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4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는 진작에 되어 있었다.

       

       긴급 탈출 시스템을 응용한다.

       

       외부에서 유나가 조작 중인 긴급 탈출 시스템은, 말하자면 대량의 정보를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빨대다. 유나가 쪽 하고 빨아들이면 내가 훅 하고 올라가는 느낌이다.

       

       이것은 내 의식을 단번에 끄집어내 유사시에 목숨을 건지기 위함이지만, 따로 안배해 둔 또 하나의 기능이 있다. 그 추진력 자체를 엘리베이터처럼 이용하는 거다.

       

       이 육체를 분해해서 정보로 만든 후에 단단히 묶고, 시스템을 적절한 강도로 발동시킨다. 나는 저 하늘로 쏘아져, 유리의 정신방벽 밖으로 나간 후에 재진입할 것이다.

       

       한마디로 리스폰이다.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방비를 소홀하게 해 둔 여왕의 안일함 덕분이다. 아니면, 한번 들어오면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지.

       

       내게 묶인 줄을 당겨서 유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캐스팅이 완료되면 절반만 끌어올리라고. 

       

       -응, 알았어.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연락할게⋯⋯!

       

       스스스스.

       

       찰칵찰칵찰칵.

       

       내 몸이 전송되기 시작하자, 여왕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오는 게 느껴진다. 유나가 위로 당기고, 여왕이 아래로 당긴다. 줄다리기용 줄이 된 기분이다.

       

       여왕의 간섭을 쳐내는 작업을 돕는다. 유나의 출력과 내 기술이 합쳐지면,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여왕이라도 발목을 붙잡는 정도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가만히 주의를 기울인다. 이윽고 사람이 온다. 걷는 템포를 분석하면, 유리다. 그녀가 왔다.

       

       “실례합니다. 정보를 받으려고 왔습니다만⋯⋯.”

       

       혓바닥으로 아랫입술을 쓱 훑는다. 내 주둥이가 활약해 줄 시간이다.

       

       유리가 이쪽으로 다가와 문을 열고 들어오기 직전. 나는 목소리를 꾸며 냅다 신음부터 뱉었다. 음란한 녀석으로.

       

       “⋯⋯⋯⋯?!”

       

       흐앗, 하고 숨을 들이켜고.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남자와 여자의 교성을 번갈아 가며 뱉는다. 안에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한 유리는, 어쩔 줄 모르고 앞에서 허둥대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굳었다.

       

       남녀의 교성이 겹치는 순간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눈치챘지만, 이번 수는 시간을 끌기보다도 마음을 흔들기 위한 것이다.

       

       유리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에, 누굽니까?”

       

       “나야, 나.”

       

       태연하게 원래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 목소리를 들은 유리는 크게 놀라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녀는 질문했다.

       

       “거기에는, 왜 계신 겁니까⋯⋯? 그보다, 어떻게?”

       

       “왜 왔을 것 같은데?”

       

       “여기는 말살대의 거점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방위국의 높은 사람이라도⋯⋯ 존중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담당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계실 텐데요.”

       

       “나는 본 적 없어. 퇴근한 게 아닐까, 늦은 시간이고⋯⋯.”

       

       나는 누가 들어도 수상하게 대답했다.

       

       지금뿐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왕에 의해서 의심의 화살이 내게로 빗발칠 것이다. 그래서 미리 선수를 친다. 나는 지금부터, 나를 연기해서 범행을 뒤집어씌우려는 누군가가 된다.

       

       그래서 뜬금없는 신음소리로 대화의 막을 연 거다.

       

       이 문 너머에 있는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다. 이렇게 대전제를 깔고 들어가기 위해서.

       

       혹시나 정말로 납득하고, ‘뭐야 당신이었습니까. 들어갑니다?’ 하고 문을 벌컥 열면 안 되니까. 경계심을 살짝 더하자.

       

       일부러 손을 움직여 바람을 일으켜, 피 냄새를 문틈으로 흘려보냈다. 불온한 혈향을 맡은 유리의 경계심이 내 의도대로 급격하게 올랐다.

       

       “누굽니까, 당신은⋯⋯.”

       

       “나라니까. 네 이웃이잖아. 오늘도 만났던 것 같은데, 체스를 했던가?”

       

       “체스는 엊그제였습니다.”

       

       “아아, 맞다맞다. 엊그제였지. 나이가 들면 기억이 가물거린다니까?”

       

       이 정도면 괜찮군.

       

       -있지, 준비됐어! 신호하면 끄집어 올릴게!

       

       딱 적당한 타이밍에 연락도 왔다. 리스폰 준비는 끝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기고 도망가려는 그때, 유리가 입을 열었다.

       

       잔뜩 망설이고 휘청거리는 목소리로.

       

       “⋯⋯저기,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그가 맞습니까? 아니, 지요⋯⋯?”

       

       그녀가 ‘그’ 라고 발음하기 전에 잠깐의 공백이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에, 내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게 불안을 증폭시켰는지,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어리구나.

       

       문 너머의 유리는 어렸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흉수로 추정되는 자에게 순수하게 정체를 묻고 있다. 적당한 대답이 돌아올 걸 본인도 알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거겠지. 옆집의 유쾌한 청년이 자신과 적대적이라는, 그런 만약을 부정하고 싶은 거다. 외로움을 타는 와중에 우연찮게 만들어진 친구였으니.

       

       서큐버스라며 성욕을 드러내는 놈팽이들만 찾아오는 각박한 삶 속에서, 어쩌면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될 수도 있는 사람⋯⋯ 이었으니까.

       

       나는, 그러니까. 대답을 해 줘야겠지.

       

       지금처럼 해왔던 것처럼 하면 된다. 속이자.

       

       여기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쪽이 좋다. 나는 일부러 ‘그’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으며, 그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려는 누군가가 있다, 는 설정을 심어두고 싶은 거니까.

       

       거짓을 꾸며내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배역을 연기하여, 유리를 속이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의뭉스럽게 대답하면 된다.

       

       그러다가 문득 혀가 굳었다.

       

       “⋯⋯⋯⋯.”

       

       왜 이러는 거야. 여왕의 공격이라도 받은 거야? 아닐 텐데, 여왕은 유나랑 줄다리기하느라 바빠. 말해야지. 거짓말을.

       

       내가 재촉하자, 내 마음이 툭 내뱉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뭘, 거짓말을? 정신 차려. 나는 지금 유리를 구하기 위해서 여왕과 싸우고 있는 거다. 이번 위기를 넘기고, 그녀와 완전히 친해져서 열쇠를 손에 넣어야 한다.

       

       ⋯⋯유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유리의 마음을 멋대로 가지고 놀아도 괜찮다는 뜻이야?

       

       다르다.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눈앞의 그녀는, 어린 시절의 의식이니까⋯⋯ 본인이 아니잖아. 그리고 이건 모두 작전대로다. 잘 흘러가고 있는 흐름에 변수를 굳이 발생시킬 이유는 없다.

       

       나는 머릿속을 울리는 소년의 목소리를, 고개를 휘저어 털어냈다. 흔들리지 말자. 괜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결국 유리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침묵하며 줄을 잡아당겼다. 붕 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지면이 급격하게 멀어진다.

       

       “잠깐, 대답을⋯⋯!!”

       

       유리는 벌컥 문을 열어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죽은 시체와, 찢어진 자료, 그리고 피로 물든 흔적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

       

       나와 여왕 간의 교전은 그날 이후로 잠잠해졌다.

       

       견제구는 심심찮게 날려오지만, 그때 겪었던 함정만큼 공을 들인 공격은 아니었다. 마치 탐색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내 긴급 탈출 시스템을 어떻게든 무력화하지 않으면 잡아먹을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종종 재접컨을 했다.

       

       맵 끝에서 끝으로 옮겨 다니고, 들어가면 잡힐 때까지 못 나오는 방에도 두어 번 왔다갔다 하고 나니, 여왕은 제법 열이 받은 것 같았다. 찰칵찰칵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또한, 여왕의 허기를 느낄 수 있다. 내가 능력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녀는 나를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살짝 무리하면서까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괜찮은 척했다⋯⋯ 는 사실은 아직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좋은 흐름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상정 내다. 하나만 빼고.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자꾸만 솟아오른다. 베네트네 3인조에게 좀 심했던 걸까, 이리드한테 센트라 수제 편지 같은 거라도 작성해서 부쳐야 할까.

       

       진지하게 유나한테 프러포즈할 준비라도 슬슬 시작해야, 때에 늦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막 솟아오른다.

       

       유리에 대한 죄책감도.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의 원인은 알겠다. 나는 떼어진 의식이고, 유리의 정신세계 안에 와 있다. 그래서, 내 머릿속의 무언가와 물리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거리가 꽤 벌어진 상태다.

       

       이론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고 있을 거다.

       

       그로 인해서 다소 부족하던 양심이 갑자기 자라난 까닭에, 이 급박하고 중요한 상황에서 쓸데없이 고민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머릿속을 흔들어 잔가지를 쳐냈다.

       

       이대로 계속하자. 이대로만 쭉 가면 할 수 있다. 괜히 후회할 짓 하지 마. 구해야 할 거 아니냐. 작업 이야기를 하자. 집중.

       

       여왕이 무대를 440년도로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고, 『붉은 재생』이라는 조직이 핵심 키워드라는 것도 알았다.

       

       여왕이 제로 베이스로 이야기를 짜낼 실력이 안 된다는 건 알았으니, 앞으로 일어날 일은 실제 역사로부터 약간의 가공을 거친 형태일 것이다.

       

       말인즉, 내가 그 시절에 일어난 일을 알아낼 수 있다면. 자체적으로 미래예지가 가능한 셈이다.

       

       유리 랜스터와 알고 지내던 사이이면서, 440년도 시점에서 유리의 근황을 알고 있을만한 사람⋯⋯ 마침 아카데미에 그런 사람이 있다. 바로 이리드의 전속 요원, 커비다.

       

       줄을 튕겨서 신호를 보낸다.

       

       -알아봐 달라는 거지⋯⋯? 응, 위치는 알아. 나비를 보내서 물어보고 올게.

       

       “부탁해요. 저는 유리랑 딱 붙어 다니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을 테니까.”

       

       -으응, 그러니까. 힘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서로 힘내 보죠.”

       

       그렇게 통신을 마쳤다.

       

       ===============================================================

       

       “자, 명령서.”

       

       나는 유리에게 황실 명령서를 내밀었다. 아카데미에 오고 얼마 안 됐을 때, 이리드에게 마검 제작 소동 커버 쳐 달라고 부탁했던 서류⋯⋯ 를 잘 기억해 뒀다가 복제한 것이다.

       

       그 내용은, 내가 유리 개인을 서포트하는 역할로 말살대에 합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고, 그녀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유리하지 않으려나 생각했다.

       

       유리는 꼼꼼히 서류를 읽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은 없군요. 그러면 같이 활동하게 되는 겁니까?”

       

       “그르치. 내가 현장 요원은 아니라서 좀 비실비실하긴 한데, 눈썰미에는 꽤 자신이 있으니까⋯⋯ 도움이 될걸?”

       

       “퍽이나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뭘 하셨습니까?”

       

       “푹 잤지. 왜?”

       

       능청스레 반문하니,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유리는 간밤의 일에 미심쩍음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잔뜩 헤매는 기색이었다. 노골적으로 정보를 주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사람 심리 아니던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눈앞의 이 녀석이 범인이라면 거기서 그렇게 까발렸을 리가 없다⋯⋯ 적어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이전에, 의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유리는 그 뒤로도 간밤의 알리바이를 알아내기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해 댔다. 누가 봐도 확실한 알리바이가 내게 있어서, 그걸 듣고 편해지고 싶은 거다.

       

       나도 남길 수 있었으면 남겼을 텐데. 재접컨으로 장거리 텔레포트를 해서 이웃 NPC에게 눈도장을 찍어 봤자, 여왕이 손짓 한 번 휘두르면 물 건너가는 알리바이다.

       

       유리는 잠깐 어물거리다가.

       

       “⋯⋯그러고보니 말입니다. 저, 당신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누가 봐도 이름을 알려달라는 뜻이다. 나는 어물거렸다.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는 데다가, 꾸며서 알려준다고 해도 곤란하다.

       

       “당신으로 괜찮지 않나?”

       

       “뭐, 기밀⋯⋯ 그런 겁니까?”

       

       “그런 건 아닌데.”

       

       내 이름이 규정되는 순간, 여왕 쪽에서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난다. 온갖 수상한 서류에 내 이름만 박아둬도 상당히 위협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어지간하면 흘려 넘기려고 했다.

       

       “저, 이번에⋯⋯ 말살대에서 작은 축제가 있습니다. 친목 도모가 목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아십니까? 아, 물론 아시겠죠. 당신도 방위국 요원이니까⋯⋯.”

       

       “⋯⋯그런데?”

       

       “그, 혹시 시간이 빈다면 말입니다. 만약 여유가 있으시다면 말입니다만. 같이⋯⋯.”

       

       나는 그렇게 말하는 유리의 눈동자를 유심히 보았다. 데이트 신청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사랑도 연심도 아니다. 이렇게까지 강도 높은 제안이 올 이유가 없는데.

       

       어린 유리의 눈망울에 채 억누르지 못한 외로움이 뚝뚝 떨어졌다.

       

       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말살대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외딴 저택에서 홀로 격리된 듯이 살아가는 처지. 초대면에 내게 내비쳤던 가시 돋친 태도. 그리고 유약한 저 모습.

       

       ⋯⋯따돌림을 당하는 걸까?

       

       말살대의, 그 까만레즈가⋯⋯ 그녀를 동경하는 듯이 굴길래. 나는 그녀가 잘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에는 달랐던 걸까. 아니면 말살대라는 집단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가.

       

       반에서 겉도는 아이의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같은 반 아이들끼리 노는 파티 자리에, 간신히 친해진 다른 반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걸까.

       

       가슴이 눅눅해진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저 말살대의 축제에 참여해야만 하는 이유를 급하게 가져다 붙였다.

       

       이야기가 말살대 중심으로 전개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 집단의 구성인원과 특성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방금 말살대 합류 카드를 꺼내든 참이 아니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날 스케줄이 비어.”

       

       “⋯⋯아직 언제인지도 말씀 안 드렸습니다.”

       

       그랬구나. 나는 조금 멋쩍어져서, 머리카락을 긁으며 시선을 피했다. 유리는 그 모습을 보고 큭큭대며 웃었다. 봄에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다.

       

       그러다가, 이렇게 한 번 더 물어오는 것이다.

       

       “⋯⋯축제,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야 할 텐데요.”

       

       “⋯⋯⋯⋯.”

       

       이게 여왕의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뒤늦게 찾아왔다. 이 타이밍에 축제라니, 공교롭지 않은가. 적어도 유나의 정보 수집을 기다렸다가⋯⋯ 당시에 정말로 축제가 있었는지를 알아본 뒤에.

       

       안전이 확인된 이후에 대답을 들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사실은 스케줄이 확실치 않다고 둘러대고. 나중에 참가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겠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 분명 실망할 텐데. 이미 대답해 버렸으니까. 번복하면, 유리의 표정이 우울하게 물들 거다.

       

       게다가, 애초에 이건 ‘일어났던 일’이다. 내가 끼어들어서 어린 유리를 웃게 한다고 과거가 바뀌는 법은 없다. 해변가에 모래성을 공들여 지어봤자, 파도가 치면 녹아 사라진다.

       

       그러니까, 대답을 빨리 무르고⋯⋯.

       

       “미마, 라고 불러줄래?”

       

       “⋯⋯미마요?”

       

       “너를 꼭 닮은 사람이, 나를 미친 마법사라고 부르곤 했거든. 그걸 두 글자로 줄여봤어.”

       

       내가 미쳤지.

       

       유리는 내가 즉흥적으로 내뱉은 유사 이름을 조금씩 곱씹었다. 입술을 달싹이면서 미마, 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가짜 이름이라지만, 그녀가 나를 이름으로 부른 적은 처음이 아니던가? 

       

       그보다도. 타인으로부터 내 이름을 들어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이름을 잊어버렸으니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부분만을 인생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번이 인생 처음인 셈이다.

       

       유리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당신, 그러니까⋯⋯ 미마, 는. 괴팍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니. 저를 꼭 닮았다는 사람도, 당신과 어울리느라 여러모로 고생했겠습니다.”

       

       “반대였거든? 내가 지고 다녔어.”

       

       “⋯⋯당신을 이기고 다닌다고요? 대체 뭐 하는 사람인 겁니까, 그 사람.”

       

       “일단 가슴이 컸는데.”

       

       유리는 당신 고자 아니지, 하는 시선으로 나를 잠시간 노려봤다. 그렇게 나는, 어린 유리의 축제 파트너가 되어주기로 그녀와 약속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감기기운이 있으가 방금 전까지 꾸벅꾸벅 졸다가, 뭔가 쎄-한 놓친 기분이 드는 겁니다.
    아뿔싸 연재를 안했더라고요 이게 세상에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개깜짝놀라가지구 올립니다⋯⋯.
    마이 프렌즈분들도 감기 조심하세요. 날씨가 비도 오고 널뛰기를 하니까, 앓기 참 좋은 시즌입니다. 내일 건강하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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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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