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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황녀님은, 조금 종잡을 수 없는 분입니다.”

        

       “황녀라면 누굴 말하는 거야? 앨리스? 실비아?”

        

       “……당연히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님이십니다. 물론 앨리스 팬그리폰 황녀님도 보통의 귀족분들과는 다른 점이 있으시지만, 그렇다고 사고방식을 따라잡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좋은 분이시고,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그대로 행동하는 분이시죠.”

        

       “평가가 꽤 좋네. 꽤 유심히 관찰했나 봐?”

        

       “…….”

        

       로티가 제이크를 흘겨보자, 제이크는 괜히 어깨를 크게 들썩여 보였다.

        

       “당연히 도련님 때문입니다. 도련님께서 어울려 다니시는 분들이니 저도 그 성향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오, 그럼 샤를로트도 알아본 거야?”

        

       “……도련님, 기왕이면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뭐, 나는 그냥.”

        

       제이크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미 높이 떠오른 비행선이었기에 창밖으로 도시의 거의 모든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면 마냥 풍요로워 보이기만 하는 곳.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이미 문드러지기 시작한 곳이 한가득하다는 걸 저곳 출신인 제이크는 알고 있었다.

        

       ……저곳 출신이라.

        

       지금은 린드버러라는 이름이었지만, 과거에는 아예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다. 그런데 제이크가 스스로 ‘저곳 출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주민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을 이야기였다.

        

       “실비아한테 말이라도 걸어보라고 했던 건 너였잖아?”

        

       제이크의 말을 들은 로티는 보기 드물게도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렀다. 마치 ‘그래, 이런 말로 더 이상 찡그릴 필요는 없지’라고 자기 최면이라도 거는 것처럼.

        

       “그때 그 말은 농담이었다고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을 텐데요.”

        

       “너 평소에 농담 안 하잖아. 그러니까 그때의 그 말은 둘 중 하나라는 소리지. 진심으로 실비아가 괜찮은 사람이라서 말을 걸어보라고 했거나, 아니면 그 말이 너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려서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려고 하고 있거나.”

        

       “…….”

        

       “어때, 전자야, 후자야? 혹시 그때 내가 여자애들이랑 몰려다니던 것에 질투했던 건?”

        

       “……후자입니다.”

        

       “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들은 제이크는 순간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후자라니?”

        

       지금까지 몇 번이고 같은 말로 로티를 놀렸던 제이크였지만, 로티의 이런 반응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의 로티는 그저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왔으니까.

        

       “당시 도련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여성 중에 도련님과 어울릴만한 여자가 없었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제이크가 흔치 않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는 소리다.

        

       “그런 여성분들께 도련님을 양보할 바에는 차라리 제가 끝까지 맡아서 뒷바라지해주는 쪽이 훨씬 더 나을 겁니다.”

        

       “……너 왜 그래? 오늘 뭐 잘못 먹었냐?”

        

       로티가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제이크는 거의 경악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얼굴은 이제 완전히 붉어져 있었다. 지금 이 근처에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학생들이 잔뜩 몰려있는 라운지였다면 이것만으로도 교내에서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황녀님께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조건 손에 쥐라고 하셨으니까요.”

        

       제이크의 그 표정을 본 로티는 조금 만족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녀 전하의 명이라서 따르겠다, 그런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로티는 멀어지는 도시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황녀님은 종잡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논리만으로 움직이시는 것 같지만, 가끔은…… 조금……”

        

       “감정적이라고?”

        

       “그렇습니다.”

        

       로티의 대답에 제이크는 잠깐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뭐, 그냥 그 두 모습이 다 실비아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쉽지 않겠어? 사람은 누구나 그러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너만 해도 그렇지. 처음에는 그렇게 경계하던 실비아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잖아.”

        

       “…….”

        

       “아, 아닌가? 만약 그렇게 경계하고 있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말 걸어보라고 하지도—”

        

       “—그 이야기는 이제 슬슬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로티의 말에 제이크는 입을 다물었다.

        

       “저는 그저…… 그 분께서 저를 어째서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것인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을 뿐입니다.”

        

       “아, 그거.”

        

       로티의 말에 제이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거지. 그냥 본질이 선한 애인 거야.”

        

       “……그렇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자리와 상황 때문에 그런 무표정이 된 거겠지. 생각해보라고. 앨리스도 황녀이긴 하지만, 실비아와 앨리스의 자리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잖아? 너도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

        

       혈통을 잇기 위한 ‘진짜’ 황족과,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 엄선되어 황제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황제의 아이들’. 앨리스는 전자였고, 실비아는 후자였다.

        

       “실제로는 그저 정이 많은 평범하게 착한 애인데, 상황이 그 애를 그런 이미지로 만들어버렸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잖아?”

        

       “…….”

        

       로티는 제이크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란 말인가.

        

       로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던 제이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런데, 어머님도 비행선에 계시잖아. 둘이 있지 않아도 돼?”

        

       “……그건…….”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닙니다, 그건 아니지만, 어머님과 제가 단둘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어서…… 둘만 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로티의 말을 들은 제이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냥, 옆에 있어 드려. 아마 그걸로 충분할 테니까.”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제이크는 그 말을 꺼냈다.

        

       “정말로 그럴까요?”

        

       “그래.”

        

       사실 제이크도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기를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단둘이 있을 수 있게 되었잖아. 가서…… 함께 있다 보면, 나눌만한 이야기가 하나씩 떠오를 거야. 그리고 아마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할 수 있게 되겠지.”

        

       “알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제이크의 말을 듣던 로티는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제이크가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받아들이기도 전에, 로티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떠버렸다.

        

       “……어?”

        

       몇 박자 정도 늦게, 제이크가 멍한 목소리를 냈다.

        

       *

        

       내가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 걸 보고 싶다고는 생각했는데 말이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빠르게 가까워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로티는 내가 했던 말을 가슴 깊이 새기기라도 한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제이크 옆에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조금 뒤쪽에서 따라다녔다면, 지금은 마치 여자친구라도 된 것처럼.

        

       아니, 따지자면 여자친구 비슷한 사이기는 하지만.

        

       그러니 목적을 달성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둘을 보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 이 감정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에 잠깐 편의점이나 가려고 나왔다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압도적인 수의 커플을 보고 기분이 더러웠을 때와 굉장히 흡사한 감정이었다.

        

       꽁냥거리는 걸 보고 싶다고 했지, 사람 염장을 지르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게임 캐릭터들이 꽁냥거리는 것과 현실의 인물들이 꽁냥거리는 것 사이에는 2파섹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게임에서야 그냥 대사들이고 미리 입력된 모션일 뿐이었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디테일한 법이니까.

        

       “너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잖아?”

        

       그리고 하필이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내 표정을 제일 잘 읽는 앨리스였다.

        

       말없이 시선을 돌렸더니, 입가에 빙글빙글 미소가 돌고 있는 앨리스의 얼굴이 있었다.

        

       “애초에 네가 이어준 둘이잖아. 그 난리를 친 이유가 이거 때문 아니었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까 그거랑 그거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렇게 다르다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 부러우면 너도 남자친구 하나 만들어도 괜찮잖아?”

        

       “……농담하십니까?”

        

       “어, 아니, 진짠데.”

        

       뭐, 그래. 어차피 나라면 남자친구 같은 게 있다고 큰 흠이 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이 세상에서 정부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한 흠이 되지는 않고. 그 정부라는 자리가 은근히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받는’ 자리이기도 한 것처럼.

        

       그런데 나는 남자를 사귈 생각이 없다.

        

       당장은 여자랑도 사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주변에 있는 애들은 죄다 애송이뿐이라고.

        

       “앨리스는 그럴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없는데.”

        

       그렇게까지 정색할 필요는 없을 텐데.

        

       원작에서는 이때쯤 레오한테 츤데레처럼 굴 타이밍이 아닌가?

        

       저 먼 곳에 앉아서 본의 아니게 여자들 사이에 끼어 멀뚱멀뚱 앉아있는 레오를 보니 이상하게 한숨이 나왔다.

        

       저걸 부러워해야 해, 말아야 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인사는 금방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에어프라이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참에 대해서는 계속 각을 보는 중이기는 한데, 사실 제가 요 며칠동안 조금 아팠습니다. 원래 연말연초가 되면 한 번씩 아프고 건너가는데, 아예 수술까지 받아야했던 작년보다는 낫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몸살감기로 시작하네요ㅠㅠ 회사에서 물건을 나른 뒤에 곧바로 몸살에 걸려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앓은 것을 보면 운동부족이 심각한 듯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훨씬 괜찮아졌네요. 컨디션 회복하는대로 연참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노벨피아에서 표지도 받고, 생각도 못했던 수상까지 해보고, 작년 한 해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하긴, 그 이전 해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네요. 연중성녀를 연재하던 때에도 그렇게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되었었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매 해마다 받은 복은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이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한 해 한 해가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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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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