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편이라니…”
“무림맹의 부대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편하자는 말이오?”
“맞습니다.”
지금도 주작대 백호대 청룡대 순찰대 등등 많은 부대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써먹기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었다.
무림인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배운 게 다 다르고 특기도 다 다르다 보니 아무리 그 부대들이 쓰는 무공을 배웠다고는 해도 실전에서 그게 얼마나 유용할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특히 후기지수들.
후기지수들은 개성이 너무 강하다 보니 한 부대로 묶어서 별동대로 쓰기엔 다소 애매한 감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남궁세가와 하북 팽가.
패도적인 도법을 장기로 하는 하북팽가와, 뛰어난 중검을 장기로 하는 남궁세가.
순수하게 마교와의 싸움이라면 적당한 곳에 투입시키면 그만이지만, 파르스가 마교를 먹어버린 이상 그런 싸움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전쟁에서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 아는 놈이 마교 부대를 재편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마교의 마인들이 모두 그 녀석의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놈의 말을 듣는 부하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이쪽도 나름대로 그놈들을 상대할 수 있게 부대 재편을 해야 할 테니까.
“위 대협은 서역에서 군문에 종사했다고 들었소.”
새롭게 군사가 된 제갈 뭐시기 군사는 나에게 뭔가 좋은 의견을 내달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쪽은 경험 많은 쪽이 설명하라는 건가.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니…뭐.
“우선, 병력을 재편하기 전에 마교를 침공한 세력…파르스와 그의 휘하에 소속된 맘루크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맘루크?”
“그게 뭐지?”
생전 처음 들어본 단어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마 이 중에서 맘루크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더 혼란스럽겠지.
잠시 뜸을 들인 나는 맘루크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맘루크는 파사국 등지에서 육성한 정예병들을 말합니다.”
“정예병이라…신의군 같은 것이오?”
“비슷합니다. 어릴 적부터 사상교육을 시키고, 개종시켜 철저한 훈련을 거쳐 육성한 전투의 달인들.
그게 바로 맘루크입니다.
검술, 창술, 궁술, 마술까지 4가지 무예를 완전히 체득한 괴물들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기사들보다도 더한 무력집단이 맘루크.
우리들이 맘루크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던 것은 더 풍부한 전투 경험과 기사들이 작정하고 펼치는 방어 태세를 맘루크들이 쉽사리 뚫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무림인들이 맘루크의 공세를 받아낼 수 있을까?
극한의 절삭력을 추구해 오러아머째로 기사를 양단할 수도 있는 놈들을?
아니, 어쩌면 무림인들이 더 제격일 수 있긴 하지만, 문제는 놈들이 기병이라는 거지.
기병과 보병의 차이는 경공을 감안해도 쉽사리 좁힐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무림인이 빨라도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무림인은 절정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고.
맘루크들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교를 점령한 것을 보면 최소한 세 자릿수는 될 터.
“저들은 기본적으로 기병이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롭습니다.”
“기병이라…”
“무림인들이 아무리 날래다고 하나 작정하고 거리를 벌리면서 활을 쏘아대면 일방적으로 무인들만 피해를 볼 터이니, 그들의 발을 묶어 놓을 수단이 필요합니다.”
같은 기병이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 너무 귀한 이 나라에서 그럴 수는 없으니 순수하게 경공으로 그들에게 접근할 무인들이 필요했다.
“함정을 설치하면 되지 않겠소?”
“남궁가주님. 맞는 말이오나, 그들은 함정이 깔린 곳에 마인들을 먼저 풀어놓을 확률이 높습니다.”
맘루크는 최정예 병력. 굳이 맘루크를 먼저 소비시키기보다, 마인들을 밀어 넣어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뒤를 맘루크가 지원하며 조여오는 전술을 사용할 확률이 높았다.
그놈들은 기사들처럼 돌격 전술을 애용하는 놈들도 아니거니와, 본대의 힘을 아껴두고 싶을 테니까.
마인들이 큰 피해를 입든 말든 개의치 않으리라.
“끙…”
“정파의 무림인들을 전부 모으면 무시 못 할 수가 나올 걸세! 저들이 많아 봐야 중원의 무림인들보다 많지 않을 테니, 힘으로 밀어붙이면-”
“팽가주님. 모두가 팽가의 무인인 것은 아니니, 배운 무공의 종류에 따라 무인들을 분류하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거 참 답답하구먼.”
“참으시지요. 팽가주. 강한 힘은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니, 위 대협의 말처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겠소?”
“에헤이,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면 천마고 뭐고…”
천마라.
사실 그게 제일 불안한데.
천마를 죽였는지, 아니면 사로잡았는지, 하다못해 회유라도 했는지.
그걸 모르니까 답답해 죽겠네.
파르스에게 진 걸 보면 최소한 멀쩡한 상태는 아닐 것 같은데. 경지 자체도 원작보다는 낮을 테고.
“…천마도 저희가 고려해야 할 대상입니다.”
“흠, 이보게. 사…아니 위 소협. 천마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파르스는 제가 군문에 종사했을 적에 적으로 자주 만났던 상대입니다. 그놈은 쓸모가 있다면 적이라도 살려서 어떻게든 써먹으려는 녀석이지요. 천마가 죽었다면 그쪽만 신경 쓰면 되나, 살아있다면…”
“천마를 상대할 무인도 따로 뽑아놓아야 한다는 소리로군. 맞나?”
“예.”
“맹주께서 나서시면 되지 않소이까?”
“청운진인. 천마는 나로서도 이길 수 있다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요.”
정확히는 ‘어느 정도의 강함인지 알기 어렵다’에 가깝지.
원작에서야 탈마의 고수였지만, 파르스에게 진 시점에서 탈마라고 단언하기 어려워졌다.
원작보다 1~2년 정도는 일찍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한 명이 천마를 막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조금 비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이름난 고수 여럿이 작정하고 천마를 상대하는 게 좋을듯 합니다. 물론 천마가 있을 경우입니다.”
“다 같이 천마를 개 패듯이 패면 되겠구만.”
“그겁니다 방주님. 우리는 혹시 나올 천마를 틀어막고, 본대는 파르스의 군세를 막아내야 합니다. 천자께서 군을 지원해주신다면 아예 진지를 구축하고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가능하면 청해 북서쪽에 있을 군이라도 협조를 받을 수 있으면 훨씬 수월하겠지.
꽤 오랫동안 침략이 없던 곳이라 군의 수준이나 숫자는 형편없을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성벽이었다.
성벽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천지 차이니까.
“하지만 성벽을 무시하고 지나가면 그만 아니오? 드넓은 중원 땅에 우회로는 많을 터…”
“좋은 지적입니다…”
“장립진인이라 부르게.”
“예. 장립진인. 진인 말대로 우회하면 저희의 계획은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 겁니다. 하지만…놈들이 기병을 동원하는 이상, 우회로를 고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주 멀리 돌아간다면 가능하겠지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급.
마교의 보급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약탈 없이 장기전을 벌일 보급 능력이 될까?
멀리 돌아가면 보급을 유지할만한 병력은 있고?
천산에 있는 모든 인력을 끌어다 써도 마교가 그 정도는 안 될 텐데?
마인들뿐이라면 해봄 직하지만, 기병이 포함되면 보급 유지는 더 빡세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계와 보급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예병이라도 힘들 겁니다.”
“허나 그놈들은 독종일세. 목숨이나 보급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산을 타고 우회를 해올 수도 있을 것이네.”
“숫자는 저희가 더 많습니다. 병력을 넓게 배치해서 최대한 감시망을 촘촘하게 짜고 소식 전달만 확실하게 된다면 저희가 숫자로 누를 수 있습니다. 아니면…아예 저희가 선제공격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성공만 한다면 가장 적은 희생으로 마교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흐음…”
마교가 무서운 건 이 새끼들이 민간인 무림인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메뚜기떼마냥 쓸어 먹는 다는 점에 있으니까.
그리고…사실상 내가 꺼내려던 것은 이쪽이었다.
“선제공격이라니? 그게 가능하겠소?”
“못 할 건 없습니다.”
최소한 파르스의 주의를 끌 만한 방법은 있었으니까.
“놈들이 중원에 첩보망을 얼마나 깔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정도 놈들의 진격을 늦추기만 해도 전투가 수월해질 겁니다. 발이 묶인 기병만큼 도움이 안 되는 병은 없으니 말입니다.”
솔직히 도박이긴 하지만,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지.
나와 그놈의 악연을 생각하면…그놈의 머리가 조금은 복잡해질 테니까.
“위 소협. 자네의 의견은 잘 들었네. 헌데…그 방법이 뭔가?”
역시 묻는 건가.
나는 곧장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건…”
으아아 빡대가리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