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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10월은 초반부터 바빴다.

        

       아카데미 일정 때문에 바빴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바빴던 이유는 주로 내 개인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전쟁을 막겠다는 그 목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카데미는 제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제도에서도 황궁 가까운 곳에 있었다. 걸어 다니기에는 애매하게 먼 거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시간이 무한에 가깝게 있는 존재에게 그 정도 거리는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즉, 밤마다 황궁 내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정보를 수집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퇴로를 확보할 필요도 없다. 보고 싶은 걸 보고 나면 시간을 돌리면 그만이니까. 심지어 같은 장소 안으로 들어왔던 순간으로 시간을 돌리면 이동 루트를 최소화시켜서 시간을 더 확보할 수도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확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국경에 큰 변화가 없지만, 상대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서라도 계획 자체는 오래전부터 해야 했다.

        

       문제는, 아무리 찾아도 그 전쟁의 증거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방예산은 예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늘어나긴 했지만, 대부분은 신병기를 새로 양산하기 위해 들이는 돈일 뿐, 그것을 곧장 전장에 투입하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모니터함을 잔뜩 건조하긴 했지만, 지난번에 북쪽 국경 인근에서 군벌 세력을 초토화한 이후에는 다시 제도 근방의 위성도시로 옮긴 뒤였다. 심지어 선체에 비해 지나치게 큰 반동 때문에 일부 함선은 수리 및 점검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다른 동형함들도 무기한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전함의 추가건조계획은 없었다. 아무리 제국이라도 전함을 추가 건조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런데 황궁에조차 그 계획서가 없다는 것은……

        

       ……다른 지방에 숨기기라도 한 걸까? 황제가 나의 능력을 눈치채고 내가 물리적으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정보를 분산시켜둔 것일까?

        

       가능성이 큰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호오.”

        

       결국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다가 제대로 된 정보를 찾지 못한 내가 선택한 것은 황제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내가 숨겼을지도 모르는 정보’를 ‘나에게 물어서’ 찾으려고 했다는 소리더냐?”

        

       내 질문에 황제는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흠.”

        

       내 말에 황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씩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내가 네게 물어보도록 하마. 너는 만약, 너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너를 바라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싫어할 만한 짓을 애초에 안 하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물론 그것 때문에 일생의 목표를 수정해야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목표라는 것은 하나를 잃어도 새로운 것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폐하께서는, 제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아셨기에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접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너는 내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황제는 대단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네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너의 그 가정은 네가 백작을 암살하고 얼마 뒤에 파기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면…… 그렇군. 이미 나는 너의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 아니겠느냐?”

        

       “…….”

        

       “이 사실을 네가 되돌아간 뒤의 나도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마치 딸과 체스를 두는, 자식과 잘 놀아주는 아버지와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황제를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

        

       못 믿어.

        

       상대는 황제가 아닌가? 애초에 나한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대단한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방지해야 했다.

        

       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을 돌아다닌 황궁의 길을 죄다 외울 수 있었다. 설령 게임에서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라도.

        

       그리고 제도 하수구 쪽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황궁으로 이어질 만한 곳은 다 알았고, 어디를 폭파하면 어디가 무너질지도 대충 계산해둘 수 있었다. 혹시 만일의 사태가 일어난다면 미리 폭탄을 설치하여 통째로 무너뜨려 버릴 생각도 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분명히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을 때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더 긍정적인 것은, 내 잠행 능력이 가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실비아 블랙’의 몸은 사실 이쪽 세계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는 한없이 일반인에 가까운 몸이었지만, 검기를 휘두르거나 자기 키만 한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것이 아닌, 일반 군인들이 할 수 있는 동작은 다 할 수 있었다. 시간을 돌리면 늘었던 체력도 돌아가긴 하지만 그 행위를 했던 감각 자체는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충분히 집중하기만 한다면, 누구 한 사람을 몰래 따라다니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기회는 머지않아서 찾아왔다.

        

       *

        

       내가 황제만큼 경계하는 존재가 있다면, 당연히 그건 법국이다.

        

       ‘여신’이라는 떡밥은 내가 플레이한 작품에서도 해결되지 못했다. 법국의 신성력에 대한 것도 자세하게 나온 적이 없고, 그 여신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는 존재인지, 만약 있다면 정말로 선한 존재인지도 팬들 사이에서 뇌피셜만 나돌아다닐 뿐이었다. 그 뇌피셜을 마치 공식 번역인 것처럼 여기저기 올리고 다니다가 들켰던 적도 있긴 하지만, 그건 뭐 이제 와선 중요한 일도 아니고.

        

       아무튼 그랬기에, 내가 원작의 ‘남주인공’인 레오의 뒤를 몰래 따라다니는 ‘성당 기사’ 소피아를 보고 엄청나게 수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클레어와 레오는 남매인 만큼 같이 다니는 일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친구가 생긴 이후로는 종종 서로 떨어져 있기도 했다. 클레어는 앨리스나 샤를로트와도 잘 어울렸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근처에 그런 존재가 거의 없었기에 여자들끼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동성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종종 레오와 떨어져 다니게 된 것이다.

        

       사실 그럴 때면 나도 그 ‘여자 그룹’ 안에 있었기에, 혼자 남겨진 레오가 뭘 하고 지내는지는 잘 몰랐다.

        

       “…….”

        

       그래서,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로 가득한 공원 벤치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봤을 때는 적잖이 충격받았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주변 여자애들이랑 친해도 친한 동성 친구가 거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치명적인 문제였다. 하필이면 레오가 대놓고 미소녀들 사이에 섞여 다니는 바람에 같은 반 남자애들에게 여러모로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있었고, 그게 이런 식으로 따돌림의 형태로 나타날 거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원래 하렘물 만화에서 남주인공이 동성 친구들에게 배척당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보통은 장난스럽게, 웃기는 상황으로 그려진다. 당연한 이야기다. 진짜 진지하게 따돌림이라는 형태로 묘사하는 건……너무 심각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직접 눈으로 봤더니—

        

       “……응?”

        

       그리고, 나는 또 보았던 것이다.

        

       저 멀리, 레오와 멀찍이 떨어진 곳의 한 코너에서, 우연히 보라색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을.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눈치챌 일도 없었으리라.

        

       “……소피아?”

        

       내 미간이 팍 찡그려졌다.

        

       원작의 그 소피아와는 이미지가 상당히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본질은 같은 인물이다. 어쩌면 내 앞에서의 그 모습은 완벽한 연기였을지 모르고, 아니면 아직 그 성격을 각성하지 못했을 뿐, 성당 기사로서의 임무는 그야말로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지, 분명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아니고,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것도 아니니까.

        

       혹시 레오에게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라도 한 것일까? 법국과 관련해서 어떤 얻어낼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

        

       레오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던 나는 얼른 몸을 돌려서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장 장비를 챙겨 나왔다.

        

       물론 레오가 나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아카데미 부지를 빙 돌아서 그가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먼 곳으로.

        

       동시에, 소피아가 숨은 곳이 보일 수 있도록.

        

       내 예상대로, 상대는 소피아였다.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소피아는 확실하게 레오 쪽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다시 망원경의 각도를 돌려서 레오 쪽을 살피고 있는데—

        

       “……실비아?”

        

       내 등 뒤에서 그런 청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소리 지르지 않은 내가 자랑스럽다.

        

       대신 어깨를 크게 떨기는 했지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보니 보인 사람은, 다름 아닌 샤를로트였다.

        

       나를 보는 샤를로트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스토커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

        

       아니, 그런 거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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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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