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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오행의 균형이 무너지고, 풍수지리가 이상해졌다?”

         

       사범은 남자의 말에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들이 줘도 안 갖는 흉악한 땅에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흠.”

         

       사범은 어서 말해보라는 듯 무언으로 재촉했다.

         

       “사범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오행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토(土), 목(木), 금(金) 역시 마찬가지예요.”

       “흠.”

         

       남자는 오행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토생금이라고 했지요. 흙이 땅속에서 쇠가 되는 것처럼 토(土)는 금(金)의 기운이 생성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목극토에 금극목이라! 나무가 뿌리를 내려 땅을 파고드는 것처럼 나무는 땅의 기운을 억제하고, 쇠가 나무를 베는 것처럼 날카로운 기로 나무가 기운을 모아 자라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지요!”

       “그래서 그게 여기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이 있지요.”

         

       남자는 방긋 웃으며 땅과 나무를 가리켰다.

         

       “여기 이렇게 땅이 있고, 저기에 10,000그루가 넘는, ‘셀 수 없는’ 숫자의 나무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토(土)랑 목(木)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금(金)이 있어요. 이 산 자체가 금기(金氣)를 한껏 머금고 있습니다.”

       “이 산이?”

         

       차기 신관은 손가락을 저 멀리에 있는 봉우리를 가리켰다.

         

       뾰족하게,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검은색 봉우리를.

         

       “이 산의 이름이 쿠로츠루기미네(黑劍峰)이지 않습니까? 이름 자체에서 검을 품고 있으니 금(金)이고, 산의 지형이 날카로운 검의 형상을 품고 있으니 이 역시 금(金)이고, 그것이 하늘을 찌르는 형국으로 세워져 있으니 이 역시 금(金)이며, 산의 위치 역시 서쪽에 있으니 이 역시 금(金)의 속성을 품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칼을 들고 수련하는 시현류의 무인분들까지 있기까지 하지요. 이만하면 완벽하게 금(金)의 속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리가 있군요.”

         

       사범은 남자의 설명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산은 금, 목, 토. 이 세 가지의 속성을 한껏 품었음에도 엇나가는 일 없이 나름 균형을 이루고 있었을 겁니다. 뭐 금(金)의 기운이 이토록 강하니 상생 관계에 있는 수(水)가 머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나무가 이토록 많으니 화(火)의 기운 역시 적당한 양을 품으며 머물렀겠지요. 아슬아슬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아슬아슬하다는 것은 그 균형이 자그마한 일로도 깨어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종의 일로 인해 이 균형이 깨지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균형은 박살이 나고,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았겠지요. 오직 상승(相乘), 상모(相侮)만이 남게 되었을 테니까요!”

         

       상승(相乘).

       상극 관계에서 억제하는 쪽이 지나치게 커지고.

         

       상모(相侮).

       상극 관계에서 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니 흙의 양분이 고갈되는 형국이라 목승토. 나무가 너무 세를 키워 어지간한 쇳덩이로 베지 못하게 되었으니 목모금. 나무의 그늘이 자라나 태양을 가리고 양기를 막아내고 독점하는 모양새이니 그 안에는 음기가 넘실거릴 것이요, 그 와중에도 금기(金氣)는 남기는 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반짝임을 발하는 형태이니…. 참 귀신들이 좋아할 환경이 완성되었겠습니다.”

         

       그의 설명은 자세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에 사범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니만큼 악령이 되지 못한 혼령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악령만큼의 힘은 당연히 쓸 수는 없지만, 악령 비스름한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겠지요.”

       “혼령이라.”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딱 들어맞습니다. 보안 장치가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것? 당연하겠지요. 악령을 잡아내는 것인데 악령이 되지 못한 혼령을 어떻게 잡아내겠습니까? 곰팡이로 장난질을 치는 것? 이렇게 음기가 넘쳐나고 곰팡이가 생겨나기 좋은 환경인데 그걸로 장난을 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요. 사람의 흔적이 남지 않은 것? 사람이 한 짓이 아니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무인 한 명이 홀렸다고 했지요? 그것 역시 당연합니다. 악령이 되지 못했다고 한들 그 성질머리는 그대로 안고 있지 않겠습니까? 부족한 힘으로도 어떻게든 겁을 먹게 해서 홀리려 들었겠지요. 시현류의 무인이 얼마나 용맹한지도 모르고.”

       “그렇지요. 우리 유파의 무인은 절대 그런 잡스러운 것에 겁을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홀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되었습니다. 홀렸다면 그 흔적이 남아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인데, 홀리지 않았기에 되려 문제의 원인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집니다.”

         

       사범은 자신의 속을 뻥 뚫어버리는 듯한 남자의 말에 기꺼운 듯 웃었다.

         

       “하하하하! 이거 대단하군요. 이토록 사람을 고생시킨 일을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풀어버리다니!”

       “과찬이십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쯧, 앞서 방문했던 작자들과는 전혀 다르군요. 실력이 대단합니다.”

       “앞서 방문하신 분들도 이것은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봤다면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테지요.”

       “하하하. 그게 대단한 겁니다. 창의성이라는 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범은 호의가 가득한 눈으로 차기 신관을 바라보았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확실하게 제 가설을 증명하려면…. 아, 그렇지. 혹시 괴이한 일을 목격했다던 무인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라, 얼마든…. 아! 맞아! 그 녀석이 일이 벌어진 날 낮에 무단 침입한 대학생에게 괴담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대학생 몽타주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는데, 금방 가지고 오겠습니다.”

         

       사범은 그리 말하며 경공을 사용해 수련장으로 달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돌 말린 종이 뭉치를 들고 진성의 앞에 다가왔다.

         

       “이게 바로 그 대학생의 몽타주입니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는데, 같이 한 번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괴담을 말한 대학생이라. 궁금하군요.”

         

       차기 신관은 기대된다는 듯 종이를 받아들고 천천히 펼쳤다.

       그리고 종이를 펼치자마자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거 놀랍군요.”

         

       종이에 그려진 사람은 얼굴이 없었다.

         

       마치 달걀귀신처럼, 이목구비가 없이 말끔하게 얼굴 부분이 비어있었다.

         

       “얼굴이 왜 이래?”

         

       사범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그러자 다음 장에는 입이 그려져 있는 얼굴이 나왔다.

         

       입.

       오직 입 하나만 달랑 붙어있는 얼굴.

         

       어린아이가 연필을 주먹으로 잡고 삐뚤삐뚤 그린 듯한 입술이 얼굴의 중앙에 붙어있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얼굴의 형상이었다.

         

       “이거….”

         

       사범은 재빨리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그 다음 장에는 눈웃음을 치는 것처럼 휘어진 눈알이 가득 붙어있는 얼굴이 있었다.

         

       팔락.

         

       다음 장을 넘겼다.

         

       눈과 코, 입이 후쿠와라이(福く笑い)처럼 제멋대로 붙어있는 얼굴이 있었다.

         

       팔락.

         

       얼굴도 없이 목 위로 입만 둥둥 떠다니는 그림이 있었다.

         

       팔락.

         

       뭘 그리 말하고 싶은지 입이 여러 개 붙어있는 얼굴이 있었다.

         

       팔락.

         

       목탄으로 마구 문지르기라도 한 듯 간신히 사람 머리 형상만 가진 얼굴이 있었다.

         

       팔락.

       팔락.

       팔락.

         

       눈이 있었다.

       휘어진 눈꼬리로 웃는 눈.

       비웃음을 잔뜩 머금고, 총기가 없는 눈.

       연필로 여러 번 칠하고 또 칠해서 종이가 푹 패일 때까지 검게 만들어버린 눈동자를 품은 눈.

         

       입이 있었다.

       삐뚤삐뚤 흐트러지고.

       그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고.

       오직 이야기만 하면 된다는 듯 잔뜩 늘어나기도, 크기를 키우기도 하는 수많은 입이 있었다.

         

       제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코가 있었고.

       이마에 붙었다가 얼굴에 붙었다가 하는 귀도 있었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바뀌어버리는 옷차림도, 색도.

         

       도저히 사람을 그린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몽타주가 모든 종이에 있었다.

         

       “홀리지 않았던 게 아니군요. 반쯤 홀렸군요. 홀린 것도 아니고 홀리지 않은 것도 아니니 흔적이 남지 않았었나 봅니다.”

       “이거 진짜….”

         

       혼령 짓인가?

         

       사범은 입 밖으로 나오려는 물음을 삼켰다.

       대신에 해결할 수 있겠냐는 듯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그 시선에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우리 신사는 악령이라고 할지라도 쉬이 퇴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악령도 되지 못한 혼령이라? 이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앞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깨달았고, 그것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다만…. 그래요. 아마 본격적인 제령(制靈) 작업은 밤중에 이루어질 텐데, 부디 참석해주셔서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기꺼이 그리하지요.”

         

       차기 신관은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 있는 무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무녀는 넓은 소맷자락에서 종이 뭉치와 가느다란 실뭉치를 건네주었다.

         

       “부적입니까?”

       “네. 혹시 모르니 부적과 금줄을 이용해서 간이 신사를 만들고 신력을 채우려고 합니다. 아무리 혼령이라고 한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신중해야겠지요.”

       “훌륭하군요.”

         

       사범은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턱.

       턱.

         

       남자는 받은 부적을 나무 곳곳에 붙였고, 땅에 늘어질 정도로 길게 금줄을 쳤다. 그리고 금줄 곳곳에 부적을 접어서 매달고, 합장하며 신에게 비는 듯한 말을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한 작업이 몇 번 반복되자 꽤 그럴싸해 보이는 지역이 만들어졌다.

         

       “이거 꽤 멋지군요. 이 안에 들어와 있자니 신께 보호받는 느낌이 듭니다.”

       “하하하. 역시 무인이시군요. 감각이 뛰어나십니다. 이곳은 간이 신사가 되었고, 그 때문에 신님의 시선이 닿고 있습니다.”

       “호오. 좋군요. 아, 그런데.”

         

       사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남자는 민망한 듯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신창에 오래 보관했더니 그…. 곰팡내가 좀 납니다. 하지만 효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사범은 잠시 짠하다는 듯 차기 신관과 무녀를 바라보았다.

         

       “뭐 시간이 지나면 냄새도 사라지겠지요. 크흠. 그래요. 그럼…. 새벽에 다시 이곳으로 오면 되겠습니까?”

       “네. 기왕이면 자시(子時) 전에 오셨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아. 이곳에 계속 있을 거면 배가 고플 텐데, 음식이라도 좀 가져다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령 의식을 하기 전에는 몸을 정갈하게 해야 해서요. 제령을 하기 전까지 굶고, 일이 끝난 다음에 좀 먹을 생각입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령 의식이 끝난 다음 드실만한 음식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

       “아,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차기 신관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수련장으로 돌아가는 사범을 배웅해주었다.

         

       사범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마치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커다란 근심거리를 덜어놓았다는 듯이 말이다.

         

       차기 신관과 무녀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다가 가지고 온 원터치 텐트를 펼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지퍼를 잠그고, 텐트의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들소 반지가 만드는 침묵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무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들소 반지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소리는 텐트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침묵 속에서 맴돌다가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며 사라졌고, 진성은 리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아브라케-다브라(אברא כדברא),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니. 오행은 깨지고 자연은 박살이 나고, 재해가 일어나게 되리라.”

         

       그는 웃었다.

         

       “원흉으로 지목되어 적의(敵意)를 받는 것은 다른 이가 될 것이며, 남으로 적을 물리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세를 꺾고 대가를 치르게 만들게 되리라.”

         

       진성은 기대가 된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마나(Mana), 마나(Mana)라. 참으로 기대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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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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