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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라고 할 때, 아무래도 가족이라고 하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다.

     누아르가 그렇다.

     다른 귀족 가문에서 회귀 전의 행동을 하고 다녔다면, 당장이라도 사형대에 올려 총살하든 단두대로 목을 치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새…녀석은 내 동생이었다.

     좋든 싫든 같은 배에서 태어난 피를 나눈 동생이었고, 내가 녀석을 교정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누아르가 7살일 때부터 사람을 붙여 행동을 교정했고, 내가 매국노 포지션을 잡았을 때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는 노스트럼의 수호자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고, 그 덕분에 나는 여러모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누아르가 세상 뒤집힐 사고는 치지 않고 다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누아르가 가진 이미지는 우리 지브롤터 가문 전체가 빚어놓은 우량 매물이다.

     아버지가 몸과 검술을 갈고 닦았다고 한다면, 나는 누아르의 속에 있는 악한 부분을 깎아내고 닦아내고 지워내고 가렸다.

     

     그리고 그 결과.

     “누아르 지브롤터?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소년이지.”

     “…어느 정도로 그렇습니까? 그 옷, 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빌려주기에 아깝지 않게 자랐지. 음.”

     객관적인 의견을 묻기 위해 나만큼, 나보다도 더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있는 헥스 로마나 자작을 만나 물었다.

     “20살이 되기까지 5년 남았다. 음. 5년 뒤에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건 느리지. 지금부터 사귀어 놓아야 5년 뒤에 바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래야지.”

     “누아르가 그 정도입니까?”

     “너는 동생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뭘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헥스 자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의 앞에 한가득 쌓인 신입생 명단을 손으로 두드렸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영웅의 후손들이 많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중에 누아르 지브롤터만큼 빼어난 사람은 찾아볼 수 없거든?”

     “…….”

     “아니면 누아르가 인기가 많은 걸 질투하는 거냐?”

     “그럴-”

     “리가 없지. 네가 질투할만한 남자는 아스타시아가 조금이라도 호감을 표시한 이성일 테니까.”

     헥스 자작은 손을 휘휘 저으며 내 앞에 신입생 명단을 내밀었다.

     “됐고, 온 김에 이것들이나 분류 좀 해다오. 세인트 쪽은 검은색. 나리아 쪽은 금색. 제국 쪽은 흰색.”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누아르 지브롤터에 대해서 더 듣고 싶다며? 그냥 들으면 안 되지. 일하면서 듣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하잖아?”

     헥스 자작이 거래를 요청했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건 누아르의 안전이기에, 나는 군말 없이 명단을 받고 세 개의 도장을 들었다.

     “누아르 지브롤터.”

     헥스 자작은 여유롭게 다리까지 꼬며 입을 열었다.

     손깍지를 끼며 무릎 위에 올리는 포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묵묵히 명단 속 프로필을 훑고 도장을 번갈아가며 찍었다.

     “누가 봐도 지금은 ‘금색’에 해당하는 사람이지. 형이 노스트럼의 매국노, 제국의 희망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형이 노스트럼을 떠나면 사실상 변경백인 거 아니겠냐.”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여자 중에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의 자리…정정. 지브롤터 백작 부인 자리를 노리지 않는 여자가 어디에 있어?”

     그건 맞는 말이다.

     회귀 전의 아스타시아 또한 나를 만날 때마다 자기가 ‘지브롤터 백작 부인’이라면서 나에게 달라붙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고.

     “잘생긴 남자가 바람은 피우지 않고 평생을 자신만을 바라보며 헌신한다? 심각한 사치와 향락을 부리지만 않으면, 영지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산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도록 따로 예산까지 편성하지. 물론 역대 지브롤터 백작 부인은 그런 사치를 부린 여자는 거의 없었지만.”

     “누아르는 아닌데요.”

     “누아르 지브롤터가 바람이라도 피울 것 같다는 거냐?”

     “누아르는 여자를 마다할 녀석이 아닙니다. 여자 여럿 들이는 걸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감당 가능하다면?”

     “…….”

     잠시, 도장이 멈췄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영애, 샤를로테 하르마니아 뿐만 아니라 왕국의 모든 여자가 누아르의 첩이라도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

     “그리고 그 원인은 누아르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있다?”

     “제가 뭐라고.”

     “야. 아주버님이 제국 황제가 될 수도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

     “아.”

     단번에 이해했다.

     “…그 관점은 잠시 생각에서 잊고 있었습니다.”

     “잊어? 이 당연한걸?”

     “누아르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다보니 그만.”

     “…너, 혹시 뭐 누아르의 안 좋은 점에 매몰되어 있는 거 아니야?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누아르의 치부라거나. 아무래도 그런 거 때문에 지금 판단이 제대로 안 서는 것 같은데?”

     “…….”

     헥스 자작의 통찰대로, 나는 지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입장이다.

     “아무래도 헥스 자작의 의견을 귀담아들어 봐야겠군요.”

     “…네가 내 말을 듣는다고?”

     “아무리 저라도 가끔 고장이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네가 마도기계야?”

     “가족, 누아르와 레타르에 관한 부분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다른 여동생들은?”

     “아예 백지에서 시작하는 거랑, 뒷면에 새겨진 온갖 먼지를 인식하고 있는 거랑은 다르죠.”

     

     난봉꾼 누아르.

     피의 마녀 레타르.

     

     그런 이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누아르와 레타르는 영웅과 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 그들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너무나도 끔찍했던 기억들이라, 이미 회귀를 하고 8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러면 한 가지 물어보지. 너는 누아르 주변에 다른 여자가 꼬이는 게 싫은 거냐, 아니면 그…하르마니아 자작 영애가 싫은 거냐?”

     헥스 자작은 아직도 내가 붙잡고 있는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의 프로필을 가리켰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입니다.”

     “왜?”

     “이 여자는 어딘가, 누아르를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라서요?”

     “…….”

     “그렇지 않습니까?”

     “음,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 혹시 연상 싫어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무슨 말입니까,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는 아스타시아가 저보다 연상이라고 해도 사랑했을 겁니다.”

     “연상연하를 따지는 게 아니다? 그러면 아스타시아가 너보다 9살 위라도 상관없다?”

     “제가 10살이었을 때 아스타시아가 19살이었다면, 아스타시아를 찾아가서 10년만 기다려달라고 그랬을 겁니다.”

     “진짜로?”

     “예.”

     “그러면 연상이라는 건 문제가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헥스 자작은 잠시 손가락을 까딱거리더니,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적당한 논리가 뭐가 있을까. 네가 받아들이기 가장 확실한 논리가. 으음. 하렘은 괜찮다. 연상도 괜찮다. 하르마니아 자작가가 지브롤터 백작가에 뭔가 해를 끼친 적도 없고. 그냥 안 된다고 하기에는 샤를로테 영애가 상당히 아름다운 편이지. 나이가 문제….”

     벌떡.

     “그래, 그거면 좋겠다.”

     “그게 뭡니까?”

     “나이 차이를 걸고 넘어지는 거지.”

     “…그러니까, 그 여자가 연상이라고 하는 건 제가 어떻게 안 된다는 논리로 넘어갈 수 있는 게-”

     “너, 미성년자잖아.”

     “……!!”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아르도 미성년자…!”

     “이거, 성별을 바꿔서 보면 엄청난 이슈다? 그렇지?”

     “성인 남자가 미성년자인 귀족 영애를 점찍어 놓은 셈…!”

     “그래, 그러니까-”

     아.

     “아.”

     나와 헥스 자작은 동시에 탄식했다.

     “이 논리도 안 통하겠는데. 어쩔 수 없다. 레이디에게는 실례지만, 다른 레이디에 비해 너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자.”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성인이 미성년자와 사랑에 빠진다.

     샤를로테 하르마니아를 누아르로부터 떨어뜨리게 하는데 가장 확실한 논리지만, 그건 당대의 지브롤터에 있어 불가능한 이야기다.

     “네 아버지도 네 어머니가 성인이 될 때까지 3년 기다렸잖냐.”

     “끄응…!”

     성별이 뒤집힌 이야기?

     그거, 아버지가 이미 해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카데미를 같이 보냈잖습니까.”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는 다른가?”

     “…….”

     “뭔가 획기적인 논리가 아니라면 안 될 말이야. 애초에….”

     헥스 자작이 어딘가 반쯤 내려놓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는 누아르 지브롤터를 노리는 여자들 중에 최고령자도 아니잖냐. 응?”

     “…….”

     누아르.

     너무나도 많은 여자들에게 노림받고 있는 우량매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 *

     헥스 자작의 의견을 듣고 난 뒤, 나는 또다른 객관적 시각을 가진 이를 찾아 나섰다.

     “누아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우수한 학생이죠.”

     바토리 에르제베트 부총장이 안경을 벗으며 답했다.

     “2학기부터 듣기 시작한 연금술 수업 과목에서도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고.”

     작년보다 훨씬 여유가 넘쳐흘러보이는 그녀는 이제는 아예 여성용 정장에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왜요? 장학금 새로 만들어 주려고요?”

     “여자가 보기에, 누아르 지브롤터는 어떤가 싶어서 물어보러 왔습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니라?”

     “……?”

     “…….”

     바토리 부총장이 다시 안경을 썼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바람에, 바토리 부총장의 눈이 잠시 보이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어요. 난 또. 이름을 잘못 부른 줄 알았네.”

     “처음부터 누아르에 대해 물어보러 왔던 겁니다만. 그래서 누아르, 제국 여성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크림슨 지브롤터의 재림?”

     “예?”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뿌렸는지 몰라도, 제국 여성들의 가정이나 방,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에는 크림슨 지브롤터의 화보가 붙어있답니다. 왼쪽에 황제 폐하, 오른쪽에 크림슨 변경백.”

     바토리 부총장은 자신의 장지갑을 꺼냈다.

     

     “보이세요?”

     “아니, 합스베르크 황제는 황제폐하니까 그렇다 치고, 남의 아버지 사진은 왜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겁니까?”

     “잘생긴 걸 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거든요. 그레이 이사장이 지갑에 아스타시아 양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지갑에 없습니다.”

     “그러면 거기 목걸이 소켓 안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손목시계?”

     “…누아르로 돌아가죠. 그래서 누아르,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죠.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바토리 부총장은 장지갑을 집어넣으며 손을 파리 쫓듯이 흔들었다.

     “누아르 지브롤터를 유혹하는 제국 여성이 있다면 가장 기뻐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합스베르크 황제 폐하?”

     “정확해요. 그레이 지브롤터를 유혹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스타시아 양을 황녀로, 심지어 제1 황위 계승자로 못을 박아버렸는데, 누아르 지브롤터의 여자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못해도 보험이라는 겁니까?”

     “차기, 라는 거죠.”

     “…….”

     실제로 신입생 중에는 여차하면 누아르를 노리려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미 누아르의 곁에는 대외적인 연막이라거나 위장 용도로 제국의 화이트들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바토리 부총장. 저는 지금 좀 급합니다. 뭔가 적절하게 그녀를 밀어낼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르마니아 영애만 안 된다고 한다면, 으음….”

     

     바토리 부총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황제 폐하께 한 번 물어볼까요?”

     “예?”

     “당신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황제 폐하께서 이런 쪽으로 어느정도는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여자를 홀리는 것도 선수지만, 여자를 쳐내는 것도 선수니까. 좀 안 좋은 말일 수도 있지만, 제국에서 전문용어로….”

     “먹버?”

     “어머, 그것도 제국 신문에 나왔어요?”

     “제국 신문이 아니라, 아웃렛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말은 아니지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단어.

     “…아니오. 누아르에게 그런 걸 시킬 수는 없죠.”

     -저건 나보다도 더하군.

     바토리 부총장 피셜 먹버 전문가인 황제(회귀 전)가 ‘누아르가 한 수 위’라고 평했다.

     “차라리 아예 마음을 품지 않게 꺾어버릴 방법이면 좋겠군요. 그게 무엇인지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기도 한데,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떻게 독살해 버릴 것도 아니고.”

     “…….”

     “농담입니다.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귀족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여자로서 죽여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싫은 건가요? 샤를로테 하르마니아 영애가?”

     “직감일 뿐입니다. 직감.”

     선택지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샤를로테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뿐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녀 본인이 꺼려지는 것도 있지만, 하르마니아 자작은 제 외조부 렘부르 군터 자작과 상당히 친한 인간이거든요.”

     

     * * *

     다음 날.

     “……오.”

     제국 신문의 구석, 작은 사설이 하나 갑자기 나타났다.

     [노산일수록 기형아 태어날 확률 증가? 뜨거운 감자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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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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