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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셔요.”

       “쀼우!”

       “레온 님! 실비아 님! 안녕하십니까! 뭣들 하나? 어서 문을 열어라!”

       “옙!”

       

       이제 파메라 성에서 우리를 못 알아보는 기사는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 방문하든 환대를 받았다.

       

       “오늘도 아르가 참 귀엽군요. 허허허.”

       “어이쿠, 저 맑은 눈망울 좀 보게. 나도 기사가 아니라 테이머를 할 걸 그랬나 봐.”

       “이 사람아, 아르 같은 사역마가 어디 흔한 줄 아는가? 내 지금까지 살면서 꽤 많은 테이머를 봤지만, 이렇게 말 잘 듣고 야무지고 귀여운 사역마는 단 하나도 없었다네.”

       “하긴, 예전에 레드 보어를 키우는 테이머를 본 적이 있었는데 성질이 꽤 장난 아니더라고.”

       “게다가 사료값만 해도 등골이 휘겠더군.”

       “이렇게 조그만 아르도 잘 먹는데, 레드 보어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안 가는구만.”

       

       사실 우리 아르도 집에 가면 커져서 엄청 먹긴 하는데….

       

       우리야 뭐 돈 걱정 없이 아공간에 먹을 걸 쌓아 두고 사니까 상관없긴 하지만.

       

       ‘드래곤이라 건강 걱정도 없고, 먹는 거 자체가 워낙 복스러우니 이렇게 예쁠 수가 없지.’

       

       나는 내 품에 안긴 말랑한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아르는 오자마자 칭찬도 듣고 엉덩이 토닥임도 받아서 기분이 좋은 듯 뀨 소리를 냈다. 

       

       “하하하. 저희 아르가 좀 사역마들 중에서도 특별한 편이긴 하죠.”

       

       아니, 좀 많이 특별하지.

       

       “여튼, 단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왔는데 단장실로 가면 될까요?”

       “지금이…. 아마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계실 겁니다. 저쪽으로 쭉 가셔서 왼쪽을 보시면 바로 연무장이 보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수련 중이라.

       

       어차피 다른 일정도 없고, 가서 느긋하게 수련 하는 거 구경이나 하다가 끝나면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면 될 듯싶었다. 

       

       다른 기사들이라면 갑자기 찾아와서 수련 하는 거 참관한다고 하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겐 아르가 있으니까!’

       

       아르를 굉장히 예뻐하는 레키온이라면 수련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아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할 게 분명했다. 

       

       ‘일단 지금까지는 레키온이 아르를 좋아해 줘서 정말 다행이야.’

       

       아르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파메라 성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디 보자…. 아, 저쪽인가.”

       

       기사가 가리킨 쪽으로 쭉 들어가다 보니 저 멀리서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다가갈수록 맞부딪치는 검의 파찰음과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세차게 변해 갔고.

       

       끼이이익.

       

       작은 철문을 열고 연무장에 들어서자 그 소리들은 생생하게 피부를 통해 전달되기에 이르렀다. 

       

       레키온은 연무장에서 데보라와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요.”

       

       채채채챙!

       

       밖에서 소리만 들었을 땐 당연히 진검으로 대련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도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면 진검끼리 부딪치는 것과 진배없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레키온과 데보라가 들고 있는 검은 두 개 모두 흔한 대련용 목검이었다. 

       

       “마나만으로 저렇게 목검을 부러뜨리지 않고 싸우는 것만 봐도 대단한 실력이네요.”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게 마나로 가능한 거였어요?”

       “가능은 하죠. 마나를 목검에 완전히 스며들게 하고 단단히 붙잡아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기반을 완성한 다음, 거기다 저렇게 일렁이는 마나를 더 덧씌워서 목검에 상대의 공격이 직접 닿지 않도록 강하게 유지하면서 일정하게 방출하면요.”

       “듣기만 해도 복잡하고 어렵네요.”

       

       「스탯 동기화」의 효과 덕에 아르의 마력 스탯을 상당 부분 빌려 와서 체급을 올릴 수 있기는 했지만, 순수하게 내 육체의 재능으로 저런 기예를 구사하는 건 아직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어떻게 또 「이해」, 「습득」 특성 복사한 다음 실비아 씨한테 잘 배워서 써먹으면 가능은 할지 몰라도, 저렇게 대련하는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건 또 다른 얘기지.’

       

       게다가 저 기술을 쓰면서도 둘은 쉴 새 없이 스텝을 밟고, 상대와 자신의 리치를 계산하며 공간을 확보하고, 심리전을 펼치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0.1초 단위로 머리를 굴리면서도 빈틈이 보이는 순간 육감에 가까운 판단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채채채챙! 챙!

       

       우리는 잠깐 멍하니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곧 자리를 옮겨 편히 의자에 앉아 둘의 대련을 직관했다.

       

       다른 기사들도 다 근무 중이거나 다른 일을 보고 있는 듯, 구경하는 사람은 우리들뿐이었다.

       

       “전에 같이 싸울 때도 몇 번 봤지만, 역시 용사는 용사네요. 놀라운 재능이에요.”

       

       순수 검술로는 레키온보다 몇 수 위인 실비아가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제가 몇십 년 넘게 수련할 동안 얻은 깨달음을, 이미 레키온 님은 얻고 계신 것 같아요.”

       “…실비아 씨, 여기서 그런 거 이렇게 말해도 돼요?”

       

       누가 봐도 겉모습은 레키온이나 데보라랑 비슷한 나이인데 몇십 년 넘게라니.

       아무리 우리끼리 멀리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해도 레키온이 만약 듣는다면 수상하게 여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실비아는 빙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지금은 두 분 다 이미 대련에 극도로 몰입해 계신 상태니까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희가 들어왔을 때 잠시 중단되었겠죠.”

       “그것도 그렇네요.”

       

       채앵—

       

       다시 목검과 목검이 맞붙으며, 마치 아주 작은 칠지검처럼 거칠게 일렁이는 마나가 서로를 찢어발기기 위해 비명을 질렀다. 

       

       “흡!”

       “하압!”

       

       레키온이 파고들면 데보라가 한 걸음 물러나 충격을 흡수한 뒤 반격을 노렸고, 데보라가 파고들면 레키온이 옆 공간으로 돌아 피하며 역습을 노렸다. 

       

       “저런 역대급 천재 괴물 앞에서 밀리지 않고 대련을 하는 데보라 님도 장난 아니시네요.”

       “사실 전 어떻게 보면 데보라 님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분명 재능은 레키온 님이 앞서지만, 검술 자체만 놓고 보면 오히려 데보라 님이 앞설 정도거든요.”

       “그 정도예요…?”

       

       게임에서 쓸 때는 레키온에게 중후반까지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좋다는 것만 알았지, 검술 면에서 더 뛰어날 줄은 몰랐다. 

       

       “으음, 말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검술 실력’으로 놓고 보면 레키온 님이 조금 더 우세한 건 맞아요. 하지만 ‘검술’만 놓고 봤을 때는 데보라 님이 완성도가 좀 더 높은 거죠. 물론 데보라 님도 재능이 있으시지만, 아마 뼈를 깎는 노력이 동반되었을 거예요.”

       “아하….”

       

       ‘전체적인 검술 실력’은 밀리지만 ‘검술’은 우세하다니 말장난 같지만, 실비아의 말에는 미세한 어감 차이가 있었다. 

       

       ‘전체적인 검술 실력에는 순간적인 센스나 육체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지컬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으니까.’

       

       나도 처음에는 눈으로 따라가기가 벅찼지만, 이제 어느 정도 둘의 대련이 눈에 익으면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자 좀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레키온은 순간적인 센스로 이게 어떻게 이렇게 나오지 싶은 공격들이 종종 나오고, 심지어는 신체 스펙 차이로 피하거나 빈틈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어.’

       

       반면 데보라 쪽은 그야말로 자로 잰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겉모습은 투박한 목검이지만 마치 은빛 곡도를 휘두르는 것 같은, 화려하면서도 절도 있는 검술.

       

       공격이 어느 방위에서 날아오든 즉각적인 계산으로 검의 궤도를 틀어 막아내고 그 상태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아 움직인다.

       

       ‘저건 재능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셀 수 없는 반복 끝에 만들어진 움직임이었다.

       

       ‘레키온보다도 독하게 연습을 했다는 거잖아.’

       

       도대체 저 정도로 노력을 쏟아부으려면 어떤 동기가 있어야….

       

       ‘잠깐만.’

       

       설마….

       

       데보라가 저렇게 뼈를 깎는 노력을 한 원동력이….

       

       ‘레키온…?’

       

       설마 레키온의 옆에 있기 위해서 검술을 수련한 건가?

       

       만약 진짜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미친 순애보가 있나.’

       

       데보라 이 사람, 낭만 보소…?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데보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 겸, 아르가 좋아하는 두근두근 사랑 이야기도 완성시켜 줄 겸, 이것저것 겸사겸사 하려고 했는데, 이젠 나도 순수하게 데보라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비아를 슬쩍 곁눈질로 보자, 마침 실비아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감복한 표정으로 데보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채채챙. 채앵—!

       

       대련은 예상보다 오래 진행되었다. 

       

       이젠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일까,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왜 구경하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 줄 알겠구만.’

       

       처음에야 기사들도 둘과의 대련에서 배울 점을 찾기 위해 우리처럼 의자에 앉아 뚫어져라 관찰을 했겠지.

       

       하지만 저들의 움직임을 보고 영감을 얻는 것도 초반 반짝이지,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오히려 한 갈래에서 뻗어 나올 수 있는 수많은 변칙과 육감적인 대처를 보고 혼란이 오기 시작할 거다.

       

       요컨대, 보고 깨달은 게 좀 있으면 그걸 체화할 때까지는 개인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

       

       게다가 애초에 정식 기사라고 하더라도 저 정도 수준의 움직임을 전부 알아보거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실비아 씨만이 흥미롭게 계속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고, 나는 이제 슬슬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었다. 

       

       ‘…언제 끝나려나. 아직 한참 몰입 중인 것 같은데.’

       

       아르도 처음엔 우와 하는 눈빛으로 보다가, 이제는 그냥 눈을 끔벅끔벅 하면서 안고 있는 내 팔에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삐유움.”

       

       그러다가 이젠 좀 지루한지 눈을 살포시 감으며 하품을 했다. 

       

       “……!”

       

       그리고 그때.

       

       아르의 삐유움 소리를 들은 듯, 일순 멈칫한 레키온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빈틈!”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데보라의 목검이 레키온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따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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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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