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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뭐?”

       

       백화령의 목소리를 들은 흑운파의 어쩌구가 한 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자신이 들을 말이 사실이란 걸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자가 있단 게 신기하다는 것처럼.

       

       “지금 나한테 한 말이냐?”

       “너에게만 한 말은 아니지만 견공의 자제들 중에 네가 제일 커보이긴 하는구나.”

       “니 년!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럼 너는 본좌가 누구인지를 아느냐?”

       

       백화령의 감정에 동조하듯 흘러나온 내기가 무기를 뽑아 든 무인들을 짓누른다.

       

       거기에는 선과 악의 구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뿐이니 백화령의 내기에 짓눌린 이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는다.

       

       “어찌하여 대답하지 않는가. 본좌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지 않았는가.”

       

       무인들에게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경우엔 돌아올 수 없단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다는 듯 얼굴을 창백히 물들인 저들이 어찌 입술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건방진 놈들이구나.”

       

       어느새 고요로 물든 가게의 안에 백화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해야.”

       

       마무리를 위해 몸을 일으키는 백화령을 불렀더니 그녀가 고갤 갸웃거렸다.

       

       “설마 말리려는 것이냐?”

       “그래.”

       

       지금 네가 무얼 하려는 지 안다.

       

       눈앞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니 치워버리려는 것 아더냐.

       

       그것도 신교의 방식으로.

       

       그대의 눈에 살심이 새겨진 것을 보았으니 부정하려 하지 말거라.

       

       “허어. 설마 그대가 나를 말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 느슨해진 것이냐?”

       “멍청한 것. 하나를 보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구나. 주변을 봐라.”

       

       백화령에게 짓눌린 것은 저 멍청한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젓가락을 움직이던 이들의 손이 멈춰있다.

       

       같은 식탁에 앉은 이들을 바라보던 눈이 우리 쪽에 쏠려 있다.

       

       식당을 오고가며 음식을 나르던 종업원의 발이 굳어 있다.

       

       본래라면 식당 안에서 조리를 해야 할 주방장이 주방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여기서 네가 평소 하듯 일을 마무리하면 어찌 될 것 같으냐.”

       

       신교의 방식대로 저 놈들의 목숨을 앗아가 봐라.

       

       이 안의 분위기가 어찌 될지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난 시체를 옆에 두고서 식사를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한 말을 이해한 것일까 백화령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적당히 처리하도록 하마.”

       

       백화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자 내기에 짓눌려 있던 이중 맨 앞에 선 남자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변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보다 백화령이 손이 움직이는 게 빨랐기에.

       

       백화령이 손을 움직여 맨 앞에 서 있던 녀석의 턱을 툭하고 건드리자 그 놈의 몸이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랐던 탓일까.

       

       소란을 일으키던 무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도 짐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꺼져라. 이 놈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옙!”

       

       도망을 치는 데에는 적도 아군도 없었다.

       

       소란을 일으키던 무리는 방금 전의 갈등 따윈 잊어버린 듯 한 몸이 되어서 가게를 떠나가 버렸다.

       

       기절해버린 무인 하나만을 남겨둔 채로.

       

       그렇게 고요로 물들어버린 가게의 안에서 백화령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다시 자리에 돌아오더니 씨익 웃어보였다.

       

       “이 정도면 되느냐?”

       “그래. 잘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온건한 처사지.

       

       – 정색하니까 최종보스 느낌 난다.

       – 내가 상상하던 천마가 있긴 하네.

       – 표정 순식간에 바뀌는 거 무섭지 않냐?

       – 거의 가면 쓴 것처럼 바뀌던데.

       

       진짜로 열이 받아서 정색한 것도 아니거늘 이런 반응이라니.

       

       이들은 백화령을 천마가 아닌 푼수로 보고 있었던 것 아닌가?

       

       당당히 유부를 내밀었다가 거절당하고서 우울해 한다거나.

       

       도시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린다거나.

       

       제대로 된 유부를 처음 먹어보곤 석상 마냥 굳어버린다거나 하긴 했다만.

       

       …음.

       

       여태 보여주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여길 만도 하긴 하구나.

       

       묘하게 납득이 되어서 시청자들에게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을 멈추고 다시 유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텅 비어버린 접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

       

       뭐지?

       

       소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접시 위에 음식이 가득 했거늘 이게 무슨 일인가.

       

       당혹감에 고개를 들어보니 다람쥐마냥 볼에 음식을 밀어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 바루와 백화령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나와 눈을 마주하자마자 잘못을 깨달은 강아지마냥 시선을 피했다.

       

       – ㅋㅋㅋㅋㅋ

       – 아니 둘 다 뭐해.

       – 방금 전에 카리스마 개쩔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거야.

       

       나는 잠시 굳어 있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얼 하는 짓이더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무슨 며칠 동안 굶주리다가 음식을 마주하게 된 빈민도 아니고 이러는 게 말이나 되느냐.

       

       네 놈들 둘 다 어디 가벼운 직위에 있는 사람이더냐?

       

       하나는 산 하나를 수호하는 신령이라는 직위를 지니고 있고,

       

       다른 하나는 신교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이거늘.

       

       자신이 지닌 직위와 위엄은 어디에나 팔아먹고 다섯 살짜리 아이도 하지 않을 짓을 하고 있는 것이야.

       

       내가 곰방대를 꺼내어서 입에 물었더니 먼저 음식을 삼킨 백화령이 변명을 하듯 소리쳤다.

       

       “들어보아라. 내가 진상을 부리던 것들을 처리하고 올 적에는 이미 이 여우가 대부분을 처리한 후였다! 그래서 내 다급히 내가 먹을 것을 챙겼을 뿐이다!”

       “그게 그대가 익힌 예절을 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느냐?”

       “그래! 이런 음식을 앞에 뒀는데 그깟 예절이 무슨 문제인가!”

       

       백화령이 하는 말이 너무도 당당해서 되물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 현대의 음식을 모르던 그대에게 천지가 개벽할 만한 것이 다가온 셈이니 그럴 수도 있지.

       

       본인도 무림에 살다가 현대로 돌아와 치킨을 먹었을 적에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백화령을 추궁하는 걸 멈추고 바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루가 얼굴을 붉혔다.

       

       얼마나 당황을 한 것인지 평소에 감추어 두던 여우의 귀마저 머리 위에 튀어나와 있었다.

       

       “대체 왜 그런 것이냐.”

       

       지금 표정을 보아하니 스스로도 잘못을 했음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만.

       

       입을 우물거리다가 음식을 삼킨 바루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것이.”

       “흠?”

       “처음에는 다 먹을 생각은 아니었고 심심한 입이나 달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젓가락으로 하나 둘 입 안에 넣다보니 감질나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식욕 앞에 굴복해 버리고 말았단 소리더냐?”

       

       그리 물었더니 바루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바루야. 신령이란 놈이 그래도 되는 것이야?”

       “…”

       

       바루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침묵을 지켰다. 조금 더 따지고 들면 그녀의 얼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녀를 추궁하길 멈췄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맛있는 음식 앞에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음식은 좀 더 시키면 그만이지 않나.

       

       내가 손을 들자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종업원이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잔뜩 경직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기분을 거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생각하는 게 훤히 보였다.

       

       저렇게까지 긴장을 하지 않아도 이 가게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만.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곳에 어찌 손을 대겠는가.

       

       재차 주문을 끝마칠 즈음에 바깥에서 하나의 무리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무리의 맨 앞에 방금 전 도망쳤던 흑 어쩌구의 머저리가 끼어 있는 것을 보면 무얼하러 온 것인지는 뻔했다.

       

       백화령도 저들의 기척을 느낀 듯 문 바깥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민가야. 어쨌든 가게 안에서만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더냐?”

       “그렇지.”

       “다녀오마.”

       “나도 같이 가마. 음식이 나오기 전에 처리하고 돌아오자꾸나.”

       

       괜시리 시간을 끌게 되면 유부에 미쳐버린 여우 귀신이 또 다시 접시를 비워버릴 것 같으니.

       

       바루에게 자리를 지켜 달라 한 후에 가게 바깥으로 나오니 저 멀리서 걸어오는 무인들의 무리가 보였다.

       

       – 쟤네 복수하러 온 거야?

       – 도망치기랑 자살하기 중에서 자살하기를 선택하다니.

       – 흑운파는 오늘도 멸망이다.

       

       “참 많이도 끌고 왔구나.”

       “그러게나 말이다.”

       “화경에 도달한 이조차도 없으면서 무슨 자신감인 걸까?”

       “부처의 손 위에 있는 자들은 그 위가 자신의 세상인 줄 아니까.”

       

       *

       

       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흑운파의 수장 정형은 허수아비마냥 툭 건드릴 때마다 바닥에 널부러지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고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이 아니다.

       

       어느 파벌에 들어가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이들이다.

       

       이 항주의 시장에서 흑운파가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여기에 소속된 이들의 수준이 높아서이지 않던가.

       

       그런 무인들이 가뭄 속에 말라비틀어진 꽃마냥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상대에게 손조차 대지 못한 채.

       

       무공이라 할 수도 없는 별 볼일 없는 공격에.

       

       툭하고.

       

       정형은 자신의 수하를 쓰러트리는 이들의 수준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화경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자부하는 그이지만 저 두 사람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떠올릴 수 있었던 단어는 영웅담에 환장하는 어린 아이가 떠올릴 만한 것과 똑같았다.

       

       강하다. 너무도 강하다.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저잣거리에 떠돌아 다니는 신화에 주인공이 실존한다면 저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형님! 정형님께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주제를 모르는 저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십시오!”

       

       부하 중 하나가 그런 말을 지껄이자 다른 부하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맞습니다! 정형님!”

       “정형님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정형님의 흑운일절을 보여주십시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내가 저런 괴물들을 어떻게 상대하라고!

       

       백번 천번 만번을 대결해도 상처를 입히지 못할 악마들을 어떻게 이기란 거야!

       

       정형은 도망을 치고 싶다 생각을 했다.

       

       그래. 부하들을 미끼 삼아서 달아나자.

       

       저 놈들이 쓸려 나가는 동안 필사적으로 도망치면 돼.

       

       그럼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도주는 허락되지 못했다.

       

       하늘이 그의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해보거라.”

       “…예?”

       “그 흑운일절이니 뭐니 하는 것을 해보란 소리다.”

       

       절벽 위의 꽃처럼 가녀린 여성은 그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만한 어투로 정형에게 공격을 종용했다.

       

       하늘의 아래에서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은 정형은 굳은 얼굴로 침을 삼키더니 주먹을 쥐었다.

       

       주먹을 쥐지 않으면 목이 날아갈 것 같았기에.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해보자.

       

       어차피 이 년도 사람이지 않나.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면 분명 틈이 생길 거야.

       

       정형이 내기를 운용한다.

       

       하늘을 가리는 흐린 구름을 꿰뚫겠다는 일념을 담은 권이 눈 앞의 여성을 향해 쏘아진다.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까.

       

       정형은 자신이 그 어떤 때보다 훌륭한 일권을 선보였다고 확신했다.

       

       허나 그의 앞에 도사린 구름은 그가 뚫기에는 너무도 높고 두터웠으니.

       

       너무도 가볍게 그의 주먹을 붙잡은 여인은 고갤 갸웃거리곤 다시 그의 주먹을 놓아주었다.

       

       “나는 절기를 보이라 했을 터인데?”

       

       …하. 방금 그건 절기도 아니라 그거야?

       

       자신이 평생을 담아 연마한 무공이 부정당한 순간 정형은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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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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