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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EP.184

     

   띠링.

     

   [12층에 새로운 성좌가 나타났습니다.]

     

   엔리코의 승격을 알리는 작은 알림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 승격의 주인공이 지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게다가 이어진 새로운 메시지는 더 가관이었다.

     

   [임무가 갱신됩니다.]

     

   —

   『12층 – 배신과 구원(갱신)』

     

   주제 : 선택

   난이도 : A+

     

   설명 : 12층을 담당하던 성좌 ‘이세계의 대부’는 자신의 화신이었던 성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이세계의 대부’를 돕거나 ‘등을 돌린 혁명가’와 협력하십시오. 선택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임무 : ‘이세계의 대부’ 구출 or ‘등을 돌린 혁명가’와 협력

   제한 : 없음

     

   보상 : 13층으로 가는 포탈 / 성좌가 준비한 추가 보상

   실패 페널티 : 없음

   (단, 성좌와 협력을 하는 경우에는 해당 성좌의 선택이 우선 적용됩니다.)

   —

     

   ‘좀 뒷북인데.’

     

   이미 종료된 상황에 대해 떠오르는 알림을 보고 있자니 괜히 어이없어지는 기분.

     

   상황에 따라 성좌의 이명이 정해지는 것이 맞긴 한 건지 ‘등을 돌린 혁명가’라는 이명을 가지게 된 엔리코가 무릎을 꿇고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함의 표시일까.’

     

   결국 시련을 이겨 낸 것이 본인이라지만 내 지분이 많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 세상을 대표하는 한 명의 성좌. 아무리 고마워도 무릎을 꿇는 건 조금 불편한 기분이었다.

     

   “일어나지?”

     

   몸을 천천히 일으키는 그에게서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의 기운이 느껴졌다. 격이라는 것. 내가 성좌가 되며 얻게 된 새로운 개념의 힘을 녀석 또한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힘을 거머쥐게 되면 보통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 힘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 반응이 과장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분이 어때?”

   “어떤 기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성좌가 된 감상을 여쭈신 겁니까.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 대한 생각을 여쭈신 겁니까.”

   “……그냥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뭔가 떠오르는 생각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처음 성좌가 되었을 때 느꼈던 것은 머리털이 자란 이후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수준의 고양감이었다.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갑자기 몸에서 힘이 넘쳐나고 자신감이 솟구친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에게는 그저 차분함 그 이상 그 이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군요.”

   “표정은 안 그런데.”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눈앞에 들이닥쳤던 모든 문제가 사라지니 개운하기도 하고, 목표가 사라진 것에 대한 허무함도 좀 느껴지는군요…… 근데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엔리코의 고개가 살짝 들어올려지며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장을 향한다.

   주변의 빛이라고는 주변을 비추는 은은한 마력들 뿐. 하지만 이 어두운 공간에서도 그의 눈에 안광이 번뜩인 것은 그저 나만의 착각이 아닌 듯싶었다.

     

   “감사합니다.”

   “힘에 취하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네.”

   “당신에 대한 고마움이 그런 하찮은 감정을 압도한 것 같습니다.”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

     

   반쯤 장난스럽게 돌아온 나의 답변에 엔리코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우선 내려가시죠. 현재의 상황을 다른 화신들에게도 전달해야겠습니다.”

     

   ***

     

   마력제어실을 벗어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집회실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특이했던 점은 왔을 때와는 달리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도 고요했던 것. 그게 적적했던지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엔리코였다.

     

   “저기……”

   “뭐 할 말 있어?”

   “사실 조금 전에 성좌가 되며 떠오른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내가 성좌가 되며 받았던 메시지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혹시 화신을 만들라는 임무?”

   “정확합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성좌가 될 존재들은 자신이 다스리게 될 세상에서 화신을 찾고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나면 쭉 탑을 오를 것인지, 3000년 동안 세상을 다스리며 그곳에 머무를 것인지 선택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녀석은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차근차근 탑이 시키는 대로 해 봐. 임무를 진행하다 보면 내가 왜 너에게 성좌가 되라고 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테니까.”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그가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인지 걸으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화의 흐름에 운을 띄운 것은 또다시 엔리코였다.

     

   “혹시 당신이 얻게 된 특별한 능력이 그 극한의 냉기 마법입니까?”

   “엥? 특별한 능력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권능 말입니다. 성좌가 되니 탑의 선물이라면서 권능을 하나 받았습니다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금시초문이다. 애초에 성좌가 되며 격이 오른 것 말고는 특별한 변화도 없거니와 권능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본 기억은 내가 기억 상실에 걸린 것이 아닌 한,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성좌가 되는 순간 뭔가 깨달음 같은 게 있었습니다. 설명을 하기는 조금 힘든데……”

     

   엔리코가 잠시 자신의 턱을 쓸더니 이내 나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엔리코의 목소리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겁니다.

     

   머릿속에 직접 때려 박히는 엔리코의 음성. 입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들려온 소리는 자연스럽게 흩어지며 마력으로 산화했다.

     

   “바, 방금 전에 그거 뭐야?”

   “제가 얻은 권능입니다. ‘연결’이라는 이름의 권능인데 마력을 사용해서 소리와 생각, 공간과 공간 등 뭔가를 연결하는데 쓸 수 있는 능력이랍니다.”

   “……”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만났던 성좌들은 다들 특이한 능력이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았다.

     

   예를 들면 5층을 관리하러 왔다며 잠시 만났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는 자신의 권능을 발동해 5층의 시간을 회귀시키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11층에서 만났던 장막 뒤의 감시자 ‘영’은 어린아이로 변신해 ‘량’에게 깨달음을 주기도 했고 반쪽짜리긴 해도 내가 다스리는 세상의 기존 성좌 ‘종자를 판별하는 자’ 또한 공간을 이동하는 특이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권능이라는 이름의 기적적인 능력. 그나마 나에게는 ‘업데이트’라는 사기 스킬이 있기는 했지만 권능이라는 이름이랑 비교하기에는 그 페널티가 너무 가혹했다.

     

   ‘나중에 한 번 알아봐야겠군.’

     

   어차피 지금은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엔리코 녀석은 이제 막 성좌가 된 풋내기. 나중에 탈람바르나 다른 오래된 성좌를 만나면 그때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다 왔군요.”

     

   한참을 걸은 우리는 마침내 집회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특이했던 점은 엔리코가 마지막에 모두를 해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집회실 내부에 꽤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많네.”

   “제가 불렀으니까요.”

   “응? 언제?”

   “권능을 사용해 봤습니다. 정확한 범위는 계속해서 측정해 봐야겠지만 연금술사의 탑 정도까지는 제 목소리가 닿는 듯합니다.”

     

   엔리코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집회실의 문을 잡았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며 나는 집회실 양 방향으로 쭉 늘어선 수백 명의 화신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뭐야?”

     

   조금 전, 내가 인기척을 느꼈던 순간 감각에 포착된 인원을 아득히 상회하는 숫자였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기다렸기에 오히려 수가 적게 느껴졌던 모양.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이어진 그들의 행동에 있었다.

     

   척!

     

   엔리코가 집회실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화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거대한 협곡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 집회실에 모인 모두가 성좌가 된 엔리코에게 경외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대단하네. 성좌가 됐다고 이렇게까지 해주고 말이야.”

   “음?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뭘?”

   “제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그의 답변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얼한 충격이 정신에 가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대부의 화신이자 엔리코가 다스리는 세상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헤라클레스를 수리하고 있던 화신들, 나와의 싸움으로 정신적인 타격을 입고 요양을 하던 화신들, 그 외의 모든 잡무를 보던 화신들까지 모두가 이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시죠. 저곳이 당신의 자리입니다.”

   “……갑자기 이거 뭔데?”

     

   엔리코가 정중하게 손을 들어 인파의 협곡 끝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회의를 할 당시에 엔리코가 앉아 명령을 내리던 그 자리. 다시 말해 이 세상의 대표가 앉아야 할 왕좌를 나에게 양보한 것이다.

     

   내가 왕좌를 찾은 것을 확인한 엔리코가 조심스럽게 나의 뒤로 물러난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수백의 눈동자를 보니 분위기에 압도가 된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후우……”

     

   솔직히 앉고 싶지 않았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저 13층으로 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엔리코를 도왔으니 양심이 찔리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세는……

     

   “안 앉으면 이대로 밤새겠네.”

     

   미동이 없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정도까지 감사를 표하는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서서히 가까워지는 의자가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특별히 휘황찬란하거나 비싸 보이는 의자가 아니다.

     

   주변에 놓인 다른 의자들과 똑같은 디자인의 의자… 하지만 그 위치가 모두를 내려다볼 수 있는 단상 위라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띠링.

     

   [‘등을 돌린 혁명가’가 당신과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12층 – 배신과 구원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의자에 앉는 순간 메시지가 떠오르며 주변의 마력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포탈이 생겨날 징조. 이건 자잘한 마력의 흐름까지 느껴지는 걸 보니 내 격이 많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었다.

     

   우웅-

     

   “엔리코.”

   “가시기 전에 연설이라도 해주시는 겁니까.”

   “그런 농담 안 좋아해. 아무튼 탑이 준 임무 말인데.”

     

   엔리코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이어질 말을 경청한다.

     

   “너무 빠르게 클리어하지 않아도 돼. 그저 천천히 진행하라는 말이 아니야. 그저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야.”

   “아직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사람들을 돌아본 뒤,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당신께서도 원하시는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께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나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약속.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그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엔리코…… 아니, ‘등을 돌린 혁명가’가 나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된 악수 신청에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조금 전에 제가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무슨 거짓말?”

   “그 고양감이라는 거 확실히 느껴지더군요. 힘이 생기니 남은 12층의 화신들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덜어졌거든요.”

     

   엔리코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엔리카를 향했다. 누나와 똑 닮은 모습과 성격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던 대부가 만들어 낸 가짜.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님을 두 번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끝까지 데려가 볼 생각입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볼 수 있었던 신념 가득한 눈빛이 좌중을 압도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층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나저나 13층은……’

     

   우웅-!

     

   [13층으로 이동합니다.]

     

   포탈을 지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곳에 나를 애타게 기다리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13층, 무의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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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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