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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거?

       ​

       두말할 것도 없이 연구 방해다.

       ​

       다른 건 몰라도, 공부하고 있는데 시비를 거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다.

       ​

       “크윽!”

       ​

       쾅!

       ​

       친위대의 뚝배기를 차례로 깨부수고 나서야 겨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

       음, 버멜처럼 때리는 맛은 안 나네.

       ​

       나는 기절한 친위대의 눈을 살폈다. 스태프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초점 없이 흐리멍덩했다.

       ​

       “초점이 없네. 세뇌라도 당한 건가?”

       “그, 그건…. 그냥 기절해서 그렇게 된 걸 거다.”

       “…….”

       ​

       그런가?

       ​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찌할 건가?”

       ​

       알리온이 물었다.

       ​

       “일단 숨겨야죠.”

       ​

       나는 1황자를 찾으러 온 친위대 두 명의 발을 붙잡고 질질 끌었다. 비품실에 넣으면 재료를 꺼낼 때 불편하니 버멜과 밀담을 나누었던 좁은 독방에 가둬놓기로 했다.

       ​

       “…보기와는 달리 힘이 장사로군.”

       ​

       알리온이 순수하게 감탄하며 물었다.

       ​

       “대동제 기간에 발명대회에 나간다고 했지? 발명품은 어디까지 완성했나?”

       “거의 다요.”

       “마수 상대로 써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그럴걸요?”

       ​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

       “그렇게 뛰어난 기술로 만든 건 아니거든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작동시켰을 때만 치명타를 먹일 수 있을 겁니다.”

       ​

       공기 중을 이동하면서 펄스가 감쇠될 우려가 있다. 영거리에서 터뜨리지 않는 이상 제 기능을 다하진 못하겠지.

       ​

       어쩔 수 없었다. 원리만 대충 챙겨서 급조한 물건이었으니까. 이른 시일 내에 만들어 달라고 한 버멜의 부탁만 아니었더라도 고심해서 더 나은 걸 만들 수 있을 터였다.

       ​

       “발명대회에 참가할 거라면 소논문 경진대회에도 참여하겠군.”

       ​

       이번엔 클리온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

       “지도교수는 정했나?”

       “정했지.”

       ​

       소논문은 그냥 내도 되는 논문과는 달리 교신저자로 지도교수를 동행해야 한다.

       ​

       이 점이 거슬렸다. 나는 이미 플레어까지 낸 독립된 연구자인데, 지도교수가 왜 필요하지?

       ​

       이해는 안 됐지만 까라면 까야지 뭐. 그래도 꽤나 괜찮은 사람을 담당으로 잡을 수 있었다.

       ​

       클리온이 물었다.

       ​

       “혹시 우리 담임인가?”

       “헤를라인 선생님은 이미 다른 애들이 채갔더라고.”

       “그럼 누구인데?”

       “카이뤼삭 교수님.”

       ​

       인성 좋다고 하니까 논문 날먹당할 일도 없겠지.

       

       그분에게는 ‘알아서 잘할 테니 이름만 올려달라’라고 부탁했다. 이러면 나도 연구 자율성을 보장받아서 좋고, 카이뤼삭도 애꿏게 힘 안 들여서 좋다.

       ​

       “소논문인가 뭔가는 다 썼나?”

       “디스커션 제외하면.”

       ​

       예술제 전에 대부분 완성해 놓았다. 발명품이 어떤지 특허 형식으로 설명하는 거라서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

       애초에 그런 건 고등학교 다닐 때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니 플레어 연구할 때 고생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

       “그나저나 이거 물어볼 시간이 있어?”

       ​

       내 시선이 창밖으로 내던져졌다. 1황자를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경비병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

       “어떻게든 도망가야지.”

       “무슨 수로?”

       “대동제 기간이니만큼 인파가 보통이 아니다. 로브를 싸매고 사람들에게 섞여 달아나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

       ​

       나쁜 작전은 아니었다.

       ​

       대동제는 1개월 내내 열리는 틸레트 아카데미의 축제. 교내 학생뿐만 아니라 외부인도 들어와서 즐길 수 있다.

       ​

       특히 지금은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였으니, 노점에서 파는 떡꼬치를 물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붐볐다.

       ​

       “최대한 평민처럼 차려입고 나가자.”

       ​

       두 황자는 입고 온 로브 곳곳에 구멍을 냈다. 안 그래도 누더기였던 로브가 거지나 쓰고 다닐 법한 것으로 바뀌었다.

       ​

       저래서야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이상 들킬 염려도 없겠지.

       ​

       두 사람이 채비하는 동안, 나는 비품실에서 남은 재료를 긁어모아 플레어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하는 식각 작업이었지만,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

       “자, 예비용. 진짜 아닌 것 같으면 쓰십쇼.”

       “고맙다.”

       ​

       알리온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황가 일원이 일개 노예 출신 금안족에게 이 정도로 예를 취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

       내가 그만큼 명성을 쌓았거나.

       ​

       아니면 그 정도로 황가가 급박한 상황에 놓인 것이든가.

       ​

       “웬만하면 잘 숨겨두세요. 지금 플레어는 제작이고 소지고 죄다 불법이니까.”

       “누가 그런 법을 만들었던가?”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형님. 블랜튼 공작이죠.”

       “……내가 없는 사이에 많은 걸 장악한 모양이로군.”

       ​

       알리온은 나라가 망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구시렁거리다가 클리온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사태가 끝날 때까지 독방에 갇힌 친위대를 잘 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고선 말이다.

       ​

       젠장, 짐덩이를 주고 가다니.

       ​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기서 마법을 계속 공부하려면 황실이 건재해야 한다.

       

       내가 저 둘에게 플레어를 급조해서 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험이었다.

       ​

       나는 담배를 물고 창가에 기댔다. 하늘의 색이 굳기 직전의 시멘트 같았다. 무언가 낌새가 안 좋았다.

       ​

       재빨리 펄스 생성기의 제작을 마무리 지었다. 작업을 서두른 데에는 달리 이유가 없었다. 단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많은 일을 해 두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

       일을 끝마치고는 프레이를 흔들어 깨웠다.

       ​

       “야, 꼬맹이. 일어나 봐.”

       “으응…. 왜…….”

       ​

       창밖을 흘겨보던 내 눈가에 불안한 감정이 스미었다.

       ​

       “바깥 상황이 뭔가 이상해. 잠깐 나가보자.”

       ​

       그때였다.

       ​

       “1황자가 폐하를 시해하고 도망쳤다─!!”

       ​

       창밖 너머로 웬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

       프레이는 범을 만난 토끼처럼 화들짝 놀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눈을 멀뚱거리더니, 소리가 재차 나는 방향으로 헐레벌떡 걸어갔다.

       ​

       창밖을 내다본 프레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

       “뭐야, 저거 다 황궁에서 나온 마도사들 아니야?”

       “맞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마치 프레이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바깥의 누군가가 제국 황제의 붕어 소식을 전해왔다. 프레이는 아빠가 산타클로스라는 걸 알게 된 아이처럼 경악성을 내질렀다.

       ​

       “이, 이건 꿈이야!”

       ​

       짝! 프레이가 제 뺨을 때렸다.

       ​

       “꿈 아니야.”

       “황제가 죽어? 완전 뜬금없잖아!”

       “찌라시일 수도 있지.”

       ​

       진짜 죽었다면 나라 망할 징조고.

       ​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그, 그게 좋겠다!”

       ​

       무슨 일인지 알려면 빙의자부터 찾아야 한다. 그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도 빠른 방법이다.

       ​

       평소보다 유동인구가 많아서 이동이 지체됐다. 대동제 때문이었다.

       ​

       그러던 와중에 ‘1황자가 풀려나 황제를 독살했다’ 따위의 루머가 떠돌고 있었으니,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궁정 기사단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

       “무슨 일이래?”

       ​

       여기저기서 그런 소리가 빗발쳤다. 부모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몇몇 꼬마들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울음을 터뜨렸다.

       ​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불길한 징후라고.

       ​

       빨리 버멜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

       교환학생으로 온 엘프가 버멜만 있었으면 몰라, 중앙 광장에 귀쟁이가 하도 많아서 구별이 안 되었다.

       ​

       그렇다고 지금 ‘로멜’이란 이름으로 활동 중인 녀석의 이름을 쉽게 부를 순 없었다. ‘로멜’이라 말하면 로즈마리나 블랜튼이 눈치챌 수 있었고, ‘버멜’이라고 소리쳐도 말짱 도루묵이다.

       ​

       “김성현 나와!!”

       ​

       그렇게 몇 번 땍땍거리자,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한 키 큰 엘프가 인파를 뚫고 나타났다. 그 곁에는 에리카, 메릴다, 제롯도 있었다.

       ​

       버멜과 나는 서로 처음 만난 것처럼 연기했다.

       ​

       “지붕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대피해야 할 것 같아.”

       “왜?”

       “조만간 비가 올지도 모르거든.”

       ​

       ‘대피’라. 단순히 비가 오는데 대피라는 표현을 쓰진 않을 텐데.

       ​

       “뭐 산성비라도 내리냐?”

       “그런 셈이지.”

       ​

       그때 메릴다와 에리카가 대화를 끊고 들어왔다.

       ​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요.”

       “우리뿐만이 아니야. 다른 엘프들한테도 물어봤는데, 다들 고위 마수의 조짐이 느껴진다고 말했어.”

       ​

       속으로 뜨끔했지만 태연한 척 연기했다.

       ​

       어차피, 이거 나 아닐 거 아니야.

       ​

       “내가 선생님들을 불러올게.”

       ​

       버멜은 그리 말하고는 어딘가로 뛰어갔다. 만났을 때부터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계속 뛰어다녔던 모양이다.

       ​

       – 내게도 정령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

       문득 녀석이 병실에서 했던 푸념이 떠올랐다.

       ​

       정령이 없어서 저렇게 뭐 빠지게 돌아다니는 게 아닐까.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저 녀석은 나보다 이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

       – 지붕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대피해야 할 것 같아.

       ​

       그래, 우선 버멜이 남기고 간 과제부터 처리하자.

       ​

       “아?”

       ​

       나는 프레이를 번쩍 들어서 목마를 태웠다. 프레이는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휘청거리더니 곧 중심을 잡았다.

       ​

       내가 말했다.

       ​

       “헤를라인 선생님 좀 찾아봐.”

       ​

       ​

       **

       ​

       ​

       같은 시각, 황궁.

       ​

       로즈마리는 아카데미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계획을 점검했다. 그녀의 입가에 광기 어린 조소가 걸렸다.

       ​

       ‘완벽해, 너무나도 완벽하단 말이야!’

       ​

       로즈마리가 킬킬 웃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곳에는 덕트 테이프로 입이 막인 황제, 옐친 필리우트가 있었다.

       ​

       “읍, 으읍…!”

       “포승줄에 꽁꽁 묶인 황제라니, 이거 완전 진풍경인데!”

       ​

       그의 머리 위로는 바이올린 현이 덧대어져 있었다. 바이올린 현은 로즈마리가 사용하는 스태프다. 아직 죽은 건 아니지만,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

       ‘좋아. 모든 점검은 끝났어.’

       ​

       에테르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로즈마리는 몇 가지 책략을 강구했다.

       ​

       언니가 플레어를 소형화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로베스피에르 후작에게 넘기겠다는 계약을 했다는 건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

       ‘언니는 계약을 중요하게 여겨.’

       ​

       틀림없이 연구자금 대가로 성사시킨 계약이다. 분명 언니는 로베스피에르에게 소형화된 플레어를 지급했을 터. 그 정도쯤은 스코프를 켜지 못해도 추론할 수 있다.

       ​

       로베스피에르는 10년 전부터 자신을 죽이려고 벼르던 인간이었다. 마땅한 수단이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뿐, 암살용 무기가 생긴 지금이라면 틀림없이 황궁으로 올 것이다.

       ​

       물론 아카데미에서 선동 중인 블랜튼을 먼저 공격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미 이쪽으로 어그로를 끌 대책까지 마련해 놓은 뒤였다.

       ​

       “읍, 읍, 읍!”

       ​

       바로 여기 있는 황제.

       ​

       1황자가 황제를 죽였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로베스피에르는 반드시 온다.

       ​

       그간 수많은 인간을 보아온 로즈마리였다. 그가 오는 건 확실하다. 그녀의 감각이 확신에 확신을 더하고 있었다.

       ​

       ‘와라.’

       ​

       로즈마리가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

       다음 순간이었다.

       ​

       콰앙!

       

       “간악한 마수년아, 여신의 철퇴를 받아라!”

       ​

       그녀의 입가가 입을 찢을 기세로 올라간다.

       ​

       “이거, 설마 수십 명씩 떼거리로 몰려올 줄이야.”

       ​

       청명했던 로즈마리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든다. 로드스톤이 틸레트에 들어온 이상 더는 마수라는 걸 숨길 이유가 없었다.

       ​

       “그, 금안족….”

       “네년, 금안족이었나!”

       ​

       토파즈처럼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

       로즈마리는 황제를 치워버린 뒤 바이올린 현을 쳐들며 요격 태세를 갖추었다.

       ​

       “아무튼, 로즈마리 블랜튼. 넌 여기서 끝이다.”

       “십 년간 제국을 농간한 죄, 네년의 수급으로 갚아라!”

       ​

       로베스피에르는 뜻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수십 명의 마도사들과 함께 로즈마리를 원형으로 둘러쌌다.

       ​

       척, 척, 척!

       ​

       레이저 포인터처럼 작은 원통형 스크롤이 그녀의 몸 곳곳에 조준된다. 희끄무레한 실선들이 사지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

       로즈마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어댔다.

       ​

       “꺄하하하! 개빡대가리 새끼들! 감쪽같이 걸렸구나! 안됐지만 그런 걸 조준해 봤자 이미 늦었어…. 이렇게 될 줄 알고 마왕성에서 반응장갑을 두르고 왔거든! 그깟 플레어로는 유격대 총사령관인 이 몸을 막을 수가……!”

       ​

       그때였다.

       ​

       “쳐라─!!”

       ​

       피익! 피익! 피익!

       ​

       빛살이 허공을 갈라냈다. 쿠쿠쿵! 맹렬한 섬광이 황성 첨탑을 양단한다.

       

       수십 줄기의 번갯불이 내쏘아진다. 그야말로 일섬(一閃)의 연속.

       ​

       다음 순간, 무형무색의 빛무리가 로즈마리의 시선을 부침개 뒤집듯이 뒤집어 놓았다.

       ​

       “…아, 아?”

       ​

       팔다리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반응은 조금 늦었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핏물이 목울대를 적시기 시작했다.

       ​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로즈마리가 힘겹게 사고를 이어나갔다.

       ​

       ‘이, 이건…….’

       ​

       큰일났다.

       

       자신이 맞은 건 플레어 따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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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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