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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흐음…….”

         

         한 손은 허리춤에.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는 턱을 어루만지며 주변 풍경을 살핀다.

         여기서 ‘살핀다’라는 건, 단순히 구경하는 게 아니라 면밀히 관찰한다는 거다. 허투루 해서는 안 될 작업이라는 뜻이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역시 큼직한 가구나 다양한 종류의 생활 가전(Home appliance; 일상에서 쓰는 전기 기기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나 비접촉 인식 스캐닝 등 기술 발전을 잔뜩 체감할 수 있는 기능에 비해 디자인 같은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너무 기발한 변화는 없어서 항상 안심된다.

         

         …아니지, 오히려 싼 물건들은 기능에만 치중하느라 하나같이 손잡이랑 버튼 달린 상자처럼 생겨 먹어서 곤란한 경우도 있었는데.

         

         다행히 여기는 대체적으로 가격대가 억 소리 나는 주거지라 그런지 뭐가 냉장고고, 어느 게 식기 세척기고, 어떤 녀석이 펄스형 제전기(Ionizer; 이오나이저, 이온화 장치)인지를 알 수 있어서 별문제가 안됐….

         

         ……? 그래서 저런 게 왜 집안에 덩그러니 실존하나요.

         선풍기가 산소 분자를 갈아버린다는 유사 과학의 저주에서 벗어난 시대가 아니었나? 이게 그 고학력자도 살다 보면 속아넘어가는 그런 류의 문제인가?

         

         – 피부에 얕게 삽입된 반응성이 강한 임플란트의 경우, 정전기로 인해 발생한 오작동이 중추 신경계에서 억제하기 전에 일어나는 현상이 있어서 그걸 억제하고자 사용하는 설비로 판단됩니다. 이 집의 주인은 아무래도 그런 자잘한 이슈에 민감했던 모양이군요. –

         

         “……아하!”

         

         시청자(Observer)의 시각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제로가 재빨리 부연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임플란트를 덕지덕지 바르시는 분들은 실생활에 그런 불편함도 있으셨군요…… 이 기만자 녀석들!

         

         하여간 이 집도 ‘생필품’으로 분류될만한 큼직한 기기들에 트집잡을 하자는 딱히 없었다.

         생활감은 약간씩 느껴져도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었을뿐더러, 일종의 옵션처럼 제공되는 곁다리 상품에 쪼잔하게 굴 악의 또한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나… 한 번 결정하고 난 뒤에 바꿀 수 없는 요건들에 대해서는, 양보할 생각 따위는 전무했다. 특히나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세밀한 디테일들이라면 더더욱!

         

         “…….”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현재 내 보폭과 바닥의 턱을 비교한다.

         

         미묘하게 높은 문지방? 내부 전선이나 센서가 잔뜩 들어있어서 위치를 개선하기도 애매한 이 녀석은, 방심해서는 안 될 인간의 숙적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엔 최대한 열심히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는다는 문화를 따랐지만 내가 집주인이 된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튀어나온 문지방만큼 발가락을 암살하기 좋은 무기는 흔치 않기에.

         그리고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세심함이 부족하다면 다른 곳은 또 얼마나 대충 설계되어 있을지 뻔한 노릇이라…!

         

         ………뭐, 농담이다. 내가 그런 블랙 컨슈머일 리가 없지 않나? 문턱을 걸고 넘어진 건 반쯤 핑계에 가까웠고 마침 내게 딱 알맞게 준비된 집이 있기가 힘들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내부 평수가 기대했던 바에 못 미친다는 점, 같은 건물 위층에 아마도 유명 수배자인 폭탄마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미래 지식이 있는 점.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데이터 셀 단위로 분해해서 바라보고 있는 내 눈에, 실내를 그대로 정밀 주사(Detailed Scanning)해서 업로드해야 하는 증강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새것처럼 보이게 조작을 가한 흔적이 보인다는 게 미심쩍게 작용해서 도저히 구매 의사가 안 생겼다.

         

         이걸 짧고 강하고 굵게, 그러면서도 성가시지 않게 표현해서 거부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음… 흠…… 그러니까….

         

         “……패스?”

         

         “아이고오…! 손님 아가씨,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셔서 자꾸 반려하시는지를 알려주셔야 저도 더 좋은 물건을 보여드릴 수 있는데….”

         

         거절의 말 한마디에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영상의 화질이 낮아지듯, 야구장 패널이 돌아가듯 순서대로. 또 어찌 보면 이미 붕괴하기 시작한 댐이나 모래성처럼 난잡하게 두서없이.

         

         태양빛이 닿는 해수면처럼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가상 세계의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리처드 씨의 절규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는 걸 깨닫고는 벌써 몇 번이나 써먹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었다.

         

         “그 뭐냐…. 입지 조건이 약간 마음에 안 들어서.”

         

         “끄아아아악—!! 또 그거입니까!?”

         

         우리가 뭘 하고 있었냐 묻는다면 아직 이사를 한 건 아니니 집들이는 아니고, 사이버 집 구경… 정도?

         

         굳이 헤드 기어를 벗지 않더라도 의자에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지만 나도 좋아서 이런 식으로 ‘사이버 괴롭히기’를 시전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

         

         이게 참 서로가 서로에게 답답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피곤하게 애매한 사기 매물을 볼 때마다 지적질을 하기도 어렵지.

         그렇다고 또 ‘이런 눈속임은 짜증나지만 판매자 과실인지라… 사과드리겠습니다~’ 같은 대답을 들으면, 괜히 그를 쫀 것처럼 들리는 건 물론이요 돌려줄 말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내가 그런 걸 판별한 능력이나 현시점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가졌다는 걸 이 돈냄새에 민감한 아재에게 내보이기가 싫었다. 귀찮았다!

         

         군자는 은인자중隱忍自重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런 중개소에서 내보여도 괜찮은 건 예산총액 하나밖에… 아니, 신분까지는 어쩔 수 없어도! 헤프게 다른 개인 정보를 줄줄 흘릴 필요는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오늘부터는 무서운 음모라던가… 파벌 싸움이라던가… 어두운 이면 정치에 관련되지 않도록 착실(?)하게 살아갑니다! …아, 그렇지만 용병 지명 의뢰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좋습니다……!! 이렇게 취향이 확고하신 분이라면. 애매한 7, 8억대의 가성비 매물을 계속 보여드려서 시간 낭비를 하느니, 차라리 화끈하게 12억 예산 마지노선에 근접한 비장의 물건들부터 소개해드리는 게 낫겠군요.”

         

         “……아저씨, 여태 그런 게 남아있었어?”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의 홀애비 냄새가 풍길 법한 집구석까지 대강 스무 곳은 둘러본 것 같은데… 설마 악성 매물이라도 먼저 찔러본 건 아니리라는 마음으로.

         

         뇌파 접속을 끊고 눈가를 가리고 있던 접속 장치를 위로 올리자 주섬주섬, 행어에 벗어 놨던 코트를 챙기는 리처드를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

         

         그는 내가 지금 충직한 케어봇을 시켜 자신을 거꾸로 잡고 탈탈 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지, 태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유일한 손님을 설득했다.

         

         “아, 일어나시지요! 지금 향하는 곳은 보안 상의 문제로 실내 데이터가 제공되지 않는 장소인지라, 직접 방문해서 두 눈으로 보시는 게 더 빠릅니다.”

         

         “그으으…래요…?”

         

         …그것 참 기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리가 따로 없네요.

         비장의 물건이고 나발이고, 지금 가려는 곳이 모 메가코프 본사 근처면 난 그냥 다른 중개소로 갈 테니까 알아서 하십쇼.

         

         

         

         

         “제가 유난 떨 당사자는 아니지만… 엔지니어 플라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객님! 그것도 일반 방 두 개를 합친 더블룸이 빈 건 정말 오랜만이니, 엄청난 행운이신 겁니다?”

         

         이중, 삼중으로 신원 조회 경계선이 쳐진 출입구를 통과해.

         만면의 미소로 방문객을 맞이해주는 로비 담당자를 지나쳐.

         중개업자 자격으로 발급받은 방문증을 인식시키는 걸로, 딱 로비 플로어와 찾아온 공실이 위치한 36층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문을 열기까지.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리처드 씨가 내뱉은 첫 문장이 저거였다. 약간의 웃음기와 소감을 들어보고자 하는 태도가 담긴 소개문.

         

         하지만… 드러난 안쪽 경치는 과연 납득할 만한 감상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방문자를 환영해왔다. 덧붙여서 시큰둥했던 마음도 약간은 흥미가 동할 정도로 취향에 맞았고.

         

         “…그렇네.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 방문을 환영합니다 고객님! 오늘도 네오 헤이븐에서 멋진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

         

         얼마 전에도 본 기억이 있는 스마트 홈 시스템이 우리를 맞이해줬지만 그렇다고 부티가 흐르거나 특별히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졸부의 미학과 현실주의자의 간결함. 그 중간을 지향하는 정갈한 가구들, 수도세를 어떤 식으로 납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완비된 주방 수도 시설-저런 상태라면 욕실도 아마 당연히…!-, 전 주인이 퇴거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깔끔한 관리 상태.

         

         무엇보다도 창가에 배치되어 있는 대형 목제 침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본의 아니게 여러 기업 인사들의 개인실도 구경해보고.

         그 이상으로 각종 숙박업소를 리뷰라도 하듯이 전전한 내가 보증하는 거니, 주인의 취미에 따라 자유롭게 꾸밀 수 있는 여유로운 생활 공간이 충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엔지니어 플라자라….

         매입이 가능한 부동산이면서도, 소정의 관리비만 성실하게 납부한다면 고급 숙박업소와 비슷한 수준의 각종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걸 레지던스 호텔(Residence Hotel)이라 한다는 걸 방금 막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야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그저 네오 헤이븐에선 유저가 얻기는커녕, 인근 섹터에 자리를 잡는 것만으로도 여러 기업 인증 퀘스트의 해결이나 실적이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더 비싼 곳으로 단번에 넘어가곤 했는데….

         

         내가 뭐 이 동네에서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것도 아니니, 온갖 귀찮은 세금 납부라는 과업과 유지 보수에 대한 걱정까지 덜어주는 객실 구입이라는 선택은 깨닫고 나자 상상이상으로 이점이 많아 보였다.

         

         “근데… 여기는 진짜 현직 엔지니어만 입주할 수 있는 곳 아니야?”

         

         “무슨 당연한 말씀을. 에나마에서는 전문직 기술자에게만 블루 이상 시민증을 발행하지 않습니까? 어떤 형태의 엔지니어시던 이런 곳에서 사는 걸 다들 꿈꾸고 계시다는 것 정도야 압니다!”

         

         – 분석 중…… 거짓 증언의 징후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 감정에 대한 제 분석 잣대는 아직 조율 중이므로 낮은 신뢰도에 부디 주의를. –

         

         슬쩍 침대 매트리스를 꾹꾹 눌러보며 건넨 유도 질문, 어떻게 알고 단번에 여기로 데려왔냐는 물음에 태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판정에 한 손을 보탠 제로도 가혹하게 추궁할 건수는 아니라고 여겼는지 기초적인 조언만 건네 왔고.

         

         말마따나 딱히… 의심할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로봇을 데리고 다니는 수상하게 돈 많은 여자애라는 사실만으로도 넘겨짚을 여지도 어느정도 있었으니까 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나저나 여러모로 마음에 쏙 들기는 하다만.

         

         아나스타샤 마카로비치의 명의로 이런 초초초 기업 공인 거주지에서 살아도 괜찮으려나…? 사실, 발렌타인 쪽 명의라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기는 한데 마카로비치 쪽이 훨씬 위험하게 얼굴이랑 같이 팔린 게 많아서… 으….

         

         거 혹시 차명 계약은 지원 안 되나? 가령 틴캔 발렌타인 더 제로! 같은 허무맹랑한 느낌으로다가.

         

         “으음….”

         

         괜스레 트집잡을 하자라도 없나 구석진 위치의 쿠션도 들춰보고, 냉장실 온도나 개수대의 수압도 체크해봤다.

         

         가상 방문한 매물들은 마구 깎아내렸으면서 직접 움직이자마자 쉽게 마음이 넘어간 건 절대 아닌데!

         

         진짜 새집에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기에, 옛날 자취방에 있던 거랑 닮은 침대-그야 비교가 안 되게 이쪽이 서너 배는 더 크긴 해도-가 곁들여지니까… 뭔가, 뭔가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공간처럼 느껴져서 일단 다른 곳도 좀 둘러보겠다는 말이 선뜻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여기라고 범죄자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엔지니어 플라자라면 기본적인 보안 시스템도 존재하니까 나나 제로의 부담도 덜어지고~

         그런 취향도 없던 주제에 벽면에 걸린 그림도 고평가해주고 싶고~ 아, 저기 있는 둥근 형태의 아날로그 벽시계는 진짜 좋았다. 한국 가정집 분위기가 풀풀 풍겨서.

         

         하여간 가산점을 줄 항목만 자꾸 눈에 띄어서 곤란했다.

         부대 시설, 입지, 야경, 서비스, 가구 좋고. 거기에 평수 좀 넓다고 사람을 이리 홀리다니…! 내 통장을 그렇게 쉽게 털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지 마라!

         

         – …그건 너무한 고집이 아닐런지요. –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이 집이 건방지게 자존심 싸움을 걸어왔다니까!? 내 이성을 막 쉽게 함락시키려고 하잖아!

         

         기어이 ‘이렇게 된 이상 마음에 드는 만큼, 억지로 미워할 구석을 찾아보겠다.’는 해괴한 마인드마저 장착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살짝 열려 있던 다른 방들과는 달리 굳게 닫힌 문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뭘까, 샤워 부스에 욕조까지 따로 있던 끝내주는 화장실은 이미 찾았는데.

         

         단순한 창고? 다용도실? 그것도 아니면… 손님방이라도 따로 있나?

         

         “아, 거기는 좀 지저분할 겁니다. 잡동사니가 좀 쏟아질 수도 있으니 제가 대신 열어드리지요.”

         

         “네? 네, 그러세요.”

         

         여태까지는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 물러나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구경하기를 기다리던 리처드 씨가 내 머뭇거림을 간파하고는 먼저 움직이셨고.

         

         역시 그냥 창고였나… 하는 평이한 실망감은 전혀 다른 극적인 감정으로 뒤바뀌었다.

         

         

         

         

         

         사람이 입실한 걸 감지한 센서가, 빛도 소리도 없이 잠들어 있던 철의 무덤에 전류라는 이름의 혈액을 공급하자 어두컴컴한 내부에 빛무리가 파도를 쳤다.

         

         일면을 가득 메운 모니터와 굴곡진 초박형 인터페이스들이 동시에 켜지면서 입실한 사람을 반겨주는 모습은 가히 장관. 예전에 경찰 상황실에 설치되어 있던 마스터 터미널보다도 그 규모가 컸다.

         

         마치 전자 세계로 가기 위해 건설된 관문, 숙련된 사용자를 위한 요람 같다고 할까?

         

         신상 신발이나 옷가지가 나왔다는 소식에는 시큰둥해도 새로운 그래픽카드나 컴퓨터 주변기기가 출시되었다는 뉴스에는 귀신같이 반응하던.

         다만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는 않아도 현실적으로 구매하긴 어려워서 손가락만 빨던 내 근질근질한 추억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감각에 등골이 쭈뼛 서고 입가가 비틀렸다.

         

         이걸 지저분하다고 표현하다니? 정말 집돌이 감수성이 부족하시구만.

         

         컴퓨터 전용실이라고, 전용실! 미쳤어!? 감히 방구석 게이머의 영혼을 자극하는 전경을 마지막까지 꽁꽁 숨겨 놔??

         이게 무슨 장난감 보따리래, 혹시 철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어?

         

         “자세한 내용은 저에게도 비공개였지만… 원주인이 어느 메가코프에 소속된 사이버 엔지니어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집 대출금과 관리비를 횡령으로 메꾸다가 얼마 전 본사 임원에게 잡혀갔다나… 결국 이 요란한 단말기들은 중고품으로 분류돼서 가치 책정도 힘드니까, 옵션 아닌 옵션처럼 그대로 실거주자에게 떠넘기겠다 하더군요.”

         

         실질적인 가치가 얼마 안 되나? 그건 나한테는 별 상관이 없었다.

         보기에도 멋지고, 바라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지어 조상님이 대신해주지도 않는다는 선 정리까지 다 되어있는데 사람이 뭘 더 바라리요.

         

         나중에 빈 공간에다 추가 메모리나 파워 정도만 쭉쭉 이어 붙이면 내 전용 작업실이나 공방의 역할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되리라.

         

         게다가 시발, 집 자체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지트를 사면 전용 PC방이 딸려온다고…! 이걸 누가 참아.

         

         “어떻게, 아무래도 처치가 곤란하시다면 제가 적당히 플리 마켓(Flea Market; 중고 시장)에라도 연락해서 폐기 처분을….”

         

         “……지금 당장, 계약하죠.”

         

         이미 고객이 마음속으로는 대리인 자격 위임을 마친 줄도 모르고 쓸데없는 말을 이어가려는 리처드 중개사의 말을 끊어버렸다.

         

         내 통장을 가져가라 이 악마야.

         

         “오늘 내로. 건물주라 해야 하나…? 아무튼 이 객실의 실소유주랑 잘 좀 담판 지어서 바로 입주하게 해주시면 업계 최고 수수료를 맞춰드리죠. ……덤으로 ‘다른 이름으로’ 구매가 가능하다면 거기서 또 따로 천만 크레딧 정도 수고비로 넣어드리고요.”

         

         차마 차명 거래 좀 되게 해줄 수 있나요? 같은 말을 크게 물어보기는 뭐해서, 은근슬쩍 뇌물부터 제안하고 봤는데 이게 웬 걸.

         

         거절하더라도 적어도 양지에서 당당히 일하는 프로답게 웃는 얼굴을 유지해줄 줄 알았던 그는 세상 심각하고 경직된 표정으로 내게 호통을 쳤다.

         

         “……우리 호쾌하시고, 익명을 희망하시는 아가씨 고객님? 하루가 아니라 지금부터 딱 10분만 기다려 주신다면! 제가 관리인의 고막을 손수 터트려서라도 상대방을 계약 테이블에 앉혀 놓겠습니다…!!”

         

         “……아, 예.”

         

         능력을 얕잡게 본 것에 대해 화를 낸 것도 호통이라면 호통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암.

         

         어쨌거나 과거에 매매되었던 이 객실, 엔지니어 플라자 36층 더블룸의 시장가는 약 12억 2천만.

         그걸 반드시 12억 밑으로 깎아 보이는 쾌거를 달성하겠다며 호기롭게. 전화 통화를 갈기면서 방을 뛰쳐나가는 리처드 중개사를 나는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을 만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전문가가 의욕이 넘친다면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겠냐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아마 10분 뒤의 내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런 큰 거래에서는 아무리 돈이 충분하더라도 그 물건을 ‘파는 사람’이 누군지를 조사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성실하게 충고했을 것이다.

         

         설령 그게 음습하게 이루어지는 지하 경매 같은 게 아니라 떳떳하고 공정한 교환이어서 거리낄 게 없을 지라도 말이다.

         

         ………존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협상 테이블에 아는 얼굴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은인자중 : 마음속에 감추어 참고 견디면서 몸가짐을 신중하게 행동함.
    ??? : 나는 오늘부로 더는 이상한 사람 꼬드기기를 포기하겠다…! (실패)

    다소 문장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쓰려다보니 또 늘어지려는 것 같아서 합쳐왔습니다.
    어제 정시 연재를 기다리다가 ‘아, 이 사람 또 어디갔어!!’ 를 외치신 독자 분이 계시다면 제 머리를 때리셔도 괜찮스ㅂ,ㅂㄴ악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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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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