내게 있었고, 게일은 그 선택을 존중해주었으니.

     

     

    이후로는 블랙우드 측의 대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호 인력의 배치라던지, 그들에게 먹일 음식, 휴식 시간, 필요한 자원 등등.

     

    시작 전에 모든걸 면밀히 짜놓는다.

     

     

    물론 생활이 이어지며 유기적으로 바뀌어나가는 것들도 많겠지만, 당장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해가 지려고 하기 시작한다.

     

     

    나는 상황이 마무리되어가는 걸 느끼고 자리를 끝맺으려 했다.

     

    “…그럼 이쯤이면 될까요.”

     

    가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커 공, 이야기가 끝난 듯 하니 저와 제 병사들은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휴식을 취하다 가라고 말하려 했지만, 영지에 역병이 돌고 있는만큼 그의 선택이 옳아보였다.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일어나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는 다 하나 같이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턱.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중, 누군가가 내 소매를 붙잡는다.

     

    “…”

     

    “…”

     

    당연히도 네르였다.

     

     

    “…베르그, 작은 부탁이 하나-”

     

    “-네르.”

     

     

    나는 네르가 말을 잇기 전에, 그녀를 멈춰세웠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녀에게 느꼈던 그 배신감을 이제는 놓아준 것 같았다.

     

    그때의 격렬했던 분노도 가라앉아, 그녀를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쁜것보단 좋은것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네르와 나누었던 좋은 감정들이 퇴색되지 않길 바랐다.

     

     

    네르는 나의 부름에 나를 올려다본다.

     

    “…어…?”

     

    “…와 준 건 고마워. 네가 세운 규칙들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 해.”

     

     

    그 말에 네르의 눈가가 순식간에 촉촉해진다.

     

    하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게 미소마저 지어보이는 그녀는 입술을 깨문채 속삭였다.

     

    “…응. 너를 위해서라면-”

     

    “-근데.”

     

    “…어?”

     

    나는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왼손 약지에는 그녀의 반지가, 엄지에는 나의 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 반지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이제 반지는 벗어줘.”

     

    “……………아….”

     

    “인족에게는 많은 의미가 담기는 장신구야.”

     

     

    나는 이미 시엔과의 반지를 끼우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다른 여자가 나와의 반지를 간직하고 있는 걸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물론 네르는 그저 다른 여자라고 칭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만…그렇다고 가만히 두고 보고 싶지도 않다.

     

     

    네르는 나의 말에 손을 뒤로 숨기며 눈물을 참는 듯 입술을 악물었다.

     

    아직도 내게 이렇게까지 생생한 감정을 지녔다는게…어째서인지 감정을 흔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만큼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 선택을 맡기고 떠나는게 아닌, 그녀 앞에 멈춰서서 손을 내밀었다.

     

    반지를 돌려달라는 행동이었다.

     

     

    그 몸짓에, 네르는 헛숨을 삼켰다.

     

    놀란 두 눈동자가 나를 순식간에 올려다본다.

     

    쫑긋한 귀가 접혀버린다.

     

     

    네르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아…안보이게 숨길게.”

     

    “…돌려줘.”

     

    “…간직…해주지 않을거잖아…”

     

    “버릴거야.”

     

    “…그럼 못 줘.”

     

    “네르.”

     

    “못 줘, 베르그.”

     

     

    네르는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여전히 나와의 관계를 꽉 붙잡고 있었다.

     

    조금도 놓아주지 못한 그 모습에서…과거 나의 모습이 보인다.

     

     

    망가져 버릴것처럼 여리게 보이는 그 모습.

     

     

    “…”

     

    나는 금세 그녀를 압박할 힘을 잃었다.

     

     

    내가 주장하듯, 그녀와 나는 이제 더는 상관없는 사이었다.

     

    그녀를 이렇게까지 괴롭힐 명분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우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변명일지도 모르고.

     

     

     

    “…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그럼 숨겨. 이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도록.”

     

    “…”

     

    “…특히나 시엔은 보지 못하도록 해 줘.”

     

    “………..읏.”

     

    시엔이라는 말에 그녀는 작게 주먹을 말았다.

     

     

    나는 나의 전 아내였던 네르에게서 돌아선다. 이제 곧 영지로 돌아갈 가란을 배웅해주기 위해.

     

     

    -탁.

     

    “…베르그.”

     

     

    하지만 네르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 나를 붙잡았던 이유를 꼭 이야기해야만 하겠다는 듯.

     

     

    “….나….정말 노력 많이 할거야.”

     

    “…”

     

    “…역병에 들 약도 만들려고 노력할거고….간호도…꾸준히…”

     

    귀족인 그녀가 간호를 자진해서 하겠다는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 알고 있었다.

     

    특히나 스스로 병에 걸릴 수 있는 위치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네르가 어느정도, 제 목숨을 걸어가며 나를 도우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그러니까 베르그…”

     

     

    나는 떨리는 네르의 목소리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힘내라고…한 번만 안아주면 안될까…?”

     

    네르는 눈을 꾹 감은채 내게 부탁을 해오고 있었다.

     

    그녀의 팔마저 덜덜 떨리고 있다.

     

     

    “…그게 어렵다면…”

     

    “…”

     

    “…머리 한번만 쓰다듬어주면…안될까…? 정말…정말 보고 싶었었단….말이야….”

     

     

    그 처량한 모습에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목숨을 거는 것에 비한다면 사소한 그녀의 부탁.

     

     

    “…옛날처럼…”

     

     

    안아주는 것도, 쓰다듬어주는 것도 나는 큰 힘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제멋대로 나는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이 마음을 이끄는 건 그녀를 향한 동정인지, 아니면 아직도 남아있던 그녀에 대한 마음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

     

    -툭.

     

    하지만 나는 어렵게 그녀의 손길을 떼어냈다.

     

    반면 네르는 어렵지 않게 내 힘에 떨어져 나간다.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라는 듯.

     

     

    …나는 그런 네르를 내버려둔채 걸음을 옮겼다.

     

     

    ****

     

     

    가란을 돌려보내고, 우리는 네르가 만든 규칙들을 마을에 소개했다.

     

    어렵고 세밀한 규칙들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나는 그래야지만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용병단 단원들은 군말없이 나의 말을 따랐으나, 이주해온 인족들은 설득하는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쩌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모두 벌하겠다 말하는게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가기에는 아직 내가 남을 통치하는데 익숙해지지 못했다.

     

     

    나는 먼저 대표로 얼굴에 복면을 둘렀다.

     

    나를 따랐던 바란도, 게일도, 블랙우드 일행도 모두 하나같이 얼굴에 복면을 둘렀다.

     

     

    이러고 있으니 정말로 역병이 창궐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결국 분위기보다는, 나는 안전이 더 중요했다.

     

     

    아마 내일쯤부터는 모두가 복면을 두르지 않을까.

     

     

    이어서 우리는 다섯 단계로 병실을 나누었다.

     

    병실을 구하는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방을 새로 구하는 것도 구하는 것이지만, 침상도 새로 구해야만 했다.

     

     

    거기다 더해, 블랙우드에서 손님들까지 수십명이 왔으니 그들의 방마저도 구해야만 했다.

     

     

    조금도 간단하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렇게 공간을 나누고 보니, 바란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단장?”

     

    “…말해.”

     

     

    바란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라안 블랙우드님과…네르 블랙우드 님의 숙소를 찾는게 어렵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일까 해 바란을 바라보자, 바란은 죄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블랙우드의 관계자 아닙니까. 귀족분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만큼 괜찮은 곳이 존재하질 않아서…”

     

    “…”

     

    “…특히나 라안 블랙우드님이 허름한 곳에서는 휴식을 취하지 못하겠다고…”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블랙우드가 대귀족이라는 걸.

     

     

    나와 함께 네르가 살때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가 끊긴 지금…블랙우드처럼 힘이 막강한 귀족은 적절한 기준으로 챙겨줘야할 의무가 있었다.

     

    특히나 이유가 어찌됐든 우리를 도우러 온 손님으로서는.

     

     

    바란이 제공한 문제에 나는 걸음을 옮겼다.

     

    라안, 그리고 네르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표정을 찌푸린 라안이 멀리서부터 보이고 있었다.

     

    표정에 엄청난 불만이 쌓여있다.

     

     

    “라안 블랙우드님. 문제가 있으십니까.”

     

    내가 먼저 다가가 조심스레 묻자, 라안은 불편한 표정으로 내게 말해왔다.

     

     

    “…숙소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표정과는 달리, 나름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녀.

     

     

    “그래도 도우러 온 입장인데, 들어서는 집마다 이상한 냄새에…벌레에…”

     

     

    그 말에 바란을 보자 그가 답했다.

     

    “…더 좋은 곳을 찾고 싶어도, 지금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숙소들은 네르님의 부탁에 병실로 쓰이고 있어서…”

     

     

    네르에게 시선을 던지니 그녀는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아까의 일로 나름의 불만을 쌓은것처럼.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라안이 묻는다.

     

    “…라이커 공, 라이커 공의 집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건가요?”

     

    “…예?”

     

    “…원래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면…그들의 저택에서 쉬는게 일반적이지 않은가요?”

     

    언제나 그렇듯, 다른 귀족 가문의 영지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하면 그들의 대저택에서 머무르는게 일반적이다.

     

     

    영지에서 가장 좋은 집은 주로 영주의 저택이었으니.

     

    나도 그렇게 경험을 했었다.

     

    네르 때도, 아르윈 때도, 잭슨 때도 영주의 저택에서 휴식을 취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손님인 블랙우드 가문에게, 우리 집의 방을 빌려주는게 옳았다.

     

    집이 조금 더 귀족 가문의 집 같았다면 걱정 없이 빌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집은 예전과 다를게 없었고, 그 이유로 망설이고 있었다.

     

    네르와의 관계도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불만이 쌓이 라안에게 내가 말했다.

     

    “…방은 나눠 드릴 수 있지만, 다른 집들과 큰 차이점이 없을겁니다.”

     

    “…”

     

    대답없는 라안에게, 네르가 다가와 속삭인다.

     

    그 속삭임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라안이 말했다.

     

     

    “…정말 나눠주시는데 부담이 없으시다면, 한 번 확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그녀가 덧붙였다.

     

     

    “애초에, 네르가 그 동안 생활한 집이기도 했으니까요.”

     

     

     

    동시에 네르와 나는 눈이 맞았다.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한 집.

     

    …따지고 본다면, 그녀와 함께 보수작업까지 진행한 집이었다.

    우리의 추억이 많이도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네르에게 말했다.

     

    “…오고 싶지 않을거야.”

     

    왜 그런 말을 꺼낸건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네르는 그에 속삭이듯 답한다.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어쨌든 내 집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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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칭찬에 저도 많은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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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어서 죄송합니다! 분량을 조금 더 채우느라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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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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