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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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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귀여운 강아지의 탈을 쓴 제스에 의해 리안의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 쓰러졌다. 개그 필터 덕분에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원래의 몸에 비해 훨씬 연약한 몸은 말랑한 인형처럼 제스에게 깔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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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잠깐 제스! 으왓! 얼굴 핥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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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볼을 핥는 행동에 화들짝 놀라 밀어내려 애썼지만,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대형견 -.. 아니, 흥분한 제스를 말릴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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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사실을 기민하게 눈치챈 제스가 몸을 더 깊게 붙여왔다. 풍만하고 따끈한 가슴이 제 가슴팍 위에 눌리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 순간 딸꾹질이 튀어나올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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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를 통해 미리 수련(?)해두지 않았다면 그대로 코피를 쏟으며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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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흐흥, 쭈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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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근슬쩍 볼에 간지럽게 입술까지 맞추는 행동에 얼어붙었던 몸이 용암에 던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리안은 단호한 태도로 제스를 말리기 위해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제스가 눈치 빠르게 리안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순식간에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 손이 가볍게 깍지를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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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을 내려다보는 제스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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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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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상황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게 된 주인을 보고 잔뜩 흥분한 강아지’ 쯤으로 여기고 있던 리안의 머릿속에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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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증거로 가느다랗던 동공이 확장되어 사냥감을 눈 앞에 둔 짐승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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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늑대 앞에 던져진 토끼처럼 작게 몸을 떨면서도 제스를 달래고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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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이제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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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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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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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닫혀있던 감옥 문이 거친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문 위쪽에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작은 창구가 달려있었는데, 그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의 눈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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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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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리안을 덮치는 자세로 갑작스러운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작은 틈으로 드러난 눈동자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떨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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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문제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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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륵,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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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게 열린 틈이 닫히고 감옥 안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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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약한 노예와 딱 봐도 육식성으로 보이는 수인 노예를 함께 가둬뒀다는 신입 간수의 말에 헐레벌떡 달려왔던 사수는 다른 의미로 잡아먹히고 있는 노예의 모습에 안도하며 감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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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잠깐 오해!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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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민하게 어떤 클리셰가 발동했는지 알아차린 리안이 반사적으로 그리 외쳤다가 화들짝 놀란 제스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귀엽게 귀를 파드득 털어내는 모습을 보자 흐려졌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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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제스. 이 몸은 진짜 내 몸이 아니니까. 너무 함부로 다루지 말아줘.”
   “킁킁…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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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또 단둘이 이런 공간에 남겠나 싶어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려던 제스는 진짜 몸이 아니라는 말에 입맛을 다시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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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리안은 안도의 숨을 조심스럽게 뱉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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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 제스 넌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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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질문에 제스는 과거를 더듬듯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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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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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리안이 불길한 불꽃과 함께 사라진 후, 필사적으로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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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리안이 살아있을 거라 확신했다. 리안을 주인으로 섬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생긴 보이지 않은 연결감이 그대로 남아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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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듯이 서재의 책을 들여다보던 중, 공작가에 소동이 일어났다. 폐인처럼 살아가던 노아와 아이리스가 리안이 살아있다며 어서 구해야 한다 주장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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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성에 주인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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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이 피폐해지다 못해 망가진 게 아니냐는 말과 마왕군의 정신 공격일 수 있다는 말이 오가는 와중 제스만이 두 사람의 말을 신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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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자주 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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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제 꿈에만 찾아오지 않은 주인님에 입술을 삐죽거리며 마왕성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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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건 주인님을 구하긴커녕 목숨만 던지는 행동일 게 뻔했기에, 제스는 힘을 얻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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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를 지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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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력이란 힘이 있기에 개인이 거대한 세력과 전쟁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너무 오랜 시간이 소비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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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무리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공작가를 뛰쳐나와 수인들의 땅이라 불리는 남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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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나 다를 바 없는 야만인들의 땅은 오로지 강자만을 환영하는 곳이었다. 특히 제스같은 아름다운 수인은 노려지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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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머리를 숙여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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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야만인의 땅을 정복하여 제 것으로 만들었다. 모든 수인이 꼬리를 말고 그녀에게 복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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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쯤, 마왕군과 제국군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장에 뛰어들어 ‘학살자’라는 이명으로 불릴 정도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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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 제스는 마왕성에 노예로 잡혀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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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중간에 뭔가 많이 빠진 거 같은데? 어쩌다 잡혀 온 건지 전혀 설명이 안 되잖아!”
   “계속 적을 죽이고 죽여도 끝이 안 나길래… 차라리 잡혀들어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잡혀들어왔어요. 히히..”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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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혼날 것 같은 상황을 빠르게 눈치챈 제스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리안의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빤히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봐주세요. 응? 응?’하는 표정에 리안의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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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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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쩍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대로 혼낼까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지만, 행복한 제스의 표정에 결국 허물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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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이 귀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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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볼을 약하게 꼬집자 제스가 으엥하는 소리를 내며 귀를 파닥파닥했다. 귀여워서 한참은 더 쓰다듬어주었다. 리안이 자신을 한 마리의 강아지 취급을 하고 있다는 걸 기민하게 눈치챈 제스가 슬쩍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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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스킨쉽이 날이 갈수록 진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제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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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제스의 계획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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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제스와 리안은 본격적으로 마왕성 탈출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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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내가 조사해둔 장소가 있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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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상태에선 함정이나 마법에 걸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다 보니 비밀 통로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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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미리 조사해뒀던 정보를 술술 늘어놓자 제스가 입을 헤 벌린 채 감탄만을 늘어놓았다. 그 정도로 리안의 정보는 질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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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 정보라면 바로 탈출해도 되겠다!”
   “그렇지?”
   “쭈인님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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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이틈을 놓치지 않고 리안에게 안겨들어,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제 욕망을 채웠다. 과거였다면 식겁했을 리안도 이젠 꽤 익숙해져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강제로 떼어내는 것보다 살살 달래 떨어뜨리는 게 더 쉽다는 걸 몸소 배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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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또한 모두 제스의 귀여운 계략이었지만 리안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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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완벽한 계획을 자잘하게 수정해 나가고 있을 그 시점, 우중충한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는 장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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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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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싹할 정도로 섹시한 목소리가 벽과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다. 평소였다면 통!토옹!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야 할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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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치지 말고 그만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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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자 마왕의 눈이 점차 텅 비어갔다. 붉은 눈동자가 섬뜩할 정도로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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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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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방을 훑어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안온하다 느껴지던 공간이 북부의 설산보다 더 시리고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심장 한쪽이 뜯겨나간 것처럼 공허하고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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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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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탁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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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내 곁에서 떠날 수 없게 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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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머릿속에 온갖 금지된 마법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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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지금도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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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魔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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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까지 전부 내 것으로 만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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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잔혹하고 난폭한 왕이 처음으로 제 욕망에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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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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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새벽, 리안과 제스는 곧바로 탈출 준비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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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육체를 찾자마자 마왕성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제스 또한 리안을 발견하면 곧바로 마왕성을 빠져나갈 생각이었기에 디테일한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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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덕분에 따로 긴 준비시간을 가질 필요 없이 바로 탈출 시도를 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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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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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 한쪽 벽에 숨겨진 장치를 작동하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통로가 나타났다. 0구역은 과거 창고로 사용되었던 장소였고 눈 앞에 있는 통로는 창고와 주방, 귀빈실을 빠르게 오가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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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오래전에 사용된 통로라 허물어졌을 것이다 -… 라고 서재에 박혀있던 역사서에 적혀있었다. 역사서에 적힌 내용과 달리 통로는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오로지 유령인 리안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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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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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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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제스 삽화 작업중..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순식간에 귀여운 강아지의 탈을 쓴 제스에 의해 리안의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 쓰러졌다. 개그 필터 덕분에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원래의 몸에 비해 훨씬 연약한 몸은 말랑한 인형처럼 제스에게 깔리고 말았다.

“자, 잠깐 제스! 으왓! 얼굴 핥지 마!”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볼을 핥는 행동에 화들짝 놀라 밀어내려 애썼지만,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대형견 -.. 아니, 흥분한 제스를 말릴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같은 사실을 기민하게 눈치챈 제스가 몸을 더 깊게 붙여왔다. 풍만하고 따끈한 가슴이 제 가슴팍 위에 눌리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 순간 딸꾹질이 튀어나올 뻔했다.

노아를 통해 미리 수련(?)해두지 않았다면 그대로 코피를 쏟으며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으흐흥, 쭈인님..”

은근슬쩍 볼에 간지럽게 입술까지 맞추는 행동에 얼어붙었던 몸이 용암에 던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리안은 단호한 태도로 제스를 말리기 위해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제스가 눈치 빠르게 리안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순식간에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 손이 가볍게 깍지를 끼었다.

리안을 내려다보는 제스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거렸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현 상황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게 된 주인을 보고 잔뜩 흥분한 강아지’ 쯤으로 여기고 있던 리안의 머릿속에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그 증거로 가느다랗던 동공이 확장되어 사냥감을 눈 앞에 둔 짐승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리안은 늑대 앞에 던져진 토끼처럼 작게 몸을 떨면서도 제스를 달래고자 입을 열었다.

“제스 이제 그만 -..!”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덜컹!

굳게 닫혀있던 감옥 문이 거친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문 위쪽에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작은 창구가 달려있었는데, 그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의 눈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았다.

“….”

“…”

제스가 리안을 덮치는 자세로 갑작스러운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작은 틈으로 드러난 눈동자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떨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았다.

“…음… 문제 없군.”

드륵,탁.

작게 열린 틈이 닫히고 감옥 안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허약한 노예와 딱 봐도 육식성으로 보이는 수인 노예를 함께 가둬뒀다는 신입 간수의 말에 헐레벌떡 달려왔던 사수는 다른 의미로 잡아먹히고 있는 노예의 모습에 안도하며 감옥을 떠났다.

“자, 잠깐 오해! 오해입니다!”

기민하게 어떤 클리셰가 발동했는지 알아차린 리안이 반사적으로 그리 외쳤다가 화들짝 놀란 제스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귀엽게 귀를 파드득 털어내는 모습을 보자 흐려졌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하아…제스. 이 몸은 진짜 내 몸이 아니니까. 너무 함부로 다루지 말아줘.”

“킁킁…으응..”

언제 또 단둘이 이런 공간에 남겠나 싶어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려던 제스는 진짜 몸이 아니라는 말에 입맛을 다시며 떨어졌다.

그제야 리안은 안도의 숨을 조심스럽게 뱉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 제스 넌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리안의 질문에 제스는 과거를 더듬듯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굴렸다.

***

제스는 리안이 불길한 불꽃과 함께 사라진 후, 필사적으로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리안이 살아있을 거라 확신했다. 리안을 주인으로 섬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생긴 보이지 않은 연결감이 그대로 남아있던 탓이다.

미친 듯이 서재의 책을 들여다보던 중, 공작가에 소동이 일어났다. 폐인처럼 살아가던 노아와 아이리스가 리안이 살아있다며 어서 구해야 한다 주장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마왕성에 주인님이?’

정신이 피폐해지다 못해 망가진 게 아니냐는 말과 마왕군의 정신 공격일 수 있다는 말이 오가는 와중 제스만이 두 사람의 말을 신뢰했다.

‘…나도 자주 잘걸.’

제스는 제 꿈에만 찾아오지 않은 주인님에 입술을 삐죽거리며 마왕성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마왕군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건 주인님을 구하긴커녕 목숨만 던지는 행동일 게 뻔했기에, 제스는 힘을 얻고자 했다.

‘무리를 지어야 해.’

마력이란 힘이 있기에 개인이 거대한 세력과 전쟁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너무 오랜 시간이 소비될 터였다.

제스가 무리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공작가를 뛰쳐나와 수인들의 땅이라 불리는 남쪽으로 향했다.

황무지나 다를 바 없는 야만인들의 땅은 오로지 강자만을 환영하는 곳이었다. 특히 제스같은 아름다운 수인은 노려지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모두 머리를 숙여 경배하라!”

제스는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야만인의 땅을 정복하여 제 것으로 만들었다. 모든 수인이 꼬리를 말고 그녀에게 복종했다.

그때쯤, 마왕군과 제국군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장에 뛰어들어 ‘학살자’라는 이명으로 불릴 정도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 제스는 마왕성에 노예로 잡혀들어왔다.

“잠깐만. 중간에 뭔가 많이 빠진 거 같은데? 어쩌다 잡혀 온 건지 전혀 설명이 안 되잖아!”

“계속 적을 죽이고 죽여도 끝이 안 나길래… 차라리 잡혀들어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잡혀들어왔어요. 히히..”

“너…”

자신이 혼날 것 같은 상황을 빠르게 눈치챈 제스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리안의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빤히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봐주세요. 응? 응?’하는 표정에 리안의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응응!”

슬쩍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대로 혼낼까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지만, 행복한 제스의 표정에 결국 허물어져 버렸다.

‘어휴, 이 귀여운 녀석.’

리안이 볼을 약하게 꼬집자 제스가 으엥하는 소리를 내며 귀를 파닥파닥했다. 귀여워서 한참은 더 쓰다듬어주었다. 리안이 자신을 한 마리의 강아지 취급을 하고 있다는 걸 기민하게 눈치챈 제스가 슬쩍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리안은 스킨쉽이 날이 갈수록 진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제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모두 제스의 계획대로였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제스와 리안은 본격적으로 마왕성 탈출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조사해둔 장소가 있어.”

“와..”

유령상태에선 함정이나 마법에 걸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다 보니 비밀 통로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리안이 미리 조사해뒀던 정보를 술술 늘어놓자 제스가 입을 헤 벌린 채 감탄만을 늘어놓았다. 그 정도로 리안의 정보는 질이 좋았다.

“이 정도 정보라면 바로 탈출해도 되겠다!”

“그렇지?”

“쭈인님 멋져!”

제스는 이틈을 놓치지 않고 리안에게 안겨들어,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제 욕망을 채웠다. 과거였다면 식겁했을 리안도 이젠 꽤 익숙해져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강제로 떼어내는 것보다 살살 달래 떨어뜨리는 게 더 쉽다는 걸 몸소 배운 탓이다.

이 또한 모두 제스의 귀여운 계략이었지만 리안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두 사람이 완벽한 계획을 자잘하게 수정해 나가고 있을 그 시점, 우중충한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는 장소가 있었다.

“..어디있어?”

오싹할 정도로 섹시한 목소리가 벽과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다. 평소였다면 통!토옹!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야 할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장난치지 말고 그만 나와.”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자 마왕의 눈이 점차 텅 비어갔다. 붉은 눈동자가 섬뜩할 정도로 빛을 잃었다.

“…”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방을 훑어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안온하다 느껴지던 공간이 북부의 설산보다 더 시리고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심장 한쪽이 뜯겨나간 것처럼 공허하고 숨이 막혔다.

“역시…”

그녀는 탁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영원히 내 곁에서 떠날 수 없게 해야 했는데.”

그녀의 머릿속에 온갖 금지된 마법들이 떠올랐다.

“아냐, 지금도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찾아서..”

마왕(魔王).

“영혼까지 전부 내 것으로 만들면 돼.”

가장 잔혹하고 난폭한 왕이 처음으로 제 욕망에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새벽, 리안과 제스는 곧바로 탈출 준비를 맞췄다.

리안은 육체를 찾자마자 마왕성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제스 또한 리안을 발견하면 곧바로 마왕성을 빠져나갈 생각이었기에 디테일한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그 덕분에 따로 긴 준비시간을 가질 필요 없이 바로 탈출 시도를 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쿠구궁.

감옥 한쪽 벽에 숨겨진 장치를 작동하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통로가 나타났다. 0구역은 과거 창고로 사용되었던 장소였고 눈 앞에 있는 통로는 창고와 주방, 귀빈실을 빠르게 오가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매우 오래전에 사용된 통로라 허물어졌을 것이다 -… 라고 서재에 박혀있던 역사서에 적혀있었다. 역사서에 적힌 내용과 달리 통로는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오로지 유령인 리안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가자.”

“응!”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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