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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뭐, 방법이야 어떻든 다음날에 일어날 때는 내가 사라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멍하니 창밖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으려니, 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하늘이였다.

        

       “……알고 있었어?”

        

       “내가 너를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대체 어떻게?

        

       솔직히 감동할만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꿈속에서 사라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났더니 조금 무서웠다.

        

       ……에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라 이외의 다른 여자애들한테까지 인기 있을 리는 없다. 원래 나의 성격이나, 사라의 외모가 원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외모’에서 파생된 생각이기는 한가?

        

       그야 당연히, 사라는 여자였으니까.

        

       물론 원작에서는 여자 건 남자 건 아무렇지도 않게 사귀는 유하늘이였고, 예사라도 유하늘의 공략 루트에 당당하게 들어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하늘이는 누군가의 루트를 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뀌었기 때문이겠지.

        

       굳이 따지자면 ‘우정 루트’려나. 원작에서는 이런 루트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원작과는 다른 세계다. 내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큰 문제를 겪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 결말에 다다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를 끌어들인 건 나였으니, 제대로 된 결말을 만들어낼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

        

       바보.

        

       ……아니, 왜?

        

       *

        

       어제 사라와 나름대로 대화를 나눈 덕분인지, 양혜인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훨씬 부드러웠다.

        

       혹시, 평소에 짓고 있던 그 무표정은 긴장한 채 돌아다녀서 그랬을 뿐이었던 걸까.

        

       양혜인의 심리를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나로서는, 그냥 그러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이렇게 많이 챙겨주실 필요 없어요.”

        

       마치 명절에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에게 그렇게 하듯, 차 트렁크에 실을 물건을 창고에서 이것저것 꺼내는 할머니를 보고, 양혜인이 그렇게 말했다.

        

       “거기도 먹을 거 많아요.”

        

       ……그렇긴 했다.

        

       적어도 그렇게 큰 저택이 식량이 없어서 안 돌아가지는 않을 테니까. 양혜인이 일을 허투루 했을 리도 없고.

        

       “아냐, 어차피 나는 둬도 안 먹으니까, 가져가서 먹어. 다 맛있는 것들이야.”

        

       그 말도 맞는 말이기는 했다.

        

       할머니의 음식들은 전부 맛있었으니까. 특별한 기교 없이, 굳이 비싼 최고급 식자재를 쓰지 않아도 그 특유의 집밥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이쪽으로 오고 나서는 자주 먹지는 못했던 맛이었으니까.

        

       “…….”

        

       할머니와 양혜인은 서로 권유하고, 거절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더 편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핏줄은 못 속인다는 걸까.

        

       …….

        

       그 모습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나는 이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양혜인 옆으로 걸어가, 등을 툭툭 두드렸다.

        

       “……언니.”

        

       내 부름에, 양혜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언니, 라는 단어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하긴, 서로 당분간은 이렇게 부르자고 해놓고, 거의 안 쓰기는 했지.

        

       “으, 응.”

        

       양혜인은 양혜인답지 못하게, 그렇게 말을 더듬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확연하게 당황한 얼굴.

        

       미연시 속 메이드답게도, 원판이 워낙 미인이라 그런 표정조차도 예쁜 얼굴이긴 했다.

        

       ……메이드마저?

        

       ……메이드‘마저’라는 뜻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사라의 그 원인 모를 불만을 일단 뒤로 하고, 나는 양혜인에게 말했다.

        

       “우리, 그냥 받아요. 할머니께서 주고 싶다고 하시는 거니까.”

        

       “옳지, 사라가 말 잘했다.”

        

       내 말을, 할머니가 얼른 받았다.

        

       “그냥 받어~ 받아두면 다 쓸 일이 있으니까.”

        

       “……알았어요.”

        

       결국, 양혜인은 나의 말에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하긴, 반말을 쓰건, 존댓말을 쓰건, 양혜인은 사라의 메이드였으니까.

        

       본인이 그걸 원하니, 우리는 그저 들어줄 뿐이었다.

        

       *

        

       돌아가는 차 안.

        

       올 때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운전기사도 잘라버렸다. 당연히 우리가 타고 있는 자동차는 양혜인이 운전해야 한다. 이 중에서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 양혜인밖에 없으니까.

        

       아직 나이도 안 되지 않았던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내가 운전면허를 땄던 나이는 대놓고 성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던 나이였던지라 잘 모르겠다.

        

       뭐, 운전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 장롱면허라서 사고를 면치 못하겠지만.

        

       “사용인을 더 뽑을까요?”

        

       아무래도 이사를 하면 결국 따라올 사람들일 것 같아서, 일단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닙니다.”

        

       양혜인은 곧바로 그렇게 대답했다. 너무 칼 같아서 아마 근처에 무라도 있었다간 그대로 반토막이 났을 정도로.

        

       “저택에서의 일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문제는 말은 칼같이 했으면서도, 룸미러에 비친 양혜인의 표정은 엄청나게 편안한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어째 그래서 조금 더 무서웠다. 뭐랄까, 나와 관련된 일은 전부 자기가 해야 한다, 혹은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기운이 너무 잘 느껴져서.

        

       어제 사라가 했던 말의 효과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

        

       뒷자리에 앉은 나 하늘이, 수아도, 조수석에 앉은 소희도, 모두 말을 잊었을 정도로.

        

       물론, 나와 저 아이들이 말을 잊은 이유는 다르다. 나는 양혜인의 그 표정에서 뭔가 무서운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고,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는 양혜인의 그런 표정이 그만큼 보기 어렵기 때문이겠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결국 메이드는 메이드다.

        

       메이드가 할 일은 정해져 있는 거니까, 응.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보다 더 할리가 있겠어.

        

       메이드는 메이드니까.

        

       아, 긴장해서 같은 표현을 두 번 써 버렸다.

        

       *

        

       그리고,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이,

        

       나의 예상은 그대로 빗겨나갔다.

        

       한참을 달리다가, 잠깐 휴게소에 멈춰 바람을 쐬고 있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내 입 앞에 추로스를 가져다 대길래 나도 모르게 한입 물었는데, 시선을 올려보니 양혜인이었다.

        

       “…….”

        

       그 문 추로스를 차마 끊어가지도 못한 채로, 나는 그대로 눈을 치켜뜬 채 양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래.

        

       물론 양혜인이 내 입에 뭔가 먹여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아직 내 정신과 몸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양혜인이 내 입에 죽을 떠먹여 준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는 날 도와줄 사람이 양혜인 정도밖에 없기도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로 아팠으니까…… 무엇보다 양혜인은 그때 자신이 해고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으니, 내가 혹시라도 죽 같은 것을 먹다가 엎어서 추가로 다치는 걸 경계해서 그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냥 휴게소 의자에 앉아있던 내 입에 먹을 것을 들이댄 것은……

        

       음.

        

       일단은 입에 물고 있던 추로스를 이로 끊었다.

        

       굳이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짐작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어쩔 거야?

        

       뭐가?

        

       내 질문에, 사라가 답한다.

        

       아니, 너가 저렇게 만들었잖아. 어떻게 좀 해보면 안 될까?

        

       ……싫어.

        

       얘도 지금 무서운가보구만.

        

       “마, 맛있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양혜인은 싱긋 웃어 보였다.

        

       아니, 왜 웃는 얼굴인데 이렇게 무서워 보이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얼른 시선을 돌려보니, 하늘이, 소희, 수아도 양혜인에게서 발산되는 조금 이상한 기운을 눈치챈 것 같았다.

        

       “…….”

        

       다만, 당장 우리 사이에 끼어들 사람도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양혜인이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행입니다.”

        

       양혜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비어있는 내 입 앞에 다시 추로스를 가져다 대었다.

        

       뭐지.

        

       뭔가 먹이 받아먹는 아기 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아니, 그보다는…….

        

       뭔가가, 뭔가 해서, 뭔가다.

        

       나도 이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그랬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당혹감.

        

       ……아.

        

       ……아!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 당혹감의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 이제 와서 이걸 봤는지 나도 모르겠을 정도다.

        

       내 인생을, 나아가서 사라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의 얼굴에선 빛이 난다.

        

       그리고 그 빛은 사라질 수도, 생겨날 수도 있다.

        

       너무 환하면 눈이 부시긴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인 빛은 아니었다. 그림자를 드리우지도 않고, 어두운 공간을 밝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빛은 내가 그 사람의 얼굴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해야만 보인다.

        

       그러니, 룸미러로 본 양혜인의 얼굴에서 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아니, 차를 타기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니, 어쩌면 지금 이 행동이 결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쪽으로 와서 제일 오랫동안 얼굴을 본 사람인데도, 이제야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게 되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또 그러려니 하게 되기도 한다.

        

       동시에, 조금 무섭기도 했고.

        

       뭐랄까, 저 눈은……

        

       지금까지 거의 웃지 않던 양혜인의 함박웃음은, 여러 가지 의미로 조금 위험해 보였다. 그 의미가 뭔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는 없었지만.

        

       “하, 하하하…….”

        

       결국 뭐라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그저 그렇게 어색하게 웃는 것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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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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