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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그녀의 상태는 이틀 새 많이 호전되었다.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의 행동거지는 절제된 모범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약 기운이 가신 것과 별개로 병세는 더욱 악화한 것 같았다.

       그녀의 안색이 더 초췌해졌다.

         

       친구들은 그녀가 족제비를 간호한다는 이유로 길들이기 동에서 밤을 새웠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클라라는 위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고, 진통제에 취한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족제비를 돌보지도 않았다.

         

       클라라는 지난 이틀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철야로 파이렌으로부터 자세 교정 훈련을 받았다.

         

       클라라답게 걷는 법.

       클라라답게 웃는 법.

       클라라답게 인사하는 법.

         

       피 말리는 노력 끝에 겨우 클라라의 평소 행동을 몸에 익힌 그녀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파이렌의 조소였다.

         

       “한심하네요. 이제야 겨우 클라라의 걸음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이런 단순한 흉내 내기는 신입생 아무나 붙잡고 해도 하루 만에 해낼 수 있는데 말이죠.”

         

       칭찬을 기대했던 클라라는 그녀의 말에 낯빛이 어두워졌다.

       파이렌의 계속된 빈정거림과 조롱에 그녀는 정말 자신이 무능하고 모자란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겠어요? 중요한 곡예는 어떻게 할 거죠? 당장 월말시험에서 2회 낙제하면 퇴학인 거 알죠?”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이냐?”

         

       얼어붙은 스승을 보고 파이렌은 한심하다는 듯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학교를 나가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죠. 여자애가 도시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감자 깎는 아르바이트나 재봉 공장에서 일하면 되겠네요.”

         

       클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하려고 플라스크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호, 혹시 가정교사 같은 자리는 없겠느냐? 내 지식을 활용해 누군가를 가르친다면…….”

         

       파이렌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가정교사요? 곡예사를 가정교사로 받아들이는 정신 나간 귀족이 있을까요? 그 몸뚱어리로 잘 굴려 그 집 주인의 정부로 들어가는 거면 모를까요. 아, 그렇게 생각하니 술집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방법도 있군요.”

       “아…….”

         

       클라라의 얼굴에 암담한 빛이 떠올랐다.

       지식이나 주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위나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파이렌은 이제 슬슬 스승을 달래주기로 했다.

       그녀는 클라라를 뒤에서 부드럽게 안았다.

         

       “아니면, 제가 사는 집에서 청소와 주방 일을 하는 건 어때요? 괜히 나가 사는 것보다 그게 나을 거예요. 용돈도 넉넉히 드릴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을 곱씹던 클라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의 사도였던 그가 남의 집 가정부 따위를 하는 건 자존심 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다.

         

       곡예를 못 하니 곡예사로 활동할 수도 없는 건 물론이고, 주술의 힘을 사용하려 해도 재료를 수급할 방법이 없었다.

         

       클라라는 자신을 위로했다.

         

       무엇이든 검은 마도사의 손으로 다시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녀는 첫 번째 플라스크에 갇혀 지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자신을 만든 존재가 누구인지, 어째서 자신을 가둬두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보이는 것은 플라스크 밖에 비치는 남자의 얼굴뿐이었다.

         

       플라스크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녀는 여러 단서를 조합해 자신을 만든 존재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었다.

         

       검은 마도사.

       서커스 그랑프리 테러의 주범.

       바이오맨서.

       저주 역병 데볼루트를 다루는 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만 명의 목숨을 해치고 인체 실험 역시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자였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게 그에게 알려진다면 절대 좋은 꼴을 볼 수 없었다.

         

       클라라는 친구들과 함께 단상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색 망토를 두른 키 큰 남자가 등을 돌린 채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강사님이 먼저 도착해있네.”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의 단장. 엘라가 있는 서커스단이지.”

       “저 분 정말 잘 생겼더라.”

         

       클라라는 앞으로 나섰다.

       학생 대표로서 인사를 건네기 위함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강사님. 저는 최고학년 수석인 클라라고 합니다.”

         

       상대 역시 고개를 마주 숙였다.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의 단장인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둘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몇 초간 빤히 바라봤다.

         

       클라라는 전신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를 마주한 순간 그녀의 사고는 정지해버렸다.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

       그것은 그녀가 첫 번째 플라스크에 있었을 때, 계속 봤던 얼굴의 주인이었다.

         

       검은 마도사.

       그가 어째서 여기에?

         

       클라라는 몸이 떨리는 것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침착해.

       지금의 나는 이름 없는 병 속의 악마가 아니야.

       나는 클라라야.

       절대 못 알아볼 거야.

         

       그때,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가 그녀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원래는 들릴 리 없는 아주 작은 속삭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능을 잃었지만, 근처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정도는 수집할 수 있는 그녀였다.

         

       그녀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당신이었습니까. 살아있었군요.”

         

       클라라는 그만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원더스타인은 클라라를 마주한 순간 그녀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에 그녀와 같은 등장인물이 있었던가?

         

       잠시 주춤하던 그는 곧 ‘레카체프 7대 괴담’을 떠올렸다.

         

       레카체프는 학교라는 배경에 들어갈 만한 요소는 다 들어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도시 전설이었다.

         

       대부분 현실의 학교 괴담과 다르지 않았다.

         

       밤이면 빅터의 석상와 황제의 동상이 일어나 서로 박투를 벌인다든가, 정글짐의 대나무 수를 헤아리면 한 그루가 늘어나는데 거기에 발을 디디면 갑자기 발이 미끄러져 목이 부러져 죽는다든가, 학교 안에 비밀의 방이 있어 그 안에 숨은 악마가 교수를 부하로 삼아 부활을 위해 여학생을 숙주로 삼는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자살한 클라라’도 그 괴담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학년 수석을 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에 예쁜 외모를 가진 여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자살을 해버렸다.

         

       7대 괴담에 대해서는 작중에서 추측할 수 있는 단서나 이스터 에그가 나오곤 했는데-실제로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빅터의 석상과 황제의 동상이 일어나 괴물들과 싸웠다.-자살한 클라라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된 게 없었다.

         

       그냥 어느 날 교정 나무에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많은 추측이 나오긴 했다.

       성적의 압박 때문에 자살했다는 둥, 교수님의 아이를 가졌다는 둥, 왕따를 당했다는 둥.

         

       학교 측도 답을 알 수 없어 그냥 자살로 처리하고 넘어갔다.

       클라라의 부모님이 주술사를 초빙해 초혼(招魂)을 시도했지만, 시신에 ‘혼이 없다’라는 꺼림칙한 대답만 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혼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아직도 학교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매년 누군가에게 빙의해 학교생활을 영원히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갖 추측만 무성했다.

         

       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 넣어진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다였다.

         

       그가 클라라라는 이름을 듣고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고서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그녀는 현재 최고학년이랬다.

       TT2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를 생각하면, 그녀가 자살하는 건 이번 달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어딘가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긴 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지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원더스타인은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았다.

       그는 그녀를 안고 서둘러 무대 옆에 있는 강의 준비실로 옮겨 소파에 눕혀주었다.

         

       학생들이 학교 병동의 책임자인 나히모프 박사를 부르러 간 사이, 그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질문했다.

         

       최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없었냐고.

         

       그들은 앞다투어 클라라에 대해 증언했다.

         

       “그게 몇 달 전부터 힘들어 보이긴 했어요. 학생 대표로 활동하는데, 아무래도 전임자인 찰리 선배의 그림자가 워낙 크다 보니 비교됐죠.”

       “갑자기 기르던 족제비에게 공격당해서 패닉에 빠지기도 하고요. 광견병에 걸린 것 같이 날뛰던 거 있죠?”

         

       얼마 안 있어 도착한 나히모프 박사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탈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영양제 몇 알을 준 뒤, 나중에 병동을 방문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녀의 친구들은 안심하는 듯했지만, 원더스타인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몸살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맞이할 결말은 ‘자살’이었다.

       몰랐으면 모르되 안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강의시간이 다가왔다.

       그도 이제 수업을 하러 가야 했다.

         

       그러나 클라라가 신경이 쓰여 도무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파 위에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는 그가 들어오자 흠칫 놀라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고 몸을 벌벌 떠는 것이 마치 정신쇠약에 걸린 것 같았다.

         

       뭐가 이 아이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힘들게 만들었을까.

       그는 안타까움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났습니까?”

         

       클라라는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는 그를 바라봤다.

         

       저 외모는 분명 플라스크 안에서 보던 그 남자가 맞았다.

       세상에 검은 마도사로 알려진 자.

         

       뭐라 변명을 해볼까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체념했다.

         

       시치미 떼는 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을 알아봤다.

         

       “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

       잠시 생각하던 원더스타인은 곧 그녀가 드래프트에서 재학생들 대표로 나와 인사를 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는 로드 판타스틱의 동향에만 신경을 썼기에,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처음 보는군요.”

         

       무려 17년 만의 재회였다.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더스타인은 수천 명의 사람을 앞에 두고 당당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이렇게 무너진 건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군요.”

         

       클라라는 그가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고 생각했다.

       흉측한 게딱지 같은 것에 검은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는 옛 모습을.

         

       “이런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가요?”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그는 소파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담요를 끌러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컵에 식은 물을 버리고, 주전자에서 새 물을 따라주었다.

         

       “많이 힘들었겠군요.”

         

       그 태도와 말투는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그 검은 마도사라고?

       자신이 수집한 정보는 이러지 않았는데…….

         

       물론 ‘속삭임의 정원’이 가진 약점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 간에 떠도는 말만을 수집할 뿐이었다.

       진실이나 진리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가 저질렀다고, 아니, 적어도 저질렀다고 알려진 일을 생각하면, 그는 절대 선인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듣던 것과 많이 다른 분이네요.”

       “후후, 저에 대한 소문 말입니까?”

         

       원더스타인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바람둥이, 비겁자, 사기꾼, 노예상인, 장애인 학대자 등등.

       베르그송 자작과의 일부터 시작해서 유명세가 커질수록 악의적인 중상모략도 점점 잦아졌다.

       괴물서커스라는 꺼림칙한 쇼 때문에 그 오명을 벗기가 참 힘들었다.

         

       여자를 유혹하는 인스피라를 지녔다는 최근의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듣고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많이 조사했나 보군요.”

       “……네.”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주의했던 일이 떠올랐다.

         

       레카체프의 학생들이 외부 강사를 잡아먹으려 든다고 들었다.

       저번 주에 로드 판타스틱도 강의시간 내내 소문과 약점으로 물어 뜯겼다.

         

       “괜찮아요. 저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러 온 거죠.”

         

       그의 말에 클라라는 침을 삼켰다.

       이제야 그의 친절이 이해가 갔다.

         

       당장 죽이려 들면 죽일 수도 있는데, 내버려 두는 이유는 뻔했다.

         

       “혹시 제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건가요?”

         

       경계심에 찬 그녀의 말투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순수한 선의랄까요? 후후.”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클라라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신에 찬 그녀의 눈빛을 보고 서둘러 덧붙였다.

         

       “원하는 게 있다면, 그저 살아달라는 겁니다. 그 외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을 겁니다.”

       “살라고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

         

       그녀가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역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는 그녀의 표정에 떠오른 놀란 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더스타인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옛날 일을 떠올렸다.

       자신도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이었죠. 작은 방 안에 갇혀, 자기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조차 못 하는 그런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클라라는 그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얘기였다.

         

       “밖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망하며, 깔보고 비웃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원더스타인은 게임 방송을 시작하기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확실히 자신은 그런 놈이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등감에 가득 차서 인터넷 세상을 떠돌았었다.

         

       클라라는 부끄러움에 소파를 긁었다.

       그는 자신의 속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방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갔죠. 세상에 즐거움을 선사하고,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는 일을 하려고요.”

         

       클라라는 얼굴을 붉혔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자신은 그런 건실한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그의 눈을 피하려고 이 몸과 이름을 빼앗았을 뿐이었다.

       훔쳐 들은 정보를 이용해서 편하게 사회 뒤에서 암약할 생각이었다.

         

       우습게도 그마저도 제대로 못 해서 다른 사람 집에 얹혀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라 할 수 있는 그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제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저는 그 정도나 되는 존재가 아니에요…….”

       “저는 그저 당신을 응원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참견처럼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밖에서 그를 부르는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애가 탔다.

       뭔가 용기 있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었는데, 별 실속 없는 얘기만 하고 말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마지막으로 조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버거운 일이죠. 굳이 그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 없어요. 당신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빙의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물론 학생 대표로서의 책무로 고심하고 있는 그녀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긴 했다.

         

       악마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클라라를 흉내 내는 데 그만 집착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아, 그리고 기르던 동물이 갑자기 제멋대로 구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런 것으로 일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기 힘들죠, 후후.”

         

       그는 엘라가 평소에 하던 소리를 마지막으로 해주고는 방을 나갔다.

         

       그가 완전히 떠나고 난 후, 클라라는 그가 마지막에 던진 말의 의미를 깨닫고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애완동물이라고?”

         

       마치 기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서 골치 아팠다는 투였다.

         

       자신의 탈주와 17년 동안의 고군분투를 그렇게 평가하다니.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자신이 그를 부르던 호칭을 기억해냈다.

       플라스크 밖에서 영양액을 넣어주던 그를 그녀는 예전에 그렇게 불렀었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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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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