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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허허허허허……….”

       ​

       벨칸이 허무하게 웃었다.

       기껏 도시 전체에 전투 태세를 선포하고 침략을 대비했지만, 나의 차원문 트랲 덕분에 적들 대부분이 멸절했기 때문이다.

       ​

       그냥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

       드러나지 않은 왕국의 위치.

       함부로 땅을 부술 수 없는 절벽 지형.

       비상시 사용하는 드워프 군의 출입 포탈.

       적들이 절대 의심하기 힘든 차원문의 존재.

       이런 상황을 이용했을 뿐이거늘, 적을 일망타진했다. 드워프를 미끼로 직접 통로를 넘나드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적은 무지하게 포탈을 넘었고, 그대로 차원 틈새에 갇혔다.

       ​

       공간 능력은 참 편리했다.

       신성을 뻗을 수 있는 거리라면 얼마든 공간을 넘어 활약할 수 있으니까.

       ​

       “무찬… 분명 강해진 건 힘인데, 왜 잔머리만 더 늘은 것 같지?…… 아니, 이것도 힘이 받쳐줬기에 가능한 건가.”

       ​

       보다시피 샤엘라도 감탄할 정도.

       ​

       묘하게 뿌듯해졌다.

       전쟁은 꼭 잘 싸워 이길 필요 없다.

       가장 좋은 건 싸울 상황을 피하고, 싸우기도 전에 적을 말려 죽게 만드는 거다.

       ​

       그런 면에서 완벽한 작전이다.

       정말로 차원 틈새에서 말라 죽을 테니.

       ​

       “정말 고맙네. 설마 이렇게까지 큰 도움이 될 줄은 예상 못했네.”

       ​

       휙휙!

       ​

       벨칸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

       “그냥 별것 아닌 놈들이었지, 뭐.”

       ​

       “그럴 리가!! 분명 우리 공격이 잘 통하지 않은 걸 직접 봤네. 그런데 자네는 직접 그들을 휩쓸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적을!!…… 허허허허… 그저 웃음 밖에 안 나오는군.

       ​

       “어쨌든 약속은 지키겠지?”

       ​

       “물론… 다크레아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동맹일세. 다크레아가 위험에 처하면 형제들이 들고일어날 것이고, 기술과 지식이 부족하다면 언제든 가르쳐 줄 것이라네.”

       ​

       “그거면 충분해.”

       ​

       나 또한 매우 좋은 일이다.

       이렇게 간단히 드워프 왕국의 기술을 얻고 결사 동맹을 맺었으니.

       ​

       하지만.

       ​

       “아직 끝은 아니야. 감 좋은 녀석이 저기 하나 남았으니까.”

       ​

       방에 띄워진 3D 스크린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흰머리의 젊은 남성 지배자 전력과 약 30명의 부하가 포탈에 들어서지 않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포탈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

       “흠흠… 이제 괜찮네. 저 정도 전력이라면 우리도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

       ​

       슥.

       ​

       벨칸도 3D 스크린을 쳐다봤다.

       30명밖에 되지 않아 만만히 보는 듯했다.

       ​

       나는 즉시 녀석의 말을 정정했다.

       ​

       “저기 지배자 전력이 하나 있어. 그냥 다가갔다간 크게 낭패 볼 거다.”

       ​

       “그, 그런가?”

       ​

       “저것도 내게 맡겨. 사실 내 힘을 조금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

       “허허… 그리 해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그럼 직접 나설 셈인가?”

       ​

       “물론이지. 지금이 절호의 기회잖아.”

       ​

       적측 지배자 전력은 총 3명이었다.

       ​

       한 명은 보라 머리 마법사.

       첫 번째 포탈로 희생되었다.

       ​

       두 번째는 푸른 머리 여성.

       드워프 미끼 작전으로 포탈을 넘었다. 일부러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기에, 보라 머리 마법사와 떨어진 상태다.

       ​

       세 번째는 저 스크린 속 남성.

       몸에서 뼈를 뽑는 이상한 놈이지만, 지배자급 전력에다가 감이 좋다. 

       ​

       세 명을 상대하는 건 위험할지 모르나, 지금은 전부 찢어졌다. 전력이 분산된 지금, 한놈 씩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걸 노리기도 했고.

       ​

       저 한 명은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좋겠지.

       가능하면 차원 틈새에 있는 녀석들까지.

       ​

       ‘나도 조금 성장했네.’

       ​

       옛날이라면 마주친 것만으로 쫄았을 텐데.

       지배자와 부딪쳤음에도 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대등하게 마주 보는 것을 떠나서 여유로움을 느꼈다. 물론, 잔머리로 상대하곤 있지만… 이것도 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따라서 나는 강해졌다.

       샤엘라의 기분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지배자를 귀찮은 정도로 생각하던-

       ​

       팍!

       “윽?”

       ​

       “무찬. 네 생각이 훤히 보인다, 보여. 강해졌다고 심취하진 마.”

       ​

       샤엘라가 즉각 내 생각을 교정했다.

       이놈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전부 꿰뚫어 보는 듯했다.

       ​

       거참.

       ​

       “나도 내가 약한 거 알거든? 조금 기분 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

       “아니, 약하다곤 안 했는데….”

       ​

       “한참 부족한 건 맞지.”

       ​

       “흐음….”

       ​

       샤엘라가 날 묘하게 바라본다.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탑의 강력한 신격들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

       자기 분수를 깨닫자.

       샤엘라 말대로 심취하지 말자.

       나는 절대로 강하지 않고, 앞으로 올라야 할 길은 멀고도 멀다. 그것을 명확히 깨닫고 있어야 더 성장할 수 있다.

       ​

       자, 잡생각은 여기까지.

       슬슬 마무리 지어야겠지.

       전쟁은 시작도 전에 거의 끝났고, 벨칸은 무전으로 왕국의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군 병력만 출동 대기 상태로 완화했다.

       ​

       이제 남은 건 뒤처리뿐.

       ​

       “벨칸. 아마 너희가 나설 일은 없을 것 같다.”

       ​

       “그렇게까지 도와주겠다면, 사양하지 않겠네. 어차피 운명을 함께한다면, 도움을 사양하는 것도 실례일 테니.”

       ​

       “운명을 함께 한다곤 안 했는데….”

       ​

       “우린 함께할 걸세. 이거 하나만은 내 약조하지. 그쪽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린 그대들을 형제로 볼 것이네. ”

       ​

       “맘대로 해. 자, 그럼.”

       ​

       딱!

       샤르륵!!~

       ​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바로 앞의 공간이 일그러졌고, 그곳에서 시리안이 튀어나왔다.

       ​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샤샤샥!!-

       ​

       동시에 시리안의 뒤로 열 명의 다크 엘프가 차원문을 빠져나왔다.

       ​

       참고로 시리안은 내 상황을 알고 있다.

       이번 공동 진화를 거치면서 내 시야를 녀석에게 보여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녀석의 정확한 능력 범위는 모르지만, 덕분에 귀찮게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

       “시리안. 왜 부른지는 들었지?”

       ​

       “예. 하지만 그전에 남은 적 병력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

       “응? 설마 너희가 처리하려고?”

       ​

       “신목님. 저희는 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신목님의 뒤만 바라보려고 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부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

       “흐음….”

       ​

       벨칸과 구체적인 동맹 방안을 뒤처리를 맡기고 적을 맞이하러 갈 생각이었거늘, 녀석이 직접 적을 처리하고 싶단다.

       ​

       무슨 자신감일까.

       ​

       슥.

       ​

       시리안의 뒤쪽을 보았다.

       함께 온 다크 엘프들이 보였다. 

       녀석이 말했던 친위대인 듯했다.

       ​

       척.

       ​

       내 시선을 느낀 그들은 존경을 표하듯 고개를 숙이며 목례했다.

       ​

       다들 제법 강해 보인다.

       시리안이 나 몰래 준비한 녀석들인 만큼, 기세가 남다르다.

       ​

       뭐든 준비되어 있다는 듯한 눈빛.

       언제라도 그림자처럼 사라질 듯한 검은 옷차림과 환경에 동화된 듯한 느낌. 마치 암살자라 해도 믿을 분위기다.

       ​

       ‘200레벨 중반 정도인가.’

       ​

       단순히 기운만이 아니다.

       제법 강직한 기운들이 느껴진다.

       다만, 폐기장보다 후발주자인 녀석들이 이렇게나 빠르게 성장한 게 의문이다. 평범한 방법으로 강해진 녀석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시리안에게 따로 물어봐야겠지.

       ​

       “믿고 맡겨도 되겠어?”

       ​

       “저흴 믿어주신다면, 신목님께 저희의 힘을 증명하겠습니다.”

       ​

       솔직히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시리안이 어느 정도의 힘을 보여줄지.

       녀석이 키운 친위대는 얼마나 뛰어나고 합을 잘 맞출지.

       ​

       이번에 제대로 알 수 있겠지.

       나도 싸우고 싶었지만, 어차피 사냥감은 둘이나 더 있으니.

       ​

       “그럼 해봐. 지켜볼 테니까.”

       ​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리안이 출정했다.

       ​

       ​

       ​

       *

       ​

       ​

       ​

       “흐음… 엿됐군.”

       ​

       리키아드.

       그는 몸에서 뼈를 뽑아 사용하며 단단한 내구력을 가진 남성으로, 아칸벨리에서 몇 없는 지배자 계급에 해당한다.

       ​

       “세리아스. 그 얍삽한 놈 때문에 괜한 애들만 잃었잖아.”

       ​

       그는 포탈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무찬의 드워프 미끼 작전으로 대부분의 병력이 저곳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

       당연하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리키아드도 아칸벨리의 높은 간부다.

       세리아스가 끼어들어 지휘권을 내어줬지만, 원래라면 그가 잡았을 작전이었다.

       ​

       “레이븐은 제멋대로고 세리아스 놈은 탐욕에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니 원.”

       ​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일삼다 가버릴 자였습니다.”

       ​

       옆에 부하가 아부했다.

       이들은 리키아드와 가까운 자들로, 세리아스의 지휘보다는 리키아드의 말을 따랐고, 덕분에 차원 틈새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

       인원은 약 30명.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전력으로 도시를 공격하기에 모자란 감이 있었다.

       ​

       생각보다 발전되고 강력한 드워프군.

       잠깐 나타나 병력을 압도했던 엘프의 존재.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는 포탈 기술.

       ​

       “이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

       “우리는 물러선다. 적은 생각보다 강해. 굳이 목숨 걸 필요는 없겠지.”

       ​

       이대로 강행하는 건 좋지 않다.

       차라리 이대로 세력에서 도망치고 드워프 도시 정보를 다른 세력에 파는 게 훨씬 낫다. 어차피 작은 신생 세력인 아칸벨리에겐 이번 일만 해도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이다. 즉, 보복할 힘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

       그로서는 꽤 현명한 대처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

       “혹시… 절벽을 오를 방법이 있습니까?”

       ​

       “그건….”

       ​

       문제는 여기가 깊은 절벽 아래라는 것.

       내려올 때는 레이븐의 마법으로 편히 내려왔지만, 이제 그녀는 없다. 빠져나가려면 물리적으로 올라야 하는데, 리키아드와 몇몇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올라올 능력이 없었다.

       ​

       지형 자체가 천혜의 요새다.

       함부로 들어오지도, 빠져나갈 수도 없는 무덤 같은 요새.

       ​

       무엇보다 설상가상으로.

       ​

       투둑.

       쿠구국.

       ​

       이상한 전조가 발생했다.

       주변 대지와 절벽에서 거대한 암석들이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누구냐!!”

       ​

       리키아드는 재빠르게 허공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퍼졌다.

       ​

       “우방국 벨칸을 침략한 죄. 그 누구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지어다.”

       ​

       그 동시에.

       ​

       콰아앙!!

       콰과과과과과!!

       ​

       “크아아아아!!!”

       “피해!!!”

       ​

       떠오른 거대한 암석들이 추락했다.

       가속이 더해진 암석은 운석 무더기처럼 지상을 폭격했고, 갑작스런 기습에 리키아드의 부하들은 당황하여 공격을 피하기 바빴으며.

       ​

       서걱!

       촤아악!!-

       ​

       그 가운데 그림자처럼 나타난 다크 엘프들이 사신처럼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

       흔들림 없는 동작.

       매우 익숙한 듯한 살인.

       육체적으로 발달된 다크 엘프들.

       몸에서 피어 오르는 흉흉한 검푸른 기운까지.

       시리안과 친위대가 첫 번째 무대에 제힘을 드러낸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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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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